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잡이 황인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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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엽은 재주가 많다. 태권도, 합기도, 검도, 수영, 스케이트까지. 어떤 배역에도 잔잔하게 스며들 준비가 되어 있다. 어른스럽고 의연한 데다 유머 감각도 있다.

민소매 니트 톱은 렉토, 가죽 팬츠는 던힐, 슈즈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인터뷰랑 겹치면 안 되니까.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뭔가?

황인엽 “저도 서준파예요.”(웃음)

나도 서준파다(웃음). 종영한 드라마 <여신강림> 15화 즈음에 반전을 기대했는데 결국 서준과 임주경(문가영 배우)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워한 시청자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서준파가 많을 줄은 몰랐다. 밥 먹을 때도,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썼음에도 머리 스타일이나 피어싱만 보고도 “어, 서준이다” 하고 돌아보신다. 그래서인가 나도 한서준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다. 지난주에 촬영이 끝났다. 오디션을 본 시간까지 합치면 약 9개월 동안 서준으로 살았다. 단기간에 빠져나오긴 어렵다. 여운도 짙고.

그럼 어떤 걸 걷어내야 황인엽이 될 수 있을까?

약간의 허세스러움. 아직도 무의식중에 한서준 특유의 말투나 제스처를 취하곤 하는데 매니저나 스태프들이 “어, 방금 서준이 같았어” 할 때가 있다. 근데 딱히 의식해서 고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해줬으면 해서.

짝사랑의 아이콘 한서준 입장에서 전국의 짝사랑꾼에게 한마디만 해줘라.

그래도 서준이는 행복할 겁니다. 슬퍼하지 마세요(웃음).

빨강 레이스 니트 톱, 빨간색 팬츠는 펜디 제품.

한서준은 의리파에 마초남이지만 아픈 엄마 간병을 도맡고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따뜻한 면도 있다.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나?

웹툰 캐릭터를 밖으로 끄집어낸 뒤 ‘서준이라면 어떨까?’ 가지를 뻗어 나갔다. 원작에는 없던 ‘오토바이 타는 고등학생’ 설정을 추가했다. 걸음걸이도 바꿨다. 팔자걸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날것의 느낌을 냈다. 웹툰처럼 10등신으로 보이려고 의상 피팅도 정말 많이 했다.

극 중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게 예사롭지 않더라.

이번 드라마를 위해 오토바이 면허를 땄다.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어서 바이크 마니아인 회사 관계자에게 따로 코치도 받았다. 키가 크니 자세를 낮추고 오토바이에 밀착시켜서 타라고 하더라. 헬멧을 벗을 때도 머리를 흔들며 사방으로 털어줘야 한다. 그래야 세팅한 머리가 자연스럽게 흐트러질 수 있다(웃음).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본인의 학창 시절과 <여신강림>에 나온 학교의 모습을 비교해본다면? 요즘 학교 분위기는 10여 년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교복의 길이, 헤어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두발 규정 때문에 머리를 길러본 적도, 염색을 해본 적도 없다. 요즘 10대 친구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SNS 소통도 자유롭다. 우리 때는 버디버디밖에 없었는데(웃음).

황인엽은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

공부를 좋아하진 않았다. 중학생 때 엄마에게 “모델하면서 쇼핑몰 운영하고 대학에 안 가면 안 될까?”라는 철없는 소릴 했다. 그때 엄마가 “한 달 동안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찾아봐” 하셨고 옷가게에서 일하거나 동대문을 누비며 이유를 찾으려 한 기억이 난다. 그런 철부지에게 잡지를 사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어머니 덕에 모델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우는 누군가 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많은데도?

나는 의정부에서 자란 소심한 아이였거든. 명동을 고등학생 때 처음 가봤다.

끈 장식의 검정 재킷은 샤넬 제품.

그럼 한서준 역할을 위해 이번에 귀를 뚫은 건가?

모델 시절 6군데 정도 뚫은 적이 있다. ‘모델은 가장 젊고 예쁠 때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귀고리를 다 빼서 현재는 구멍이 막힌 상태다. 귀를 새로 뚫을 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페이크 귀고리를 꼈다. 유심히 본 분들은 알겠지만 매 회마다 다른 귀고리를 착용했다.

극 중 서준 역할을 하며 아쉬운 점은 없나?

안타까운 점은 있다. 나라면 주경이를 안 놓쳤을 거다. 그렇게 주경이 곁에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맴돌지만은 않았을 거 같다.

그렇다면 16화를 통틀어 고백 타이밍은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수호가 갑자기 사라진 2년의 시간. 그중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괜찮지 않았을까?

