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als Ⅱ. 김호영

권은경

독보적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

세상 사람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고유함이 두드러지는 존재란 소중하다. 남과 다르게 특별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꺼이 감수했다는 뜻이다. 재능이 탁월한 것은 물론이고 매력적인 시그너처 스타일을 확보했으며, 새로운 길을 가는 태도의 소유자들. 결국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서는 사람들. 여기 각자의 분야에서, 혹은 분야를 넘나들며 그만의 오리지낼리티를 다져온 국내외 인물 열 명이 있다. 아이콘이 될 자격을 갖춘 이들은 그 이름 자체로 이미 브랜드가 됐거나 될 예정이다.

파워 숄더 가죽 소재 코트, 안에 입은 오버올은 모두 프라다, 강아지 모티프 가방은 모스키노,
틴티드 선글라스는 하이칼라 제품.

‘독보적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이렇게 써놓았다. 누군가는 그를 방송인이나 예능인으로, 또는 쇼 호스트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김호영이 뮤지컬 <렌트>로 처음 무대에 선 지 꼬박 20년이다. 한 때 그는 ‘왜 사람들이 나를 좀 더 알아봐주지 못할까’, 붙들고 갈구했다. 쇼맨으로 타고난 재능과 한 분야에서 묵묵히 버티는 자에게 쌓이는 공력, 그리고 아들이 슈퍼스타임을 의심하지 않은 어머니의 지지는 김호영의 현재를 만든 큰 힘이다. 2022년이 저무는 시점에 그는 에세이<Hoy>를 내고, 양말 브랜드와 협업하는 셀러브리티가 되어 있었다.

퀘스트리언 캐시미어 울 카디건, 울 스웨터, 줄무늬 코튼 셔츠, 데님 롱스커트, 데님 미디스커트와 실크 타이는 모두 버버리, 슈즈는 몽클레르 컬렉션, 큼직한 토끼 귀가 달린 모자는 지미 제품.

<W Korea> 당신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김호영이 하이패션과 만나 화보를 찍으면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올 거라고 꽤 전부터 생각했다.

김호영 아주 신나게 촬영했다. 이런 촬영이 나와 잘 맞을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기대하고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우리 매니지먼트 사람들도 내가 패션과 잘 어울리는 걸 느끼고 놀라기까지 한 기색이다. 촬영 도중 즉흥적인 시도를 해본 순간이 꽤 있었다. 배트맨이 연상되는 마스크를 쓰고서는 나도 모르게 고양이처럼 움직였더니, 그 모습을 본 사진가가 바닥을 한번 기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내가 또 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잖아? 기가 막히게 해내지.

패션지를 즐겨 보는 편인가?

지금처럼 남성이 패션에 관심을 갖지 않던 200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즐겨봤다. 그런데 남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관심이 식는 편이라. 물론 패션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기본적으로 늘 있다. 2014년경 매니지먼트 없이 홀로 활동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라는 오프라인 토크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부캐’ 같은 개념으로 나 자신을 ‘호이 편집장’이라고 생각했다.

매거진 쇼라는 건 어떤 구성으로 선보였나?

매거진이 다룰 수 있는 카테고리가 워낙 많으니까 그것들을 월간지처럼 한 달에 하나의 테마로 택해 공연화했다. 매번 지인들을 게스트로 초청했고. 예를 들어 인테리어를 테마로 풀 때는 그쪽으로 감각이 있는 아이비, 소유진, 브라이언을 게스트로 불렀다. 사전에 아이비의 집 촬영도 하고, 무대 위에는 아이비의 침대와 소파, 패브릭 제품 등을 다 가져다 놓고선 나머지 게스트에게 ‘당신 취향대로다시 꾸며보라’ 하는 식이었다. 게스트가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일 때는 티켓 예매를 진행할 때부터 메이크오버를 원하는 관객으로 모집한다고 공지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관객을 드라마틱하게 변신시켰지.

재밌는 기획인데, 실행까지 혼자 다 해내려면 상당한 뚝심이 필요했겠다.

PPL도 받아냈는걸? 매거진이라면 광고가 있어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뷰티, 패션, 디저트 브랜드에 협찬 요청을 해서 관객들에게 나눠줄 작은 선물 꾸러미를 만들었다. 관객은 에디터 겸 구독자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자기 SNS에 제품을 노출해주었고. 매달 쇼를 지속했더니 나중에는 협찬 브랜드 종류가 웬만큼 쌓여서, 여러 제품을 모아 플리마켓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당시 찍어올린 티저 영상이 나오는데, 지금 봐도 참 세련됐다니까? 자도르 CF같이.

커팅 장식이 특징인 재킷과 팬츠 셋업은 한킴,
부츠는 프라다 제품.

2022년 여름 서울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킹키부츠>가 2023년 1월 1일 지방 공연까지 마쳤다. 김호영은 2016년과 2018년에도 두 주인공 중 하나인 ‘찰리’로 선 적이 있다. 처음 공연할 때, 먼저 오디션을 요청했다는일화를 들었다.

