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갛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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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히메와 최지우는 동의어일까? 이 질문에 그가 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최지우는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말갛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사진 찍히는 것과 인터뷰, 둘 중 어느 것을 더 싫어하는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얘기를 매니저로부터 전해 듣는 순간 에디터의 심장은 분리 수거되는 페트병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다. 사진 찍는 것과 인터뷰, 둘 다 하지 않으면 안될일이다. 최지우는, 그러나 와 4박 5일의 홍콩 촬영 내내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화보는 싫어요.다른 사람처럼 꾸며서 정색하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건 영 어색해요.”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러니까 ‘어떤 이미지를 웅변하는 사진에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배우 최지우가 그대로 스며든 그림에 자기다운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진심의 거친 요약이었다. 한국말 쓰는 사람들 사이에도 때로는 통역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싫어한다는 이야기 아래에도 일말의 갈증이 숨어 있을 터였다.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에 따옴표로 겁탈당하는 것 말고 진짜 대화를 원한다는.

최지우는 오이씨처럼 날렵한 얼굴선과 참외토막 같은 말간 피부, 버들가지 같은 몸을 가졌다.‘고전적 미인’이라는,고전적이다 못해 낡은 낱말이 그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올랐다. 그리고 부드럽게 대화의 흐름을 따라오는 명랑하고 구김 없는 인터뷰이였다. 한쪽 무릎을 세워 앉고, 거기다긴 몸을 기대는 동작은 작고 조심스러웠으며, 눈으로 많이 웃었다. 그 눈웃음은 ‘지금 이거 무슨 말인지 알죠?’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배우를 만나기 전에 기대하게 되는 태도는 대략 두가지다. 새끼 가진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움츠리거나, 가식적인 쾌활함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최지우에게는 자의식의 과잉이나 허세도, 그걸 부러 애써 감출 무엇도 없어 보였다. 여권에 도장을 찍는 순간부터 외국 파파라치들 카메라가 부채꼴로 둘러싸는, 한류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스타를 앞에 두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는건기이하기까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가가면 베일 듯이 쨍한 존재감만이 스타의, 배우의 매력은 아닐 것이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담담한 그에게 와 작업한 사진에 만족하냐고 물었다. 최지우의 발음이, 조금 짧아졌다.“이런 사진을, 어떤 배우가 갖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그가 싫어한다는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촬영장에서 닌텐도DS 라이트를 갖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게임기나 디지털 카메라, 그런 전자 기기를 즐겨 다룰 사람 같지는 않아 보여서다.
맞다. 사실 기계치에 가깝다. 그런데 촬영 현장이 기계랑 친해지게 만드는것 같다. 공항 배경이라서 비행기 한 대 뜨고 내릴 때마다 피해야 하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차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다. 신 하나하나 공들여 찍는 드라마기도 하고.

게임 타이틀중 ‘두뇌 트레이닝’도해봤나? 뇌나이는 몇살로 나왔나?
처음 했을 땐 60대로 나왔다. 지금은 30대까지 떨어졌지만.P SP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차 안에서 기다리는 데는 도가 텄다.

드라마 현장을 다녀보면서 배우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화려한 직업이지만, 물리적으로 힘든 환경 속에 일한다는걸많은 사람은 보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오래 준비해서 여유 있게 찍는 편이지만, 드라마는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한다. 하지만 그 긴장이 꼭 싫은 것만은 아니다. 이 정도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나.

이제 당신도, 현장에 나가면 배우나 스태프나 동생이더 많을것같다. 30대 여배우라는거 할만한가?
늘 막내였는데 어느새 다들 나더러 누나라고 한다. 어지간한 스태프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리다. 같이 하는 배우중이진욱 같은 친구도 그런데, 20대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아주 풋풋한 매력이 넘치는 친구다. 어딜 가나 누나 소리를 듣는 기분은… 뭐랄까 더 편하다. 오히려 어릴 때의 초조함 같은 게 사라졌다.

종류가 다른 초조함이 생기지는 않나? 이를테면 결혼이라든가.
어제 이정재 씨가 그러더라. ‘너보다 어린 박경림도 결혼하는데, 넌 뭐니? 너도 해야 되지 않겠니?’ 그도 그런 말할 입장이 결코 아닐 텐데 말이다. 식상한 대답 같지만 나는 어딘가에 내 짝이 있다는 걸 믿는다.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편이다.

구체적인 기대라고 하면 어떤 것인가? 다른 여배우들의 결혼을 보면서 여러 가지 조건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모나지 않고 온화한 사람이 좋다. 다른 사람과 잘 융화해야 하고, 성실해서 믿을 수 있어야 하는건 물론이다. 그리고 나랑 잘 맞아서 둘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쟤네는 뭘하는데 저렇게 재밌나, 좋아서 서로 죽고 못 사냐, 무인도에 갖다 놔도 둘이 잘 살겠다 싶은 거 있지 않나.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긴 하지만. 또… 잘 생기면 좋겠지, 키도 크면 좋고.

돈 얘기는 왜 안하나.
하하, 능력이 있어야 내가 좀 더 존중하겠지.

같은 연예인 남자는 어떤가?
연예인도 좋다. 주변에 연예인 커플 많으니까. 그런데 좋은 남자들은 언니들이 다 채갔다. 누굴 만나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 (웃음)

언니들이라고 하면 친한 여배우들 말하는 건가?
유호정, 신애라, 오연수… 나랑 친한 배우들은 대부분 언니들이다.

