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언젠가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백남준의 선언은 이제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동상이몽처럼 쓰이는 ‘미디어 아트’의 좌표는 어디쯤에 있을까? 기술은 도구일 뿐이라 믿는 작가부터 로봇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아티스트까지,더블유가 만난 다채로운 이들이 그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최성록

최성록

LCD 멀티비전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풍경이 어지럽게 지나간다. 산과 터널을 지나 도장으로 찍어낸 듯 빽빽한 옛 주택가와 재개발 지구, 신식 아파트 단지, 도심의 고층 빌딩, 한강, 공항 등이 등장하는 작품 ‘Scroll Down Journey’다. 최성록은 드론으로 수집한 소스나 위성 사진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가공하고 편집하여 가상의 긴 지도를 만든다. 그것이 시속 60km로 스크린에서 흘러가는 덕분에 현실의 다양한 공간을 조감하는 효과가 있고, 회화적으로 처리된 화면은 현실 공간을 익숙한 듯 낯설게 보여주면서 신선한 시각 경험도 안겨준다. 인간은 자신이 볼 수 없는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지만, 거꾸로 그 도구가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이 시대의 새로운 시각 장치인 드론의 눈으로 인간이 ‘바라봐지는’ 경험은 야릇하다. 최성록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드론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나?
10년 전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드론이 전쟁용 도구로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네바다 기지에 있는 드론 조종사가 마치 오락을 하듯 드론을 쏘면,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이 떨어진다. 이때 조종사가 보는 화면의 해상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미사일이 군인에게 명중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쟁 시 드론의 쓰임새에 대한 비평 서적을 읽어보니 기술과 도구로 인해서 세상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정치나 윤리적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에게 드론은 취미 생활의 도구다.
드론 인터넷 동호회에 들어가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찍은 것을 열심히 올린다. 매체만 바뀌었을 뿐, 예전에 카메라 출사족이 사진 찍어 올릴 때의 양상과 똑같다. 다만 사진은 아름답기라도 한데, ‘드론족’이 올린 영상은 목적도 없고 무의미한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영상에 나름 BGM까지 입혀 작품화한다(웃음). 그들은 그냥 드론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거다. 그 모습이 조금 좀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흥미롭다. 여유 있는 30대 이상 남자들의 여가 생활이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

드론으로 얻은 이미지를 인공적인 느낌이 나도록 디지털 페인팅 처리하는 이유는 뭔가?
완전히 내가 구축한 디지털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다. 시공간을 납작하게 처리해 3D가 아닌 2D의 풍경으로 만들었다. 땅에서 50미터 정도 높이에 드론을 띄우면 사람의 모습까지 대강 식별할 수 있는데, 내 움직임과 세상이 뭔가 인공적인 장면으로 보여서 그 느낌을 더 파고들려는 면도 있었다.

드론에 대한 흥미를 작품 활동으로 연결하기까지 망설이진 않았나?
이전 작업도 기계나 도구와 연관된 부분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미술관 주관으로 과학자들과 협업한 프로젝트도 있다. 하찮고 작은 오브제들을 현미경으로 확대 촬영해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내는 식의 작업이었다. 삶은 밤을 확대 촬영해서 행성의 표면과 비슷한 질감을 얻고, 밤 주변에서 우주인이 부유하는 듯한 영상을 만든다거나.

드론을 활용한 작품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건 뭔가?
러시아 감독 지가 베르토프가 1929년에 발표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보면, 기존 극영화와 달리 내용은 없고 이미지만 있다. 즉, 카메라라는 기계가 바라보는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처럼 드론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우리 세계를 담고자 했다. ‘I Will Drone You’라는 작품에서는 드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지도록, 죽은 사람 위를 까마귀가 돌고 있는 듯한 장면으로 연출했다. 최초의 인간은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고 있다고 믿었다. 장치를 개발한 후에는 열풍선과 비행기 등을 하늘에 띄웠고, 이젠 위성과 드론까지 띄운다. 이런 수직 시점에 특히 관심이 간다.

