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부탁해 VOL.1

W

새로운 계절, 새로운 옷. 저마다의 필살기를 지닌 패션 하우스의 2015 F/W 광고 캠페인 대결이 펼쳐진다.

거리로 나와

쇼장보다 바깥 풍경이 더 흥미로운 요즘. 광고 캠페인 역시 부지런히 거리로 나갔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한 후 가장 뜨거운 패션 하우스로 발돋움한 구찌만 보더라도 명확해진다. 도심의 시내로 나간 광고 비주얼의 배경은 우리가 수시로 마주치는 횡단보도와 버스 안이다. “광고 캠페인을 통해 창의적인 시각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다”는 게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의도. 알 만한 얼굴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화제의 대상인 것을 보면 그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스트리트 사진에 매력을 느낀 미우미우 역시 모델들을 뉴욕의 거리로 내몰았다. 연출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무심한 애티튜드를 눈치챘다고? 몰래 촬영한 듯한 파파라치 기법이 콘셉트다. 소형 카메라와 자연광을 십분 활용한 빈티지한 톤은 한 편의 미니 드라마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모델의 붉은 립스틱과 그 뒤를 지나가는 소방차의 페인트 색상을 매치하는 방식의 섬세한 연출도 손가락을 치켜들게 한 매력 포인트.

런던의 엘스트리 필름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발리도 거리의 한 모퉁이를 배경으로 삼았다. 햇빛을 받은 신체의 일부분을 클로즈업하거나 카메라를 무심하게 응시하는 모델의 표정에서 자연스러운 연출 방식이 묻어난다.

구관이 명관

한번 합을 맞춰본 이들이 서로를 잘 안다고, 서로 돈독한 유대 관계를 이어온 얼굴이 있다. 롱샴은 벌써 네 번째 손발을 맞춘 알렉사 청과 이번 시즌 마이애미로 떠났다. 목적지는 세련된 갤러리와 스튜디오, 스트리트 아트로 명성이 높은 윈우드. 컬러풀한 그라피티를 등지고 선 알렉사 청의 당당한 포즈는 활동적이고 도시적인 롱샴 우먼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친목 순위로 따지자면 이들을 빼면 섭할 듯. 바로 스텔라 매카트니와 여덟 번째 시즌을 함께하는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아는 사이쯤 되지 않을까. 스코틀랜드의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나탈리아의 몸짓은 스텔라 매카트니가 원하는 여성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처음이야

그동안 뚜렷한 광고 하나 없이도 승승장구했던 마르니가 2015 F/W 시즌을 맞아 여성 컬렉션의 광고 캠페인을 선보인다. 그 첫 시도는 영미권 아티스트 재키 니커슨과 이루어졌는데, 포즈 하나도 예사롭지 않은 감성이 뚝뚝 묻어난다. 바닥에 엎드리거나 테이블에 기대기도 하고, 다리를 들어 신체의 일부분만 드러낸 비주얼은 화면 밖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것을 암시한다고. 이런 예술적인 접근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베스트 로케이션

매 시즌 색다른 배경과 장소를 찾기 위해 골몰하는 디자이너들. 이번 시즌엔 유난히 개인 저택이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카를로 몰리노가 살던 집을 선택했다. 고풍스러운 가구, 예술적인 스케치가 담긴 벽, 오래된 카펫 등이 어우러진 공간은 유르겐 텔러의 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1970년대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한 듯한 페라가모는 독립 저택이 배경이다. 통창에 드리운 붉은색 커튼과 나무 바닥이 인상적인 집은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모델 그레이스 하첼이 등장하는 토즈 역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레산드라 파키네티의 개인 저택에서 촬영했다고. 이탈리아 도시 여성의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주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에서다.

부탄이라는 생경한 지역을 선택한 3.1 필립 림은 진행 방식 역시 독창적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젊은 포토그래퍼 피바아너 사선의 개인 작업 방식을 그대로 반영했는데, 헤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없음은 물론 모델 경험이 전무한 현지 소녀를 발탁했다.

한편 디올은 프랑스 북서부 지방의 그랑빌로 떠났다. 크리스찬 디올이 자서전에서 “나의 어린 시절 집은 절벽 위에 있어 사나운 날씨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고 남긴 기록에 착안, 야성적인 자연과 지극히 여성스러운 디올의 룩의 극적인 대비를 담았다.

이건 그냥 영화야

지금 멋에 예민한 젊은 친구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한 겐조의 이번 시즌 캠페인은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이미지로 완성됐다.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은 인디영화 감독 그레그 아라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1997년에 만든 영화 <Nowhere>의 한 장면을 재해석해 ‘Here Now’라는 제목의 짧은 패션 필름을 만든 것. 영화 속 겐조의 가을 컬렉션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 이런 콘셉트

색다른 기획으로 신선한 접근을 시도한 로에베는 조너선 앤더슨이 기획하고 스타일리스트 벤저민 브루노와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이 힘을 보태 완성했다. 이름하여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 스티븐 마이젤의 아카이브를 뒤져나온 연대 미상의 작품을 로에베의 광고 캠페인을 위해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 것. 과거 고전 예술에 쓰인 초상화 기법이 현대적으로 진화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비주얼에 아이디어를 더해 창의적인 세계를 이끌어내고자 한 조너선의 바람이 그대로 반영되었음은 물론.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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