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적인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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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제정러시아의 대부호로 미술계의 셀렙이자 유명 컬렉터였던 세르게이 시츄킨.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시츄킨의 방대한 컬렉션을 파리로 불러들였다. 전시 <현대미술의 아이콘: 시츄킨 컬렉션> 이야기다.

당시 시츄킨이 컬렉션을 모아둔 궁전의 마티스 룸과 인상파 화가의 룸 ƒMusée d’Etat des Beaux Arts Pouchkine.

당시 시츄킨이 컬렉션을 모아둔 궁전의 마티스 룸과 인상파 화가의 룸 ƒMusée d’Etat des Beaux Arts Pouchkine.

1900년 경의 세르게이 시츄킨. ƒMusée d’Etat des Beaux Arts Pouchkine.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은 20세기 초 대표적 예술가들과 우연히 만난다. 꿈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그 시간을 통해, 그는 생생한 과거의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미술계의 한 사조가 맹렬하게 태동하던 순간으로 안내하는 전시가 지금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17년 2월 2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현대미술의 아이콘: 시츄킨 컬렉션>이다. 러시아 태생의 세르게이 시츄킨(Sergei Shchukin)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당대의 미술 작품을 모아 대규모 컬렉션을 구축한 인물이다. 성공한 기업가이자 컬렉터인 그는 프랑스와 러시아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화상, 화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컬렉션을 키워갔다. <시츄킨 컬렉션>전은 미술계의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아끼고 지원한 이 컬렉터가 수집한 작품 중 일부인 160점을 선보인다. 곰브리치의 저서 <서양미술사>가 빽빽한 텍스트로 미술 사조를 설명한다면, <시츄킨 컬렉션>전은 그중 한 챕터를 전시 형식으로 펼쳐놓는다.

작자 미상의 조각품. 시츄킨은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의 고미술품도 수집했다.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전시 전경 ©Saskia Boddeke & Peter Greenaway ©Succession H.Matisse ƒ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전시 전경 ©Saskia Boddeke & Peter Greenaway ©Succession H.Matisse ƒ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우선, 세르게이 시츄킨이란 인물부터 살펴보자. 어떤 미술 컬렉터들의 이미지는 사실 ‘취미생활로 작품 끌어 모아 과시하는 갑부’다. 또 어떤 컬렉터들은 큐레이션된 컬렉션을 구축한다기보다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고르기도 한다. 19세기 말의 러시아에서도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자들이 인상파 그림을 ‘쇼핑’하곤 했다. 그러나 시츄킨은 자신의 컬렉션 초창기부터 몇 가지 원칙 아래 작품을 수집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면 이 컬렉터의 풍모를 알 수 있다. ‘주요 예술 운동의 개요가 될 만한 컬렉션의 틀’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주요 작품들’ ‘마티스의 기념비적인 작품 전시’ ‘유럽 외 아프리카 목조품과 중동의 장식 작품들’ ‘공공 기관에 컬렉션 기증’. 특히 그가 관심 가진 주제는 당시 아방가르드에 속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그리고 모더니스트였다.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컬렉션 쇼 전에 디자이너를 찾아 누구보다 먼저 새 시즌 의상을 점검하듯, 그는 피카소, 마티스, 모네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로는 반 고흐, 고갱,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이 있다. 입체파는 피카소, 프리즈, 에르뱅, 드랭, 야수파는 마티스, 마르케, 블라맹크, 나비파(The Nabis)는 드니와 르동이 대표한다.

파블로 피카소 ‘세 여인들’, 1908 ©Succession Picasso 2016.

블라디미르 타틀린 ‘누드’, 1913

크리스티안 코넬리우스 크로흔 ‘세르게이 시츄킨 초상화’, 1916 ƒADAGP, Paris 2016.

에드가 드가 ‘사진가의 아틀리에에서 춤추는 발레리나’, 1875.

폴 고갱 ‘과일 수확’, 1899.

미하일 라리오노프 ‘봄의 계절’, 1912 ©ADAGP, Paris 2016.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검은 옷의 여인’, 1876.

앙드레 드랭 ‘신문 보는 남자’, 1911~1914 ©ADAGP, Pari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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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이 <더블유> 코리아 측에 특별 제공한 사진은 시츄킨 가족이 살던 궁전에 컬렉션을 ‘전시’해놓은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랜 세월 바랜 사진 속에서도 빽빽하게 걸린 작품의 존재만은 두드러진다. 그냥 벽을 채운 게 아니라, 동방정교회의 성화상(예수상과 성모상 같은 거룩한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로 걸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 트루베츠코이 궁전은 갤러리처럼 사용됐는데, 1908년부터 러시아 지식인과 작가들이 이곳에서 예술과 정치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 지식인들이 만나고 어울리는 살롱 역할을 한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여기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미술을 접했고, 이는 러시아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적이고 부유한 사업가들도시츄킨의 안목을 인정하며 존중했다고. 피카소, 마티스, 세잔, 고갱 등의 작품 원본이 걸려 있는 아지트에선 과연 어떤 에너지가 흘렀을까?
시츄킨 컬렉션은 지금껏 러시아 내의 미술관에서만 공개됐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시츄킨의 컬렉션이 바깥으로 외출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곳이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시츄킨이 1890년부터 1914년 사이에 컬렉션한 것들 위주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격변의 기운도 담고 있다. 전쟁과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예술가들은 트루베츠코이 궁전에 모여 이 작품들을 보면서 미술의 경향이나 예술가들의 사회 활동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실제로 시츄킨 컬렉션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오늘 파리에까지 왔다. 러시아 혁명 후엔 이 작품들이 국영화됐고, 그다음엔 러시아 양대 미술관인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시킨 미술관으로 이산가족처럼 흩어져 한동안 전시가 금지되기도 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건물 전체를 이 전시에 할애했다. 사전 예매를 해도 입구에서 줄 좀 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분위기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전시 전경 ƒ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전시 전경 ƒ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거대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소화한다는 건 신발 끈 조여매고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관객은 뜻깊은 전시를 학습하겠다는 의욕과 현기증 날 정도의 스케일 사이에서 표류하기가 쉽다. 그러나 한 컬렉터의 필터를 거친 결과물은 전시를 감상할 때 의외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작품 한 점 앞에서 컬렉터의 의도나 구입 당시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 그 시간이 미술관에서 표류하기 쉬운 나와 예술 사이에 끈이 되어준다. 현대 미술의 대가들을 한데 보여주며, 그 예술적 대화가 낳은 당대의 의미망을 재현하기.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황홀하게 아른거렸던 예술가들의 뒷골목이 화려한 버전으로 미술관에 재림했다.

에디터
권은경
PHOTOS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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