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마티니 속 올리브’ 같다고 말했다, 26 FW 질 샌더 컬렉션

명수진

JIL SANDER 2026 FW 컬렉션

질 샌더의 26 FW 컬렉션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몬 벨로티의 두 번째 정규 런웨이이자, 그가 구축해 나가는 ‘현대적 순수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2월 25일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이전 시즌의 절제된 미니멀리즘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보다 거칠고 생기 가득한 분위기를 담아냈다. 런웨이에 앞서 시몬 벨로티는 뉴욕 마리안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에서 열린 토크 ‘액트 오브 러닝(Acts of Learning)’에 참석해 순수주의와 미니멀리즘의 현재적 확장을 논의했는데, 그 대화의 여운이 이번 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90년대 질 샌더의 아이콘이자 전설적 뮤즈인 모델 기네비어 반 시너스(Guinevere van Seenus)의 등장으로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연결되었다.

시몬 벨로티에게 영감을 준 것은 스웨덴 사진작가 안데르스 페테르센(Anders Petersen)이 1978년에 낸 사진집 <카페 레미츠(Café Lehmitz)>였다. 런웨이는 사진집에 담긴 1960년대 함부르크 바의 거칠고도 따뜻한 인간적인 밤의 잔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짙은 캐러멜 카펫과 은은한 조명, 그리고 전설적인 뮤지션 킴 고든(Kim Gordon)의 목소리로 낭독된 키아라 바르지니(Chiara Barzini)의 텍스트까지, 모든 요소가 느슨하지만 강렬한 긴장감을 함께 만들어냈다. 시몬 벨로티는 이를 ‘마티니 속의 올리브’라고 비유했다. 투명한 마티니처럼 엄격한 질 샌더의 전통을 존중하되, 올리브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각적 변주를 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의 설명대로 이번 컬렉션은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되, 각진 선과 유연한 곡선이 공존했다. 버튼 위치를 높게 배치해 깔끔한 롱 앤 린 실루엣을 강조한 더블브레스트 코트와 재킷은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었고, 한쪽만 삐쭉 나온 듯한 비대칭 셔츠 칼라에서 의도적 불완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블랙, 그레이, 네이비, 베이지 중심의 팔레트에 코발트 블루 컬러의 양말과 강렬한 레드 립 포인트는 마치 불협화음에서 화성으로 넘어가는 매끄러운 멜로디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세세한 디테일에서도 시몬 벨로티가 의도한 트위스트가 드러났다. 미니멀한 드레스에 가봉용 흰색 스티치가 노출됐고, 미디 스커트의 양 옆에는 깊은 사이드 슬릿을 넣었다. 앞이 아닌 뒷면에서도 반전 요소가 대거 포착되었다. 미니멀한 재킷은 등쪽에 A라인으로 퍼지는 테일러링을 넣었고, 그레이 컬러의 맥시 코트와 미니멀한 블랙 드레스 역시 등쪽에 커다랗게 나부끼는 사이드 패널을 더해 마치 숄을 두른 듯한 우아함을 선사했다.

액세서리 또한 반전의 연속이었다. 미니멀한 슈트에 빈티지한 스웨이드 부츠를, 이브닝 드레스에 스포티한 워터슈즈 스타일을 매치해 편안함을 더했다. 가방 디자인은 벨로티의 아버지가 가구 제작자였던 것을 오마주하듯, 가구의 구조를 닮은 기하학적 형태로 완성됐다. 부드러운 곡선과 실용적인 수납력을 갖춘 피벗 백(Pivot Bag)이 새롭게 등장했고, 그린, 민트 그린 컬러의 백은 디자이너가 힌트를 준 것처럼 깡통에 든 올리브를 연상시켰다.

캐롤린 베셋 케네디와 같은 패션 아이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시몬 벨로티의 26 FW 질 샌더 컬렉션은 동시대적인 미니멀리즘을 매력적으로 제안했다. 불완전함을 더한 우아함, 긴장과 이완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가운데 질 샌더의 새로운 방향성 또한 더욱 또렷해진 모습이다. 

영상
Courtesy of Jil S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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