헬리콥터를 타고 한강의 다리들을 기록한 사진가 이득영이 생각난다. 왜곡 없는 각도로 다리를 포착하기 위해 별별 고생을 다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도 제작이나 기록처럼 특수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수직 시점의 효과는 뭘까?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높이와 그 시선으로부터 전달되는 웅장함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는 건 내 자력만으로 누릴 수 없는 일종의 절대적 시선이다. 내가 권력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숭고한 감정을 일으킨다고나 할까? 일상에서 구글이나 다음 지도를 사용할 때도 위에서 내려다본 단순화된 길이 나온다. 지금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 수직 시점은 인간이 개발한 효율적인 인터페이스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드론은 어떤 의미인가?
내 흥미 사항은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에 대한 의미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다. 더 넓게는 사람들이 새로운 미디어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를 통해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들에 관심이 있다. 작업에서 드론은 하나의 매개체인 셈이다. 드론의 새로움과 기술적 신비함이 아닌, 도구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시점과 풍경, 내용에 초점이 있다.

미디어 아트라는 말의 폭이 넓기 때문에 디지털 아트나 포스트 디지털 등의 용어도 생겼다. 미디어 아트를 둘러싼 흐름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개인적으로 미디어 아트나 뉴미디어 아트의 한계점이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것이 성했지만, 이제 구태의연해진 면도 있다. 그런 작업들에서 사람들이 받는 감흥의 시효가 다했달까. 이젠 예술의 형식보다는 그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그렇다면 드론으로 어떤 시도를 더 해볼 수 있겠나? 앞으로 정해둔 계획이 있나?
드론 레이싱에 흥미가 간다. F1을 위한 영암 서킷처럼 드론 경기장이 국내에도 있는데, 거기 가면 하늘에 드론들이 미친 속도로 날아다닌다. 그 소재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을지 일단 생각 중이다. 2016년에는 현대자동차가 미디어 아티스트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제2회 VH 어워드’에 선정됐다. 수상한건 아니고, 최종 선정된 작가 3명이 새 작업을 하면 그중에서 수상자가 나온다. 나는 자동차 모니터와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로 풀어볼 생각이다. 이제 시작해야 한다.

조영각

조영각

1964년, 백남준이 걸어 다니는 로봇 K-456을 만들었다. 어딘가 허술하고 기술 문제로 고장도 잦았지만, 백남준은 그가 제작한 일명 ‘호모 사이버네티쿠스’의 첫 산물인 K-456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2015년, 뉴미디어 아트의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촉각을 세운 미술관 아트센터 나비가 E.I.랩을 신설했다. E.I.랩은 뉴미디어 아트의 넓은 반경 속에서도 가장 미래와 맞닿아 있는 로보틱스나 인공지능에 집중한다. 조영각은 이곳의 랩장이다. E.I.랩에 조인하기 전, 그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프레임과 클리셰를 작업 속에서 묘하게 이용하곤 했다. 찍히는 사람의 얼굴 부분만 일그러뜨리는 CCTV 설치 작업으로 관객을 뉴스 보도 속의 범죄자처럼 바꿔놓는 식이었다. 지금 조영각은 로봇 옆에 있다. 로봇을 통해 조금은 다른 생각, 다른 지점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언뜻 예전과 상관 없는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생각의 틀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그의 세계는 여전하다. 피규어 같은 수준의 로봇에서부터쉽 게 가늠하기 힘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조영각과 E.I.랩은 기술을 예술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시로 밤을 새우고 있다.

E.I.랩에 대해 소개해달라.
랩 이름은 ‘Emotional Intelligence Laboratory’의 약자다. 이름처럼 감성 지능에 집중하는데, 연구를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 결과물을 보여줄 목적으로 생긴 랩이다. 나와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아티스트로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고, 로보틱스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의 구성원이 있어서 함께 뭔가를 만든다. 감성 지능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의 매개체로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을 선택한 셈이다.

