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 정형화 되지 않은 이들의 행보

전여울, 김현지

한 번도 정형화되거나 뒷걸음질친 적 없는 이들의 본경기는 어쩌면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밴드 실리카겔은 유독 뜨거운 2023년을 보냈다. 여전히 국내 메인스트림 음악 신에선 희귀한 존재로 여겨지는 밴드 음악을 하고, 그 어떤 이들보다 ‘대안적(Alternative)’이라는 수식에 걸맞은 음악과 변칙적 행보를 이어왔지만 작년 한 해 음악 신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름의 주인공은 단연 실리카겔이었다. 이들을 향한 지지를 두고 누군가는 ‘붐’이란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지만 실리카겔에게 작년부터 이어진 모든 일은 그저 ‘늘 하던 짓거리를 했던 것’의 결과에 불과했다. 그래서, 한 번도 정형화되거나 뒷걸음질친 적 없는 이들의 본경기는 어쩌면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춘추가 착용한 셔츠와 재킷은 무홍 제품. 웅희가 착용한 재킷은 엔도어 제품. 건재가 착용한 재킷은 언놈 이즈 데드 제품. 한주가 착용한 셔츠와 재킷은 유스 제품.

실리카겔에게 2023년은 유독 ‘하드’한 한 해였죠? 단독 콘서트에, 웬만한 페스티벌 무대에 모두 섰고, 7년 만에 정규 2집 를 발매했어요.
최웅희 그렇죠. 급행열차를 탄 것처럼 목적지까지 초고속으로 달린 한 해였죠.

지난 한 해 ‘실리카겔 붐’이란 말이 유독 회자됐어요. 그 실체를 가장 뚜렷이 엿본 상징적 순간은 아무래도 연말 멜론 뮤직 어워드(MMA) 무대였고요. K팝 아이돌 사이에서 록 밴드가 연주하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스쳤거든요. ‘록이 메인스트림에 융합되는구나!’
김건재 그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가 좀 재미있긴 했어요. 사실 특정 뮤지션을 좋아해서 온 관객이 대다수인 공연장이잖아요. 그래서 관객들 표정 보는 재미가 좀 있었죠. 본인이 좋아하는 팀의 응원봉을 들고 그냥 ‘버텨!’ 느낌으로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오, 얘넨 뭐지?’ 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

연초에도 경사가 있죠.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어요. 지난 2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올해는 어떻게 점치고 있나요?
김건재 저희끼리 이런 농담은 했어요. ‘노미네이트되고 다 떨어지기!’(웃음) 그게 아니라 만약 상을 4개 탄다면 하나씩 나눠 갖자는 김칫국도 마셔봤어요. 김칫국이 원래 달짝지근하니 맛있는 법이니까(웃음).

한주가 착용한 보타이와 재킷은 송지오, 팬츠는 골든구스, 레이스업 슈즈는 야세 제품.

요즘 주변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뭔가요?
최웅희 ‘밥 네가 사라.’(웃음)
김건재 그래? 전 주변에서 별말 없던데요. 저희가 생각보다 친구가 없어요(웃음).

누군가는 ‘대한민국 록의 구원자들’이라 하던데···.
김춘추 그거야말로 상당히 큰 비약 같아요. 저희가 한국의 록 밴드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요즘 사람들이 록을 다시 듣기 시작해서 저희를 주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시기적 요소나 흐름이 잘 맞아떨어졌고, 저희는 단지 묘한 포인트로 거기에 ‘철커덕’ 걸려서 예전보다 좀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음악을 재미있게 들어주고 좋게 반응해주시는 건 좋죠. 너무 좋죠. 근데 저희 스스로는 ‘와, 지금 대박이다’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여기서 밀도를 더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매번 얘기해요. 우리가 꾸준히 활동해온 게 있기 때문에.

