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페리뇽의 와인이 시작되는 곳을 생각하며

권은경

포도 열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의 와인으로 마무리되기까지, 돔 페리뇽은 약 9년에 걸친 여정을 보낸다.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이 처음 공개되는 자리, ‘레벨라시옹 2026’에서 와인이라는 결과물을 낳은 장소와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돔 페리뇽의 ‘레벨라시옹 2026’ 중 디너 시간. 전 세계에서 모인 프레스와 크리에이터 등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된 돔 페리뇽 빈티지 2018.

돔 페리뇽에 있어, 하나의 와인(샴페인)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하는 시점과 실제 시장에 와인을 출시하는 시점 사이에는 약 2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사이에도 여전히 중요한 공정이 더 필요하다. 와인은 데고르주망(효모 찌꺼기 제거 작업)을 거쳐야 하고, 안정되기까지 시간을 더 보낸다. ‘이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 싶은 타이밍부터 다시 또 2년. 와인에 관한 일은 속도 빠른 이 세상의 시간 개념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이다. 와인이 시작되는 곳은 포도밭이다. 와인의 기원인 그곳에서부터 모든 게 출발한다. 수확을 거친 후, 어두운 셀러에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앙금 숙성을 거쳐, 각 빈티지의 특별한 개성이 드디어 빛을 발한다. 여기에 돔 페리뇽 스타일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로 아상블라주(배합)가 있다. 빈티지 샴페인을 고집하는 돔 페리뇽의 창작은 단일 연도의 수확분, 즉 한 해의 개성을 충실하게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날씨 문제를 비롯해 아상블라주를 통한 정밀성, 강도, 촉감, 광물성, 복잡성 등을 고려한 창작에는 물론 제약이 따른다. 그 제약 때문에 결국 빈티지를 선언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게 돔 페리뇽의 태도다.

디너 중 소감을 말하는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 빈티지 2018은 시작부터 온전히 그의 책임 아래서 빚은 첫 빈티지다.

지난 6월 4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돔 페리뇽의 ‘레벨라시옹 2026’가 열렸다. 레벨라시옹은 돔 페리뇽의 사람들과 돔 페리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 와인이라는 신성한 창작물을 기념하는 연례행사다. 돔 페리뇽은 매해 이 자리에서 새로운 빈티지를 소개한다. 하루이틀 동안 그 새로운 빈티지를 둘러싼 창의적인 발상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고, 곁들일 메뉴부터 플레이팅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안된 분위기 속에서 새 빈티지를 포함해 몇몇 돔 페리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이어진다. 올해 레벨라시옹의 주인공은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이었다. “완성도 높은 질감이 드러납니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촉각적이에요.”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의 말이다. 와인 혹은 샴페인이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산미의 정도, 활력 있다거나 부드럽다거나 하는 인상 외에, 예민한 전문가들의 묘사는 종종 보통 사람이 수용 가능한 경지를 훌쩍 넘어선다. “빈티지 2017은 저에겐 대비로 이루어진 빈티지였죠. 선, 각도, 방향, 원근감으로 정의되는, 아주 기하학적인 구조였어요. 빈티지 2018은 정반대입니다. 감싸는 듯한 감각이에요. 연속적이고 유동적이죠.” 2018년에는 와인을 만들기에 이상적인 기후의 흐름이 이어졌다고 한다. 돔 페리뇽은 그해를 ‘샹파뉴 지역에 내려진 하나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렇게 완성된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의 테이스팅 노트를 나열하자면 ‘광채, 여름을 연상시키는 향, 풍부하고 밀도감 있는 질감, 빛과 풍요로움의 공존, 자연이 선사한 관대함’.

레벨라시옹 2026에서는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위한 크리에이티브 토크 시간도 있었다. 미래에 완전한 돔 페리뇽 제품으로 숙성될 것들을 시음하며 창작 과정과 방향성을 나누는 자리. 뱅상 샤프롱은 2018년에서 2025년으로 기억의 시계를 조정했다. “과거 2003년 유럽에 폭염이 닥쳤을 때, 모두 큰 충격을 받았죠. 그건 아무도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였어요. 2025년도 그때만큼이나 중요한 해였습니다. 포도 알맹이를 위해 기초를 다지는 봄을 지나, 7월에 접어들 무렵 비가 계속 내려서 처음엔 고민이 컸어요. 하지만 8월과 9월 날씨는 완벽했죠. 적절한 장소와 적절한 순간이 있었어요. 결국 우리는 도달하고자 노력한 모든 것을 이루었답니다.” 이 토크 자리에는 중년의 프랑스 아티스트 클로딘 드라이도 참석했다. 종이, 비단, 빛, 향기, 공기 등을 재료로 작업하며, 대체로 하얀 종이를 구기고 찢고 층층이 쌓아 살아 있는 깃털 덩어리 같은 표면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다. 그녀는 ‘장소’를 주제로 한 프리 아상블라주 2025를 위해 돔 페리뇽의 여정에 함께한 인물이다. 돔 페리뇽에게 중요한 개념인 장소, 즉 각 포도밭에서 비롯된 스틸 와인을 테이스팅한 클로딘 드라이는 그때 받은 영감으로 네 점의 아트피스와 시 연작을 내놓았다. 시각 예술가가 와인 맛을 보자마자 절로 우러나왔다는 시들은 신의 물방울이 일으키는 마법 같은 작용을 잘 말해준다. ‘2025 아상블라주의 심장’이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의 솟구침/대지의 심장으로부터/하늘을 향해 튀어오르는/하나의 폭발/대지가 쏘아 올린 불꽃/무수한 조각으로 터져 나가는 파열/하나의 심장/상상된 현실….’