지금까지 어떤 로봇들을 만들었나?
우선 퍼포먼스용 드럼 로봇인 비트 봇 밴드가 있다. 4개의 팔로 전자 드럼을 연주하고, 2개의 손으로는 신시사이저와 미디 컨트롤러를 연주하는 형태다. 아트센터 나비가 개최한 ‘로봇 파티’ 때 국악 연주자와 함께 공연도 했다. 영화 <19곰 테드>에서 모티프를 얻은 곰 모양 토이 로봇은 성인들의 친구 같은 존재다. 기초적인 인공지능을 부여한 로봇으로 같이 대화하며 놀 수 있는데, 특히 각종 욕을 필터링 하는 기술이 뛰어나다(웃음). 로봇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어우러질까 생각한 끝에 최근엔 교육용 로봇 쪽으로도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여러 아트 프로덕션 사례를 보면 값비싼 작품을 파는 경우는 있어도 소품류를 파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예술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집 안에 들일 수 있다면 반갑지만, 사실 로봇이나 인공지능에게서 예술을 연상하긴 쉽지 않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끔 만들고, 다른 지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가까이에서 접하는 인공지능 상품을 통해 그런 것이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이 작품 세계를 살려 2차 생산까지 하는 대표적 작가다. ‘날씨 프로젝트’ 등의 작품에서 빛을 잘 이용했듯,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태양광 충전기가 있는 조명을 만들어 싼 가격에 팔거나 펀드를 일으킨다. 우리도 그런 궁리를 하는 셈이다.

E.I.랩에는 ‘앉을 수 없는 의자’가 있다고 들었다. 그건 뭔가?
걸어 다니는 의자를 만들어봤다. 이런 건 인공지능과는 상관없고, 비교적 간단한 다족보행 기술과 센서를 이용한 원리다. 누군가 앉으려고 하면 의자 밑의 센서가 인지하고 다리를 움직여 도망간다. 지극히 수학적인 결과물이지만 누군가는 ‘어? 의자가 살아 있네?’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런 지점들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이라고 본다.

회화를 전공했다. 어떤 계기로 지금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해 고민하고 있나?
캔버스가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물감이라는 물성을 거친 뒤 캔버스의 프레임 안에만 집어넣어야 했으니까. 그보다 실제 삶 속에서 재료와 내용을 찾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내가 가장 자주 쓰는 도구가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디지털 매체고, 자주 보고 사는 것이 영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첨단기술을 친숙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순도 높은 문과형 미술학도라면 좌뇌와 우뇌의 균형에 한계를 느꼈을 텐데….
얼마 전 그런 편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지과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좌뇌형, 우뇌형, 그런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공감했다. 미대를 나온 나는 모터를 보면서도 예쁘다고 느끼거나 심미성을 생각한다. 모터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비내리는 쓸쓸한 날의 카페를 떠올리기도 할 정도다.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내게 혼재된 덕분에 더 재밌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백남준은 로봇을 그냥 걷게만 하는 건 지루하니까 걷다가 차에 치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로봇 만드는 사람에게 백남준은 어떤 존재인가?
백남준 선생을 너무 싫어한다, 그분이 다 해먹었기 때문에(웃음). 비디오, 로봇, 사운드, 뭐가 됐든 그것들을 통해서 담론을 만들어내려는 미디어 아티스트 대부분이 인정하고 알 것이다. 웬만한 시도들이 이미 예전에 다 있었다.

백남준이 50여 년 전에 만든 K-456과 당신이 만드는 로봇 사이에 큰 차이점이 있다면 뭔가? 진일보한 기술을 이용한 점은 제외하고.
캐릭터를 부여한 지점이 가장 다른 것 같다. 백남준 선생이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휴머노이드를 생각한 끝에 탄생한 것이 K-456일 테고, 나는 휴머노이드 중에서도 어떤 성격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무엇이든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폰을 쓰면서 아쉬운 점은 이 아이에게 성격이 없다는 것이다. 원하는 앱을 깔아 분류해놓는 방식 정도만이 각자의 아이폰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길이다.

<아이, 로봇>처럼 로봇과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나도 저렇게 재밌는 걸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인공지능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선 일종의 ‘거세’가 필요하다.

