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할 작품 6

전종현

가장 미국적이고 논쟁적인 ‘휘트니 비엔날레’가 휘트니 뮤지엄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3월 20일 ‘휘트니 비엔날레’가 공식적으로 개막했습니다. 3월 14일부터 시작한 프리뷰 기간에 수많은 매체에서 리뷰를 남겼는데요. 전체적으로 우호적인 평가입니다. 근래 10년 만에 최고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뼈가 있습니다. 최고라는 단어에는 다른 것에 대한 평가 절하를 포함할 때가 있으니까요. 사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언제나 논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엔날레의 지향점이 ‘가장 미국적인’ 비엔날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단어로 ‘용광로’가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섞여 시너지를 낸다는 뜻인데요.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선주민의 땅을 가로채고 정착한 유럽인,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 세계 곳곳에서 넘어온 이민자가 만들어낸 이 국가에는 복잡다단하고 민감한 부분이 많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만큼 그 폐해도 심하고, 민주주의를 강력히 옹호하지만, 비이성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인권을 중시하고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수적이기도 하고요. 이 아이러니한 충돌은 미국 사회의 특성으로 미국 예술에 그대로 스며들었습니다. 이런 목소리가 공적인 장소에서 가장 극적으로 터지는 순간이 바로 휘트니 비엔날레인 셈이죠.

일찍이 휘트니 비엔날레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올해 휘트니 비엔날레를 관람한 미술평론가가 꼽은 가장 생소한 일은 바로 ‘시위 없는 오프닝’이었어요.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열리다 보니 부의 재분배와 관련해서 목소리 높이기에 딱 좋고요. 흑인의 성지인 할렘이 있기 때문에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언제나 나옵니다. 진보적인 작품들은 보수적인 집단의 심기를 거스를 때도 잦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얘기와 함께 국제 정세에서 미국이 취하는 제스처에 대해 항의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가 영리한(?) 이유는 미국 내부 이슈에 최대한 집중한 덕분이라는 평도 있어요. 지금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관련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까요. 근데 미국 내부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대형 기후 문제부터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자율 낙태권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은 여파, 흑인과 선주민 문제, 그리고 올해 치르는 대통령 선거까지 고민거리 투성입니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가 취한 콘셉트가 ‘불협화음의 합창’인가 봅니다.

공식 주제는 ‘실제보다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인데요. 소개에 인공지능 이야기가 들어가서 어떤 파격적인 작업이 나올까,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알고 보니 낚시였습니다. 총 69명의 아티스트와 2개의 콜렉티브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에서 인공지능 관련 작품은 딱 하나 나왔어요. 대신 현실에 존재하는 첨예한 이슈들을 다루는 데 집중했습니다. 비평가들의 말을 모아보면 올해 큰 변화가 보이는데요. 일단 요 몇 년 유행하던 자기 고백적 작업이 싹 없어졌습니다. 그 많던 초상화 작업도 보이지 않고요. 대신 생태와 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업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성향에 따라 같은 작품에도 의견이 확 갈리는 게 비평가지만,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은 일치하는 것 같아요. 관련 뉴스를 계속 찾아보니 비평가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주목할 작품 리스트는 확실히 존재했습니다. 그중 일부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아마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의 ‘Must See List’일 수도 있겠네요.

1. Lotus L. Kang, “In Cascades,” 2023-24

작가는 따로 화학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길고 넓은 사진 필름을 천장에 걸어 축 늘어뜨렸습니다. 살구색이 마치 피부를 연상시키는데요. 빛과 습기에 민감한 필름은 미술관 환경에 노출돼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변색됩니다. 비엔날레 기간의 변화를 퇴적하는 설치물은 영구적으로 취약한 아름다움을 지닙니다.

2. Diane Severin Nguyen, “In Her Time (Iris’s Version),” 2023-24

작가는 20세기 최악의 학살 행위 중 하나로 꼽히는 난징대학살을 다룬 가상의 영화에 출연한 젊은 여배우의 촬영 장면을 상상합니다. 중국의 민족주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야외 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하는데요. 주인공인 여배우는 자기의 현재를 과거 역할에 투영하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전화하며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역사, 과거, 범죄, 선전, 셀카, 영화 등에 대해 복합적으로 다루는 픽션 작품입니다.

3. Demian Diné Yazhi, “we must stop imagining apocalypse/genocide + we must imagine liberation,”, 2024

아메리카 선주민 출신의 시인이자 활동가인 작가는 ‘우리는 종말/학살을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 우리는 해방을 상상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이와 관련한 정치적 저항의 시구를 붉은색 네온 설치작품으로 표현합니다. 작품은 미술관 내부가 아닌 바깥 허드슨 부두를 보며 깜빡이는데요. 원주민 저항 운동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전시 프리뷰 당일 미묘하게 깜빡이는 글자의 패턴에서 ‘Free Palestine’이란 메시지가 나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엔날레 측은 작품 철거는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요.

4. Tourmaline, “Pollinator,” 2022

미국의 트랜스젠더 운동가 마샤 P. 존슨을 추모하는 6분짜리 영상입니다. 그의 장례식과 생전 기념 행사를 기록한 영상,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브루클린 식물원과 브루클린 박물관을 거니는 작가 자신의 영상을 섞어서 일종의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하는 모습을 투영했습니다. 현실과 상상을 이어가는 묘한 작품입니다.

5. Isaac Julien, ”Once Again…(Statues Never Die)”, 2022

작가는 할렘 르네상스 부흥의 중심 사상가 알랭 로크와 자선가인 앨버트 C. 반스의 대화를 재구성해 한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20세기 초반 아프리카 조각품을 대하는 유럽과 미국 예술계의 반응에 관해 토론하며 유럽 모더니즘, 아프리카 예술, 식민주의 등 복잡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총 다섯 개의 스크린으로 교차해 보여주는 감각적인 영상은 시적이면서 그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평입니다. 중간 중간 놓은 설치품까지 서로 어우러져 해당 공간을 매혹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6. Maja Ruznic, “The Past Awaiting the Future/Arrival of Drummers,” 2023.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로 꼽는 작품입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에 살고 있는 작가는 보스니아에서 전쟁을 피해 오스트리아 난민 캠프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영감받아 꿈결 같은 세계에서 길을 잃은 고독한 인물을 숭고하고 수직적으로 표현합니다.

사진
whitney museum, instagram @jmrnyc1(Jason Rosenf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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