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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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회화, 영화, 패션 등을 오가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 <더블유>의 제17회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을 위해 기꺼이 협업에 응한 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전해 들은 다니엘 아샴은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을 위해 작업했던 기존 하트 드로잉을 보완해 다시 서울로 보냈다. 잊지 못할 그 날짜가 마음을 감싸고 있다.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과 첫 연락을 나눈 때는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지낼 무렵이었다. <더블유>의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은 편집부 전원이 멀고 먼 길을 의욕적으로 행군하는 프로젝트로 업계에 익히 소문나 있다. 이 캠페인의 결과물로 보여질 크고 작은 콘텐츠 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무척 방대하다. 무언가를 선보인다는 그 시각적 경험을 위해,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진 협업 아티스트를 찾아야 했다. 미국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은 조각, 회화, 영화, 패션과 가구 디자인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업을 한다. 무엇보다 협업에 능해서 전방위적으로 활동 중이다. 아디다스, 리모와, 디올, 티파니, 그리고 패럴 윌리엄스, 현대 무용의 전설로 통하는 머스 커닝엄 등이 아샴과 작업한 수많은 대상 중 당장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쪽이 나을까? 다니엘 아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34만 명이다. 동시대 미술계 인물 중에 이만한 팔로워가 지켜보고 주목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자기 삶을 보여주고 나누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아샴의 SNS 활동에 대해 인상적인 언급을 한 적이 있다. 2018년 출간된 다니엘 아샴의 연대기적 작품집 <Daniel Arsham>에서 버질 아블로는 미술비평가에 가까운 시선으로 아샴을 소개한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 최대한 많은 작품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세대의 창의적 인물들이 한 분야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아샴은 문화가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활동하는 연금술사와 같다.’ 경계의 벽이 낮다는 점과 과시욕의 차이란 뚜렷하게 있다. 아샴은 스스로를 홍보하는 데 명민한 동시에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보인다. 버질 아블로가 아샴에 대해 쓴 글의 제목 역시 아샴의 성향과 건축적 작업을 아울러 중의적으로 표현했을 ‘Break Through Walls’였다.

'Relics In The Landscape'전이 열리고 있는 영국 요크셔 조각 공원의 설치 장면과 다니엘 아샴. DANIEL ARSHAM WITH BRONZE ERODED BUNNY(LARGE), 2022. INSTALLATION VIEW AT YORKSHIRE SCULPTURE PARK. COURTESY PERROTIN GALLERY AND ARSHAM STUDIO. PHOTO BY ANTHONY DEVLIN/GETTY IMAGES FOR DANIEL ARSHAM.

'Relics In The Landscape'전이 열리고 있는 영국 요크셔 조각 공원의 설치 장면. UNEARTHED BRONZE ERODED MELPOMENE, 2021. INSTALLATION VIEW AT YORKSHIRE SCULPTURE PARK. COURTESY PERROTIN GALLERY AND ARSHAM STUDIO. PHOTO BY ANTHONY DEVLIN/GETTY IMAGES FOR DANIEL ARSHAM.

<더블유>의 캠페인에 대한 다니엘 아샴의 응답은 아샴 버전의 ‘마음’과 손글씨로 적은 ‘Love Your W’ 문구로 돌아왔다. “제가 작업한 드로잉을 보면 부서진 하트 모양입니다. 하트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하트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거예요. 크리스털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라난다고 알려졌죠. 부서진 하트처럼 보여도 곧 새살이 돋아나 완전한 모습을 찾아갈 겁니다.”