거세하면 안전하다? 인간의 오만함이 돋보이는 생각이다(웃음).
예술도 다 인간을 위해서 하는 거다. 물론 인공지능이 하는 일들은 사람이 자기 안의 무엇으로부터 창출해낸 게 아니라 계산과 프로그래밍을 통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흥을 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을 통한 예술의 역할이 있다면 뭘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 종국에는 인간이 만든 작업물을 인공지능이 즐기는 때가 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인공지능이 기자의 글을 비평한다면? 지금 우리가 아트워크를 하듯,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가지고 인공지능이 아트워크로 풀어낸다면? 뭔가 통쾌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카입(Kayip)

카입(Kayip)

‘현대 음악 하는 사람’. 2008년 카입과 함께 모텟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낸 윤상은 카입을 이렇게 설명했다. 카입은 영국과학박물관에서 아폴로 달 착륙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 브라이언 이노에게 발탁되어 공연 편곡을 맡기도 했다. 음악이 듣는 이의 감정을 쥐고 있는 소리라면, 그의 음악은 까마득한 어느 곳으로 이끄는 듯 몽환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몇 년 전부터 갤러리나 미술관에 작업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궁궐의 호수에 소리와 빛의 인터랙션 작업을 띄워놓기도 했다. 얼마 전 소마미술관 <어느 곳도 아닌 이곳> 전에서 선보인 ‘경계의 풍경’은 몽골 고비 사막에서의 경험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는 좌표가 파악되지 않을 만큼 경계 없이 광활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의식의 안과 밖이 불분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재료 삼아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가 들릴 법한 미지의 공간을 시각화했다. 소리와 이미지가 함께 하면서 이제 카입의 작업은 보다 가 닿을 듯한 시공간으로 누군가를 데려다준다. 단지 감상하는 게 아닌, 체험하게 만드는 순간을 일으킨다.

음반을 만들 때는 음악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하는 작업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뭐를 한다고 말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작업을 할 때 이것과 저것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Composer’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작곡가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 역시 내게 흥미로운 것들로 뭔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다. 구성의 재료가 꼭 소리만일필요는 없다. 시각적인 것,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음악 외의 작업으로 지평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2010년경 마지막 앨범 작업을 할 때쯤으로 기억한다. 작업 들어가기 전에 약간의 슬럼프가 왔는데, 이쯤에서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다른 쪽도 한번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예술적 욕구로 인한 목마름이라고까진 할 수 없고,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오는 것 같다.

각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몽골 고비를 여행한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이었나?
‘자연을 통한 영감, 의도하지 않은 예술적 협력’을 주제로 매해 10명의 아티스트와 기획자가 초원대륙을 여행하는 창작 워크숍이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서 움직인 게 아니라 그저 정해진 장소를 여행하는 식이었다. 안무가 정용두와 이나연, 가수 하림 등이 함께했는데, 어느 공간의 기운에 따라 즉흥 연주나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도 남극의 대자연 속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더라. 그는 거기서 녹음한 소리를 음악에 담기도 했다.
아, 나는 북극의 그린란드에 간 적이 있다. 나 역시 빙하 소리를 녹음했는데, 녹음 파일을 분실해서 그만… 풍경에서 얻는 영감이라는 게 확실히 있다. 소리의 질감이 주는 정서도 있고.

여행에서 작업의 영감을 주로 얻는 편인가?
소리를 만드는 데 여행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고비 사막뿐만 아니라 학생 때 다닌 북유럽, 북극권 너머 툰드라 지역도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경계의 풍경’ 작업의 경우 소리를 먼저 만들고 그 소리가 들려올 법한 이미지를 만든다. 고비 사막이나 그 어딘가의 실제 공간과 완전히 똑같지도 않으면서 크게 다르지도 않은 그런 공간. 바깥 세상의 풍경이라기보다 내 안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묘사한다.

소리를 시각화하는 것과 시각을 소리화하는 것, 어느 쪽에 더 관심이 있나?
애초 이런 작업을 시작할 때는 소리의 시각화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매체들이 어우러져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흥미를느끼는 사람이다. 각자의 원리와 전통이 있고, 그런 것들이 만나서 이뤄내는 지점이 재밌다.