돔 페리뇽의 영원한 친구, 틸다 스윈턴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중. 틸다는 여러 벌의 의상을 하나씩 갈아입으며 무언극을 펼쳤다.

레벨라시옹 2026의 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돔 페리뇽과 강력한 연결고리를 가진 인물, 배우 틸다 스윈턴도 있었다. 그녀는 돔 페리뇽이 작년 선언한 ‘뉴 크리에이티브 챕터’의 크리에이터 중 하나다. “저는 퍼포먼스를 통해 진실하고 독창적인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경험이기를 바라면서요.” 올해의 레벨라시옹을 축하하며 그녀는 30분 가까이 이어진 퍼포먼스, <하우스 오브 제스처>를 선보였다. 뱅상 샤프론과의 철학적 대화에서 영감을 받은 틸다 스윈턴이 큐레이터이자 패션 역사가인 올리비에 사이야르와 공동 창작한 퍼포먼스였다. 구겐하임 뮤지엄의 그라운드 층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틸다는 크림색 광목천으로 만들어진 여러 벌의 의상을 하나씩 갈아입으며 무언극을 펼쳤다. 의상에 따라 포즈도, 하는 행동과 짓는 표정도 달라지는 틸다 스윈턴. 이 시간을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은 돔 페리뇽과 전례 없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의복에 따라 규정되는 인간을 표현한 듯한 그 알쏭달쏭한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동안, 이미 샴페인을 몇 잔 들이켠 모든 게스트는 침묵의 집중력을 공유하며 빠져들었다.

개인적으로, 와인의 빈티지별 풍미의 미세한 차이보다 관심 있는 건 포도밭과 수확을 둘러싼 스토리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의 사람들이다. 광활한 포도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와인 메이커들에게서 종종 영적 순간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의지로만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겐 땅에 대한 경외감, 자연과의 연결감이 있다. 돔 페리뇽의 경우 포도나무를 심은 순간부터 좋은 품질의 포도를 수확하기까지 최소 20년은 걸린다고 한다. 완성을 향한 매 단계마다 선택과 결정의 문제가 따르는데, 가장 어려운 결정 단계는 ‘수확’이다. 모든 노력이 집약된 결과가 드러나는 순간. 작년 레벨라시옹에서 뱅상 샤프론이 들려준 말 중 기억나는 대목도 농사의 신성함을 떠오르게 하는 내용이었다. “정말로 감격적인 순간이죠. 긴 시간 애써온 결과물인 포도를 눈앞에서 목격하니까요. 자연이 우리에게 보상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잘못했거나 자연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수확 시기는 전체 과정에 비하면 아주 짧고 긴장감 넘친다. 뱅상은 수확을 월드컵 결승전이나 100m 육상 경기에 비유했다. 포도를 너무 일찍 따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따도 안 된다. 정점의 시기, 최적의 시기를 찾아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라는 그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살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방법’에 대한 결론으로, 지속 가능성이 21세기의 화두가 되었다.

‘레벨라시옹 2026’에서는 주인공인 빈티지 2018 외에 빈티지 2008 플레니튜드 2와 로제 빈티지 2010 등도 즐길 수 있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유려한 표현이 눈에 띄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올해 레벨라시옹에서는 더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돔 페리뇽의 방향과 맞닿은 개념은 맞아요. 그 일환으로 나온 것 중 하나가 수도원의 정원 안에 실험적 포도밭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그걸 ‘가든 빈야드’라고 부르죠. 전통적인 포도밭과 정원 사이의 형태예요.” 수도원은 수백 년 전 돔 페리뇽이 태어난 곳이자 장기적 실험을 시도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돔 페리뇽은 ‘100년을 위한 식재’에 돌입했다.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려 합니다. 포도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행위가 아니거든요. 나 이후에 따르는 사람들, 또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위한 행위예요. 포도나무는 원래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명 속에서 재배되었어요. 그 점을 생각하면 책임이라는 감각이 아주 달라지죠. 우리는 앞으로 100년 후를 내다봅니다. 식재 재료 선택, 재배 방식, 토양 관리 등에 있어서 더 장기적 관점을 주지하면서 새롭게 대하기 시작했어요.”

와인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하는 시점과 출시 시점 사이, 2년. 그 시간을 포함해 포도 알맹이로부터 시작된 와인의 여정이 마무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9년이다. 돔 페리뇽 2018은 긴 시간 돔 페리뇽에 몸담은 뱅상 샤프론이 와인 창작의 총책임자인 셰프 드 카브로서 처음부터 온전히 빚어낸 첫 빈티지다. 뱅상에게 의미가 남다를 그 빈티지가 완성되었다고 느낀 순간의 심정이 어땠는지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사실 어떤 극적인 계시와 같은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무언가가 완성된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비유하고 싶네요. 영화의 중반만 본다면 그 순간의 화면이야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 전체를 알 수는 없죠. 처음을 알고, 과정을 알아야, 이야기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 있고요. 와인도 그와 같아요. 성장과 변화를 지켜본 이상, 어느 순간 그냥 알게 돼요. ‘바로 지금이다’ 하고 와인이 스스로 답을 드러내는 걸.” 나무와 햇살의 기운을 듬뿍 받은 열매에서 시작해, 효모와 효모 앙금을 영양분 삼아 긴 시간 지속되는 성장사. 또 하나의 탁월함,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이 올 하반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SPONSORED BY
DOM PÉRIGNON
PHOTOS
Harold de Puymori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