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오트 쿠튀르에 담긴 이야기

김민지

2024 S/S 쿠튀르 컬렉션에 담긴 단추라는 샤넬의 상징적 코드, 무용으로부터의 영감

“샤넬은 컬렉션마다 영감이 되어줄 특별한 감성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내 임무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버지니 비아르의 열 번째 샤넬 쿠튀르 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의 임무는 샤넬 하우스의 무한한 영감을 새롭고 아름답게 전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 터. 지난 1월 23일, 파리 그랑팔레 에페메르에서 공개된 샤넬의 2024 S/S 쿠튀르 컬렉션에는 그 지난하면서도 찬란한 여정이 담겨 있다. 단추라는 샤넬의 상징적 코드, 무용으로부터의 영감, 그리고 샤넬의 오트 쿠튀르에 담긴 이야기.

단추에 담긴 이야기
의복에서 옷을 여미거나 장식하는 용도인 단추. 나무, 자개, 금속, 가죽, 천, 보석 또는 모조 보석 등 무수히 다양한 소재로 만드는 단추, 즉 버튼은 작지만 다양한 제작 기술이 필요하며, 의상의 대담함 또는 고급스러움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18세기 말 남성복에서 차용한 버튼은 여성의 신체 해방 운동과 발맞춰 레이스와 코르셋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성용 투피스 슈트를 선보인 가브리엘 샤넬은 이 버튼을 극진하게 다루었다. 옷을 쉽게 여미고 풀 수 있게 해주는 단추에서도 샤넬 코드는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버튼은 옷을 입는 여성에게 자유를 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샤넬은 현대 여성복의 이론가이자 장인이었고, 단추는 의상에 반짝임을 더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브리엘 샤넬은 자신의 디자인에서 주얼 장식 버튼을 중요하게 사용했는데, 이는 단순함과 정교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그는 기능적인 버튼과 보석으로서의 버튼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으며, 수많은 금속 및 보석 세공사들과 협업해 주얼 장식 버튼을 제작했다. “단춧구멍이 없는 단추는 필요 없다”는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 버튼은 활동적인 여성을 위해 디자인된 샤넬 슈트에 매우 중요한 악센트를 주며, 샤넬의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샤넬 여사는 모노그램을 비롯해 사자, 체인, 까멜리아, 진주, 별, 태양 등 자신이 좋아했던 상징, 코드 및 행운의 부적을 끊임없이 버튼으로 재해석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버튼은 식별 요소, 인식 가능한 표식, 부적 또는 컬렉션의 독특한 상징이 되었으며,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즌마다 샤넬 디자인에 독특한 스타일을 부여하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버지니 비아르가 주목한 것도 다름 아닌 단추였다. 버지니 비아르는 움직임과 무용을 테마로 한 2024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버튼을 눌렀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데이브 프리(Dave Free), 마이크 카슨(Mike Carson)이 디자인한 시노그래피는 오트 쿠튀르의 상징인 거대한 실타래, 바늘, 가위와 함께 샤넬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버튼을 무대 중앙에 배치했다. 피지랭(pgLang)이 지원하고 데이브 프리가 각본 및 감독, 켄드릭 라마가 음악을 담당한 동화 같은 영상 ‘버튼(The Button)’은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다분히 개인적인 물건, 버튼에 독특한 정서적 가치를 부여한다. 결국 버튼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을 소환하고, 분리하고, 다시 연결하는 오브제가 아닐까? 그리고 오트 쿠튀르와 그 노하우, 거기서 태어난 이 아트피스의 진가는 시간을 초월해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것 아닐까?

