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신만의 무대를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꿈꾸는 사람, 엄정화가 단독 콘서트에 우리를 초대한다
‘파격’이라는 단어는 종종 무성의하게 여기저기 놓인다. 정작 그 말을 온전히 체화한 채로 무대 위에 나타났던 디바는 따로 있다. 그가 자신만의 무대를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꿈꾸는 사람, 엄정화가 단독 콘서트에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가수 수민의 앨범이 나왔죠? ‘옷장’이라는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하셨어요. 이 노래, 참 좋은데요?
그죠? 제가 수민의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제 앨범 작업 때 같이 한 번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수민이 먼저 연락을 줬어요. 제가 피처링하는 작업으로 만나게 됐네요.
요즘 건강은 좀 어때요?
좋아요. 좋은데, 정신적으로는 피곤해요. 콘서트를 앞두고 압박감이 심해서요. 자려고 누웠다가도 갑자기 숨이 막혀서 일어나요. ‘내가 이걸 왜 한다 그랬을까?’ 하면서 걱정하다가 ‘아니지,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거야?’ 이랬다가. 왜냐면 제 목소리로 2시간 동안 공연을 이어간다는 게 어떨지 짐작할 수가 없잖아요.
콘서트를 하는 게 무려 24년 만이라면서요. 엄정화 단독 콘서트 <초대>가 12월 9일과 10일 서울을 시작으로 23일 대구, 31일 부산까지 이어져요. 공연 준비를 하면서 노래 연습을 한꺼번에 많이 하는 건 혹시 목에 해로운가요?
그렇진 않아요. 오히려 목을 자주, 많이 사용해야 해요. 콘서트에서 22곡 정도를 불러야 하니까. 발성 연습도 부지런히 하는 중이고요. 그래도 공연 첫날만큼은 제 목소리 상태를 살펴가며 할 필요가 있어서 첫날 게스트가 네 팀이나 출연해요.
2008년의 <D.I.S.C.O> 앨범과 2016년 연말에 낸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앨범 사이, 갑상선 수술을 하셨죠. 물론 우리는 바로 최근까지도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엄정화를 봤습니다만, 2시간의 단독 콘서트는 큰 도전이네요.
갑상선 수술을 하면서 성대를 다쳤고, 이후 새 앨범을 내기까지 9년 가까이 걸렸어요. 그 시간 동안 무던히 애를 썼죠.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극복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면서. 앨범을 낸 것도 성대를 다쳤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싶진 않아서였어요. 저 스스로 그냥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한 거죠. 나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웃음). 지금도 목소리가 완전히 괜찮지는 않은 상태인데, 콘서트 제의가 왔을 때는….
아, 공연 기획사에서 먼저 제의했군요?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갑자기 확 눈물이 나는 거예요. 차에 앉아서 10분쯤 운 것 같아요.
엄정화가 그냥 여왕이 아니라 눈물의 여왕이기도 하죠?(웃음)
뭐랄까, 과거에 했던 기도가 이제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거든요. 젊은 시절에 쌓은 그 모든 게 그냥 스르르 없어져버리지 않기를 바랐어요. 가수 활동을 마치더라도 콘서트 없이는 마치고 싶지가 않았고요. 자신감을 찾으려면, 목소리가 좀 달라졌지만 나에겐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고 느끼려면 뭔가를 해내야 했어요. 그렇게 tvN <댄스가수 유랑단>도 했고. ‘언젠가는 콘서트를 해야지’라고 자주 생각했지만, 저 혼자서는 먼저 기획하지 못했을 거예요. 제 음악 활동만을 추진할 수 있는 음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가수에게 공연은 늘 따라다니는 일정이라고만 여겼는데, 새삼 단독 콘서트라는 기회의 소중함이 와닿네요. 특히나 엄정화처럼 역사가 긴 아티스트에겐 흐르는 시간에 분기점을 만드는 역할을 해줄 테고요.
가수들이 ‘데뷔 몇 주년 기념’ 식으로 콘서트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새삼 알겠더라고요. 음악을 즐겨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우리가 이런 시절을 같이 보냈다’ 하면서 한 시기를 기념하는 것. 그러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어느 순간 예전처럼 매년 앨범을 내진 못했지만 저는 꾸준히 앨범을 냈죠. 콘서트는 그 노력과 제 젊은 날에 대한 헌정이기도 해요. <댄스가수 유랑단>을 하면서 지방 곳곳을 돌 때 아주 신나게 즐기는 관객도 있었고, 우는 관객도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획사에서 ‘엄정화의 콘서트를 만들면 좋겠구나’ 생각했대요.