소리가 다른 것과 어우러지는 작업 가운데 소개해준다면?
기존에 있던 작가의 조형물에 센서를 단 스피커를 장치해, 사람이 지나가면 소리가 깨어나는 방식의 구조물로 작동시켜보기도 했다. 사람들 동선에 따라 여러 층위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음악이 됐다. 올여름 용산가족공원에서는 공공 프로젝트의 하나로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나는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촘촘한 나일론 줄로 만들었는데, 내는 소리가 신시사이저 음향과 거의 비슷하다. 전기를 쓸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에 낸 아이디어다.

‘경계의 풍경’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 밖과 안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같은 것을 생각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란 결국 우리의 관점에서 얇은 틈을 통해 바라보는 상이다. 그런데 물리적인 현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부분도 그 점이겠고. 그런 괴리감이 경계 아닐까?

작업하면서 계속 품고 가는 관심사는 뭔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흥미가 있다. 그건 오랜 진화를 거쳐 형성된 본성의 결과이고, 그것에 대한 탐구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와 관련된 책도 많이 보는 편이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책을 좋아한다.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답이 있는 과정을 추구하는 편인가?
경우에 따라 다른데, 답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가끔은 답이 있는 쪽을 기웃거리는 셈이다. 과학이 한 목표를 정하고 계속 추진해가는 거라면, 예술은 목표점을 향해 간다기보다 반작용의 일종 같다. 어떤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나는 예술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목적지나 정답을 찾아가는 쪽은 아니다. 다만 과학에 가까운 성격의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모든 조사를 통해 정확한 답을 찾아 구현해냈을 때 오는 희열도 있다.

빅반데르폴(Bik van Der Pol)

빅반데르폴(Bik van Der Pol)

빅 판데르폴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듀오다. 위키피디아 영문 사이트에서는 이들을 설치 작업가 및 개념미술가라고 소개한다. 어느 큐레이터는 이들이 ‘Making Art’를 하는 게 아니라, ‘ARTing’한다고도 표현한다. 그들은 물리적인 작품을 전시하기보다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일을 벌이고, 의견과 정보가 오가도록 일을 꾸민다. 미디어가 정보를 주고받는 매체를 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빅 판데르폴은 ‘미디어’를 개념적으로 체화한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미디어시티서울> 2016,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열린 <2016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미디어시티서울에선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장고에 있는 방대한 양의 소장품 중일부를 추려 재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입혔다. 광주비엔날레에선 성장과 치유 등의 효과를 지닌 특수 LED 빛으로 설치 작업을 하고, 그 공간에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곱씹을수록 ‘ARTing’이라는 말이 이들에게 적절해 보인다.

당신들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가?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각도의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를 벌인다. 한 번에 원하는 모든 결과를 얻을 수 없고, 어떤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최종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과물이 된다. 예를 들어 공중권(건물과 토지 위 허공에 대한 권리)으로 분쟁이 붙은 한 구역을 프로젝트 소재로 삼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된 땅에 이 프로젝트명인 ‘As Above So Below’를 대형으로 새겼고, 구글에 부탁해 위성 사진을 새로 찍었다. 실제로 구글 지도에 업데이트해 그 이후로도 모든 사람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사회에서 분쟁이 붙은 공간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구글의 기술을 빌려 그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공공성이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확장했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매 프로젝트마다 실험을 하는 듯하다. 당신들의 가설이나 주제는 뭔가?
공공성이란 뭔가, 무엇이 어떻게 공공성을 만드는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장을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그 공공의 장이 어떻게 탄생하고 사라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때 해당 공간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차단되는지 여부도 큰 관심사다. 예를 들어 한국에 와서 내 폰으로 구글 지도의 길을 찾으려고 하니 그럴 수가 없다.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에서 그런 차단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고, 그에 대해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당신들의 작업을 위해선 사전에 리서치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 작업은 모두 장소 특정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에 했던 성격의 프로젝트를 다른 장소에서 진행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서울에서 뭔가를 한다면 서울의 미술관, 컬렉션, 사람들의 작업 방식 등등 모든 것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 세상 자체를 아카이브로 여긴다.

