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그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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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지닌 찰나의 아름다움을 끌어내 영원성을 부여하는 일. 2020년, 부쉐론이 새롭게 선보인 하이 주얼리 ‘콩텅플라시옹(Contemplation)’ 컬렉션은 이러한 인류의 꿈과 맞닿아 있다.

에어로겔 소재를 활용해 하늘의 한 조각을 떼어낸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구뜨 드 시엘 네크리스.

깃털을 모티프로 자개를 섬세하게 커팅한 카레스 드 플륌 링.

아이코닉한 퀘스천마크 네크리스 형태로 진주 장식의 깃털 모티프를 재현한 펄 드 플륌 네크리스.

화살 모티프의 플레쉬 두 탕 싱글 이어링.

한국 시각으로 7월 9일 저녁 8시, 부쉐론의 새로운 2020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상회의 형태로 스크린을 통해 진행된 디지털 프레젠테이션 현장. 2020년이 빚어낸 새로운 소통의 순간을 목도하며, 지금쯤 파리 방돔 광장에서 대면했을 그 찬란한 주얼리를 상상해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시적인 순간을 주얼리 속에 담고 싶었어요. 주얼러의 예술이란 마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흘러가는 순간의 정수를 영원히 재창조하는 작업이니까요.” 컬렉션 노트를 읽다 보니 마치 클레어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시계가 정확히 8시를 가리키자 스크린에선 하늘을 배경으로 시작된 감성 어린 영상이 흘렀다. ‘하늘 한 조각 움켜쥐기, 구름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떨어지는 빗방울 감상하기,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르는 새의 깃털에 매료되기.’ 노트에 적힌 문장을 낮게 읊조리자 영상에는 메종 부쉐론이 영감 받은 매혹적인 대상들이 등장했고, 이어 메종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클레어 슈완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 방돔의 메종 부쉐론에서 만나 인터뷰를 나눈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청량한 흰색 셔츠를 입은 그녀의 손에는 부쉐론의 시그너처 콰트로 반지가, 그리고 목 언저리에는 지난해 파리에서 선보인 모던한 잭 네크리스가 자리한 채 그녀의 존재를 빛냈다.

영상에는 67점의 특별한 피스로 구성된 ‘콩텅플라시옹(Contemplation)’ 컬렉션 중 주요 작품들이 등장했다. ‘관조, 사색, 명상’ 등을 뜻하는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자연을 감각적으로 바라보았다. 하늘과 구름, 깃털, 바람을 가르며 부유하는 민들레, 떨어지는 빗방울, 군무를 하듯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새 떼,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 모던한 형태의 화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상 작용을 통해 다양한 대상을 주얼리로 구현한 방식 역시 놀라웠다. “하늘의 한 조각을 떼어 목을 감싸듯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싶었죠”라는 클레어의 한마디는 이번 컬렉션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바로 자연이 선사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통해 무형의 순간을 영원 속에 포착하고 싶었던 그녀의 꿈 말이다.

Interview with Claire Choisne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과의 인터뷰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의 디자인적 영감을 일컫는 찰나의 아름다움, 빛의 유희, 투명한 하늘 등은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듯하다. 이러한 무형 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당신을 매혹시켰나? 나는 컬렉션의 주제를 선택할 때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경험이 어우러진 총체적 합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번 컬렉션에 영감을 준 첫 번째 경험은 일본 나오시마에서 만난 제임스 터렐의 설치 작품이었다. 두 번째 영감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소금 호수인 볼리비아의 살라르 데 우유니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비가 내릴 때 바닥에 얕게 물이 차는데, 그 위로 하늘이 비치기 때문에 온세상이 하늘로 가득 차 있는 듯 느껴지는 곳이다. 그 순간이 매우 순수하고 평화롭기 때문에 ‘관조’(contemplate)’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총 67점에 이르는 방대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나. 작품의 복잡성에 따라 다르지만, 각 작품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 정도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구뜨 드 시엘(Goutte de Ciel) 목걸이의 경우, 디자인을 가장 잘 구현하는 매우 가벼운 물질인 에어로겔을 찾는 데에만 6~8개월이 할애되었다. 이후 에어로겔 전문가와 함께 기술적인 작업을 한 기간은 2년 정도 소요되었고 말이다. 과정은 매우 길고 어려웠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그리던 물방울 모티프를 구현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혁신적인 기술력과 하이 주얼리에서 사용되지 않은 색다른 소재의 사용이 눈에 띈다. 이번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장인들에게 어떠한 기술적 도전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나? 주제인 ‘Contemplation’은 구름이나 민들레, 깃털과 같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사색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연하고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메탈이나 스톤처럼 단단한 소재를 사용해 제작할 때조차 최대한 움직임을 많이 주고 가벼움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예를 들어 솜털로 뒤덮인 민들레 씨앗을 모티프로 한 아방 르 프리쏭(Avant le Frisson) 제작 과정에서도 꽃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가벼움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디자인을 위해 전통적인 트렘블러 기술을 선 택했고, 장인들은 극도로 가는 티타늄 실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다.

