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은둔을 갈망하는 사람, 축제의 가운데서 고요를 동경하는 남자, 빛 속에서 그늘을 상상하는 스물일곱. 이종석은 배우로 살면서 스스로 선택한 이율배반 속에 뛰어들었다.

터틀넥 풀오버는 Lansmere, 팬츠는 Caruso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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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착이 가능한 후드 장식의 데님 소재 롱 코트는 Prada, 슬리브리스 톱은 Rick Owens, 팬츠는 Caruso 제품.

탈착이 가능한 후드 장식의 데님 소재 롱 코트는 Prada, 슬리브리스 톱은 Rick Owens, 팬츠는 Caruso 제품.

프린지 장식 스웨이드 재킷은 Lansmere, 팬츠는 Caruso 제품.

프린지 장식 스웨이드 재킷은 Lansmere, 팬츠는 Caruso 제품.

오늘 특이하게 두 사람의 포토그래퍼와 촬영 했는데 어땠나?
같이 촬영한 사진가 두 사람은 모두 나와 어리고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포토들이다. 서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던 20대 초반에 어울려 지내면서 고민을 나누던 사이인데 그들도 입봉하고 나도 데뷔해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니 각별하다. 어떤 동료 의식 같은 걸 느낀다.

힘든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데뷔 이후의 커리어는 충분히 잘 풀어온 것 같은데.
끊이지 않고 일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작년 한 해는 쉬었지만.

그 기간은 뭘 하며 보냈나?
집 밖으로 거의 안 나갔다. 한 일이 있다면 강아지를 한 마리 들여 키웠다는 정도? 원래 데리고 있던 아이가 있었는데 너무 바빠 부모님 댁에 보냈 다. 부모님 집에 정이 들고 나니 나를 몰라주더라. 개를 안 좋아하시던 두 분도 막상 착하고 똑똑한 강아지들과 지내니 정이 들어 안 보내려고 하시고. 이제는 두 마리가 같이 잘 논다.

다시 새 드라마를 시작한다. 이제 충분히 충전을 마친 건가, 아니면 더 쉬면 안 될 것 같아서인가?
어쩔 수 없어서 라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쉰 적이 없으니까. 두려움은 여전하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았다. 연기 수업도 받고 신인 친구들이 연기하는 것도 보면서, 작은 기회에 절실하던 내가 복에 겨운 엄살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한 프린트 셔츠는 Versace, 짙은 푸른색의 가죽 재킷은 AM.W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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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테일러드 코트, 플래드 패턴의 캐주얼한 브이 네크라인 톱과 스트링 장식 팬츠는 모두 Dior 제품.

붉은색 테일러드 코트, 플래드 패턴의 캐주얼한 브이 네크라인 톱과 스트링 장식 팬츠는 모두 Dior 제품.

스트링과 주머니 장식의 톱은 Balmain, 데님 진은 Calvin Klein Jeans 제품.

스트링과 주머니 장식의 톱은 Balmain, 데님 진은 Calvin Klein Jeans 제품.

720일부터는 새 드라마 <W> 방영이 시작된다. 이번 현장이나 상대 배우 한효주 씨와의 호흡은 어떤가?
작품이 너무 어렵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1, 2 부 대본이 너무 재밌고 내 분량이 많이 없어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뒤로 갈수록 출연분이 이렇게 많아질 줄 몰랐지만(웃음). 이 작품을 잘해놓으면 얻는 게 많겠다 싶었다. 어려운 가운데 선배인 효주 누나와 하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카메라가 본인 얼굴을 찍지 않는 순간에도 열심히 리액션을 해줘서 고맙다. 예상보다 밝은 사람이기도 하다.