그렇다. 당시 제작사 측에서도 내가 먼저 연락하자 당황하고 민망해하는 눈치였다. <킹키부츠>에는 구두 공장을 물려받게 된 청년 찰리와 복서이자 드랙퀸인 롤라가 등장한다. 롤라가 킹키부츠를 신고 무대를 활보하는 쇼적인 모습이 부각되기 때문에 그 인물이 자주 회자되지만, 이 작품은 찰리가 롤라를 만나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건 찰리라고 본다. 내가이 작품을 할 경우 롤라 역할이 어울릴 거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지. 나는 다수가 알고 있는 김호영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뭔가를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어느 한 가지 면만 가진 사람이 아닌데. 내 조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때, 몸의 골격을 좀 갖춰야 하고 소울풀한 창법이 필요한 롤라보다는 찰리를 연기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당신이 여러 차례 공연한 작품으로는 뮤지컬 <렌트>와 <맨 오브 라만차>, 최근의 <광화문 연가> 등이 있지만, 이력 중 눈에 띄는 작품은 2017년 서울예술단과 선보인 가무극 <꾿빠이, 이상>이다. 뮤지컬과는 또 다른 전위적인 공연을 경험한 건 어땠나?

관객참여형의 ‘이머시브 공연’이었다. 오루피나 연출자에게 처음 연락을 받을 때부터 원작인 김연수 작가의 소설 자체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올릴 작품은 뮤지컬도, 그저 무용극도 아닌, 꽤 어려운 시도가 될 거라고. 배우들이 등장한 이후 끝날 때까지 누구 하나 퇴장하지 않는다. 무대와 객석이 명확히 분리되지도 않고, 배우가 관객들 사이를 오가는 식이었다. 그런 형태로배우 세 명이 이상이라는 난해한 인물의 신체, 이성, 감성을 각각 연기했다. 나는 ‘감성’을 맡았다. 힘든 작품이 될 거라는 점을 알았지만, 그런 어려운 공연을 하고 나면 내 속이 게워지면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공연하는도중 현재의 소속사와 연이 닿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라디오스타>와 <복면가왕>에 출연하는 기회도 생기면서 나를 더 알릴수 있었고. 참 희한한 일이지.

맨투맨 톱은 엑스트라오디너리, 셔츠와 넥타이는 버버리, 체크무늬 스커트는 코치 제품.

김호영에게 스타일 아이콘이라고 할 만한 존재는 누구인가?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처럼 입어야지,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솔직히 없는 듯하다. 그보다 여러 면에서 내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친 존재가 있다면 바로 우리 엄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가 사주신 옷만 입었다. ‘걸어 다니는 베네통’이었지. 10대 때부터 컬러풀하고 화려한 프린트를 즐겨입었다.

어머니의 패션 감각을 믿었나?

어릴 때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다. 엄마가 옷을 잘 입으시기도 하지만, 내 패션을 두고 그때마다 바로 선택을 하거나 ‘컨펌’해주시는 점을 봐도 분명 센스가 좋으시다. 간혹 나와 엄마의 의견이 다를 때면 좀 찜찜한데, 그럴 때면 엄마는 “뭘 고민해? 그 두 개 다 가져가서 사람들한테 의견을 물어봐.” 하신다. 그럼 약속한 듯이 모든 사람이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한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 엄마는 종종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아들을 잘 키웠어요?” 하면 이렇게 말한다. “난 별거 안 했어요, 지가 알아서 잘 컸지.” 좋은 것에 대한 공은 자식에게 돌리고, 무엇보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신다. 내가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부터 나를 ‘슈퍼스타 호영’이라고 불러주셨다. 요즘 매일 스케줄 소화하느라 잠을 못 자서 피곤해하면, 엄마는 나를 걱정하면서 이러신다. “피곤해서 어떡하니? 그런데 슈퍼스타의 삶은 원래 그래. 어쩔 수가 없어.”

끼와 재능, 감각에 있어서 어머니의 유산이 크다고 느끼나?

그렇다. 특히 말솜씨나 임기응변 같은 순발력은 어머니와 외가 쪽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외가 친척들이 모이면 누구 하나 재밌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들 언변이좋고 기본적으로 위트가 깔려 있는데, 은근히 웃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도드라지게 웃기고 리더십도 있는 사람인 셈이지(웃음). 외가가 부유한 편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충남 지역에서 택시 회사를 운영하셨다. 나에겐 이모들이 많은데, 외할아버지는 일하는 사람들이나 딸들을 대할 때 전혀 남녀 차별을 하지 않고 존중해주셨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존재감을 비롯해서 집안에 여성의 파워가 있었달까? 배우 반효정 선생님을 볼 때면 풍채 좋은 우리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내가 남들과는 좀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한 건 몇 살쯤인가?

