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QUINN 2026 FW 컬렉션
리처드 퀸 26 FW 컬렉션이 열린 베뉴는 런던의 신포니아 스미스 스퀘어(Sinfonia Smith Square)였다. 바로크 건축의 웅장한 콘서트홀 안에 설치된 런웨이는 극도로 미니멀했다. 거울처럼 매끄러운 바닥에 모델이 워킹하는 모습이 비쳤고, 여기에 날카로운 백색 조명을 더해 의상의 구조와 질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마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시키는 런웨이였다. 런웨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English Chamber Orchestra)의 클래식한 라이브 연주가 흐르며 시각적, 청각적 부조화가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운데 리처드 퀸은 마치 20세기 클래식 드레스의 정수를 집약한 듯한 궁극의 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옷들이 50년 후 미래의 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을 상상하고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SF 영화를 연상케하는 세트는 일종의 ‘타임 캡슐’이었던 것.
이번 시즌, ’미래의 아카이브(Future Archive)’를 테마로 리처드 퀸은 한 시즌에 소비되는 의상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유산처럼 물려줄 수 있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꿈꿨다. 컬렉션은 코르셋과 페플럼을 결합하여 허리를 강조한 오프숄더 상의와 블랙 머메이드 스커트로 기품 있게 문을 열었다. 50년대 디올의 ‘뉴 룩(New Look)’에서 영감을 받은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 라인이 컬렉션 전반을 지배했다. 여기에 50년대 발렌시아가의 구조미, 60년대 발렌티노의 낭만, 80년대 크리스찬 라크루아의 대담한 볼륨의 미학과 영국 왕실의 기품까지 덧입혔다.
총 44개의 룩은 미스터리하고 우아한 블랙과 클래식한 순수함을 표현하는 화이트로 시작해 살짝 바랜 듯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기는 더스티 로즈와 샴페인 골드, 귀족적인 화려함을 더하는 사파이어 블루와 에메랄드 그린 등의 주얼 컬러로 이어졌다. 배경색은 블랙 벨벳으로 최대한 어둡게 유지하되, 리처드 퀸의 시그니처인 플로럴 모티프는 원색에 가까운 레드, 핑크, 블루를 사용하여 꽃이 튀어 오르는 듯한 입체감을 주었다. 이와 함께 꽃 모티프의 크리스털 브로치를 네크라인부터 가슴까지 드레스 곳곳에 장식하며 귀족적 느낌을 더했다.
런던 디자이너들이 실험과 해체를 거듭하고 젠더의 경계를 탐구할 때 리처드 퀸은 오히려 50년대 파리, 60년대 로마, 80년대 헐리우드까지, 과거의 시대를 교차시키며 ‘궁극의 드레스’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초창기에 선보였던 라텍스 캣슈트와 얼굴 전체를 감싸는 김프 마스크의 파격은 이제 사라졌지만, 리처드 퀸은 런던 남부의 아틀리에에서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 입는 옷’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며 패션이라는 이상을 현실의 비즈니스로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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