수수께끼 같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다니엘 아샴의 작업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 그의 주요 작업 콘셉트는 현재의 물건이나 무언가를 가지고 미래에 발굴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이다. 그런 작업 세계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건은 어느 시점엔 과거의 유물이 된다.’ 공사하려고 땅을 파다 연구 가치가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식의 소식은 종종 들려온다. 이 원고를 쓰는 중에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이 시에나 인근에 있는 온천 유적지에서 고대 청동 조각상 24점을 ‘득템’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런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다. 수백 년 후, 지금의 박물관과 물리적 형태가 얼마나 비슷할지 알 수 없는 어느 박물관에서 도슨트가 유리관 너머에 있는 검은 물체에 대해 관광객에게 설명한다. “2010년대부터 한동안 사람들은 저게 없으면 못 살았어요. 매일 들고 다니면서 손가락으로 만지고 쳐다보느라 하늘을 바라볼 새가 없었다고 하네요. 인류의 신체 구조가 거북목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초기 시대 유물입니다.” 아샴이 작업 대상으로 삼는 물건은 주로 아이코닉한 것들이다. 휴대폰, 컴퓨터, 카메라 중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상징성 있는 모델, 워크맨이나 붐박스, 포켓몬, 벅스 바니, 농구공, 미술관에서 볼 법한 조각상…. 어느 문화권에서 전시해도 관객이 알아볼 만한, 그래서 비슷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 아샴은 자신이 중학생 때 사용하던 책가방을 조각으로 뜬 적도 있다. MTV와 NASA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패치처럼 1980~90년대 특정 시기에 유행한 패치로 장식한 그 가방은 아샴에게 그 시대만의 유물이다.

각각 드로잉과 조각이지만 품고 있는 질문은 비슷하다. 포켓몬 캐릭터 ‘파이리’와 붐박스가 3020년경 유물로 발견된다면?

각각 드로잉과 조각이지만 품고 있는 질문은 비슷하다. 포켓몬 캐릭터 ‘파이리’와 붐박스가 3020년경 유물로 발견된다면?

허구의 고고학적 유물을 제작하기 위해 아샴은 화산재, 크리스털, 석고판이나 건축용 재료 등 미술용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다.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물질의 속성과 변환에 관심이 상당한데, 이에 관한 탐구는 또 다른 영역의 복잡한 이야기다. 그가 주물을 뜨고 조각화한 결과물은 유물답게 형태가 온전치 못하다. 침식, 부식, 더 나아가 파괴된 폐허의 이미지는 아샴이 만드는 여러 시각 작업의 주된 특징이다. 그리고 이 모든 특징을 관통하는 키워드에 바로 ‘시간’이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 혹은 감각을 뒤틀거나 붕괴시키는 일은 아샴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주제다. 물건이 유물이 되기까지, 매끄러움이 부식으로 향하기까지 필요한 것. 영화 <빽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말처럼 ‘과거는 현재고, 미래는 지금’이라는 문장이 성립되도록 만들어주는 것. 아샴의 유물 같은 조각품에 박혀 있는 알쏭달쏭한 요소인 크리스털이 서서히 자라나는 성질을 띤 광물이라는 점도 시간과 관련이 있다. 자기 인장을 협업물에 새기는 아티스트가 온전하지 않은 하트의 모양을 두고 ‘곧 새살이 돋아날 거예요’라고 덧붙일 때, 그가 ‘걱정 말아요, 이건 부서지는 게 아니에요!’ 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인류 문명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초의 문명은 아닐 수 있어요. 현존하는 건축물이나 인공 구조물 중 가장 오래 보존된 경우도 겨우 1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죠. 인간이 발견한 것 중에서는요.” 겨우 1만 년? 언젠가 이스터섬에 갔다가 유물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가 고고학이나 우주선에 관심이 많은 건 알았지만, 아샴의 시공간 개념은 짐작보다도 더 범우주적이다. “1만 년 이상 지속되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흔적만 없을 뿐, 2000만 년 전에도 우리가 전혀 모르는 문명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아샴의 작품을 두고 간혹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등을 언급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샴의 방점은 그런 데 있다기보다는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화석’ 이라는 이야기 쪽에 가까울 것이다. 발굴된 것처럼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 해도 아샴의 작품은 예쁜 조각품처럼 다가온다. 너무 매끄럽지 않고 살짝 거친 요소가 있어서 더 좋은, 낯익은 물건의 형태인데 독특함이 있는 오브제.

실험실 같은 인상의 아샴 스튜디오.

자신이 디자인한 소파에 누워 있는 아샴.

아샴의 초현실주의적인 대형 회화 앞에서.