맞아요. 사실 ‘실리카겔 붐’이란 말에 좀 새삼스러운 지점은 있어요. 2015년 데뷔 때부터 각종 상을 휩쓸었고, 이후로 줄곧 밴드 신에서 뜨거운 존재였다는 인상이 있거든요. 특히 2016년 정규 1집 <실리카겔>의 타이틀곡 ‘모두 그래’는 그 어떤 공연장에 가도 들을 수 있었어요. 당시 실리카겔이 가장 핫한 콘서트 게스트였으니까.
김춘추 좀 새삼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억울하진 않아요. ‘우리 10년 했는데 왜 이제야?’라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랬다면 진작 관뒀겠죠. 그냥 저희끼리 몰려다니면서 공연하고 음반 내는 게 재미있으니까 계속한 것뿐이거든요. 최근에 와서 막 혜성같이 발견된 존재들이라 바라봐주는데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인기가 많아지든 록의 뭐시깽이가 되든 간에 ‘좋아해주니까 너무 좋다. 근데 우리는 하던 거 계속하자’ 딱 이 정도의 감각이에요.
최웅희 저희가 붐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2015년 데뷔 EP부터 가장 최근에 낸 정규 2집까지 저희는 그냥 똑같은 일을 했을 뿐이거든요. 10년째 계속하던 짓거리인데 갑작스레 이런 붐에 올라탄 기분이에요. 그래서 인기가 크게 실감되진 않아요. 주변 반응에 신경 써서 ‘사람들이 이런 걸 들으니까 스탠스를 이렇게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안 드는 것 같아요.

춘추가 착용한 실버 프레임 안경은 젠틀 몬스터, 흰 셔츠와 톱, 팬츠, 슈즈는 지방시, 타이는 뮌 제품.

어쩌면 요즘 같은 인기의 진원은 2022년 발매한 싱글 ‘No Pain’이었죠? 발매 당시 작업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는데 거기서 보컬 김한주가 이런 말을 했어요. ‘시간에 집착하는 나약한 나 자신을 고백하는 노래다.’ 어떤 의미인가요?
김한주 사실 시간이란 개념에 대한 탐구나 고민이 ‘No Pain’에만 국한되진 않아요. 시간을 둘러싼 고민을 어떻게 시적으로 녹여낼지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늘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거든요. ‘No Pain’도 그중 하나였고요. “내가 만든 집에서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소외됐던 사람들 모두 함께 노래를 합시다.” 노래에 이런 가사가 등장하잖아요. ‘No Pain’은 당시 멤버들이나 주변 사람들, 또 저의 정서적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필요한 음악이 이런 음악인 것 같다는 생각에 만든 노래예요. 그런데 우연찮게도 이 노래가 실리카겔에게 하나의 체크포인트가 되어줬죠.

‘No Pain’을 통해 대중에게 성큼 다가섰다는 인상이 있는데, 곡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로 소비될 거라는 예감이 있었나요?
김한주 흥행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어요. 다만 음원을 내기 전 라이브로 선보였을 때 이전에는 없던 반응이 터져 나오길래 ‘오?’ 싶은 지점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No Pain’이 실리카겔의 커리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법한 어떤 무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No Pain’ 발매 후부터 저희의 활동 자체를 굉장히 자기 일처럼 특별하게 여겨서 이입해주는 분이 많아졌다는 생각은 들어요. 어떤 ‘팬덤화’가 이때를 기점으로 이뤄졌달까요. 가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리카겔이 만든 집’에 들락날락해주는 여러 존재들이 이때부터 생겨난 거죠.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웅희가 착용한 재킷과 팬츠는 석운윤, 셔츠와 타이는 뮌, 슈즈는 야세 제품. 한주가 착용한 셔츠와 타이는 뮌, 팬츠는 엔도어, 슈즈는 야세 제품. 건재가 착용한 재킷과 팬츠는 석운윤, 셔츠와 타이는 뮌, 슈즈는 야세 제품. 춘추가 착용한 재킷은 한킴, 셔츠와 타이는 뮌, 팬츠는 유스, 슈즈는 야세 제품.

