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해시태그 V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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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세상에서 사람들은 ‘뉴노멀’을 외쳤고, 트로트는 세대 간극을 뛰어넘어 온 나라에 열풍을 일으켰다. 극장을 떠난 한국 영화는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섰으며, SNS에서의 고백과 폭로는 상찬 혹은 난장을 낳았다. 숨 가삐 달렸으니 이제는 잠시 멈춰 설 때, 해시태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2020년이 여기 있다.

서울 #핫 플레이스 지형도

국제갤러리 K1

창 너머 경복궁 돌담을 바라보며 트레드밀 위를 달리다 시선을 돌려 줄리언 오피의 그림 ‘조깅하는 사람들’을 감상하고, 양혜규의 거대한 블라인드 조각을 샹들리에 삼은 레스토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우고 론디노네의 대형 색채화를 응시한 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하루. 국제갤러리가 올해 6월 전시 공간, 카페, 레스토랑, 웰니스 센터를 결합해 오픈한 복합 문화 공간 ‘K1’을 통해 그리고자 했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아닐까? 미술 감상을 통한 ‘정신적 웰니스’와 피트니스센터를 통한 ‘신체적 웰니스’를 하나의 공간에 담은 국제갤러리 K1은 동시대 갤러리가 보여줄 수 있는 첨단에 가까웠다.

브릭웰

올해 6월 통의동 백송터 인근에 오픈한 ‘브릭웰’은 성냥갑처럼 지은 건물이 천편일률적으로 늘어선 서울에서 ‘벽돌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담은 건축으로 호명됐다. 의료기기 업체 ‘기산과학’의 사옥이자 전시 공간 ‘그라운드 시소’ 등이 들어선 복합 문화 공간인 브릭웰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감각적인 파빌리온 ‘지붕 감각’을 선보인 SoA 건축사무소의 작품이다. 실에 구슬을 꿰듯 강철판에 벽돌을 하나씩 끼워 올려 독특한 시공을 구사하고, 저층부를 필로티 구조로 띄워 마을 주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초록빛 정원을 조성했으며,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는 보이드(상부 오픈) 구조를 통해 빽빽한 도심에 근사한 숨구멍을 틔웠다. 올 한 해 서울에 들어선 ‘숨은 보물’과도 같은 공간으로 브릭웰만 한 곳이 또 있을까? 11월 진행한 오픈하우스 티켓이 눈 깜박할 사이에 매진된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호텔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면 올해 8월 개장한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이 그 역할을 전천후로 했다. 우선 해외 호텔 체인이 한국에서 개장할 때 발생하는 ‘지나친 로컬리티 의식’이란 문제를 영리하게 해결한 것만으로 박수 쳐주고 싶다. 한국적 문양, 색감 등을 인테리어 요소로 단편적으로 차용하는 대신 전래동화 <해님 달님>, <선녀와 나무꾼>에서 모티프를 얻어 독특한 동화적 미감을 구현한 것에서 나아가 이광호, 김세동, 오승렬 등 한국의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곳곳에 배치해 이야기를 더했다. 기존 호텔에서 보여준 짐짓 고루하고 엄숙한 아케이드에서 탈피해 큐레이션 서점 ‘아크앤북’, 서울에서 시작한 역사 깊은 빵집 ‘태극당’, 라이프스타일 숍 ‘띵굴마켓’ 등을 입점시켜 지하 아케이드를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기획한 점도 흥미롭다. 호텔을 개장하며 내건 ‘어번 엔터테인먼트 호 텔’이란 슬로건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구현된, 올해 가장 영리한 호텔이었다.

