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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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컬러, 형형색색의 패턴과 프린트, 다채로운 실루엣으로는 디자이너의 무한한 영감을 표현해내기에 부족한 걸까? 1990년대와 로고의 매력에 푹 빠진 그들은 옷 위에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1 꽃에 대한 찬사
크리스토퍼 케인은 ‘망원경으로 바라본 꽃’을 주제로 꽃의 원초적인 면을 탐구했다. “단지 꽃의 아름다운 모양새만을 본 건 아니에요. 꽃은 산소를 생산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죠. 학창시절 받았던 성교육 시간을 떠올려보면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와 꽃이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어요.” 케인의 손에서 확대와 해부의 과정을 거친 꽃은 쇼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커다랗게 확대된 꽃잎 모양으로 컷아웃되거나 해부된 꽃의 다이어그램은 레이저 커팅 처리되었고, 스팽글, 오간자 등의 아플리케로 장식되었다. 화룡점정은 역시 ‘꽃잎’, ‘꽃’ 등의 단어를 직접적으로 적어놓은 스웨트 셔츠! 꽃을 대하는 케인만의 흥미로운 시각이 반영된 쇼였다.

2 물고기 남획 금지
런웨이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옮겨놓은 겐조움베르토 레온캐롤 림은 물고기 남획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위해 바다와 서핑, LA 언더그라운드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쇼를 구성했다. 물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물고기와 파도 스케치 프린트는 물론, 크롭트 톱의 밑단을 물결을 연상시키는 라인으로 마무리하거나 다양한 톤의 블루 컬러를 이용한 물살 패턴 등을 장치로 활용했다. 여기에 ‘No Fish, No Nothing’이라고 적은 문구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패셔너블한 시도!

3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소녀가 소년처럼, 반대로 소년이 소녀처럼 입는것에 매력을 느낀 에르뎀 모랄리오글루는 흑과백, 단 두 가지 색감 안에서 ‘남장을 하는 소녀들’을 위한 아름다운 룩을 만들어냈다. 청소년기에 대한 회상에 푹 빠진 그가 이번 컬렉션에 심어놓은 히든 트랙은 바로 ‘에밀리 디킨슨과 월트 휘트먼의 시 구절’을 빼곡히 담고 오간자로 덮어놓은 레이스 톱. 이 시에는 비이성적인 감정의 변화와 함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십대들의 롤러코스트 같은 불안한 정서를 담은 것이라고.

4 쉿!
준 다카하시는 언더커버 런웨이에서 펑크라는 코드로 세상의 모순을 전위적이고도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펑크 록밴드 새비지스의 노래 ‘Shut Up’을 쇼의 배경 음악으로 선택한 그는 SNS 과부하로 지나치게 시끄러워진 현대 사회를 비판했고, ‘Silent’, ‘Noise’ 등의 직접적인 단어를 옷과 액세서리에 장식했다.

5 꿈은 이루어진다
지난 시즌 ‘Love’, ‘Hate’, ‘Help’ 등의 문구를 담은 코스튬 주얼리로 메가 히트를 기록한 랑방알버 엘바즈. 그의 이번 시즌 키워드는 바로 ‘Dream’. 빛에 대한 영감을 메탈릭 소재로 표현한 그는 반짝이는 톱 한가운데에 ‘꿈’이라는 단어를 커다랗게 장식했다. “사람들은 패션을 통해 판타지와 꿈을 실현해요.” 그의 이야기처럼 그는 꿈 같은 옷을 통해 여성에게 마법 같은 일상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을 전한 것이 아닐까?

6 환경 보호의 여왕
온통 붉은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죽음의 무도를 선보인 릴리 콜의 퍼포먼스로 쇼의 포문을 열었는데, 이 춤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서 영감을 얻은 것. 허영심 때문에 빚어진 욕망을 혹독하게 징벌하는 내용이 담긴 이 동화의 교훈과 함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환경보호와 지구 온난화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의 진실된 염원은 ‘Climate’ ‘All for One, One for All’ 등의 타이포가 담긴 티셔스와 모자, 백 등으로 표현됐다.

7 유혹적인 파라다이스
‘Hyperrealness in the Daytime’. 드레스에 프린트된 수많은 문구 중 ‘실재보다 더욱 실재같은 한낮’이라는 뜻을 가진 이 문구는 디올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정원에서 쇼를 펼친 라프 시몬스는 현실에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할 법한 가상의 공간인 ‘파라다이스’를 창조했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꽃 같은 천사들을 비밀스러운 정원에 풀어놓았다. 또한 ‘Primrose Path’, ‘Alice Garden’ 등 디올 룩에 담긴 문구들은 라프 시몬스가 관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토끼굴이 아니었을까?

8 변화가 필요해
젊고 혈기 왕성한 피, 알렉시스 마샬이라는 초신성을 투입한 아이스버그는 제2의 겐조를 꿈꾸고 있다. 고루한 이미지를 훌훌 벗겨내고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피플이 주목할 만한 에너제틱한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일본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스웨트 셔츠에 브랜드의 의미를 직역한 빙하 프린트와 함께 브랜드 이름을 일본어로 변경해 대문짝만 하게 박아버렸다. 리카르도 티시 밑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알렉시스 마샬 덕분에 신세대들에게 아이스버그는 겐조처럼 핫한 브랜드로 거듭날 듯!

9 아름다운 인생
피비 파일로가 만들어내는 옷에 열광하는 건 그녀의 옷 안에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임신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냈고, 이를 통한 안정된 자아와 가정, 일에 대한 균형 잡힌 애정은 현대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최고의 모티프일 것. 이번 시즌, ‘LOVE, LIFE’라는 문구가 장식된 셀린 슬립온이 시사하는 바는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며 재미있고 편안하게 패션을 즐기라는 것!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정진아
포토그래퍼
JASON LLOYD 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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