흔히 실리카겔의 팬덤을 ‘자경단’이라 부르죠? 혹시 ‘자경단’의 캐릭터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취향을 가졌고 어떤 문화를 주로 소비하는지에 대해.
김한주 그럼요. 공연장에 가면 대충 보여요. 옷 스타일이나 애티튜드가 묘하게 저희와 비슷하거든요. 다들 ‘실리카겔적’이에요(웃음). 그리고 실리카겔을 디깅, 덕질 하면서 알게 되는 부수적인 것들이나 실리카겔이 즐겨 활용해온 문화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2차 소비하려는 듯한 인상도 있어요. 저희와 같이 향유할 만한 것들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산산기어와 협업했을 땐 그 브랜드 옷을 입고 공연장에 오는 분이 참 많았거든요.
최웅희 그것 관련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죠. 한창 산산기어와 협업했을 때 객석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들렸다고(웃음). 아무래도 산산기어가 기능성 원단을 많이 쓰는 아웃도어 브랜드다 보니까.
김한주 가끔 팬 커뮤니티를 엿볼 기회가 있는데 정말 산산기어가 압도적 비율을 자랑하긴 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선 할로미늄도 많이 사 입으시고(웃음). 저희가 무대 의상으로 착용한 적 있는 혜인서의 제품을 검색해보고선 가끔 이런 댓글을 남기기도 해요. ‘너무 비싼데요? 이건 좀···.’(웃음)

‘No Pain’이 실리카겔에 남긴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김한주 어떤 유의미한 지표를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아요. ‘No Pain’ 발매 이후로 스트리밍 횟수든 조회수든 구체적인 숫자적 지표가 수면 위로 떠올랐거든요. 집객을 예상할 수 있는 편한 숫자가 나온 거죠. 이전까지는 그런 수적 통계가 굉장히 흐릿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 지표를 통해서 좀 더 탄력적으로 밴드를 운영할 수 있었고, 그 점에서 유의미한 발매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김춘추 사실 ‘No Pain’은 노골적으로 저희가 ‘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담긴 노래라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작업한 사례거든요. 이전에 저희가 했던 음악보다는 좀 더 닿기 쉬운 스타일의 음악일 가능성이 높다고 멤버끼리 얘기하긴 했어요. 당시 작업할 때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No Pain’이 많이 사랑받는 걸 보면서 ‘아, 우리가 어떤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작업하면 기대한 뭔가가 나오는구나’라는 게 생긴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와, 이거다’의 태도는 아니었고요. 쉽게 말하자면, 소금을 넣으면 짜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나중에 짠 게 필요할 땐 소금을 넣으면 되겠다고 판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어떤 식으로 우리의 음악이나 활동을 컨트롤하면 되는지에 대한 약간의 확신과 자신감이 생겨난 거죠.

‘No Pain’이 시대적 흐름과 호응하며 탄생한 곡이라면 작년 12월 발매한 정규 2집 는 좋은 의미로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이 있었어요. 총 18개 트랙인 데다 러닝타임이 1시간이 족히 넘죠? 음반이 아닌 음원 위주로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고 한 곡이 2분대로 점점 짧아지고 있는 시대에 굉장히 보기 드문 풀렝스 앨범이었다는 생각이 있어요.
김춘추 사실 적절히 맛소금 치면서 감칠맛 나는 음식은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든 호불호 없이 먹잖아요. 그게 쉬운 접근이라면 저희는 좀 색다른 스파이스를 쳐가며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고 싶거든요. 앨범을 내고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희한하게 피아노나 관악기를 썼네요?’ 혹은 ‘이상할 정도로 곡이 기네요?’. 그런데 저희 입장에선 되게 신기한 게, 옛날부터 연주곡이나 긴 곡은 늘 있었거든요. 이 지점에서 신선함을 느끼는 걸 보면서 ‘원래 했던 건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내는 맛에 사람들이 아직은 덜 익숙하구나 싶으면서 ‘재미있네?’란 느낌도 들었던 것 같아요.