모노하 한남

한남동 어귀, 과거 니트 공간을 개수해 오픈한 ‘모노하 한남’은 국내 라이프스타일 시장의 진화를 보여준 척도나 다름없었다. 모노하 한남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 경향 ‘모노하’라는 확고한 노선을 바탕으로 돌, 철, 유리, 흙 등 자연 소재의 물성이 뾰족하게 도드라진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안드레아 브루기, 안도 마사노부를 경유해 한국 공예 작가 김동준, 한정용, 이정미, 이능호 등이 제작한 공예품을 소개하는 큐레이션의 힘도 탁월하다. 모노하 한남의 성공에 이어 7월 오픈한 ‘모노하 성수’에선 세나 바소즈를 내세운 개관전 <Hold on- Let go>를 펼치며 리빙과 아트의 절묘한 만남을 꾀했다. 앞으로 다양한 기획 전시가 펼쳐진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코오롱 스포츠

한남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체험형 리테일’의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견이 무색하게도 올해 9월 오픈한 ‘코오롱스포츠 한남’이 보여준 파급력은 막강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총 2개 층에 걸쳐 아웃도어 문화를 밀도 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는데, 전시 공간 ‘피크닉’을 운영하고 올해 전시 <명상 Mindfulness>을 성공적으로 주최한 전시 기획사 ‘글린트’,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신예 그래픽 디자이너 송예환과 손잡고 제작한 작품이 브랜드 상품과 유기적으로 호응할 수 있도록 연결성을 꾀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N번방_박사_포토라인_공개소환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팬데믹을 목도한 20203월, 대한민국은 또 다른 얼굴의 팬데믹을 맞아야 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상대로 한 성착취 동영상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유포된, 이른바 ‘N번방 사건’은 올해 3월 ‘추적단 불꽃’에 의해 보도되었고, 사회는 분노했다. 이후 2715626명이 힘을 보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국민 청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의 진행,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최초의 N번방 개설자 문형욱의 검거, 5월 국회에서 ‘N번방 방지법’ 법안 통과가 있기까지, 비극의 실체가 그 장막을 걷을 때마다 사회는 추악하고 잔인한 디지털 성범죄의 민낯을 마주했다.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촉구하며 번진 ‘#N번방_박사_포토라인_공개 소환’과 함께 등장한 해시태그는 ‘#26만명’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N번방의 참여자 수를 26만명으로 추산한다. 적어도 이들 모두를 심판대에 올려놓기 전까지 N번방 사건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문학상의 위기인가, #문단 윤리의 위기인가?

올해 문학계를 관통하는 이슈는 ‘문학상’이다. 지난 1월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양도 등의 문제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가 수상을 거부하고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하자 여러 작가의 보이콧이 물밀듯 이어지며 2월 문학사상사에서 이상문학상을 취소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문학상의 운영 방식에 경종을 울린 사건과 다름없었다. 이후 일련의 사건이 숨 가삐 흘렀다. 박선우는 자음과모음 중단편 신인문학상의 상금을 선인세로 지급하는 문제를 지적했고, 자음과모음은 이에 즉각 시정하였다. 7월 에는 상화시인상 수상자 선정 과정을 두고 문단과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얽혔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9월 대구시는 상화시인상 상금을 포함해 기념사업회 사업비 환수를 결정했다. 같은 달 김유정문학상도 논란이 되었다. 춘천시와 김유정기념 사업회 간의 갈등으로 그간 김유정문학상 수상자 선정부터 상의 운영 방식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문학상의 위기일까, 아니면 문단 윤리의 위기일까? 올해 7월 <그런 생활> C누나와 <여름 스피드> 영우의 폭로로 두 소설의 작가인 김봉곤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반납했고, 문학동네와 창비에서는 김봉곤의 소설을 모두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김봉곤 사태는 문학상의 위기뿐 아니라 문단의 위기를 의심하게 했다. 한국 문학의 한계를 느끼며 ‘아직도 페미니즘 아니면 퀴어냐’라고 토로하는 독자도 있다. 이를테면 김승옥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에 남성이 단 한 명도 없고, 현대문학상에는 장강 명, 이효석문학상에는 박상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에 김봉곤과 이현석이 수상하는 것에 그쳤다. 올해 문학상을 두고 그 많던 남성 소설가들은 어디로 갔는지 묻는다면, 남성의 역사인 문학사로 거론하며 그 많던 여성 작가들은 어디로 갔는지 페미니즘이라는 범주의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이효석문학상 심사평에서 “퀴어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오토픽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페미니즘과 퀴어를 둘러싼 담론이 자리잡기까진 시간이 걸릴 테다. 그러나 그 전에 문학상의 재정비와 문단의 재정비가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글 | 권박(시인)