3년 전,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와 <더블유>가 같이 화보 작업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아티스트 입장에서 환불원정대라는 콘셉트에는 비교적 즐기는 마음으로 조인했을 수 있는데, 환불원정대의 정신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댄스가수 유랑단>에 임할 때는 각오가 좀 필요했을 거 같아요.
환불원정대를 시작할 즈음은 ‘내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때였어요. 그 방송을 하면 한동안 정말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죠. 게다가 요즘 어린 세대 중에는 저를 배우로만 아는 친구도 있겠더라고요. 내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상기하고 각인시키고 싶었어요. 유랑단 활동 역시, ‘이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역사를 다 보여줄 수 있는 기획이었거든요. 저에게 ‘배반의 장미’, ‘포이즌’ 같은 곡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주 중요했어요.
환불원정대에 이어 <댄스가수 유랑단>이 있었기에 2023년 엄정화의 단독 콘서트 계획도 가능해졌어요. 그런데, 마지막 콘서트를 한 게 언제라고요?
1999년인가…. 콘서트 제목도 좀 희한했답니다? <사이버 에로티쿠스>! 으하하. 그때는 콘서트 티켓을 서점에서 구입하고 그랬을 거예요.
그때부터 이미 콘서트에서 부를 히트곡이 꽤 쌓여 있었죠. 저는 작곡가 최준영이 쓴 2집의 ‘슬픈 기대’를 아주 좋아해요. 세련된 곡이었는데, 같은 앨범에 실린 ‘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반응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네, 그 곡은 1위까지 갔어요. ‘슬픈 기대’ 무대를 할 때는 가발을 썼죠. 예전에는 1년에 한 번꼴로 꼭 앨범을 내면서도 드라마와 영화 활동을 병행할 때가 많았어요. 무대 내려오면 작품 촬영이 있으니까, 무대 위에서는 가발을 쓰면서 활동한 거죠.
대중 가수가 수영복 같은 룩이나 란제리 룩을 입은 채 등장하는 거, 엄정화는 1990년대에 했습니다. 2004년엔 무대에서 라이브로 오토튠을 활용한 적도 있고요. 늘 새로운 것, 반향을 일으킬 만한 것을 고심했나요?
마케팅 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죠. ‘Come 2 Me’라는 곡을 두고선 ‘가사가 이렇게 노골적인데 여기에 무슨 의상이 필요해?’라는 생각이었고. 어느 순간 음악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겠다 싶었어요. 변화의 정도가 클수록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판단으로 시도한게 일렉트로닉 장르였고요. 재형이와 함께 달파란 같은 음악인을 찾아다녔죠. 저는 도태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2004년 ‘Eternity’라는 곡을 선보였어요. 정재형씨는 아름다운 발라드 선율이나 팝적인 음악을 만드는 데 두루 능하지만, 무엇보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는 작곡가 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가 엄정화와 함께 일렉트로니카를 들고 나왔단 말이죠.
그때 저희 둘이 클럽에 엄청 다녔거든요(웃음). 재형이와 만나기만 하면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악적 방향에 대해 얘기했어요. 클럽에서 듣는 음악도 있고, 같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어떤 음악이 좋은지 서로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저와 재형이가 좋아하는 부분이 비슷하다는 걸 알아서 ‘같이 해보자’ 했죠. 당시만 해도 일렉트로니카가 낯설 때라 8집 <Self Control> 자체는 제 다른 앨범들에 비해 성공적이진 못했어요.
저는 그 앨범 수록곡을 아직도 종종 들어요. 전자음악에 윤상이 빠질 수 없죠, ‘지금도 널 바라보며’ 역시 명곡이에요. 엄정화는 늘 훌륭한 작곡가들과 함께했습니다. 혹시 작사를 더 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재형이와 부른 발라드곡 ‘긴 오후’의 가사를 같이 썼죠. 10집을 만들 때도 멜로디나 가사 작업을 같이 해보긴 했는데…. 누군가랑 함께하면 ‘이렇게 좀 해볼까?’ 하면서 작업하겠는데, 혼자 집중해서 하려면 쉽지 않더라고요.
