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이 일상이 된 시대, 요즘 사람들의 사교 방식

박은아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친해지는 커뮤니티

1인 가구가 늘고, N잡이 일상이 된 시대입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은 더 이상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유튜브를 편집하고, 누군가는 세금 신고를 준비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블로그를 업데이트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로운 밤 문화가 조용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어드민 나이트입니다.

@josefinevogt

영국을 비롯한 해외 미디어에서도 이 현상을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드민(Admin)은 administrative, 즉 행정의 줄임말입니다. 개인이 미루기 쉬운 각종 행정 업무를 특정 시간에 모여 함께 처리하는 문화를 뜻합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Admin Night’ 혹은 ‘Life Admin Party’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며 확산됐고, 구글 트렌드에서도 ‘life admin’, ‘admin night’ 관련 검색량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왔습니다. 혼자 하기 버거운 어른의 일을 함께 끝내는 밤, 그 실용적인 연대가 주목받고 있는 셈입니다.

왜 하필 밤일까

@rubylyn_

그렇다면 왜 ‘낮’이 아닌 ‘밤’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본업을 마친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일을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퇴근 후 집이나 카페, 공유 오피스에 모입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각자 미뤄둔 메일을 정리하고, 블로그를 업데이트하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합니다. 누군가는 투자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각종 공공 서비스 신청서를 마무리합니다.

@josefinevogt

혼자라면 내일로 미뤘을 일들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끝이 납니다.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에서 묘한 성취감이 생기죠. 그 안에서 유용한 정보가 오가고, 서로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불필요한 가십 대신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는 구조. 번아웃 세대가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사교 방식인 겁니다.

생산성 있는 만남 추구

@rubylyn_

고물가 시대에 ‘시간=돈’이라는 공식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퇴근 후의 두세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부업 수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커리어를 위한 투자입니다. 그런 시간을 할애해 만남을 선택했다면, 그 만남 역시 의미 있어야 합니다.

이 흐름은 이미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러닝 크루, 독서 모임, 사이드 프로젝트 스터디처럼 생산성과 커뮤니티를 동시에 충족하는 포맷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드민 나이트 역시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1~2시간 집중해서 각자의 일을 끝낸 뒤,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디저트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rubylyn_

술자리가 빠른 친밀감을 만든다면, 어드민 나이트는 깊은 신뢰를 만듭니다. 각자의 재정 상태, 커리어 고민, 미래 계획을 공유하는 시간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현실을 함께 견디는 감각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불안한 미래를 같이 대비하는 밤

@josefinevogt

요즘 20~30대는 자산 형성과 커리어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서도 청년층의 자산 형성 의지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납니다. 금융, 투자 콘텐츠 소비가 활발한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이 세대는 단순한 유흥 대신, 미래를 정비하는 데 시간을 씁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형식을 바꿨을 뿐이죠. 놀기만 하는 밤도, 일만 하는 밤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 놀면서 일을 끝내고, 일을 하면서 더 가까워집니다. 어쩌면 이 밤은 누군가에겐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불안한 미래를 함께 대비하는 데서 우울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상승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뚜렷합니다.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가장 큰 위로가 되니까요.

사진
각 Instagram, @englal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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