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보편적인
구교환의 호흡, 리듬, 유머, 웃음소리, 휴머니즘, 정교함, 기타 등등이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흔들 줄 아는 작가와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는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한껏 끌어안았다. 어쩌면 우리의 일면을 발견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기분 좋은 배신감을 안겨주길 바라면서.

구교환이라고 합니다. 저 아까 유튜브 촬영할 때 괜찮았나요? ASMR 처음 해보는 거라, 재밌게 하고 있는 게 맞나, 지금 나만 재밌나 싶었거든요. 다행이네요. 누군가 시간을 내서 봐주는 건데 보는 분들에게도 재미가 있었으면 하죠. 감사합니다. <군체>가 칸에 간다는 소식에 저도 지금 설레요. 최근에 기억난 건데요, <반도>도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어요. 2020년 팬데믹 때라 영화제 개최가 취소됐지. 이제 가보면 그곳이 어떤지 저도 알게 되겠죠, 뭐. 영화제는 로케이션이 주는 힘보다 거기 모인 사람들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부산도 마찬가지고, 영화제가 열리면 에너지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런 게 축제죠. 사람들의 미장센….
지금 가장 궁금한 건 아무래도 관객들의 ‘감상’이에요. 칸이 <군체>의 데뷔 무대니까, 거기서 언어를 넘어서는 다양한 감상을 들을 수 있겠죠. 티켓 산 돈이 아깝지 않으실 거예요. 멀티 캐스팅의 매력도 있고요. 저는 <군체>에서 완전 빌런입니다. 영화 보고 피드백 솔직하게 해주실 거죠?

아직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마지막 촬영이 남아 있어요. <모자무싸>. 컨디션, 괜찮아요. 저는 일을 안 하면 오히려 생기가 사라지거든요. <모자무싸>를 앞두고 있을 때도 좀 쉬어보자 했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어. 현장 도파민이 필요해. 놀면서 쉬는 거야 뭐 매일 그렇게 할 수 있죠. 저 혼자서도 잘 놀아요. 혼술도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도 하고. 그런데 너무 뒹굴뒹굴하면 허리 아파요.
대본을 몇 부 받아봤을 때 첫인상은, ‘우와’. 우리가 명작으로 알고 있는 어떤 클래식을 읽은 기분이었어요.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두고 너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님에 대한 제 리스펙트가 그만큼 크니까. 어떻게 나한테 이런 행운이 찾아왔지? 박해영 작가님이 이전에 <나의 해방일지>, <나의 아저씨>, <또 오해영> 등을 쓰셨죠. 작가님이 쓴 캐릭터들을 보면 겹이 많아요. 거의 뭐 엄마손파이 수준이야(웃음). 알죠? 그거 겹 진짜 많지 않아요? 함부로 손댔다가는…. 그렇게 레이어가 많은 인물이면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재밌어요. 텍스트만으로 다 알 수 없는 걸 연기하다 보면 알아가게 되거든요. ‘아, 이런 감정이었구나’. 현장에서 장면을 딱 마주하기 전까지는 사전에 어떤 판단을 안 하려고 했어요. 제가 연기하는 ‘황동만’의 대사량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촬영을 앞두고 있으면 그냥 외워져요. 이야기가 재밌어서, 대사가 좋아서 절로 외워지는 것 같아요. 외워야 할 글자가 아니라 마음에 들어오는 대사들인 거죠.
처음엔 내 일기장을 들킨 기분이었는데, 작품을 다 읽어보니 남의 일기장을 훔쳐본 기분이 들어요. 그만큼 아마도 지독하게 보편적인, 그런 이야기예요. 우리가 가진 갖가지 감정을 최대한 극화한 인물이 있을 뿐이지. 들여다보면 거기엔 나의 모습도 있고, 에디터님의 모습도 있을 테고, 누구든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뭔가 고요한, 고요한 외침이 있는 분위기인가? 이렇게 예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느낀 〈모자무싸〉는 ‘감정 활극’입니다.