또래가 아니라 특별히 선배와 가깝게 지내는 이유가 있을까?
나이 들어가면서 나이가 더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더라. 나랑은 1~2년 알아온 사이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기 때문에 돈독하지 않을 수가 없다.이제는 그 언니들이 언니가 아니라 친구들이다.

그 ‘이경민 사단’의 여배우들은, 친하다는 다른 여자 연예인 그룹과 달라 보인다. 모여도 조곤조곤하지, 큰 소리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다들 성격이 비슷해서, 집에서 만나는거 좋아한다. 그러려고한 건 아닌데 다들 삼성동에 모여서 산다. 저녁때쯤 호정이 언니한테서 전화가 온다. ‘뭐하니?’ ‘응집에 있어. 언니는?’‘애기 재웠어, 와인 한잔 할래?’그러면 슬리퍼 신고 모자 눌러쓰고 집에 있는 와인 한병들고 터덜터덜 걸어서 간다. 그러다 그집 남편들오면 같이 얘기도 하고. 언니가 마당에 가꾼 꽃 얻어 오기도 하고. 언니들 곁에 있으면서 따뜻함을 많이 느낀다.

결혼하고 연기를 그만두는, 혹은 결혼하면 미련 없이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여배우들도 있다. 당신은 어느쪽인가?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면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이가 엄마의 손을, 남편이 아내의존재를 필요로할때 그것까지 저버리고 일을 하진 못할것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일을 그만둘 생각도 없고. 주변에일과 가족둘다균형 있게 꾸려가는 여자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 무슨 선언하듯이 일을 관둘 필요도, 밀려날 것을두려워하며 악착같이 일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했나?
한거 없다. 촬영해야 해서 꽃보내드리고, 아버지한테 전화하고. 엄마한테는 홍콩 다녀오면서 이거 어버이날 선물이니까 따로 없다고 못 박았다. 평소에 워낙 잘한다. (웃음)

워낙 잘한다니, 대체 몇점짜리 딸이기에.
아빠한테는 늘 불안불안한 딸일 거다. 연예인이니까 보통사람처럼 살지 못하는걸 안쓰러워하신다. 엄마는 딸이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다. 거의 친구 같다. 갈수록 나에게 힘이되어주는 가까운 사람을 챙기게 된다. 가족과 여행도 자주 하는 편이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대신 그외의 것들은 신경 안 쓴다. 남의 일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다.

스태프들 챙기는건 유명하더라. 촬영장에 도시락 돌리는 등 일화가 많다.
내가 아니라 팬들이 해주는 거다.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은 나이가 많은 편이다. 선물도 다른거 아니고 몸에 좋은거, 주로 음식을 챙겨준다. 나 한 사람 기뻐하는 것보다 스태프와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들이 기뻐하고 도로 나에게 잘해주도록 배려하는 거다. 도시락을 싸서 돌리기도 하고, 회식을 시켜주기도 하고. 정이 있다고 할까. 어린 사람들은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그런 부분을 돌봐준다. 그러니 스태프들도 ‘어제 누나 덕에 잘 먹었으니까’하면서 조명 하나라도 더 예뻐 보이게 세워주고.

한류 스타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특히 나이가 많지 않나? ‘고릴라인 더 키친’에 오는 욘 사마팬들을 봐도 그렇고, 차인표 일본 팬미팅 평균 연령이 60대였다는 괴소문도 있었다.
나는 원래 한국 팬들도 아줌마들이었다. (웃음)

<겨울 연가>는 하나의 드라마라기보다 현상이었다. 배용준이나 당신이나, 그 드라마 덕분에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너무 강한 이미지로 규정되는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우히메’라는 호칭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드는가?
기분 좋다. 내가 공주인가 착각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나를 진지하게 그렇게 부르기보다 놀릴 때가 더 많지 않나?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는 말이라 기분 좋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게 중요한 문제인가? 말하자면 좋은 배우로 인정받는 것보다?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아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면 또하나의 별명, ‘눈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어떤가?
이번 드라마에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멜로보다는 스케일이 크고 전문 분야도 나오는 남성적인 드라마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새로운 캐릭터라 재미있긴 하지만 하던 게 아니라 걱정도 된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드라마 속에서 늘 사랑을 듬뿍 받는 역할을 해온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멋진 남자 배우들에게 사랑받는것, 극 중에서만이라도 행복한 일이다.

실제 삶에서는 어떤가? 멋진 남자에게 사랑받고 있나?
지금은 없다. 항상 없었다고는 말못하겠지만. 지금은 없는것도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촬영장에 있으면 챙겨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편하니까.

남자 앞에서의 최지우는 어떤 여자인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여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 않나? 나도 그렇다. 무뚝뚝하다가도 하루아침에 누굴 만나면 애교가 샘솟기도 하고. 대체로는 쿨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라서 좋은 점은 그건가? 극 중에서나 밖에서나 늘사랑받는 것?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일본은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른 나라지 않나. 역사적인 골도 깊고. 멀게만 느껴지던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건 참 뿌듯한 일이었다. 문화를 뛰어넘어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보람 있는 일이지 싶고.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연기라는건 정답이 없는 일이다. 답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린다. 긴장이라고 해야 할까 흥분이라고 해야 할까. 맥박수가 빨라지는걸 느낀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데, 그건 할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내가 계속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강점은 뭔가?
솔직하다. 솔직해지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적어도 오늘의 인터뷰는, 그랬다.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이상욱
모델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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