건재가 착용한 셔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가벼워지거나 증발되는 걸 경계하고자 하는 책임감이 있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빠짐없이 하는 말이에요. 어떤 의미인가요?
김춘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게 뭘지 고민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엔 어떤 보수적인 형태의 것들에 고집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여태 실리카겔로 작업한 걸 쭉 보면 결국 손이 많이 간 게 좋다라는 결과가 있거든요. 귀찮고 번거롭게 품을 많이 들여 완성한 결과물이 확실히 좋았단 말이죠. 요즘처럼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 저희가 고수하는 방식을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 보겠지만 개인적으론 ‘실은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음악에 있어서는 보수적일지 몰라도 협업에는 엄청난 개방성을 띠잖아요.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김한주가 ‘오직 협업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라고 했듯이 여태 산산기어, 할로미늄, 혜인서, 컨버스 등과 적극적으로 협업해왔고요. 시대와 국적을 떠나 협업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김한주 뷔욕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을 보면 뷔욕에 대한 얘기가 짤막하게 등장해요. 뷔욕의 여러 능력 중에서도 특히 유스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안목이 탁월하다고 평가하는데요. 뷔욕이 나고 자란 아이슬란드에는 형 누나 문화가 없지만 어쨌든 사카모토는 일본인이니까 그의 눈에 뷔욕은 대단한 ‘왕언니’, ‘왕누나’로 비쳤대요. 그의 말처럼 실제 뷔욕은 아르카, 로살리아처럼 당대 가장 루키라 평가받은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협업했고요. 이 점에서 내가 뷔욕과 함께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뷔욕에게 ‘간택’당하고 싶다는 거죠?(웃음)
김한주 뭐, 그렇긴 한데요(웃음). 그보다 음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늘 나이 차가 크게 나는 분들과 함께해왔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참 많았어요. 그래서 뷔욕과 뭔가를 할 기회가 생기면 또 많은 걸 배우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웅희가 착용한 슬리브리스 톱은 모자이크 소사이어티, 커다란 팬츠는 뮌, 슈즈는 야세 제품.

언젠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밴드 맨이라는 의식이 없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는 곧 록 밴드를 향한 암묵적 시선에 스스로 좀먹히지 않겠다는 태도와 연결될까요?
최웅희 저는 먹히고 싶은 건 먹히고, 아닌 건 먹히지 않으려 합니다(웃음).

하하. ‘먹히고 싶은 것’도 있나요?
최웅희 사실 저는 워낙 어릴 때부터 밴드 음악을 들으며 자라서 가슴 한구석에 ‘밴드 맨’이 어쩔 수 없이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우리가 유연해야 할 때나 이런저런 재미있는 짓거리를 할 땐 그 밴드 중심적 사고에서 저만치 달아나는 경우가 제법 있죠.
김한주 물론 저도 늘 어떤 새로운 밴드가 나왔는지 체크하고 크리틱을 보는 건 당연히 놓지 않고 있는데요. 다만 제가 밴드 음악에 대한 로망을 키웠을 때 흠모한 뮤지션들은 대부분 밴드 신에서 이단적 존재들이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나. 그런데 그들은 어떤 특정 사조에 갇히지 않고 탈중심화를 모색하고 시도했기 때문에 밴드 음악 역사에서 아이코닉한 존재로 남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계속해서 어떤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밴드 맨이란 의식에 갇히지 않고 넓게 봐서 뮤지션, 또 나아가 문화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어떤 개체. 이런 식으로 넓고 다른 시야를 갖추고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밴드는 각 멤버의 세계와 욕망이 부딪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잖아요. 한편으론 각각의 욕망이 다른 만큼 밴드란 쉽게 금이 갈 수도 있는 세계로도 보이는데, 실리카겔은 함께한지 거의 10년째를 맞아가요. 장수 비결이 있나요?
김한주 사실 저희는 밴드 활동에 따르는 불편을 제일 잘 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극복하려는 향상심이나 작업 의지, 욕구가 훨씬 컸기 때문에 10년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또 이제··· 헤어지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웃음).
최웅희 그렇지, 진작 탈출했어야 하는데!(웃음)
김건재 우리 밴드가 결국엔 ‘돌아올 곳’이란 느낌은 드는 것 같아요. 각자 여기저기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돌아와서 다 같이 여러 실험을 해보고요. 생각해보면 지난날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데이터로만 보면 힘들었겠죠. ‘와, 이 돈 벌고 어떻게 살았네?’ 하면서. 그런데 확실히 다 같이 모여서 한다는 데 어떤 동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힌주가 착용한 보타이와 재킷은 송지오, 팬츠는 골든구스, 레이스업 슈즈는 야세 제품.