<W>의 주인공 강철은 굉장한 능력과 재산, 명성을 가진 데다 웹툰 속 캐릭터라는 극단적인 가상의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에 현실감을 불어넣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해석으로 접근하고 있나?
작가님이 글로 구축해놓은 캐릭터가 남자답고 시니컬한 느낌인데 지문을 보면 유들유들 하고 가벼운 면모도 있다. 전체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는 묵직한 남자인데 행동은 가볍다고 할까. 그 중간에서 적절 한 무게중심을 잡느라 애를 썼다. 대본 속 인물의 설정보 다 내가 어리고 동안이라 신경 쓰는 부분도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낮은 목소리가 나온다거나 그런 것들이 있다. 현실과 웹툰이라는 두 공간을 연기적으로 나누려고 하진 않는다. 다만 판타지 장르,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들 수 있는 이질감을 진짜처럼 보이게 해야 하는 게 내 몫이라 여긴다. 그런 건 잘한다고 생각한다. 오글거릴 수 있는 뭔 가를 순화시키는 데 자신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힘들어서 노력 중이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 <닥터 이방인> <피노키오>까지 출 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높았다. 스스로 작품을 고르는 감식안이 있다고 생각하나? 대본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내가 드라마 덕후다. 드라마를 많이 보고, 영화보다 좋아한다.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로맨틱한 코드에 공감도 잘하고. 장면에 어떤 메시지를 숨겨놓고 해석해야 하는 예술 영화보다는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재밌고, 내가 즐겨 듣는 노래는 멜론 차트에서 1등 하고 그런다. 가사에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붐 샤카라카” 이런 뜻 모를 노랫말보다 좋다(웃음). 이렇게 대중적인 취향이어서인지 대본을 읽을 때도 장면을 그리면서 읽어보면 이거 잘되겠다 하는 감이 온다. 천재, 초능력자 같은 배역을 일부러 선택해오진 않았지만 판타지 요소가 섞인 걸 좋아하는 것 같고.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아졌지만, 이 작품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것을 좀 다르게 다룰 거다. 덕후로서 확신하는 건, 시청률까지는 모르겠으나 대본이 잘 구현된다면 길이길이 남을 명드가 될 거라는 거다. 내가 잘해야겠지만!

성근 짜임이 멋스러운 카디건은 Bottega Veneta 제품.

성근 짜임이 멋스러운 카디건은 Bottega Veneta 제품.

오버사이즈 스웨터는 Raf Simons by MUE, 데님 진은 Calvin Klein Jeans 제품.

오버사이즈 스웨터는 Raf Simons by MUE, 데님 진은 Calvin Klein Jeans 제품.

검정 가죽 재킷은 Bottega Veneta, 스카프는 Saint Laurent, 와이드 팬츠는 Caruso, 붉은색 양말과 슈즈는 Gucci 제품.

검정 가죽 재킷은 Bottega Veneta, 스카프는 Saint Laurent, 와이드 팬츠는 Caruso, 붉은색 양말과 슈즈는 Gucci 제품.

다른 드라마에서는 주로 배우들의 연기를 눈여겨보는 편 인가?
전체적인 연출이나 장면의 그림을 본다. 예를 들어 잘 만든 드라마라 할지라도 멜로 신에서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일부러 만들어낸 듯한 그림 같은 건 보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키스 신 같은 것도 어떤 각도가 자연스럽고 예쁜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다. 내 취향으로는 풀 샷으로 잡은 실루엣 느낌이 예뻐야 좋더라.

세밀하게 보는 것 같다. 원래 성격이 꼼꼼한 편인가?
많이 꼼꼼하고 예민하다. 열등감도 있다. 내 또래 배우 가운데 너무 잘하는 사람도 많고, 비슷한 만큼을 살았어도 경험의 폭이 훨씬 다양한 듯 보일 때 그렇다. 성장 과정에서 나에게는 파도가 없었다. 일이 안 풀리거나 기회가 안 온다 정도가 고난의 전부였다. 인생의 좌절이나 굴곡이 감정을 쓰는 배우에게는 좋은 재료가 된다고 할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눈물을 흘리는 신, 감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끌어올 만한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할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간접 경험으로도 익히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예민함이 방해가 되는 순간은 없나?
많다. 스스로 유리 멘탈이라고 할 만큼 마음이 약해서 어떤 뉴스나 작은 사건이 있으면 일할 때도 지장을 많이 받는다. 매니저에게도, 내가 놀랄 이야기가 있다면 바스트숏 찍기 전에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표정에 다 드러나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하는 맥주 광고 카피를 좋아한다. 그렇게 별일 생기지 않는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정말 조용하게 살고 싶다면 등대지기 같은 직업을 선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대중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물론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많다. 그걸 알지만 겁부터 나는 거다. 그런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서도 연기는 제대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점이 또 신기하다. 일을 사랑하니까. 내가 하는 드라마가 잘됐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내 본업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니까. 하지만 극 중의 나는 작가가 써준 가상의 인물이고, 내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드라마는 나에게는 판타지의 세계다. 멜로라면, 언제나 헤어 메이크업이 되어 있어서 현실의 사랑보다 훨씬 미화되어 있는 거다. 나의 최대치까지 그 사람이 되어 표현하면서 내 세계도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어렵고, 가끔은 얼굴이 새빨개진다. 드라마를 찍을 때는 너무 힘들지만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건 완성된 방송을 볼 때의 엄청난 쾌감 때문이다.