당신들의 작업 결과물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과는 좀 다르다. 한국에는 당신들과 같은 방식의 예술 활동이 흔하지 않다.
작품이 작업실 안에서만 만들어진다는 건 편견이다. 밖으로 나가 직접 경험하고 이룬 것도 작품이 된다. 어떤 큐레이터는 우리의 작업을 일컬어 ‘Making Art’가 아닌 ‘ARTing’이라고 표현했다. 과정의 예술이라고 할까? 이처럼 ‘Doing Art’라고 부르는 작가군이 형성돼 있기도 하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에서 선보인 ‘삼생가약’의 작업 방식도 특이하다고 느꼈다.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에 있는 작품 4천여 점 중에서 한국 현대미술과 사회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서울의 맥락과 관계 있는 것 등 몇 가지 기준에 따라 1차 분류된 작품 리스트를 받았다. 그중 3점을 골라 전시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감독 장준환, 불문학자 윤경희 등 서로 다른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게스트 큐레이터로 참여했고, 그들을 인터뷰한 7대의 비디오도 함께 설치했다. 우리가 그들을 직접 인터뷰한 영상은 유튜브에도 공개된다.

함경아의 ‘나가사끼, 히로시마 버섯구름’, 노재운의 ‘본생경’, 박용석의 ‘안녕 의자’는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
딱히 엄격한 기준을 놓고 선별한 건 아니다. 추리고 추린 작품 중에서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전시 공간에서 문제 없게 어우러질 만한 걸 골랐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에 대한 함경아의 자수 작품은 사진으로 보자마자 끌렸는데, 어떤 역사를 담고 있어서 더 좋았다. 놀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수가 치명적인 이미지를 위해 사용됐으니 아이러니컬하다. <본생경>은 작품의 대칭적인 구조가 공간을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면서 안팎으로 소통하는 듯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고, <안녕 의자>는 ‘안녕’ 자체가 메시지이면서 전시 공간을 둘러보다가 잠깐 앉아 쉴 수도 있게 해준다.

의외다. 작품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유기성이 있도록 골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미나 해석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의견이 피어날 수 있는 공간과 상황을 만드는 거다. 한 맥락 안에서 모아진 작품들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로운 화제를 제안하고 교감하게 한다. 관객은 ‘이들이 뭘 전시한 거지? 왜 이렇게 한 거지?’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있고 말이다.

빅 판데르폴을 미디어 아티스트 팀이라고 불러도 될지 조금은 헷갈린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디어 아트는 워낙 헷갈리는 용어다. 미술관의 뉴미디어 소장품은 다른 형식이나 매체로 보존되면서 이미 지나간, 옛 미디어가 돼버린다. VHS 테이프가 하드드라이브에 저장되고,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욱 작은 칩 안에 저장될 수도 있겠고, 이런 식으로 컬렉션의 부피가 점차 줄어들면서 결국 큰 작품 활동이 마이크로 칩 같은 작은 공간에서도 일어나게 된다. 미디어의 역할이 정보를 교환하고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바로 그런 점에 대한 작업을 한다. 한 개의 매체에 묶여 있지는 않지만,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통해 만든 결과물 역시 미디어 아트의 범주에 든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듀오로 일하는 건 어떤가?
같이 작업하면 모든 과정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 한 사람이 막혔을 때 다른 사람이 끌어가줄 수도 있고 말이다. 항상 서로에게 동의하진 않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게 왜 다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 로테르담은 어떤 도시인가?
항구 도시라 그런지 열려 있다(웃음).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고 연령대가 젊다. 예술과 디자인 영역의 활동이 활발한 편이라 작가에게 특히 매력적인 도시다. 암스테르담과 가까운데 스튜디오 렌트비는 저렴하다. 서울보다 물가도 싼 것 같은데?

ARTing하는 당신들은 예술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나?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몸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거라면 좋겠다. 물론 예술이 아닌 것, 이를테면 사람도 사람의 마음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거기에 더해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단 한 번에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누군가의 마음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