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동화와 잔혹 동화, 코미디와 비극, 생성과 파괴 등이 공존하는 로버트 나바(Robert Nava)의 회화 세계. 대형 캔버스에서 거친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 에너지가 아시아에 처음 상륙했다.
여기, 신중하게 망친 것 같은 그림들이 있다. 분명 강하고 빠른 동작으로 진행되었을 붓질이 한 생명체의 몸을 거칠게 가로지르는 바람에 화면 속 그 몸은 찢기거나 절단된 모양새다. 상어와 유령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큰 화면을 꽉 채운 또 다른 상어의 등을 자세히 보면 난데없이 묘지가 그려져 있다. 간혹 타락한 천사인가 싶은 캐릭터와 변종 짐승도 곧잘 등장한다. 천진함과 짓궂음이 5 대 5 정도의 비율을 이루는 로버트 나바(Robert Nava)의 회화. 그의 작품 세계는 이율배반적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어울릴 환상 동화인가 싶으면서도 자세히 살피면 잔혹 동화 같다. 코미디인 동시에 비극이고, 생성과 파괴를 함께 품기도 한다. 그는 동물과 짐승을 그리기 위해 신화와 고대미술도 두루 참조하지만, 어떤 목적이나 내러티브를 위한 소재를 의도적으로 가져오기보다 형상만을 가져와 자기식으로 만든다. 열세 살쯤에 이미 벨라스케즈처럼 그릴 줄 알았다던 이 1985년생 화가는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까지 배운 회화 양식과 반대편의 길을 가는 데 작가 인생을 썼다. 로버트 나바의 공상을 캔버스에 펼칠 여지가 더 컸던 그 길 위의 작업들에서는 정상보다 비정상, 완벽함보다 실수, 영웅보다 악동 같은 성격이 두드러진다. ‘정답’에서 탈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의미는 접어두고 느낌과 감정에 집중한 결과다. 때로는 창조적 충동으로 가득한 에너지와 거센 폭풍 같은 생동감도 지니게 되었다. 그가 택한 길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미술사의 앞선 작가들, 이를테면 장 뒤뷔페, 사이 톰블리, 장 미셸 바스키아의 가공되지 않은, 때로는 원시적인 화풍에 대해 그의 스타일대로 호응하면서 말이다. 피카소가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고, 아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말한 것처럼, 아직 30대인 로버트 나바는 궁극의 미술 세계를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작가가 중년에 이른 이후의 화면은 어떻게 변화할까? 첫 아시아 개인전을 위해 서울에 온 로버트 나바를 만났다. 인터뷰 원고로 정돈된 글은 간혹 인터뷰이의 참된 뉘앙스를 제거해버리고 마는데, 그는 대화 내내 사실 많이 수줍어하며 말을 골랐다. 9월 5일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시작한 전시 <토네이도 로즈(Tornado Rose)>는 10월 21일까지 열린다.
<W Korea> 페이스갤러리 1층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벽에 걸린 그림보다 당신이 벽에 스프레이로 그린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오늘 아침 갤러리에 도착해서 그렸다고요?
Robert Nava 네. 전시장 자체가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설치된 제 작품들이 건축물로서의 공간에 또 다른 에너지를 더해주는 것 같았죠. 전시된 여섯 점을 한눈에 보니,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된 제 회화들이 토네이도에 휩쓸린 것처럼 복잡하게 날아다니다가 드디어 한데 모여 여기 안착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이 공간에서는 각각의 회화가 무슨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인 것처럼 느껴진달까요.
전시 제목이 <토네이도 로즈>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만든 작가가 전시장에 대해 또 다른 상상을 했다는 점이 재밌네요. 아시아에서 열리는 당신의 첫 개인전이죠?
전시 장소가 아시아 지역이라는 점을 떠나서, 지난 몇 년간 저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이제야 전시를 할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당신은 페이스갤러리의 마크 글림처 회장이 픽업한 젊은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화제였죠. 최근 2~3년은 전시를 꾀하기보다 여러 변화에 적응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특히 최근 이탈리아의 궁전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한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사이 톰블리의 옛 스튜디오를 개조한 곳이었죠?