꽃미남 미소년 이미지를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타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남성미 물씬 풍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걸 봤다.
내가 가지지 못한 외면에 대한 동경이 있다. 배우 가운데는 이민호나 김우빈처럼 선 굵은 배우들을 좋아한다.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내가 그런 이미지가 가능한가 생각해보면 아직은 조금 물음표가 있지만, 누아르를 좋아하고 남자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다. 작년에도 몇 작품을 들고 고민하다가 겁이 나서 내려놨지만. 일단 20대까지는 내가 갖고 있는 강점으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W>는 그 중간 지점에 있다. 완전히 남자로 간 건 아니지만, 내가 어느 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이 드라마를 통해 판단해 보자고 내심 마음먹었다.

펠트 소재의 조형적인 모자, 화려한 엠브로이더리 스웨터와 팬츠, 캐주얼한 슈즈는 모두 Gucci 제품.

펠트 소재의 조형적인 모자, 화려한 엠브로이더리 스웨터와 팬츠, 캐주얼한 슈즈는 모두 Gucci 제품.

테일러드 코트는 Prada, 소매 장식이 독특한 셔츠는 Caruso, 실크 스카프는 Bottega Veneta 제품.

테일러드 코트는 Prada, 소매 장식이 독특한 셔츠는 Caruso, 실크 스카프는 Bottega Veneta 제품.

<W>에서 사격 선수로 나온다. 집중력을 극단적으로 발휘 해야 하는 사격이라는 종목과 자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혹은 다른 종목의 운동선수가 되었다면 어떤 스포츠였을 것 같나?
체육 시간을 너무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주번에게 천원 주거나 빵 사주며 바꿔 교실에 남아있곤 했다. 요즘은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작품에 필요하다고 하면 수영도 하고 탁구도 친다. 나처럼 할 줄 아는 것 없는 사람이 참 여러 가지 배우고 있다. 예전에 <블랙 스완>을 배우들과 단체 관람했는데, 함께 본 선배 누나가 그러더라. “우린 예술을 정말 쉽게 하네!” 거기서 나탈리 포트먼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발레리나 연기를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등 근육에서, 그리고 춤에서 다 보이니까.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대본 외워야 할 분량이 너무 많아서 보다가 어제 새벽 한두 시쯤에 고추튀김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불렀는데, 새벽에 불러낸 게 미안해서 내기 축구 게임을 했다. 내가 게임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져서 용돈이라도 주려고, 그런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30만원 잃고 나니 화가 나고 분하더라. 고작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 정도다. 술을 마시면 사람도 많이 만나고 다양한 공간과 맛집도 알고 그러는 거 같은데, 술도 안 마시니까.

SNS로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나?
매니저가 증명사진처럼 찍어주는 사진만 올리고, 이모티콘 하나 올리고 그런다. 감성에 젖어 있을 때는 사람이 티를 내고 싶어 하는데 그럴 때 위험해지는 것 같아서 최소한의 표현만 한다. 내가 힘든 걸 누군가 알아주길 바랄 때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문자를 하다가도 뭔가 감정이 상했다면 뉘앙스가 담기는데, 그걸 글로 보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파장이 커지니까. 가끔 친구가 인스타그램 하고 있으면 옆에서 타임 라인을 보는데 다들 참 재밌게 행복하게 사는 것 같긴 하더라.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자기 고민이나 약점을 드러내는 편이다.
이렇게 누군가와 끊이지 않고 대화할 기회가 자주 없다.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6개월 만에 만나도 늘 같은 옛날이야기를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는 늘 붙어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주로 나누고, 사회에 나와서 맺은 인간관계 속에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게 되니까. 이렇게 인터뷰에서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찾아보고 하면서 나에 대해 발견할 수 있어 좋다. 남들에게는 가벼운 먼지라도 나에게는 우주만한 가시일 수도 있다.

요즘은 어떤 생각이 가시가 되나?
나의 한계점이 있다면 거기까지 최대한 빨리 완전히 소진해보자는 거.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러는 사이 나에게 새로운 얼굴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붉은색 핀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는 Etro, 순백의 셔츠는 Rick Owens, 진주 장식 슈즈는 Gucci 제품.

붉은색 핀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는 Etro, 순백의 셔츠는 Rick Owens, 진주 장식 슈즈는 Gucci 제품.

이종석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