뉴욕에 있는 아샴 스튜디오 내부는 온통 흰색이다. 직원들은 스튜디오에서 실험실 복장 같은 흰색 유니폼을 입는다. “보통 아침 6시 반쯤 일어나 짐에서 운동을 해요. 운동을 마치면 계란 몇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죠. 이제 차를 몰고 스튜디오로 출근합니다. 스튜디오에서는 오후 5~6시까지 머무는 편이에요.” 아샴은 요즘 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낸다. 내년에 예정된 큰 전시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협업에 능하며 관심사도 다양한 아티스트가 NFT를 외면할까? 작년에 아샴은 이더리움 NFT 시리즈의 첫 작품을 공개했다. “미술계에서 NFT에 아주 관심이 많죠. 거품이 낀 면도 분명 있지만, NFT는 참신한 개념이고 상황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봐요. NFT는 결국 협업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기술을 활용해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상태가 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아샴의 디지털 조각 시리즈 ‘Eroding And Reforming(침식과 재구성)’은 3D 애니메이션으로 흉상, 몸, 자동차 형태를 띤 조각이 점점 풍화되고 바스러지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한다. 몇몇 작품은 현실 세계의 계절에 따라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1980년생인 아샴은 쿠퍼 유니언 재학 시절부터 스나키텍처(Snarkitecture)라는 건축 스튜디오를 공동 설립해 작업에 꾸준히 건축 요소를 끌어들였다. 그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마이애미에서 지낼 때 그 지역에 건축 붐이 일었다고 한다. 철거되는 중인지, 새로 건축되는 중인지, 생성과 파괴의 경계가 모호한 건물들은 자주 그의 드로잉 대상이 되었다. “건축물은 단단하고 영원할 거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건축물이 유연하고 말랑말랑해질 때야말로 정말 흥미롭지 않아요? 제가 어릴 적 집을 다시 세우는 과정을 직접 본 경험이 건축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가 열두 살 때, 허리케인이 닥쳐 집이 무너졌다. 집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가 같은 자리에서 서서히 되살아났다. 아샴의 작품관에 자리 잡은 건축 요소와 감각은 그 시절에서 비롯된다.

그는 건축 역시 움직이고 변하는 개념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바스러진 형태의 조각과 함께 가장 알려진 다니엘 아샴의 작업은 ‘건축물이 유연하고 말랑말랑해질 때’와 관련한 것들이다. 벽면이 늘어나며 거대한 매듭을 이루거나 얇고 부드러운 커튼처럼 주름 잡힌 모습. 혹은 하늘에서 추락하고 있는 듯한 사람의 윤곽 형태대로 천장이 내려앉거나 벽면이 녹아내리는 모습 등. 흔히 단단하고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구조물을 가지고 아샴은 면과 실루엣의 유희를 벌인다. 흥미롭거나 기묘한 그 입체적 현장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벽은, 집은, 갤러리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 발상의 바탕이 되는 아샴의 머릿속에는 이런 명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모든 건 일시적이고, 그 무엇도 완벽하고 영원한 상태로 지속되는 건 없다.’

‘건축물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아샴의 생각을 구현한 ‘Large Knot’(2017).

‘건축물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아샴의 생각을 구현한 ‘Sideways Clock’(2012).

올해 아샴은 과잉 생산되고 빨리 버려지는 패션에 대항하는 브랜드, ‘오브젝트 포 라이프(Objects IV Life)’를 론칭했다. 그에겐 힙한 아티스트 혹은 디자이너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는 순수 예술과 다른 영역을 부지런히 기웃거리는 인플루언서 같다. “저는 제가 보고 싶은 걸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요. 그걸 공간 안에서 구현하기도 하고, 회화로 표현하거나 옷의 형태로 나타낼 때도 있는 거죠. 저 같은 창작자가 처음 있는 것도 아니에요.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한 창작자가 많아요. 비교적 최근으로 보자면, 앤디 워홀이나 로버트 라우션버그가 있네요. 특히 로버트 라우션버그는 정말 온갖 걸 다 만들었어요.”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에게 답하듯, 브랜드 웹사이트 내 소개글엔 이런 문구가 있다. ‘아샴에게 오브젝트 포 라이프는 시간 왜곡에 대한 그의 탐구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니라 작품 활동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재고로 쌓인 천을 재해석하는 아샴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물질 변환의 과정을 새롭게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저한테 인생의 물건이라면 바로 제가 입은 옷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의류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제가 원하는 의류를 만들기 위해서였죠. 저는 기능적이고, 지속가능하고, 낡아간다는 개념을 녹일 수 있는 옷을 원해요.”

