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국보급 미술품을 지키는 방법

전종현

루브르 박물관이 2년 동안 후원금을 모아 경매에 나온 샤르댕의 정물화를 매입했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파리 물가가 미쳐가고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도 지난 1월 15일부터 22유로의 입장료를 받고 있어요. 2017년 이후 첫 인상인데, 기존에 비해 29% 폭등이라 원성이 자자합니다. 이렇게 돈 벌어서 어디에 쓰냐고요? 작품을 수리하거나, 매입하거나, 새로운 캠페인을 벌일 때 아주 유용합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 또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팬데믹 때 입장료 수입이 급감한 루브르 박물관이 18세기 정물화 한 점을 소장하려고 엄청나게 용을 썼거든요.

@Artcurial

루브르 박물관의 지독한 관심을 받은 작품은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정물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의 과일 정물화입니다. 네덜란드 정물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림을 독학한 터라 자신만의 느낌으로 소박하게 정물과 집안 모습을 묘사해 18세기 큰 명성을 얻은 샤르댕은 평생 200여 점밖에 남기지 않을 정도로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요. 그의 작품 중 특히 유명한 게 바로 과일 정물화입니다. 자두, 멜론, 복숭아 등 여러 과일을 화면 중앙에 쌓아두고 풍성하게 그린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죠.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자화상’, 1771, 종이에 파스텔,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중 유난스럽게 산딸기에 초점을 맞춰 산처럼 가득 쌓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 있는데요. ‘산딸기 바구니(Le Panier de fraises des bois)’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1761년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어요. 테이블 위에 물 한 잔, 흰 카네이션 두 송이, 복숭아, 체리 두 개를 두고, 가운데에는 붉은 산딸기로 가득한 바구니를 묘사했습니다.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밋밋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보면 반짝이는 빛의 표현과 함께 영롱한 색감, 고요하면서 생기 있는 분위기의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샤르댕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18세기 프랑스 정물화의 아이콘이라 국보급 작품이라고 평가받았지만, 그동안 계속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서 통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22년 3월 갑자기 이 산딸기 정물화가 파리 경매에 나왔습니다. 추정가는 1500만 유로(한화 약 218억원)였는데요. 이를 훨씬 뛰어넘는 2440만 유로(한화 약 353억 원)에 낙찰됐어요. 낙찰자는 뉴욕에 있는 미술품 딜러였죠. 기존 샤르댕의 경매 최고가였던 800만 유로의 세 배에 달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미술품 딜러에게 넘어가려는 찰나, 루브르 박물관이 급제동을 걸었습니다. 귀한 그림이 경매에 나와서 다른 데 팔려 가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죠. 그래서 이 그림을 국보로 지정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어요. 프랑스 정부가 그림의 분류 기준을 바꾸면 최대 2년 반까지 거래를 동결시킬 수 있거든요. 그 사이에 루브르 박물관이 돈을 마련해서 그림을 인수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낙찰자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상황인데요. 곧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돈 많은 개인 컬렉터가 아니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킴벨 미술관에서 경매에 참여한 거였어요. 킴벨 미술관 측은 구입할 때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 모든 걸 기다릴 만큼 해당 작품이 의미가 있고, 끝내 자기네가 소장하지 못하더라도 공공 컬렉션으로 대중에 개방되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어요. 하지만 미국으로 오면 프랑스 문화 사절로서 큰 의미가 된다며 침 바르는 일은 잊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본관으로 유명한 킴벨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은 당장 여러 군데에 연락해서 모금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럴 때 적당한 곳이 있었으니 예술 애호가로 유명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사비를 기부한 건 아니고요. LVMH가 회삿돈 1500만 유로(약 217억원)를 작품 구입비에 보태기로 했어요. 일종의 기부인 셈인데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입니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국보급 유물을 지키는 데 기부하면 총금액의 최대 90%까지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거든요. 박물관은 작품을 살 수 있고, 기업은 세금 낼 돈으로 생색내고, 정부는 명작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으니 참 쓸모 있는 법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다른 민간 기업에게 100만 유로, 박물관을 후원하는 그룹인 ‘루브르의 친구들’에게 50만 유로를 받았고요. 나머지는 박물관 예산으로 모두 충당하려다가 혹시 몰라서 크라우딩 펀딩까지 돌렸답니다. 2010년부터 ‘모두가 후원자!(Tous Mécènes!)’ 프로그램을 통해 개미들의 기부를 장려하고 있거든요.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이번이 14번째 개미 기부 캠페인인데, 역대 최고액인 160만 유로(약 23억원)를 모금했어요. 원래 목표했던 130만 유로를 초과했습니다. 1만 명에 달하는 개인 기부자들이 참여했다고 해요.

‘모두가 후원자!’ 캠페인 웹사이트

이제 샤르댕의 산딸기 정물화는 루브르 박물관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해 전국 미술관을 순회한다고 해요. 근데 반전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이미 샤르댕의 작품을 41점이나 소장하고 있어요. 정말 있는 곳이 더하다더니… 그래도 자기들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마음은 참 보기 좋네요.

사진
Instagram @Artcurial, @jeanbaptistesimeon_chardin_, @louvrelen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