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과 선글라스를 함께 보낸 이유, 26 SS 꾸레쥬 컬렉션

명수진

COURRÈGES 2026 SS 컬렉션

파리패션위크 둘째 날 오후, 파리의 르 카로 뒤 탕플(Le Carreau du Temple)에서 꾸레쥬 2026 SS 쇼가 열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르노 디 펠리체는 ‘태양의 상승(Solar Ascension)’을 테마로 21도의 새벽부터 30도의 한낮까지 여름의 스타일을 런웨이에 펼쳐 놓았다. 아티스트 레미 브리에르(Rémy Brière)와 마티에르 누아르(Matière Noire)와 협업해 사각의 베뉴를 원형으로 만들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하얀색에서 뜨거운 느낌을 주는 노란색까지 조명으로 변화를 주며 태양의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를 완성했다. 작곡가 에르완 센(Erwan Sene)의 사운드트랙은 런웨이 열기를 고조시키는 최면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여기에 ’21 degrees, 22 degrees…’라는 내레이션까지 삽입해 실제로 무대가 뜨거워지는 것 같은 긴장감을 더했다. 새하얀 배경에 반사되는 강렬한 조명이 초대장과 함께 블랙 선글라스를 보내온 이유를 분명하게 했다. 

컬렉션은 태양의 순환처럼 구성되었다. 오프닝은 강렬한 빛으로부터 얼굴을 가리는 패널이 있는 모자와 미니스커트가 열었다. 급진적으로 보이는 모자는 꾸레주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것이다. 컬러 팔레트는 청량한 라이트 블루로 시작해 진한 잉크 블루로 진행되었다. 내레이션을 통해 온도가 24도 이상으로 올라갔음을 알리며, 점차 블랙, 화이트, 베이지 컬러에 시스루 소재로 변화해갔다. 가릴 곳은 가리고, 드러낼 곳은 드러내는 과감한 컷아웃 탱크톱, 미니드레스, 스커트는 몇 시즌째 계속 선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알렉스 콘사니(Alex Consani), 모나 투가르(Mona Tougaard), 로리 바하이아(Loli Bahaia) 등 최고의 모델이 아르노 디 펠리체의 꾸레주 스타일에 힘을 실었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고 스타일은 더 급진적으로 변했다. 컷아웃은 미드리프와 허벅지를 훤히 드러냈다. 사파리 재킷 또한 밑단에 컷아웃을 넣었고, 가죽 소재의 모터사이클 재킷은 소매에 세로 지퍼 디테일을 더해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시스루 식물성 비닐 소재의 가느다란 벨트를 여러 겹 대어 완성한 본디지 톱과 드레스는 강렬했고, 트레이닝 스타일의 스커트와 팬츠는 느슨한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여기에 녹아내리는 듯한 디테일의 메탈 뱅글과 엑스트라 플랫 삭스 부츠, 슬링백, 발레 플랫, 키튼 힐까지 다양한 플랫 슈즈를 매치해 꾸레쥬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피날레에서는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실눈을 뜰 만큼 노란 조명이 강하게 비추며 점점 뜨거워지는 한낮의 태양을 표현했다. 태양을 정면으로 맞으며 등장한 모델의 상체 위로는 자동차 앞 유리를 본뜬 둥근 차단막 같은 구조물이 솟아올랐다.

꾸레쥬의 아르노 디 펠리체는 테마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꾸레쥬의 상업적 매력도 어필했다. 생각해 보면 멋진 스타일을 위해 필요한 건 의외로 많지 않다. 깊은 슬릿, 단 한 번의 컷아웃만으로도 스커트와 드레스는 완전히 색다르게 변주된다. 쇼에는 당장 입고 싶은 레더 재킷과 코트가 있었고,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은 도발적인 컷아웃 원피스와 스커트도 눈에 띄었다. 

영상
Courtesy of Courreges, Instagram @courre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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