운영 중이신 유튜브 채널에서 최근 영화 <화사한 그녀>에 같이 출연한 걸스데이의 민아와 나눈 토크 영상을 봤어요.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는 현아, 르세라핌과 무대를 함께 했죠. 여자 후배들이 엄정화가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으시나요?
자주 그래요. 효리도 저와 완선이에게 그랬죠, ‘내가 언니들보다 열 살이 어린데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더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이를테면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힘을 주었구나 싶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면 조금은 덜 쪼들리며 살았을 것 같아요.
바라볼 존재가 없었다는 점, 또 요즘 데뷔하는 이들처럼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거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가끔은 아쉬움을 느낄 듯해요.
트레이닝 받는 시스템을 거친 친구들이 좀 부러울 때가 있어요. 시스템은 너무나 중요해요. 시스템 안에서 도움 받으며 나의 무언가를 찾기까지 한다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을 것만 같아요. 저는 20대 초반에 합창단 생활을 하면서 제 끼를 발견했네요. 음악과 가수 활동을 향한 모든 느낌이 합창단에서부터 시작됐어요.
후배들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 순간이 기억나세요?
격세지감. 언젠가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물론 있어요. ‘D.I.S.C.O’와 효리의 ‘유고걸’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효리를 보면서 딱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로 기억해요. ‘내가 이젠 정말 나이 들었나? 세대교체가 되었나?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효리가 스물일곱, 저는 서른일곱이었어요. ‘엄정화 나이에 디스코를 한다고?’ 같은 소리를 들을 때였죠. 지금은 보다 자유로워졌어요. 후배들을 보면 그저 너무 예쁘고, 막 응원해주고 싶어요. 그 친구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그러면서 사랑해주고 싶고 그래요.
카메라가 꺼지고, 화려한 메이크업과 조명 같은 각종 치장을 거둬내면 남아 있는 맨얼굴의 엄정화는 어떤 사람이죠?
꿈꾸는 사람. 맨얼굴의 나는 늘 꿈을 꾸는 듯해요.
왠지 낭만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고군분투에 가까운 느낌일까요?
고군분투라고 하면 벅차고 괴로운 일이잖아요. 그보다는 이런 거예요. 저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공백기를 보낸 때도 있지만, 엄정화는 긴 세월 음악과 연기를 지속하며 성취를 이룬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무언가 목마르다는 느낌이 있으세요?
모르겠어요. 그저 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과거에 내가 어떻게 하면 뭘 더 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하던 것처럼, 다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좀전에 촬영 마무리를 하면서는 무슨 생각이 든지 알아요? ‘더 나이 들어서도 오늘 같은 콘셉트로 화보 촬영 해봐야지.’ 저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왜 콘서트를 하겠다고 했나 걱정하면서도, 제 지난 곡을 쭉 들어보며 가수로 한창 활동할 때 가졌던 모든 감각을 다시 일깨워보려고 하죠. 공연 세트 리스트를 만들어보니까 어떤 곡을 불러도 관객이 모두 따라 부를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알만한 노래로 채워지긴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이번 콘서트가 잘 된다면 앞으로 나에게 더 큰 자유가 주어질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제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연기하고 싶을 때 연기하되 예전처럼 집착하는 면은 없을 거예요.
가까운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정재형은 24년 만의 콘서트를 앞둔 엄정화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나요?
마침 오늘 아침에 재형이가 메시지를 보냈어요. 넷플릭스에 있는 로비 윌리엄스 다큐멘터리 좀 보라고. 안 그래도 어젯밤 그거 보다가 잠들었거든요. ‘로비 윌리엄스도 공연 전에는 엄청 쫄았어, 다들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하더라고요.
올해는 엄정화의 엔터테이너적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해였네요. 드라마 <닥터 차정숙>, 영화 <화사한 그녀>, 지방을 유랑하며 보여준 무대와 한 해의 끝을 장식할 콘서트까지. 2023년의 당신을 스스로 칭찬해본다면요?
‘축하해’. 드라마를 하면서도, 콘서트 계획을 알리고 나서도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네요. 늘 그랬듯이 최선을 다했어요. 나도 나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아.
지금 또 울컥하시는 거예요? 콘서트 무대에서는 몇 번이나 울컥하려고요?
막상 공연 때는 긴장해서 정신이 없을 거예요. 좀 무섭기도 한데…. 못 해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 해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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