TV 밖으로 나온 예능, #웹 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누가 말했던가. 코미디 TV <맛있는 녀석들>의 홍일점 김민경이 “체육을 좋아해야 했지만 제육을 더 좋아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체육계는 아까운 인재를 놓친 것”이라고. 올해 1월 30일 <맛있는 녀석들> 5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탄생한 디지털 스핀오프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은 김민경이 양치승 트레이너에게 운동 강습을 받는 여정을 그린다. 헬스 ‘새싹’ 김민경이 340kg짜리 레그프레스, 60kg짜리 인클라인 프레스 블록을 마치 ‘별거 아니다’는 듯 번쩍 들어 올릴 때면 트레이너는 남다른 ‘근수저’의 기량에 당황하면서도 “욕심나는 친구예요”라며 될성부른 떡잎에게 ‘로보캅’이란 별명을 하사했다. 사람들이 <시켜서 한다! 운동뚱>에 열광한 이유는 양치승 트레이너가 1편에서 말했듯 이들이 펼치는 운동의 목표가 다이어트가 아닌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더 잘 먹기” 위함에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건강하기 위해 운동하는 ‘진정성’이 결국 통한 셈이다. <맛있는 녀석들>의 이영식 PD는 올해 인터뷰에서 “김민경이 이왕 운동을 거듭해서 머슬 대회 출전에도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펼쳐질지 모를 또 하나의 재미난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서라도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제성 ★★★☆

한줄평 “배운 대로 흡수하는 김민경이기에 ‘흥’할 수 있었던 콘텐츠인 것은 분명, 다만 회를 거듭하며 ‘기인열전’에 가깝게 도전을 은근히 강요하는 설정만큼은 어떻게…”

<네고왕>

신들린 완급 조절로 자칫 불쾌할 수 있는 발언도 ‘깨발랄’로 소화하는 광희와 <워크맨>을 연출한 고동완 PD 사단이 만나 올해의 웹 예능 <네고왕>을 탄생시켰다. 대형 유튜버들이 뒷광고 논란으로 매질을 당하던 6월, 대놓고 펼치는 ‘앞광고’ 콘텐츠로 막을 연 <네고왕>은 어느덧 매주 300만 이상의 탄탄한 조회수를 올리며 예능 우량주로 고공행진 중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아가 제품의 가격을 깎는다는 시나리오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이사이 “어머니 저 광희예요. 왜 성형한 남자 있잖아요!”, “입을 게 없어서 프라다를 입고 나와요?” 같은 주옥 같은 멘트가 폭격처럼 쏟아진다. 〈네고왕〉 1편이자 “치킨값 후려치고 오겠다”는 패기를 보였던 BBQ편에선 BBQ 윤홍근 회장을 설득해 조회수 500만 돌파 시 광희 자신을 광고 모델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네고를 이뤄냈고, 그 결과 10월 광희의 이름을 딴 ‘광희나는 메이플 버터갈릭’ 치킨이 정식 출시됐다. 이 정도 기세라면 조회수 1000만의 에피소드도 기대해봄직하지 않을까?

화제성 ★★★★★

한줄평 “광희의 파죽지세, 고동완 PD 사단의 기획력, 대규모 협찬이 가능한 콘텐츠 포맷, 기업과 소비자가 윈윈하는 이벤트가 한데 뭉쳐 탄생한 2020년 최고의 킬러 콘텐츠.”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 – 여은파>

제작사가 나서 임산부, 노약자, 광고주의 시청 금지를 권장하는 예능은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 여은파>(이하 <여은파>)뿐일 거다. MBC 〈나 혼자 산다>의 디지털 스핀오프로 올해 7월부터 정식 방송되기 시작한 <여은파>는 이름 그대로 박나래, 한혜진, 화사가 야심한 밤 은밀히 회동해 벌이는 작당을 여과 없이 담는다. “(젖)꼭지만 안 나오면 된다”고 말하며 방송 심의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가 하면 ‘과연 누가 더 망가질 수 있는가’를 대결하듯 괴이하게 차려 입고선 핑퐁을 주고받듯 서로의 입담을 자랑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셋이 있는 모습 누가 볼까 무섭다”는 화사의 말에 “나 오늘 망사 입었어. 남자나 만나러 갔음 좋겠네요”라고 박나래가 한 술 보태고 “3 대 3 미팅? 자신 있어”라며 한혜진이 맞장구친다. 웃기기 위해서라면 땔감을 자처하는 박나래, 20년 차 톱모델이란 스펙을 잠시 뒤로 접고 허당 끼를 발산하는 한혜진, 언니들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다 가끔씩 실없게 웃기는 화사가 모인 결과, ‘역시 여자끼리 노는 게 제일 재밌지’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여성 패널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던 시절을 지나 <여은파>를 기점으로 제대로된 ‘여자들의 판’이 기세 좋게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화제성 ★★★★★