네, 4주간 머물렀어요. 이탈리아에 처음 가본 거였어요. 사이 톰블리가 작업하던 터에서 저도 작업하는 기회를 가져 영광스러웠어요. 사실 저는 어디에 머물든 외부 환경의 영향 없이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아마 작업의 원천이 제 내부에서부터 오기 때문일 거예요. 외부적인 영향이 있다면, 천천히 제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겠죠. 그런데 레지던시에 들어간 처음 2주간은 아무 작업도 할 수가 없었어요. 관계자들이 ‘작가를 잘못 고른 게 아닐까’ 했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러다 남은 시간 동안 휘몰아치듯 매진했어요. 몇 점을 작업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공간이 지닌 대단한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궁전이 이탈리아 중부 바사노인테베리나라는 지역에 있더군요. 사이 톰블리는 17세기에 건축된 그 궁전을 스튜디오로 사용하면서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만 공개했다고 들었어요. 가족들이 최근 그곳을 또 개조했고요.
마을 주민 수가 1,000명 정도인가로 무척 작은 마을이어서 서로 다 알 수밖에 없는 곳이었어요. 저도 그 마을에 대해, 또 마을 주민들도 제 존재에 대해 금방 알게 됐죠. 그런 점이 제가 사는 뉴욕과의 결정적 차이점이었어요.
거기서 마친 작업들을 여름부터 9월 초까지 바로 그 장소에서 전시로 선보였죠. 설치 전경 사진을 봤는데, 처음엔 누군가 장난으로 만든 합성 사진인 줄 알았어요. 당신의 회화 스타일과 클래식한 공간은 다소 이질적이어서 꽤 흥미로운 광경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예전에, 포토샵으로 제 작품을 어느 성 같은 곳에 설치된 것처럼 만들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거든요. 내 그림이 그런 장소에 놓여 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정말 궁금해서 상상해본거예요. 그런데 올해 놀랍게도 정말 궁전에서 전시를 했죠. 상상한 바가 현실이 된 거예요. 그때 사진을 보여줄게요. 이렇게 궁전의 탑 부분에도 작품을 설치했어요. 이 탑에 올라가 있으면 내가 한 마리 용이 된 기분이었다니까요?(웃음) 어두운 동굴 느낌의 지하 장소에도 그림을 걸어놨고요. 로마 시대 전부터 있던 동굴이라고 들은 것 같네요. 이런 궁전에서 전시 오프닝 파티도 했어요. 상당히 초현실적인 경험이죠. 지금도 ‘그때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공개하는 작품도 다 신작인데, 사이 톰블리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건가요?
아니에요. 이번 전시작 여섯 점은 브루클린에서 작업한 겁니다.
로버트 나바의 회화에는 상어, 용, 토끼 등이 자주 등장하죠. 동물이나 미디어 속 동물 캐릭터를 이용하는 작가들이 더러 있지만 그 모티프는 다 다릅니다. 당신이 묘사하는 동물에는 혼종, 변종적인 성격도 있어요. 그 하이브리드 생명체들의 기원은 어디서 왔나요?
상상에서 온 생명체들이라고만 말할게요. 특정 상상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올 수 있는 겁니다. 저는 그것들을 결합하거나 분해하고 재조합하죠. ‘상상’과 ‘불가능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해요. 그 두 가지는 이 세상에서 늘 공존하는 거라고 봐요.
불가능에 대한 생각이란 어떤 걸 말하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가능인가요, 내가 뭔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비슷한 이야기인가요?
전자에 더 가까운 성격이긴 해요. 실제로 볼 수 없고 일어날 수 없는 것들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작 중 하나인 ‘Burial Shark’(2023)에서 저는 등에 묘비가 달린 상어를 그렸어요. 상어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런 모습의 상어는 없죠. 저는 그 비슷한 이미지를 본 적도 없어요. 그저 제가 그 이미지를 눈으로 보고 싶어서 그린 거예요. 제가 그림으로써 이제 ‘묘비 달린 상어’의 이미지가 현실에 존재하게 됐어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고 볼 수 없는 일도 사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 작업은 그런 식이에요.
노랑이 주조색인 ‘Storm Fire Body Bunny’(2023)에서는 토끼가 보입니다. 실은 토끼의 얼굴에, 불타는 전쟁터를 날아다니는 용의 몸을 지녔나 싶은 모습이죠. 그림 전체적으로 보면 재앙이 벌어진 상황 같기도 한데 토끼 표정은 유유자적해요. 혼돈과 재앙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 투영된 걸까요?
