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트위크 다이어리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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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아트 신의 지형도를 펼쳐 들고 동서남북으로 떠나본 갤러리 호핑기

노구치와 욘 보의 기획 전시 전경, Courtesy of M+, Hong Kong, and The Noguchi Museum, New York

노구치 이사무 X 욘 보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 위: ‘Cloud Mountain(1982-1983)’, Hot-dipped galvanised steel, 177.2×125.1×71.8 cm, 아래: ‘Worksheet for Sculpture (1945-1947)’, Pencil on cut graph paper, 59.7×71.8 cm, ⓒ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New York / ARS. Photo: Kevin Noble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 위: ‘Cloud Mountain(1982-1983)’, Hot-dipped galvanised steel, 177.2×125.1×71.8 cm, 아래: ‘Worksheet for Sculpture (1945-1947)’, Pencil on cut graph paper, 59.7×71.8 cm, ⓒ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New York / ARS. Photo: Kevin Noble

홍콩에서 또 하나의 주목해야 할 지역으로 서구룡문화지구가 있다. 약 3조원이 투입된 정부 주도의 문화 중심지로 12만 평 부지에 17개 문화 시설이 조성되고 있다. 이곳에 2016년 먼저 문을 연 엠 플러스 파빌리온에서는 <Noguchi for Danh Vo: Counterpoint>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세기 중요한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와 베트남-덴마크 출신의 주목받는 아티스트 욘 보(Danh Võ). 뉴욕에 있는 노구치 뮤지엄과의 극적인 기획으로 성사된 이 전시는 젊은 세대 아티스트가 세기적 아티스트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고 현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그와 어떤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눴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욘 보가 설계한 작은 나무 정원에 앉아 노구치의 작품을 바라본 몇 분간의 시간은 홍콩에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그리고 아트

기획 전시 ‘Eau de Cologne’의 포스터.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거세고 서울에서 66년 만에 낙태죄가 폐기된 기념비적인 이 시점. 홍콩에서도 시대 정신을 반영한 전시가 큰 주목을 받았다. 독일의 주요 갤러리인 스프루스 매거스(Sprueth Magers)는 <Eau de Cologne>라는 팝업 형태의 기획 전시를 에이치 퀸스에서 개최했다. 전시는 바버라 크루거, 신디 셔먼, 제니 홀저, 루이즈 롤러, 로즈마리 트로켈, 카라 워커, 마를렌 뒤마, 아스트리드 클라인 등 동시대 전설적인 여성 아티스트 8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번 홍콩 아트위크 기간 동안 아트 관계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은 타이퀀 컨템퍼러리에서도 페미니즘 전시가 열렸다. 타이퀀은 영국군의 복합사법지구로 사용하던 공간을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화제를 모은 장소다. <Performing: The Violence of Gender>라는 타이틀로 열린 전시에는 안네 임호프, 올리버 라릭 등 새로운 세대 작가들의 대담한 작품이 시선을 모았다. 권력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들은 도발적이고 강렬했다.

기묘한 갤러리를 찾아서

중국 작가 양선(Yang Shen)의 ‘Nocturnal Animals(2012)’.

캐나다 작가 제스 판(Jes Fan)의 ‘Forniphilia I (2018)’.

홍콩 아트 신의 젊고 힙한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파라 사이트(Para Site, 기생충이란 뜻)로 향할 것. 후미진 골목 허름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동물들의 온갖 기괴한 이미지와 소리가 뒤엉켜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룹 전시 <An Opera for Animals>를 볼 수 있다. 부르주아의 유흥에서 유래한 서양의 오페라라는 형식을 빌려 유럽의 식민지, 제국주의 역사를 비틀어보는 전시로 방대하고 촘촘하며 위트까지 느껴지는 아카이브 형태의 큐레이션이 흥미로웠다. 서양의 이성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애니미즘’을 보여주는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연결 짓는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독특한 기획이 돋보였다. 전시는 61일까지 계속된다.

웡척항에서 생긴 일

웡척항 드 사르테의 베르나르 베네 작품.

그리어 홀랜드 스미스의 설치 작업 ‘In the Lab’.

악셀 베르포르트의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와 소조 시마모토의 회화.

완차이에서 택시를 타고 산을 넘으면 홍콩섬 남쪽에 위치한 웡척항이 등장한다. 초고층 빌딩 혹은 허름하게 낡은 건물 사이사이로 젊은 작가들과 갤러리스트가 모여들며 뉴욕 브루클린과 비교되는 이곳에서는 아트위크 기간마다 ‘사우스 아일랜드 아트 데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홍콩에서 가장 역동적인 아트 디스트릭트에 문을 연 16개 갤러리와 스튜디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드 사르테(de Sarthe)에서 벌어졌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베르나 베네(Bernar Venet)가 마치 역도 선수처럼 기합을 넣어가며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철근으로 벽에 페인팅을 찍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선과 물질, 형태와 힘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 해온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그리어 홀랜드 스미스(Greer Howland Smith)는 홍콩에 10년 동안 거주하며 도전과 실험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자신의 스튜디오로 관객을 초대한 그녀가 작업에 대해 말했다. “저는 현대 과학이 어떻게 전통적인 종교를 우리 삶 속에서 대체하고 있는지에 대해 늘 관심을 기 울여왔어요. 생명공학, 유전학, 호르몬 치료 등과 같은 것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모든 가능성을 확장시키죠. ‘In the Lab’은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에요. ” 웡척항 아트 투어가 끝나는 지점에서 최근 새롭게 둥지를 튼 갤러리도 있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컬렉터 악셀 베르포르트(Axel Vervoordt)가 이끄는 이곳에서는 전시 <Infinitive Mutability>가 열리고 있었다. 보따리 작업으로 유명한 김수자, 멕시코 출신의 보스코 소디(Bosco Sodi), 벨기에 출신의 조각가 피터 부겐후트(Peter Buggenhout) 세 사람의 독특한 형태와 질감의 작품이 모여 있었다. 갤러리 관계자는 더 넓은 공간을 찾아 3월에 센트럴에서 웡척항으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리우 볼린(Liu Bolin)을 만나다

투명 인간, 카멜레온, 위장 예술의 달인. 아티스트 리우 볼린이 홍콩 오버 더 인플루언스(Over the Influence)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리우 볼린은 자신의 몸에 페인팅과 정교한 분장을 하고 특정 장소와 마치 하나처럼 녹아들어가는 ‘Hiding in The City’라는 시리즈로 유명하다. ‘New Change’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번 전시는 리우 볼린이 그동안 해온 작업의 변화의 시점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오프닝 날 2018년도 신작 ‘Supermarket Pyongyang’이 공개됐다. 2005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한 정부를 향해 비판적인 퍼포먼스를 했던 작가가 평양에 입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짠’ 하고 갤러리에 등장한 그가 말했다.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회담이 열리기 전에 평양에서 촬영을 마쳤어요. 아마 당시로는 북한에서 퍼포먼스를 한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 아티스트일지도 모르죠.”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데 그것을 얻기 위해 5년 이상의 시간을 기다렸다고.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북한 당국의 엄격한 검사 과정이었다. “사실 가장 힘든 점은 카메라를 사수하는 일이었죠. 카메라 안에 있는 사진과 비디오를 일일이 검사하니까요. 군인이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올 때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작품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도망가야 하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고요.” 어쨌거나 그는 무사히 퍼포먼스를 마치고 돌아와 홍콩 아트위크 기간에 18명의 사람들과 전쟁과 이념에 대한 또 다른 퍼포먼스를 펼쳤다 .

피처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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