사넬과 함께 춤을
2024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버지니 비아르는 해방의 상징과도 같은 버튼을 통한 영감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정답은 발레 무용수의 의상이었다. 무용수의 의상 역시 신체의 격렬한 움직임을 최대한 고려해 만들기 때문이다. “무용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무용은 늘 샤넬의 중요한 테마였다. 샤넬은 발레단, 안무가, 무용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발레 의상도 제작한다. 튤, 러플, 플리츠, 레이스로 구성된 매우 우아하고 나풀거리듯 가볍고 섬세한 컬렉션을 통해 몸과 의상이 지닌 힘과 유려한 섬세함을 하나로 결합하고자 했다.” 사실 샤넬과 발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24년, 가브리엘 샤넬이 발레 오페라 <르 트랑 블뢰(Le Train Bleu)>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샤넬은 지금도 꾸준히 발레단, 무용수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작년에는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의 주요 후원사가 되기도 했다.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는 레오타드부터 튀튀와 점프슈트까지, 전문 무용수가 입을 법한 아이템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드레이퍼리, 작은 리본, 일루전 튤 포켓, 레이스 벨트, 시퀸, 브레이드, 작은 플라워 장식 등으로 수놓은 투명한 쇼트 스트레이트 스커트, 롱 드레스, 점프슈트, 짧은 케이프 등이 등장하는 시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패션, 음악, 연극, 회화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물시를 빚어내고, 우아함과 경이로움에 감동한 무용수가 잠시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다. 샤넬의 2024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이토록 가벼운 공중 도약의 세계가 선사하는 부드러움을 뛰어넘어 무용계 거장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들의 비범한 스타일과 위풍당당한 신체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핑크와 화이트의 수채화가 두드러지는 이번 컬렉션은 레온 박스트(Léon Bakst)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가 몸담았던 발레 뤼스의 선명한 색채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버지니는 또한 튤 소재의 다운재킷과 후디로 현대 문화를 레퍼런스하고 힐로 매력을 더했다. “내게 있어 춤이란 전하고 다시 말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내 마음에 가까운 모든 이야기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백스테이지의 모델들.

샤넬과 오트 쿠튀르
모자 디자이너로 시작한 가브리엘 샤넬은 1910년 깡봉가 21번지에 첫 부티크인 ‘샤넬-모드’를 열고 제품을 판매했다. 1915년에는 비아리츠의 빌라 라랄드(Villa Larralde)에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18년에는 깡봉가 31번지에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했다. 1920년대 말 샤넬은 패션 제국의 성공적인 수장이 되었고, 공방에서는 수백 명의 재봉사들이 컬렉션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샤넬 오트 쿠튀르는 샤넬 여사의 유산을 비롯해, 매 시즌 수많은 버전으로 재해석되는 리틀 블랙 드레스와 트위드 슈트 같은 아이코닉한 제품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 거대하고 고귀한 샤넬 유산의 보존은 새 영감을 위해서도,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할 터. 이를 위한 실제 장소인 Le19M 공방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올해 열한 개 공방이 오베르빌리에와 파리 19구 사이에 위치한 샤넬이 지은 공방 전용 공간으로 집결했다. 자수 공방 르사주와 산하의 르사주 인테리어 및 자수 학교, 몽텍스와 산하의 MTX 인테리어 부서, 구두 공방 마사로, 깃털 및 꽃 장식 공방 르마리에, 모자 공방 메종 미쉘, 플리츠 공방 로뇽, 플루 공방 팔로마, 금세공 공방 구센 등이 그 주인공이다. 공방의 뛰어난 장인들은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뿐 아니라 다른 패션 하우스의 스튜디오와 직접 소통하며 직조, 자수, 공예 등의 작업을 진행한다. 이렇듯 오늘날의 샤넬 오트 쿠튀르는 칼 라거펠트와 버지니 비아르를 거치며 현대적인 삶의 예술(Art de Vivre)에 투영하는 데 성공했다. 가브리엘 샤넬의 코드와 비전을 뛰어넘어, 하우스의 일차적 소명인 오트 쿠튀르는 모든 꿈, 모든 대담한 창작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현장인 셈이다. 이 자유의 공간에 그 어떤 물질적, 기술적, 시간적 제약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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