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IS REED 2026 FW 컬렉션
2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 런던 패션위크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디자이너는 해리스 리드였다. 무대는 런던의 유서 깊은 클래리지 호텔(Claridge’s Hotel) 볼룸으로 이곳은 최근 몇 년간 ‘메가 빌드(Megabuild)’라는 대규모 확장 및 복원 프로젝트를 거치며,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의 품격과 최첨단 조명 시스템이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번 시즌 리드가 내세운 핵심 테마 ‘전통과 파격의 공존’을 극대화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배경은 없었다. 영국 사교계의 상징적 웨딩과 무도회가 열리던 이 역사적 공간은,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젠더 플루이드 웨딩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클래식한 인테리어는 해리스 리드 특유의 극적인 실루엣, 맥시멀리즘과 조화를 이루며 연극적인 우아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번 컬렉션은 총 19벌의 룩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해리스 리드가 컬렉션을 선보인 이래 가장 확장된 규모였다.
쇼의 포문은 슈퍼모델 린지 윅슨(Lindsey Wixson)이 열었다. 헤비 실크 태피터로 완성된 거대한 푸시아 보우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과거 부상으로 은퇴를 고민했던 시절을 지나 다시 런웨이에 서며 해리스 리드의 드라마틱한 비전과 완벽하게 호흡했다. 이후 등장한 룩들은 해리스 리드의 시그니처인 극단적인 핏 앤 플레어 실루엣으로 이어졌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극도로 조여 조형적인 상체를 만들고, 파니에 구조를 더한 머메이드 스커트가 드라마틱한 곡선을 완성했다. 1970년대 런던의 낭만에서 영감을 받은 레오파드와 타이거 프린트, 그리고 얼굴을 감싸는 후광형 루프 네크라인, 케이지 형태의 허리 구조가 화려한 볼륨감을 더했다. 골드 퀼팅, 코발트 블루 벨벳, 핑크 자카드가 교차하며 특유의 맥시멀리즘 미학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선보인 ‘플루이드 브라이덜(Fluid Bridal)’ 캡슐 컬렉션이었다. 이는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 플루이드 정신을 웨딩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형식에 투영한 색다른 시도였다. ‘신부=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남성부터 논바이너리까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포용적 웨딩 룩을 제시했다. 마젠타, 세룰리언, 씨폼 색상의 베일을 쓴 네 명의 신부가 천천히 런웨이를 걸었다. ‘카미유(Camille)’는 인플루언서인 카미유 샤리에르(Camille Charrière)를 위해 제작했던 맞춤 웨딩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 ‘데뷔탕트(Debutante)’는 브랜드 시그니처인 풍성한 버블형 피시테일 밑단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샹티이 레이스 셔츠와 크리스털 디테일, 플레어 팬츠가 조합된 피날레의 웨딩 스타일은 디자이너 본인의 결혼식 착장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번에도 해리스 리드는 긴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특유의 활기찬 피날레를 펼쳤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내는 것과 달리 그는 무대 중앙을 가로지르며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곤 한다. 190cm가 넘는 큰 키를 지닌 그의 화려한 피날레만으로도 해리스 리드 컬렉션은 런던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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