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을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줄 한밤의 술맛 좋은 식당 세 곳.
더 누룩(The Nurook)
막걸리라고 꼭 비 내리는 날 쓰러질 듯한 지붕 아래서 마시란 법은 없다며 고급스러운 막걸리 바를 찾곤 하지만, 그 외관을 똑 닮아 도도한 안주를 보고있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땐 은은한 조명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치장하고 있으면서도, 순박한 안주를 푸짐하게 차려 내는 더 누룩으로 향하면 된다. 살짝 밑간만 한 참가자미를 오븐이아닌 프라이팬에 구워 고소한 불맛이 살아 있는 참가자미구이, 뜨끈한 돌판 위에 깔아놓은 훈제 삼겹살을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버무린 생부추에 감싸먹는 돌판 훈제 부추 삼겹 모두 넉넉한 맛과 모양새를 지녀 배도 마음도 허전하지 않다. 하지만 안주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입맛에 맞는 막걸리를 고르는 일. 부드럽고 순한 맛을 원한다면 월향 현미 막걸리, 걸쭉하게 들이켜고 싶다면 진천 덕산 쌀막걸리, 술의 쓴맛을 싫어한다면 고소하고 달달한 소백산 검은콩 막걸리가 좋겠다. 다만 모든 막걸리는 숙성된 정도에 따라 맛있는 날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신선하고 제대로 숙성된 막걸리를 맛보고 싶다면, 그저 오늘 가장 맛있는 막걸리가 무어냐고 물어보면 된다.
위치:서울 강남구 신사동 657-36
영업시간: 오후 6시 ~ 새벽 4시(일~목), 오후 6시 ~ 새벽 6시(금~토)
문의: 02-518-2736
샤야99(Shaya99)
배우 김호진의 레스토랑 사야99에 초대받으면, 와인이라도 한 병 챙겨 가야 할 듯한 착각이 든다. 아늑한 공간, 그의 딸 샤야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는 벽, A4 용지 위에 주요 재료만 간단하게 적어놓은 메뉴판 모두 레스토랑보다는 솜씨 좋게 꾸며놓은 친구 집처럼 편안하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요리에선 가까운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이려는 듯 즐겁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와인에 마리네이드 한 장어를 전분을 입혀 튀긴 후 소스를 뿌린 다음오이 절임, 대파채와 함께 깻잎에 싸 먹는 장어요리,각종 해물과 야채 위에 고수, 고추, 라임 등을 얹어 매콤하면서도 새콤하게 즐기는 남미식 냉채인 쉐비체 모두 여느 레스토랑에서 본 것처럼 뻔한 맛과 모양은 아니지만 낯설기보다는 친근하다. 하지만 남산 소월길에 자리 잡은 그 공간에서 평온한 남산의 밤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있노라면, 내 집보다 더 좋은 친구 집에 갔을 때처럼 괜한 질투가 느껴지기 마련. 그럴 땐 부드럽고 향이 좋은 카네로스 메를로,또는 달지 않고 상쾌한 실레니 셀라 셀렉션 소비뇽 블랑으로 잠시나마 위안 받는 게 좋겠다.
위치: 서울 용산구 후암동 448-99
영업시간: 오후 12시 ~ 3시, 오후 5시 ~ 11시
문의: 02-3789-4408
술술(Sulsul)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 여기고 있다면, 계동의 작은 밥집이자 술집인 술술은 알맞은 목적지가 아니다. 이곳의 공식적인 문 닫는 시간은 밤 10시이고, 실내에선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한국과 일본의 맛이 묘하게 어울린 안주들을 탐닉하다 보면, 담배를 참는 건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밤 10시를 넘기지 마라는 얘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가지를 살짝 지져서 그 위에 된장으로 만든 소스만 얹었는데도 감칠맛이 도는 가지미소, 매생이가 듬뿍 들어가 바다 내음이 온 입안을 가득 채우는 매생이 해물전, 일곱 가지 야채를 넣은 일본식 카레를 푹 삭혀서 밥과 함께 먹는 일본식 카레밥 모두 생긴 모습은 소박한데 자꾸 술을 탐하게 하는 욕심스런 안주들이다. 그 덕에 이 안주들과 더불어 순한 맛의 청주 오제끼 카라탄바, 또는 독하면서도 깔끔한 오키나와지방의 쌀소주 아와모리 즈이센을 술술 넘기고 있노라면, 이곳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인생도 술술 풀리는 듯한 흥이 돋으니, 10시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면 꽤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겠다.
위치: 서울 종로구 계동 79-6
영업시간: 오후 12시 ~ 10시 (일요일 휴무)
문의: 02-3676-6420
- 에디터
-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김범경, 이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