다니엘 아샴이 뉴욕에서 서울로 보내온 드로잉과 손글씨는 12월호 스페셜 커버를 비롯해 10월 28일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행사를 위한 초대장, 100개 한정으로 제작한 기념 티셔츠, <더블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AR 필터(폰을 촬영 모드로 전환하면 3D로 구현한 하트가 화면 위로 귀엽게 동동 떠다녔다) 등에 두루 활용되었다. 행사 당일 갈라 디너와 파티가 진행된 포시즌스 호텔 서울 현장에도 그의 드로잉을 반영한 구조물과 영상이 자리 잡았다. 사실 대망의 행사일을 3일 앞둔 시점, 아샴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다. 디너에 참석하기로 일찍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아샴에게 비자 문제가 생겨 그가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것. 우리는 아샴의 작업 개념처럼 시간대를 오가며 ‘연장’ 하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떨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대신 아샴은 디너 자리에서 공개할 영상으로 인사말을 담아 전해왔다. 아샴이 <더블유>를 위해 작업한 드로잉을 다시 꺼내든 건 행사를 다 치른 이후다.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벌어진 비극을 전해 들은 그는 참사를 기리며 원래의 하트 드로잉에 작은 보완 작업을 했다. 잊지 못할 그 날짜를 두른 마음의 모습으로. 곧 새살이 돋아날 거라는 미래를 기약한 그의 말이 떠오른다.

2020년 포르쉐가 서울에서 선보인 아샴과의 협업 작품은 패널 곳곳이 움푹 파인 모습이다. 자동차 마니아인 아샴은 2018년 페로탕 뉴욕에서 개인전 '3018'을 할 때 갤러리로 자동차 두 대를 끌어들였다.

아샴이 시노그래피를, 퍼렐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은 현대무용극 'Rules of The Game'(2016). 아샴은 20대 때 머스 커닝엄 댄스 컴퍼니에서 무대 디자인 일을 했다.

서울에서의 만남이 취소된 후 뉴욕과 서울을 가로지르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아샴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테네시에서 열리는 ‘포르쉐 오프로드 랠리’를 보러 떠나는 길이었다. 자동차 수집에도 꽤 열성적인, 인기 많은 미국인 아티스트의 인생에 불안감은 없을까? “불안이라. 불안. 좋은 질문이네요. 아티스트는 세상에 내놓는 창작물로 항상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이 흥미로운지 관객에게, 또 본인에게 묻죠. 그런데 저는 직감을 믿는 편이에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끌리는 대로 결정하거나 만들어놓고서는 내놓지 않는 식이죠.” 그는 불안감에 대해 언급하진 않는 대신 아티스트의 직감을 입에 올렸다. 아티스트란 문화를 소화하는 사람이라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아티스트는 눈앞에 놓인 진실을 밝혀내는 존재예요.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드러내고, 그걸 마술 같은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합니다.” 먼 과거와 먼 미래까지 시간의 터널을 부지런히 오가는 이 여행자의 현재는 어떠할까? 10월 어느 날, 영국 요크셔 조각 공원에서 다니엘 아샴 개인전 <Relics In The Landscape (풍경 속의 유물들)>가 시작되었다. 짙은 가을의 우아하고 드넓은 정원에 아샴식 거대 유물이 자리한 모습은 특수효과를 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매력적이다. 그리고 서울의 <더블유> 편집부가 한창 마감 중일 때, 뉴욕의 시간 여행자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추가했다. 위트 있는 소개와 함께. “요크셔 조각 공원에서 열리는 제 전시는 3023년 가을까지 계속됩니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사진
COURTRSY OF ARSHAM STUDIO, YORKSHIRE SCULPTUR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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