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를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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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곳, 적도. 그곳으로 떠난 영화감독 김종관의 기록들.

도시의 상인들은 물건을 머리에 이고 판다. 머리에 인 거대한 시장들이 곳곳에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 차창으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가판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열대과일과 식료품, 옷과 중고 물품, 공예품 등 안 파는 것이 없다. 그곳에서 사먹은 당도 넘치는 열대과일과 이마트에서 사먹은 열대과일을 비교해보자면 감자와 고구마만큼 다르다.

저분의 인자한 미소에 한국말을 할 뻔했다.

신발이 없어도 아이들은 나이키 에어를 신은 듯 엄청난 점프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유롭지만 상처에 강하지는 않다. 사소한 상처에 치료가 늦으면 그들의 자유로운 발이 위험해진다. 아이들에게는 신발이 필요하다.

지나는 길 가난한 초등학교에 들렀다. 창도 문도 없는 벌거벗은 건물에 학생들이 있었다. 지붕 없는 텅 빈 교실에도 아이들은 하나 둘 앉아 있다. 약간은 외로워 보이지만 방과후의 한적한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다.

고학년의 수업을 들어보려 했더니 머리가 뜨거워진다.

호수는 바다처럼 넓지만 검은색이다. 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볼타 호수에 가장 큰 장이 열렸다. 쪽배를 타고 몇 시간을 넘어 장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황인종을 처음 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내 귀와 코와 머리카락을 만지며 아우성이다. 나 또한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에 떨어진 이방인처럼 어리둥절했다.

멋진 스티로폼 견장을 든 아이다. 그 아이는 주위에 친구가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는 기름이 떠 있는 호숫물로 아이의 몸을 닦았다. 가벼운 아이의 몸이 엄마 손에 들려 여기저기로 흔들렸다. 울던 아이는 물에서 들어올려지자 울음을 멈췄다. 프레임에 담기는 아이의 눈을 보면서 먼 여정의 즐거움을 알았다.

인도에서의 촬영은 쉽다. 사람들의 드라마는 강하고 그들은 비교적 사진을 거부하지 않는다. 가나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카메라를 든 이방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때문에 최소한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들은 내가 진짜 표정을 보여줘야 그들의 표정을 짓고 그제야 난 카메라에 그들을 담는다.

태국을 들러 인도로, 두바이를 들러 아프리카로 가는 여정이었다. 영상 촬영이 있었고 긴 기간은 아니지만 나름 고단한 스케줄이었다. 적도로만 돌아 마지막 촬영지 아프리카 가나에 도착했다. 짙은 피부색에 인종만 바뀌는 네 번째 나라에 도착하고 아크라라는 수도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피곤한 일이 이어졌다. 공항의 입국 심사관은 웃으면서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20달러를 달라고 했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동안 모든 공무원이 다가와서 돈을 목적으로 트집을 잡았다.

수도 아크라를 벗어나서 2시간 거리의 외곽 도시 코포리두아에 자리를 잡기까지 불편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날수록 열대의 과일과 개성 있는 키오스크들, 머리에 과일을 이고 걸어가는 아름다운 흑인 여성의 자태와 아이들의 웃음과 느긋한 마을 사람들의 인심과 호의를 만났다. 때로는 스쳐가는 풍경으로. 때로는 잠시 머물며 건네는 미소로. 우리는 마지막 날 변화무쌍한 날씨를 뚫고 가나의 비경, 볼타 호수를 만나러 갔다. 글 ∙ 사진 | 김종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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