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을 동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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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많은 도시지만 도쿄 여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폴 매카트니 일본 투어 포스터. ‘Out There’는 그의 새 앨범 수록 곡인 ‘Everybody Out There’에서 따온 제목이다. “네, 저 여깄어요” 라고 답하고 싶어진다.

공연장이자 돔 야구장인 도쿄 돔의 전경. 4만 명 이상 수용하는 규모로, 한류 가수들이 도쿄 돔에서의 공연을 특별하게 언급하는 이유를 알 만 하다.

도쿄 돔 내부의 모습. 이전에 도쿄에서 다른 공연을 봤을 때는 얌전한 관객들 때문에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거꾸로 이런 대형 콘서트에서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그들의 장점이었다. ‘Hey Jude’를 다 함께 따라 부를 때의 조용하지만 따뜻한 호응도 좋았고, 공연이 끝난 뒤의 일사불란한 퇴장도 놀라웠다.

비틀즈 노래가 인생의 OST 아닌 사람도 있을까? 일흔이 넘은 나이를 걱정했지만 매카트니는 넘치는 에너지로 노래하고,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추억을 소환했다. ‘조지를 위하여’라면서 ‘Something’을 부르며 화면에는 조지 해리슨의 젊은 날 영상이 스쳐가자 그만 콧날이 시큰해졌다.

티켓을 찾거나 입장하기 위한 줄이 아니라 ‘굿즈’ 즉 공연 관련 머천다이즈를 구입하기 위한 줄이 이렇게 길다. 사람들은 뮤지션의 이름과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나 가방을 사기 위해 저 긴 줄을 묵묵히 따라간다.

중고 음반 시장이 활발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큰 브랜드는 ‘디스크 유니언’. 지역 별, 장르 별로 매장이 나눠져 있는데 신주쿠가 가장 규모가 크다. 사진은 오차노미즈 역 점.

장르 별로 매장이 나눠져 있는 중구 음반점 디스크 유니언의 신주쿠 클래식 관. 장르 특성 상 로맨스 그레이들이 판을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스크유니언에서 구입한 중고 LP들. 물건을 깔끔하게 다루는 일본인들이 내놓은 중고 레코드라 상태가 좋은 편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존 레논의 아들 션 레논의 데뷔 앨범 ‘Into the Sun’, 펄프의 ‘Common People’ 7인치 컬러 바이닐, 언제나 훌륭한 OST를 선곡하는 타란티노의 ‘킬빌’ 사운드트랙,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이 연주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로맨틱’.

축음기를 듣는 강아지의 그림은 ‘His Master’s Voice’ 라는 이름으로 여러 음반 레이블에서 로고로 사용되었다. 그 강아지인 ‘니퍼’ 를 활용한 여러 디자인 상품을 파는 코너.

중고 LP 가격은 얼마나 희귀한가, 어디에서 프린트했는가 등의 요소에 따라 천차만별. 여러 장르를 통틀어 본 중 가장 비싼 앨범은 재즈의 고전인 캐논볼 애덜리의 ‘Something Else’ 음반이었다. 무려 10만 엔이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10만원 정도. 재테크가 아니라 판테크를 시도해 볼 만 하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느껴지는 긴자 불가리 매장의 연말 데커레이션.

불가리 매장 맞은 편에는 홀리데이 시즌 루미나리에로 장식된 긴자 카르티에 매장.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무라이스 집이라는 긴자 렌카테이. 110년이 넘은 경양식 집의 역사가 소박하고 정갈한 공간에서 느껴지는데 맛도 어지간히 소박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다양한 현지 맥주를 맛보는 것이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편의점에 들른다. ‘Coedo’는 최근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지만, ‘은하고원맥주’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아 일본 여행 중에 종종 사 마신다.

백화점 매장에서 줄을 설 시간이 없어 그 동안 못 먹어본 몽슈슈 도지마롤을 현지에 가서 맛봤다. 우유 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생크림이 인상적이었지만 서울에서 다시 줄을 설 것 같진 않다.

칵테일의 대가로 유명한 모리 다카오의 긴자 모리 바, 드라이 마티니.

예전만큼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나는 것도 아니고 방사능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다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도쿄는 여전히 동경할 수 밖에 없는 여행지다. 한국까지는 들르지 않는 뮤지션들의 공연이 있고,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음악 팬들의 수요가 있고, 그 힘으로 굴러가는 음반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 행 비행기로 나를 불러들인 건 폴 매카트니의 일본 투어 소식이었다. 주말 동안의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중고 음반 매장인 디스크 유니언에서의 디깅(판 고르기), 숙소 인근인 긴자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살아있는 비틀 멤버를 눈 앞에서 보고, 추억의 그 노래들을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로 듣는 경험까지. 폴 매카트니 다음으로 누구의 공연이라면 선뜻 일본에 가게 될까? 톰 웨이츠나 레너드 코엔, 브루스 스프링스틴, 마돈나, U2…… 상상 만으로도 난 이미 공항 리무진 버스에 탑승. 불필요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런 뮤지션들이시여, 한국에 와서 부디 공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음식이 맛있고 관객들이 화끈하다고 합니다.

에디터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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