일곱 살, 여덟 살 무렵.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뭔가를 어렴풋이 느꼈다. TV의 영향이 있다. 보통의 가정에선 저녁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TV를 못보게 하는데, 우리 집 분위기는 달랐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와 함께 방송 3사 드라마를 두루두루 보면서 꿸 정도였다. 우리 엄마도 참, 특이해. 그러면서 ‘탤런트가 되고 싶다’, ‘TV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TV에 비친 연예인이나 드라마의 어떤 면이 어린 김호영을 자극했을까?

패션. 특히 사극에 나오는 한복에 사로잡혔다. 내가 평상시에 입지 않거나 입지 못하는 옷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그런 걸 입고 싶은데, 남자아이들이 입는 한복은 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옷자락이 ‘촤라락’ 하고 날리는 맛이 없잖아! 저고리 하나 입고서 바짓자락을 여미는 정도로 만족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릴 적 외갓집에 갔을 때 사촌 누나가 입은 한복을 보고서 나도 그 옷 입고 싶다고 집에 와서까지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결국 충남 서산에서 소포로 그 한복이 우리 집에 왔으니…. 이후 집 안 행사가 있을 때나 특별한 날이면 그걸 그렇게 꺼내 입곤 했다.

당신이 꼬마일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서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놀랄 정도로 예쁘장한 아이였다.

그 폼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극에서 대비 마마들이 앉아 있는 걸 보고서 어린애가 흉내 낸 거다. 대비들은 꼭 그런 자세로 앉아 있더라고? 한쪽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한 팔을 얹은 자세.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구입했거나 과감한 소비를 한 거로 기억하는 패션 아이템은 뭔가?

구찌를 좋아한다. 럭셔리 아이템을, 한 번에 두 가지 이상 구입한 첫 경험 역시 구찌 매장에서 해봤다. 그때도 엄마와 함께였다. 바람막이 스타일 점퍼와 빅 토트백을 양손에 각각 들고서 뭐가 더 낫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그러셨다. “둘 다 해. 네가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쇼핑하는 건데 그 정도는 다 사도 돼.” 물론 돈은 내 돈 썼다(웃음). 그 점퍼와 녹색 백은 아직도 잘 입고, 잘 들고 다닌다.

컬러 블록 원피스는
꼼데가르송, 부츠는 프라다 제품.

김호영의 약점은 뭔가?

다재다능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막상 알고 보면 썩 그렇지도 않다는 것(웃음). ‘넌 못하는 게 뭐야?’ 소리를 자주 듣는데, 많은 면에서 능숙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나 보다. 그리고 거절을 잘 못한다. 워낙 직언을 하는 데다 맺고 끊는 거 잘하게 생겼지. 하지만 남에 관한 일은 잘해줘도 막상 내 이야기가 되면….

주변에 사람이 많은 거로 유명하다. 혹시 외롭나?

곁에 사람을 많이 두고 싶다는 점과 한 인간으로서 가진 외로움은 좀 별개의 것이다. 나는 마음이 약한 편이고 사람을 잘 믿는다. 그게 내 진정한 약점일 수 있겠다. 사람을 믿어서, 마음을 잘 내준다는 거 말이다.

오리지널한 존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격은 뭐라고 생각하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저 사람, 찐이야. 진짜야’ 같은 표현을 쓸 때가 있다. 누군가 오리지널하다는 것은 한국식 표현으로 치면 바로 그 ‘찐’이라는 의미 아닐까? 진짜의 반대말은 가짜다.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하는 것. 어떤 경우에는 ‘척’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겠지만, 오리지낼리티란 결국 내가 보이는 모든 모습이 진짜 나라는 당당함에서 나온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고, 뭘 입든, 꾸밈과 거짓됨이 없어서 스스로에게는 물론 세상에도 부끄럽지 않은 자세가 중요하다.

김호영의 큰 야망이 있다면?

언젠가 내 이름 자체가 브랜드화되길 바란다. 내 애칭인 ‘호이’, ‘호이스럽다’가 어떤 명사나 형용사의 의미로 쓰일지 기대된다. ‘끌어, 올려~’ 혹은 ‘해야지!’처럼 내가 자주 사용하는 멘트를 통해 나는 활력과 에너지를 주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 현상은 내가 의도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다. 내 말투와 외모, 패션 등등을 부담스러워하고 나를 시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나를 받아들여줄 만한 세상이 된 것이다. 다소 우울하던 팬데믹 시국을 거치면서 내 에너지가 긍정적으로 다가간 타이밍 덕도 있을 것이다. ‘김호영’이라고하면 떠오르는 개념은 ‘재능 있다’, ‘스타일리시하다’, 혹은 ‘시끄럽다’ 정도였던 듯하다. 이제는 에너지나 힐링이 연상되는 사람으로 또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미래가 궁금하다. 나의 야망은 어쩌면 지금 한창 구체화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패션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레스
헤어
임안나
메이크업
최민석
어시스턴트
신지연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