구뜨 드 시엘(Goutte de Ciel) 컬렉션에서 하늘의 한 조각을 표현하기 위해 우주에서 사용하는 소재를 사용했다.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주얼리로 제작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듯한데, 그 특별한 여정에 대해 알고 싶다. 이 스카이 드롭(Sky Drop) 목걸이는 하늘의 일부분을 목걸이에 담아 이를 착용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우리는 완벽한 물질을 찾는 데 공을 들였고, ‘가벼움’에 초점을 두고 마침내 ‘에어로겔’이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이는 나사(NASA)에서 우주 먼지를 채집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한 소재로 99.8%가 공기로 되어 있어 매우 가볍다. 또 배경색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물질인데 검은색 옷 위에 입으면 조금 더 강렬하고 깊이 있는 푸른 색을 띠고, 흰색 옷 위에서는 조금 더 부드럽고 연한 색을 띤다. 그래서 하늘의 형태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 과정에서 에어로겔을 다른 원석처럼 커팅할 수 없다는 점이 난관으로 다가왔다. 결국 에어로겔을 다루는 전문가를 찾아 그리스로 향했고, 그는 에어로겔을 물방울 형태로 만드 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이 물방울 형태를 보호하는 것이었는데, 에어로겔은 습기에 매우 취약하고 작은 자극에도 깨지기 쉬운 물질이기 때문에 이 물질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락 크리스털 케이스를 제작했고, 그 사이에 물방울 형 태의 에어로겔을 주입해 마침내 신비로운 펜던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민들레 홀씨를 정교하게 표현한 아방 드 프리쏭 네크리스.

구뜨 드 시엘 네크리스에 사용된 신비로운 에어로겔 소재.

아카이브에서 영감 받은 플레쉬 드 탕 이어링.

제임스 터렐의 작품 ‘오픈 스카이’에서 영감을 받은, 유연한 스카프 형태의 쁘네트르 쉬르 시엘 네크리스.

카레스 드 플륌(Caresse de plume) 컬렉션을 위해 자개 소재로 섬세한 깃털을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다. 자개는 커팅이나 인그레이빙이 쉽지 않은 소재라고 알고 있는데 제작 과정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손과 옷 위에 놓인 깃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표현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부쉐론의 장인이 매우 얇은 두께로 자개를 커팅해냈고, 마침내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위에 깃털 한 올 한 올을 인그레이빙하는 작업에 성공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부쉐론의 아카이브를 담아 재창조한 작품을 소개한다면? 화살에서 영감을 받은 ‘플레쉬 두 탕(Fleche de Temps)’이다. 비대칭 귀고리와 토크 목걸이, 브레이슬릿 형태로 구성된 라인으로 이 모티프는 과거 부쉐론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것이다. 무엇보다 오래된 컬렉션임에도 매우 모던한 무드를 지니고 있어 흥미롭다. 이전의 클래식한 디자인은 유지하는 동시에 다양한 스타일과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새로운 컬렉션을 제작했다.

디자인에 대한 접근이 매우 신선하고 혁신적이다. 이처럼 당신이 하이 주얼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은 부쉐론 아카이브의 핵심이다. 이러한 자연에 영원성을 더하는 일, 이것이 내가 나의 팀과 함께 부쉐론 메종에서 추구하는 가치이자 목표다. 더불어 난 하이 주얼리가 시대를 초월하도록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오래전 부쉐론의 창업자인 프레드릭 부쉐론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그의 철학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발견한 그의 첫 번째 철학은 ‘창의성’이었다. 단순한 디자인적인 측면만이 아닌, 제작 방식에서도 창의적인 기술을 적용하는 것 말이다. 또 여성들에게 주얼리를 착용함에 있어서 ‘자율성’을 안겨주는 것도 메종의 의무다. 프레드릭 부쉐론의 이러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메종의 아이코닉한 ‘퀘스천마크 네크리스’다. 그 어디에서도 선보이지 않은 창의적인 디자인과 제작 방식, 나아가 여성 스스로 자신을 위해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목걸이니까. 이처럼 나의 팀과 함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혁신적인 기술과 방법을 늘 고민하고 시도한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사진
COURTESY OF BOUCHE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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