한줄평 “지상파라는 갑옷을 벗어낸 자리에서 피어난 캡사이신 맛 예능.”

올해의 UP & DOWN
UP

#K-로 시작해 ‘국뽕’으로 완성되기 

태초에 K-POP이 있었다. ‘자랑스러운 한국산’임을 강조하기 위해 두문자 ‘K-‘를 붙이는 놀이는 올해를 관통하는 유행이 됐다. 코로나19의 범유행 사태를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의미에서 ‘K-방역’, 주지훈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착용한 ‘힙’한 모자(갓)는 무엇이냐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영화 <#살아있다>, 〈반도>가 불러일으킨 ‘K-좀비’, 작년 미국에서 <레디메이드 보살>이란 이름의 한국 SF 선집이 출간된 사례의 바통을 이어 올해 김초엽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일본 최대 SF 출판사인 ‘하야카와’와 출판 계약을 맺으며 불현듯 등장한 ‘K-SF’에 이르기까지. ‘국뽕’일지언정 마땅히 박수 쳐줄 만했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 자가 있을까?

#부캐 앞세운 멀티 페르소나

“많은 다, 비 비. 비가 많이 오는 날에 태어난 사연 있는 둘째 이모야!”라고 외치는 빠른 1945년생 김다비(김신영)는 데뷔 전 오리백숙집을 운영하다 77세 나이에 신인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출생한 한국계 미국인이자 ‘신박 기획’을 이끄는 지미유(유재석)는 기 센 여자 넷을 모아 ‘환불원정대’라는 초유의 걸 그룹을 탄생시킨다. 올해 예능계를 정조준한 단어들을 꼽자면 그 중심에 ‘부캐’가 있다. 대중에게 익숙한 ‘본캐’가 지워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흥미로운 서사, SNS에 여러 계정을 개설하며 ‘멀티 페르소나’를 드러내는 MZ세대의 흐름을 포착한 ‘부캐’의 미학은 올해 예능가를 점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DOWN

흔들리는 #김은숙 월드

김은숙을 가장 타율 좋은 드라마 작가라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을 이가 있는가? 물론 올해 4월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가 방영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최고 시청률 11.6%에 그치며 초라하게 막을 내린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철옹성과 같던 ‘김은숙 월드’에 금을 가게 한 작품으로 호명됐다. 주종목 ‘판타지 로맨스’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빈틈 많은 세계관, 여전히 ‘백마 탄 왕자’에 게으르게 머무는 낮은 젠더 감수성,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과도한 PPL 진행이 비빔밥처럼 한데 섞인 결과 <미스터 선샤인〉, <도깨비>로 공고히 쌓아온 탑은 아슬아슬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가 닿았다. 이후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들고 온 이경미가 괴이한 매력으로 들끓는 세계를 ‘이것 봐라’며 보여줬기에 그 공허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

심판대에 오른 #유튜버

수익과 조회수를 확보하기 위해 불법, 선정적 콘텐츠를 마다하지 않는 유튜버를 이르는 신조어인 ‘조회수가 낳은 괴물’, 이른바 ‘조낳괴’가 탄생하기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빠르게 훑겠다. 1월 투레트증후군을 ‘콘셉트’로 채널을 운영한 ‘아임뚜렛’이 장애를 연기하고 있다는 의혹이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제기되며 불과 하루 만에 아임뚜렛은 장애가 ‘조작’되었음을 시인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8월 유튜버 ‘참PD’가 대형 유튜버들의 ‘뒷광고’ 행태를 내부 고발하며 유튜브 생태계를 통째로 뒤흔드는 진실 게임이 펼쳐졌다. 10월 유튜버 ‘정배우’가 유튜버 ‘로건’을 상대로 악의적인 루머와 불법 촬영 동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줄줄이 드러나는 이들의 민낯을 응시하며 막강한 파급력에 걸맞은 책임을, 직업적 윤리의식을 촉구할 때다.