절친의 여자친구였어도 헤어지고 1년 뒤라면 친구 수호 역시 이해해줬을 거다.

왜냐면, 수호가 헤어지자고 먼저 얘길 했으니까! 휴, 아직 한서준에서 못 빠져온 게 너무 티가 나는 대답이다(웃음).

드라마와 비슷한 삼각관계라면 우정과 사랑 중 어떤 결정을 할 텐가?

글쎄, 우정을 택한다면 사랑만 잃겠지만 사랑을 택한다면 둘 다 잃을 각오가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황인엽은 둘 다 잃을 생각으로 사랑을 택한다’고 적어야겠다.

음… 근데 그런 사람이 나타나질 않네(웃음).

얄밉게 잘 빠져나간다(웃음). <여신강림> 주경이 화장으로 인생이 바뀐 것처럼 황인엽의 인생을 바꿨던 순간이나 귀인이 있다면?

모델 일을 혼자 열심히 하며 ‘세상은 차갑구나’라는 걸 느낄 즈음 거짓말처럼 지금 회사가 나타났다. 사실 귀인이 별게 아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곁에 있는 사람이 귀인이지. 지금 회사가 그렇고.

지금 소속사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오디션을 봤다. 당시 인지도도 전혀 없었고 스물아홉이 되던 때였다. 물론 스물아홉이 많은 나이는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할 필모 없는 무명을 배우로 키우려는 결정도 쉽지 않았을 거다. 배우 지망생 중 누구 하나 실력이 모자라거나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 가능성을 믿어준 소속사에 고마울 따름이다.

데님 셔츠는 와이프로젝트 by 지스트리트 494 옴므, 안에 입은 민소매 티셔츠는 스탠드얼론, 데님 쇼츠는 발렌시아가, 벨트는 새들러스, 목걸이는 벨엔누보 제품.

기억에 남는 조연은 어떤 역할이었나?

영화 <신과 함께>에서 신을 보좌하는 사자 역할 5명을 뽑는다고 해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저승사자처럼 검정 옷으로 입고 오라고 해서 옷을 사고 피어싱까지 풀착장으로 촬영장에 갔다. 근데 현장에서 다 벗으라고 하더니 2미터짜리 누더기 망토를 주시더라. 그러고는 옆에 계신 할머니 손을 잡고 한 명씩 들어가라고… <신과 함께> 오프닝에서 협곡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수백 명의 뒷모습 중 하나가 나다(웃음).

그래서 영화를 보며 본인 뒷모습을 찾았나?

아니, 전혀. 지금 생각해보면 ‘키 크고 훤칠한 보조 출연자 보내주세요’라는 주문이 와전된 것 같다.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 극 중 가수 연습생 역할에 무대에서 직접 드라마 OST까지 소화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고음이 잘 올라가는 게 최고였다. 스틸 하트의 ‘She’s Gone’을 완창해야 ‘노래 좀 한다’고 할 수 있었거든. 그래서 나는 마이크와 거리가 멀었다. 내가 드라마 OST 수록곡을 부르다니… 요즘은 무덤덤하게 불러도 괜찮은가 싶더라.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재주가 많다. <여신강림>에서 스케이트 타는 걸 보고 놀랐다. 뒤로 타는 건 상당히 고급 기술인데!

어릴 때 한 2년 정도 스케이트 교실에 다녔다. 아이스링크가 아닌 논바닥에 물을 채워서 운영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때 배운 걸 이렇게 드라마에서 활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여년 만에 스케이트를 처음 탔는데 어색하더라. 실제로 잘 타는 것처럼 보였다면 다행이다(웃음).

극 중 한서준은 ‘소원권’을 걸고 내기를 많이 한다. 어떤가? 실제로 연애에서 활용해볼 생각은?

그렇게 거칠고 당당하고 원하는 건 다 하는 한서준이 정작 좋아하는 여자에게 소원권을 포옹으로 쓴다는 게 아쉬웠다. ‘힘 좀 더 써봐! 더 멋지게 할 수 있잖아!’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다. 휴, 포옹이라니 정말(웃음).

모델로 활동하다 2018년에 <WHY : 당신이 연인에게 차인 진짜 이유>라는 웹 드라마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한계나 슬럼프를 느껴본 적은 없나?

드라마 스케줄이 유동적이다. 누군가 자고 있을 때 일어나 새벽까지 깨어 있는 스케줄이 비일비재하다. 몇 개월 동안 이걸 반복할 만한 체력이 나에게 없더라. 체력이 문제가 되니 연기할 때 집중이 흐트러졌다. 링거를 맞은 적도 있다. 살이 빠져도 카메라에 계속 똑같은 모습을 유지해야 하니 꾸준히 먹으며 체중을 유지했다. 이런 컨디션 관리도 배우의 영역이라는 걸 알았다.