황동만이라는 친구를 생각하면 그냥 안아주고 싶어요. 그 외에는 저도 드라마를 봐야 알겠어요. 아직 동만이를 옮기는 일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물론 제가 동만이랑 제일 친하죠. 그런 친구가 현실에 있다면, 자주 싸울 것 같지만 그래도 친해지고 싶어요. 동만이는 20년 동안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못했다는 설정의 인물이에요. 시나리오는 열네 편 썼고.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실패한 작업인가? 질문이 생기네요. 저는 무언가를 ‘해낸다’는 개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작업과 작품에 있어서 실패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지. 동만이의 그 열네 편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장면’이 되는 거잖아요. 자기만의 장면이 있는 거죠. 누군가는 실패라고 부를 것들도 사실은 성공하고 있었다는 의미예요. 그게 언젠가는 영화화될 수도 있고요.
동만이와 제가 닮았다면, 우리는 그래도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한 사람들이라는 점. 저도 시나리오 써둔 게 많거든요. 가끔 그것들을 꺼내봐요. 연기할 때 어떤 감정을 거기서 가져오기도 하고. 작년에 이옥섭 감독과 에스파 앨범 <리치맨> 트레일러 영상 작업을 했어요. 그거, 제가 10년 전에 쓴 시나리오의 오프닝입니다. 영화로 실현되지 못한 장면들이라고 해도, 내가 작업한 그것들이 어디 딴 데로 가는 게 아니에요.

동만이가 이 사람 저 사람 정말 많이 만나거든요. <모자무싸>에 나오는 배우들이 각자 다른 스타일의 대가들이에요. 그렇게 자주 만나면서 엄청나게 자극 받았고, 배운 것도 많아요. 고윤정 씨요, 네, 말씀대로 털털하죠. 그런데 다른 자리에서도 한 말이지만, 윤정씨에겐 ‘어른미’가 있어요. 같이 딱 10분만 있으면 느껴져요. 참 특이하지. 털털함과 어른미 그 두 가지를 다 가졌다니. 진짜 매력 있는 거잖아요. 오정세 선배요? 그 형 엄청 재밌어요. 형의 유머로 말하자면… 신사의 유머랄까. 유머가 글쎄, 품격이 넘쳐. 나처럼 길바닥 스타일의 유머가 아니야. 긴 시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냥 한마디 툭. 형 때문에 하도 웃어서 NG 많이 냈어요.
그런데요, 제가 오늘 동만이나 <모자무싸>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시청자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어요. 4월 18일이 첫 방영 날인데, 1화라도 공개된 후였다면 이런 대화를 하고 싶었을 거예요. ‘당신은 황동만을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동만이가 어딘가에 실제로 살아 있는 것만 같아요. 누군가의 친구일 것이고, 가족일 것이고, 우리 주변에 있을 텐데, 그런 황동만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조심스러워져요. 인간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가 없잖아요. 자칫하면 오늘 내가 흥분해서 내뱉는 말이 그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대사를 잘 옮기려고 몇 개월 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 네, 저는 작품 인물에게 엄청난 매력을 느낄 때면 ‘옮긴다’라는 생각으로 연기하거든요. <꿈의 제인>의 제인 때도 그랬죠. 동만이는 저에겐 제인 같은 친구예요.