다가오는 초여름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프리마베라 사운드 2024’에 참가하죠? 유럽 공연은 처음이라 들었는데,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
최웅희 바르셀로나의 날씨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딱 여행하기 좋을 때라 들어서(웃음).
김춘추 지금까지 우리가 선 그 어떤 페스티벌보다 사람들의 흥분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확실히 재미있겠다는 기대가 있어요.
김건재 저는 근처 도시에서 구경 올 델리게이터(페스티벌 및 마켓 감독)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웃음). 제주도 오는 느낌으로 올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이들에게 보여주는 어떤 시험의 장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여기서 잘하면 어떤 ‘애프터’가 있을 수도 있겠죠?
김한주 어휴, 저 속물성 발언!(웃음)

하하, 만일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가정해볼까요? 여러분이 그리는 꿈의 무대는 어떤 형태인가요?
김춘추 특히 저희 같은 밴드 셋의 공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르잖아요. 아무리 저희가 시스템에 신경 쓰고 엔지니어를 데려가도 꼭 어떤 기술적 문제가 발생한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100퍼센트의 소리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게 가능한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상상한 적이 많아요. 완벽한 일대일의 공연. 내가 연주하는 소리가 바깥으로 어떻게 나갈지는 사실 컨트롤할 수가 없거든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희가 수동적이게 되는 유일한 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조차 초월하는 어떤 궁극의 기술로 우리가 의도한 표현들이 100퍼센트로 구현되는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김건재 어렸을 때 시규어 로스의 고국 투어 공연과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헤이마>를 즐겁게 봤거든요. 그런 식으로 내가 태어난 나라를 남겨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다 부서지고 허물어질 것들이니, 그렇다면 대한민국 곳곳을 돌며 공연하고 그걸 영상으로 남겨보고 싶어요.
김한주 일본의 소설 겸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에 ‘풀다이브 VR’이란 기술이 등장해요. 헤드기어를 쓰고 기기를 켜면 잠에 빠져들고 새로운 세계에 로그인된다는 설정이에요. 언젠가 이 기술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어떤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한 적이 있어요. 신체 기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뇌에 개입하는 방식이니 아무런 제약도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겠죠? 식물인간도.
김건재 그 기술만 구현되면 앞서 말한 모든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겠다.
김한주 그렇죠. 악기도 알아서 착착착 세팅되고. 이왕이면 이제 얼굴도 차은우 님으로(웃음).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춘추가 착용한 재킷은 한킴, 셔츠와 타이는 뮌 제품. 건재가 착용한 재킷은 석운윤, 셔츠와 타이는 뮌 제품. 한주가 착용한 셔츠와 타이는 뮌 제품. 웅희가 착용한 재킷은 석운윤, 셔츠와 타이는 뮌 제품.
포토그래퍼
박종하
스타일리스트
장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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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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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솔
어시스턴트
전지오, 박성은
장소 협조
키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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