촬영할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들던가?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가 밖에서 고생하는 것. 난 그걸 보는 게 그렇게 힘들다.

오버사이즈 재킷은 피어 오브 갓 x 제냐 by 무이, 팬츠는 인스턴트 펑크, 슈즈는 라프 시몬스, 반지는 포트레이트 리포트 제품.

군대 전역 후 많은 게 달라졌고 생각도 바뀌었다고. 2년이란 시간 동안 인엽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도전을 쉽사리 못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입대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입대하는 이도 있고, 한참 늦은 서른 나이에 입대하는 이도 있다. 그들을 보고 ‘꿈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모델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많은 이들이 모델 일을 하다가 군대 전역하고 배우로 전향한 줄 아는데, 실제로는 전역 후 모델 일을 시작했다.

역시 군대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군대에서 축구 한 것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달라.

어느 날, 우리 부대 앞으로 높은 분이 지나간다고 낙엽을 싹 치운 적이 있다. 근데 중대장님이 “음, 부자연스러운데? 너무 깨끗하다”고 해서 쓸었던 낙엽을 원상태로 되돌린 적이 있다. 그런 게 바로 군 생활이지(웃음).

언젠가 액션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다. 성룡, 정두홍, 토니자, 키아누 리브스, 주성치, 박남현 중에 본인의 액션 스타일을 꼽자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빠졌다.

누구?

강동원 선배님. 보통 액션 연기는 힘이 베이스라면 강동원 선배님은 유연하고 부드럽다. 칼로 무언가를 자르기보다는 벤다는 느낌. <군도>에서는 그야말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공조>에서 현빈 선배님의 액션도 멋지다.

액션 연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아야 하는데, 자신 있나?

그래도 조금씩은 다 할 줄 안다.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 스케이트, 수영, 스키, 검도도 배운 적이 있다.

오, 그럼 540도 발차기도 가능한가?

540도보다는 조금 덜 돌면 안 될까(웃음)?

벨벳과 실크 소재가 혼합된 셔츠, 같은 소재의 팬츠는 앤드뮐미스터 by 아데쿠베, 목걸이는 벨엔누보 제품.

많은 팬들이 궁금해한다. 황인엽은 음식은 왼손으로 먹고, 글씨는 또 오른손으로 쓴다. 양손잡이라면 두 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어릴 때는 뭐든 왼손으로 했다. 부모님이 글 쓰는 것과 공 차는 건 오른쪽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조금씩 바꿨다. 정리하자면 공 던질 때, 밥 먹을 때 등 대부분은 왼손. 글씨 쓰는 건 오른손, 공은 오른발로 찬다. 가위질은 둘 다 가능하다. 와, 근데 이건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아는 건데! 이런 질문, 재미있다. 더 해줘라(웃음).

<여신강림> 이후 SNS 팔로어가 증가해서 지금은 무려 70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700만 팔로어를 가진 삶은 어떤가?

작년 이맘때 팔로어 수는 딱 2만이었다. <여신강림> 시작하기 전이 40만 정도. 불과 두 달 만에 수치가 확 올라갔다. 조심스럽다. 한번은 내가 SNS를 보다가 잘못 눌러서 어떤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렀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더라. 그렇게 많은 분들이 주의 깊게 보기에 조금은 무섭기도,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럴 만하다. 홍콩 전체 인구가 725만 명이다. 700만 명을 한 줄로 세우면 여기서 천안까지 닿을 거다.

그러니까! 처음 10만 명이었을 때는 ‘아니, 10만 명이나 나를 팔로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팬들이 궁금한 게 있다면 더 보여드리고 싶고 보답하고 싶다. 이 숫자가 좋은 영향력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

독특한 소재의 셋업 투피스, 부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동생이 작곡을 배우고 있다. 동생 방에 방음 처리가 되어 있고 아주 좋은 스피커가 있는데 거기서 음악을 들으며 동생과 수다를 떤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에 맥주 한 잔까지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소소하게 가족과 북악스카이웨이나 남산으로 야경을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한다.

아주 가족적이고 건실한 청년이군.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내가 선배님들을 보며 배우가 된 것처럼 누군가 나를 보면서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다음 작품에서는 짝사랑이 아닌 완전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고(웃음).

황인엽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사람. <윤식당>을 보면 모두가 허둥지둥할 때 이서진 선배님이 롤을 정해주고 믿음직스럽게 이끈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이 멋있더라. 그런 노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최진우
포토그래퍼
목정욱
박한빛누리
스타일리스트
임혜림
헤어
정미영(by 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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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by 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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