그럼 이제 그냥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늘 자신 있었어요. ‘무명 시절’은 제가 조심스러워하는 표현입니다. 스스로 무명이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과거 그때의 야망과 지금의 야망이 다르지 않아요. 그때의 자격지심과 지금의 자격지심도 마찬가지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다른 타임라인 개념이 아니에요. 계속 같이 가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도 지금처럼 자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제 작업을 언제나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모자무싸> 진짜 재밌어요, 황동만 짱이에요”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도 저를 몰랐을 때 찍은 제 작업을 두고도 “보시면 정말 재밌을 거예요, 짱이에요”라고 똑같이 말해요. 자신 있는 작품이니까.
물론 차이라고 하면, 예전보다 지금 돈은 더 많이 벌죠.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더 향상된 부분도 있고, 반대로 너프된 부분도 있겠고. 그리고 이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인데,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준다는 거? 시스템이나 마케팅이 더 발달하기도 했고요. 영화 <메기> 관객수가 5만 명 좀 안 되는데, 영화 <만약에 우리> 어느 하루 스코어가 그 정도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뭐 달라지나요. 작업자로서의 태도는 같아요. <만약에 우리>도 잘될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봤거든요, 문가영 씨를. 저는 봤어요, 문가영의 그 연기를. 그리고 김도영 감독님을. ‘이 작품 잘돼야 해’가 아니라, ‘나는 이 작품에 자신 있다’였죠. 그럼 누군가는 봐주겠지.


극장이요? 언젠가 영화한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너는 여러 모습으로 존재해. 너의 모든 걸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은 시간을 정해두고 데이트하듯이 만나는 너야.’ 극장 영화가 있고, OTT 영화와 시리즈물이 있고, 유튜브 영화도 있고. 그냥 ‘세상에 재밌는 것들이 더 많아졌구나’ 해요. 심지어 제가 유튜버이기도 하잖아요(웃음). 이야기는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요. <만약에 우리>가 끝나면 <모자무싸>가 있고, 또 <군체>가 있고. 그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사람을 연기해요. 감독님도 달라지고. 애정이 떨어지기엔 상대가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걸요. 오히려 내가 쫓아다니는 입장이지.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때마다 무척 긴장해요. 계속 새로운 연애를 하는 기분이에요.
질투, 당연히 하죠. 저는 뭐 어떻게 보면 질투의 화신이랄까(웃음). 누가 잘돼서 배 아픈 건 아니고, 자극을 받아요. 영향을 받죠. 사람마다 자기가 도착하고 싶은 지점이 있잖아요. 그게 저마다 달라요. 내가 너무 하고 싶은 걸 누가 하고 있다면 시기와 분노가 일어나겠죠. 그런데 세상에 나랑 똑같은 취향, 똑같은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쉽게 있나요? 나한테 없는 걸 누가 가지고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을 엄청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가 남이 하는 대로 뭘 똑같이 만들어내야 한다면 아마 팔다리가 잘린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저는 편집하는 걸 즐기는데, 할 때마다 느껴요. ‘나는 이런 호흡을 가진 사람이구나’. 저도 정통 서사로 흐르는 무언가를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한데, 제가 좋아하고 낄낄대는 것들은 좀 다른 성격이더라고요. 최근에 미쟝센단편영화제 트레일러를 연출했어요. 그걸 보면 무슨 말인지 좀 아실 거예요. 손석구, 김태리 배우가 출연해요.

‘내 인생이 왜 니 맘에 들어야 되는데요?’ 흐흐, 네, <모자무싸> 포스터에 그런 문구 있었죠. 그런데 저는 사람들 마음에 들어야 하는 직업이에요. 꾸준히 내 매력을 어필하고 싶은데, 이 문제가 있죠. ‘어떤 방식으로 나를 마음에 들게 해야 하나? 가장 나다운 건 뭘까? 나도 나만의 인장을 찾고 싶다.’ 계속 증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도달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유혹하고 싶어요. 저의 가장 큰 목적은 늘 관객, 시청자를 향해 있어요. 자주 말하지만, 제가 계속 대시하는 거예요. 저 눈치 많이 봐요. 생각보다 남의 말도 잘 듣습니다(웃음). 관객과 시청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요. 제멋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동만이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얼마든지 들려주셔도 좋아요. 네? 아아, 일단 보고 얘기해요. 보세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토요일 밤 10시 40분, 일요일 밤 10시 30분. 넷플릭스 동시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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