음.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토끼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죠. 저는 재앙 같은 태풍과 평온함,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듯해요.
‘Mountain Fight’(2023) 같은 작품은 인스타그램 세상 속에서 작은 섬네일 사이즈로만 봐서는 그림의 구성 요소가 제대로 안 보일 거예요. 개를 닮은 생명체의 집단과 천사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네요. 당신의 작품들엔 내러티브가 있는 편인가요?
아직까진 제 작업에 스토리텔링이나 내러티브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건 제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낼 게 아니고, 어떤 순간에 저절로 발생하는 거라고 보거든요. 제 작업은 이야기보다는 에너지에 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같은 건 가끔 작품을 다 완성한 후에 생기기도 하죠. 작품에 제목을 붙여야 할 때요. 작업을 다 마치고 나중이 되어서야 생기는 감정과 느낌이란 것도 있고요.
로버트 나바 작품의 특징은 상상력과 더불어 아이 같은 화풍에 있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왜 아이처럼 그리는 선택을 했나요?
컨템퍼러리 회화의 선두에 있는 리얼리즘적인 회화 작업에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그동안 세상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이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것에 흥미로운 부분이 더 많아요. 아이 같은 그림, 아카데믹하거나 기능적이지 않은 화풍이 그래요. 여느 예술 작품에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되는 스타일과는 정반대 길이죠. 저는 이 분야에 대해 아직 더 탐구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해요. 상상할 수 있는 것, 흔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 말이에요. 무엇이 옳다거나 더 낫다고 말할 때 그렇게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이처럼 그리는 행위, 어떤 요소들을 재조합해서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는 행위가 더 흥미롭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 이후 수백 년이 흘러 지금인데, 이런 작품들을 또 수백 년 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고요.
사이 톰블리가 생전에 직직 휘갈긴 듯한 자기 작품의 선을 두고 이렇게 말했던가요? ‘어린아이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유치한 것은 아니다.’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뭔가를 버리려 하거나 훈련하기도 하나요? 당신은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예일대에서 정통 회화의 규칙을 익힌 사람이죠.
아··· 제가 하는 것들을 훈련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다만 드로잉이나 회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스케치북에 미리 열심히, 아주 많이 그려요. 그 스케치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를 차지해요. 그리면서도 제가 뭘 위해 그리는지, 어디로 향할지는 몰라요. 그저 열심히 그리다 보면 어떤 상태, ‘존(Zone)’으로 접어듭니다. 그러면서 스케치북에 그려진 것들이 스스로 아이디어와 형상을 만들어내는 식이에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추상 작업이죠. 제 작업이 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여도, 테크니컬한 측면에서는 추상 미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존’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더군요. 혼자서만 내밀하게 느끼는 게 아니라 혹시 예술 하는 친구들끼리 종종 이야기하나요? 존에 대해?
자주 해요. 존이라고 표현하는 그 집중의 영역에 진입하면··· 그때부터 나오는 모든 행위는 제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나오는 작업이 제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림이 저 혼자 알아서 그리는 것 같달까요. 이런 이야길 하면 많은 사람들이 스위치를 껐다 켜듯이 그 존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 일은 저도 모르게 그냥 발생하는 거예요. 제 의지로 다다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요. 운동선수들도 그런 상태에 곧잘 빠지는데, 그들의 몸과 근육이 그 상태를 기억하고 있어서예요. 수없는 훈련으로 이미 그 정도까지 여러 번 도달해봤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거죠. 저 역시 스케치북에 수많은 스케치를 그려봤으니 스케치북이 아닌 캔버스를 직면해도 그냥 그릴 수 있는 거고요.
한국에 ‘접신’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웃음). 왜 이런 말도 있죠, ‘내가 예술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예술이 나를 선택한다’ 같은 거요.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는 영적인 힘에 이끌려 작품의 많은 부분이 완성되곤 하는 경험은 혹시 화가 중에서도 유독 추상 화가에게 잘 벌어지는 일일까요?