극장을 떠난 한국 영화의 탈출구 #OTT

올해의 영화계 결산 원고 청탁을 받자마자 불쑥 튀어나온 말이 있다. “망했죠.” 부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온 말이었다. 영화에 대한 예를 갖춘답시고 그랬다. 그런데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보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려 해도 결국 여기로 정착한다. 올해 영화계는… 망했다. 원인은 명확하다. 코로나19라는 역병 때문이다. 극장 관객은 급감했고, 개봉 영화는 연쇄 이탈했고, 투자엔 찬바람이 불었다. 영화계 불안감이 복합적인 건, 이 위기가 기회가 되고 있는 ‘외부 대체재’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말이다.

코로나19로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줄줄이 넷플릭스 행을 선택하면서, OTT가 영화 생태계를 바꾸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연일 흘러나왔다. 썸타는 연인들의 작업 멘트가 “영화 한 편 볼래”에서 “넷플릭스 같이 볼래?”로 바뀌었다는 소문이 관측에 1%의 신빙성을 보탰다. 이는 올 초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을 포기했을 때 우려했던 상황이다. 선례의 힘은 무서운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박신혜·전종서의 〈콜>도 넷플릭스로 방향을 틀었다. <낙원의 밤>과 <차인표>에 이어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혀온 송중기·김태리 주연의 SF 대작 <승리호>도 넷플릭스 공개를 타진 중이다. <승리호> 같은 텐트폴 영화가 극장을 포기한다는 건, 콘텐츠 업계 전반의 기류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상징적이게도 올해 영화계의 문을 연 건 아카데미 파란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이다. 넷플릭스와 영화계의 극장 상영을 둘러싼 밀당의 시작은 엄밀히 말해 <사냥의 시간>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옥자>였다. 극장-OTT 동시 개봉 추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옥자> 때를 호출해보자. 어떻게든 극장에 영화를 걸고 싶어 했던 <옥자> 팀과 홀드백 논리를 드리우며 어떻게든 <옥자>의 극장 상영을 막으려 했던 멀티플렉스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상황은 여러모로 짠 내를 풍긴다.

<기생충> 효과가 바이러스에 빨리 흡수된 것도 뼈아프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날, 한국 영화계는 희망으로 끓어올랐다. 그런데 코로나가 너무하지. 열기가 식기도 전에 영화계에 ‘사냥의 시간’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신작 영화들의 OTT 행이 극장뿐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에게도 고민을 안기는 건,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넷플릭스에 넘어가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어져서다. <사냥의 시간> 때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영화계가 시장 질서의 변화를 요구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과 대우 등 ‘큰손’들이 들어오고 빠져나갔을 때, 멀티플렉스가 형성됐을 때, 누군가는 위기라고 했지만 영화계는 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편돼 적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빨라지긴 했지만, 콘텐츠 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른 OTT는 영화계가 언제가 맞닥뜨려야 할 상대였다. 비디오의 등장에도 라디오가 살아남았듯, OTT 시대에도 극장은 그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 지금의 변화는 위기이기만 할까. 2020년은 한국 영화계에 어떤 변곡점으로 기록될까. 글 | 정시우(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의료진덕분에

한국산 진단키트 붐, 세계 최초로 도입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GPS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촘촘한 역학 조사가 모여 2020년의 신조어 ‘K-방역’을 탄생시켰다. 416일 시작해 11월 현재 5만 건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낸 ‘#의료진덕분에’는 방역에 힘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기획한 캠페인이다. 올해 6월 기준,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뛰어든 의사는 1790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1563명, 임상병리사를 비롯한 기타 인력은 466명이다. 적어도 올해는 이 3819명의 영웅들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던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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