낯선 이방인의 생각을 투영한 현대 한국의 무용은 어떤 모습일까? 오는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컨템퍼러리 한국 무용 작품 <회오리>에는 국립무용단 최초로 물빛 눈동자의 이방인이 참여한다. 핀란드 출신의 최정상급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테로 사리넨과 무대 의상 디자이너 에리카 투르넨이 그들이다. 자연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테로 사리넨의 춤에 에리카 트루넨은 신비로운 날개를 달았고, 그 결과 생경하고도 익숙한, 그야말로 모순적 이미지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바람을 거슬러 훨훨 날아가는 학처럼 고아하고 순수한 의상은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결정적 요소. 더블유 코리아와 만난 에리카 투르넨 역시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핀란드 출신의 디자이너가 현대 한국 무용 작품의 의상을 맡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회오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회오리>의 안무를 담당한 테로 사리넨과 나는 14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다. 그동안 그가 맡은 대부분의 작품에 참여했다. 테로는 이 작품이 내 스타일과 잘 맞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자연스레 내게 의상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후 일련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전생에 내가 한국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오리>의 한국 무용과 한복 특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의상으로 옮기는 과정을 이야기해준다면?
먼저 이 작품의 안무가인 테로 사리넨의 생각을 듣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내게 “해변가에 있는 두 사람,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외로운 커플, 각기 구름과 하늘을 생각하는 또다른 커플, 언제나 외로운 사람 등의 캐릭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작품에 사용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의상이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하는 동시에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자세히 지켜보면서 하루 종일 스케치를 한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갖고 그와 생각을 나누며 디자인의 윤곽을 잡는다.
<회오리>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으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시한 점은 무엇이었나?
아침에 국립무용단의 댄서들이 워밍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집중력과 열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한 그들은 마치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나의 의상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호하고 싶었다. 내 의상 때문에 그 모습이 사라지거나 혼란스럽지 않도록.
당신이 디자인한 <회오리>의 의상을 보면 한복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의도한 바인가?
이번 작품은 한국 무용과 전통 음악에 기반을 둔 만큼 의상 역시 한국적인 이미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 특유의 독특한 허리선, 오간자와 실크 같은 소재, 부드러운 실루엣을 바탕으로 외국인의 관점에서 전통 의상을 디자인했다. 사실 이런 작업은 처음인지라 어떻게 나올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회오리>의 의상 스케치를 살펴보니 구조적이고 3차원적인 형태가 유독 두드러진다. 이는 당신 작품의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비대칭의 터널 형태를 띠는 의상이 인상적인데 어떤 의도를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름 장식으로 이루어진 터널과 레이어는 ‘회오리’를 상징한다. 무용수들이 움직이고 춤을 추면 회오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의상 속의 회오리는 닫고, 열 수 있으며 소리도 난다. 이 소리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의상 속에 작은 마이크를 설치할 생각이다.
춤을 위한 의상과 일상을 위한 의상은 그 존재의 이유가 전혀 다르다. 당신이 생각하는 무대 의상이란 어떤 의미인가.
무대 의상은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용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복보다 적어도 3배는 더 정교하고 완벽하게 완성되어야 한다. 격렬하게 팔과 다리를 뻗거나 점프를 하고, 여럿이 서로를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동시에 무대 의상은 내게 무거운 책임감을 지우는 존재다. 클래식 발레 공연의 커튼이 열리는 순간 관객들은 화려하고 로맨틱한 의상을 보고 감탄하고 어린 소녀들은이 모습을 보며 ‘공주가 춤을 춘다’라는 기억을 평생 간직하니 말이다. 또한 현대 무용은 관객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주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대 무용의 의상은 관객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그 기회를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에디터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송선민
- 포토그래퍼
- 정지은(Jung Ji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