어떤 포인트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구상 화가에게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는 존이라는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감정과도 관련되는 영역이거든요. 그러니까 구상 화가들이 또렷한 의식으로 작업할 때도 그 영역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죠. 예를 들어 동일한 인물 형상을 반복해서 묘사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고유의 리듬이 발생하면서 어느 순간 정점에 도달하게 될 거예요. 네, 그렇게 존으로 진입하는 거죠. 그리고 추상 작업을 할 때도 무의식보다 의식을 사용하는 영역이 당연히 있어요. 작품 내 요소들의 구성과 조합을 고민할 때가 그래요. 제가 말하는 존, 그 특별한 순간은 제 직업이 마트에서 식품을 포장하는 사람이 었어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에요.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작업이 유독 더 능숙하고 자동적으로 될 테니까. 식품을 포장하는 건 의식의 영역이지만, 그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무의식의 영역이 있잖아요. 이렇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의식의 상태에서는 물론, 의식적인 상태에서도 작업이 저절로 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얘기입니다. 그럼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내게 좋게 돌아가는 어느 날 진정한 존에 제대로 빠져들었을 때, 작업을 마치고 나면 당신은 녹다운되나요?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나요?
에너지가 넘쳐요. 어떤 작가들은 반농담으로 말하길, ‘그 순간’이 오면 너무 기운이 차고 넘쳐서 작업을 마치고 밖에 나가자마자 길에서 만난 사람을 한 대 치고 싶대요(웃음).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림들을 완성하고 나서 그걸 떠나보내기 전엔 내가 야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일 때도 있어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테크노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고 들었어요. 테크노 장르가 ‘존’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주나 보죠?
테크노 장르는 기분을 방방 뜨게 만들어주는 것부터 몽롱하거나 아주 무겁고 어두운 것까지 폭이 넓거든요. 어쨌든 듣고 있으면 좀 다른 세상으로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음악이 심장 박동처럼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가사가 없는 음악의 리듬과 반복감 때문에요.
빈 캔버스 앞에 서 있으면 대체로 어떤 기분이 듭니까? 두려운지, 신이 나는지, 혹은 어떤 신호가 오길 기다리는 마음인지.
그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다 느끼는 것 같네요. 가장 무서우면서도 흥분되는 순간이죠.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저는 작업을 마치고 스튜디오에 완성작이 가득 찬 모습을 볼 때가 전시 오프닝을 할 때보다 더 기분 좋아요. 그것들을 전시장으로 보내고 텅 빈 스튜디오에 있을 때는 무서움이 밀려오기도 해요.
주변에 미술을 하는 친구도 여럿일 텐데, 10대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중학생 때 제가 다니던 큰 공립학교에 미술 재능이 있는 세 명의 학생이 있었죠. 저도 그중 하나였어요(웃음). 우리끼리 누가 더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지 경쟁하길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심지어 ‘미술 선생님보다 우리가 더 잘 그릴 수도 있겠는데?’ 하면서(웃음). 하지만 저는 금세 깨달았어요, 그렇게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일이나 경쟁하는 일이 더 좋은 예술로 이어지는 결과와는 크게 상관없다는걸. 20대가 된 후에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작품으로 세상에 응답하고, 더 많은 사람이 내 작품으로 좋은 영향을 받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일종의 포털과 같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로버트 나바에 대해 말할 때는 가끔 사이 톰블리와 장 미셸 바스키아가 거론되는 것 같습니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아이가 낙서하듯 그린 화풍 때문이겠죠. 그들은 다루지 않았지만 당신이 관심 있는 영역이 있다면 뭘까요?
두 작가가 이미 너무나 많은 걸 다뤄서 제가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긴 어렵네요. 뭐랄까··· 이를테면 저도 신화적 소재를 다루지만, 그들 역시 어느 정도 다뤘으니 저만의 특성이라고 할 순 없어요. 그리고 제 작업에 영향을 끼친 건 그들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장 뒤뷔페나 고대미술까지, 훨씬 오래된 미술에 있기도 해요. 다만 무언가를 차용하는 제 방식은 ‘무의미함’의 영역에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런 방법론을 앞으로 더 확장해가고 싶어요.
무의미의 의미를 챙기는 길을 가겠군요(웃음). 아티스트로서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자극이나 영향을 끼치는 거요.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많은 거장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기 남은 우리는 그들에게 영향을 받죠. 네, 그건 꽤 멋진 일이에요.
- 에디터
-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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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