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도, 아이돌도 아닌 27세의 최승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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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이 달린다. 젊음을 연료로, 최승현이 질주한다.

부산영화제에서 어제 올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경험이 인상적이었나?
부산영화제는 <포화 속으로> 때에 이어 두 번째였다.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서 어울리지는 못하는 대신 숙소에서 와인 마시고, 포장마차 가고 그랬다. 친한 친구 이수혁이 같이 가서 만나고. 부산은 우선 바다가 있어서 기운이 좋은 것 같다. 장소의 바이브랄까,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된다. 영화 <동창생>이 진짜 완성되어서 홍보를 시작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사람들이 반응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다.

영화 촬영 이후 개봉까지 몇 달이 걸리다 보니, 보통 배우들은 촬영을 마치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영화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라고도 하더라.
촬영을 마친 건 1월 말이었다. 끝난 지 오래됐지만 영화가 통째로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어서, 잊고 있다 다시 만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마치 트라우마처럼 오래 남아 있었다. 워낙 장시간 생각하며 1년 가까이 만들어간 인물이었기 때문에 빠뜨린 건 없는지 체크하는 느낌이었다.

편집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니까 어떻던가?
진지하기도 하고 절제되어 있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난 좋았다. 트레일러를 봤는데, 긴장을 놓고 웃을 수 있는 장면이 없더라. 영화를 보면 알게 되는데, 뻔한 개그 코드는 없는 대신 예상치 못한 데서 툭 웃을 수 있는 유머가 있다.

두 번째 영화는 더 신중하게 골랐을 텐데 <동창생>을 선택한 이유라면?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배우로 전향하는 입장이 아니니 많은 작품을 하는 게 중점은 아니었다. 대신 스물일곱이란 젊음과 감성을 바쳐서 내 주관적인 생각, 내가 공감하는 진지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영화를 위해 움츠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3년 여 만에 두 번째 영화를 하게 된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고서 내가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골랐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은 어떤 면에서 들었나?
인물의 성향, 영화의 성향. 뻔하지 않게 연기해도 되는 캐릭터라는 점이 끌렸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디테일하게 디렉션이 써 있기보다 아주 생략적이었다. 정해진 대로만 연기해야 한다면 매력을 못 느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좋았다.

박홍수 감독의 연기 디렉션도 그렇게 열려 있었나?
나에게 많이 맡겨주는 스타일이었다. 모니터링할 때마다 내가 물어본 건, 뻔하냐 뻔하지 않느냐였다. 한 장면 한 장면 더 날을 세워서, 평범한 것도 조금 다른 느낌으로 하고 싶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로서는 불안할 법도 하지 않나?
정석이 뭔지 구하고 따라가거나, 강하게 주장하며 끌고 가는 감독이 더 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워낙 정석을 따라가지 않는 스타일인 것 같다. 음악 할 때도 그렇고 몸이 가는 대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연기나 음악이나, 교과서대로 정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재미없는 것 같다.

<포화 속으로>와 <동창생>, 두 편의 영화에서 선택한 캐릭터의 유사점이 보이는 것 같다. 소년인 인물이고, 자신이 속한 국가나 가족 같은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는 면에서.
일관성이 있다면 소년이라는 점밖에 없다. 그건 사실 내가 10대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웃음)

무엇 때문인가?
10대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끝까지 할 거다. 서른 돼서 20대를 연기하고(웃음).

그거야 배우 나름 아닐까? 이번 영화를 같이 찍은 한예리도 서른이지만 고등학생 연기에 잘 어울린다.
예리 누나는 정말 동안이고…나는 아직 피터팬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성인을 표현하기 보다는 아직은 좀 더 맑은 내면을 드러내는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두 인물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자면 <포화 속으로>에서는 신념을 꼿꼿하게 지키는 강직한 인물인데, <동창생>의 리명훈은 이중생활을 한다. 낮에는 고등학생으로 위장해서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냉정하게 사람을 죽이는 킬러다. 운명적으로 그래야 하는 캐릭터의 이중적인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느끼하게 하면 너무 픽션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가 되기 때문에 담백하면서 깊이있게 캐릭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들이 어렵지만 재미있었고.

시놉시스를 보면서 떠오른 캐릭터가 둘 있었다. <아저씨>의 원빈, <의형제>의 강동원.
전혀 다르다. 소재나 장르가 주는 유사성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북에서 남파된 젊은 남자라고 하면 <의형제>,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한 액션은 <아저씨>에서 다룬 거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본다면 끝이 없지 않을까? <테이큰>이랑 비슷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다. 유사한 소재와 장르의 설정 안에서 연출자가 어떻게 풀어가고 이야기가 달라지는지는 관객이 평가할 몫인 것 같다. 캐릭터의 성향도 좀 다르게 가져가려고 노력했고, 한국적이지 않은 캐릭터로 풀고 싶었다. 의상부터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신경 썼다.

예고편을 보며 전성기 때 홍콩 영화의 주인공 같아 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젊고 아름답지만 불안하고 비극적인.
원래 비극과 불안함을 내가 좋아한다. <포화 속으로>의 학도병도 그렇고, 이번 영화의 인물도 그런 면에서 더 끌렸다. 불안함을 내 스스로 즐기기도 하고, 보는 사람도 불안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그것 또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또 그런 정서가 많은 것 같고. 그 불안함이 눈빛에서 특히 드러난다. 영화 시작부터 나락에 빠져있는 소년의 눈빛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내면에 많은 걸 담고 출발하려고 했다. 그래서 심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영화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했는데,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고 나면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 배우들이 많더라.
촬영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무기력해져서 올해 1월부터 5월쯤까지는 일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영화 촬영 시기에 빅뱅콘서트 월드 투어를 병행해야 해서 스케줄이 살인적이었다. 월화수목 밤새 4일 촬영하고, 금토일은 해외 나가서 주말 콘서트 하고 비행기에서 자고 돌아왔다. 정신적으로 혼미하고, 내 자아가 흔들리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낮에는 사람 죽이는 거 찍고 피 보다가 주말에는 수만 명 앞에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해야 했으니까, 무대에서는 극도의 화려함, 그리고 영화 속의 나락으로 빠지는 상황이 교차하면서 혼란스럽고 예민해졌다. 그렇게 월드 투어랑 영화가 같은 시기에 끝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멈춰서 주저앉아 있었다.

다시 추스를 수 있었던 건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서였나?
4~5개월 침대에만 누워 있는데 이러다가 내가 망가질 것 같았다. 솔로 앨범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음악도, 도저히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서서히 주말에 억지로라도 한 번씩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랑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정신차리게 된 것 같다. 내가 너무 폐쇄적으로 변하는 걸 느낀 시기였다.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황선우
포토그래퍼
홍장현
모델
최승현(T.O.P of BIG BANG)
스탭
헤어 / 김태현(Kim Tae Hyun), 메이크업 / 원조연, 스타일리스트 / 지은(Gee 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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