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돌아온 2023 S/S 패션위크! 모두가 그 생생한 축제 현장을 아낌없이 만끽했다.
패션위크
꽃의 이름으로
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로에베에서 앤슈리엄(anthurium), 즉 홍학꽃 초대장이 왔을 때도 물론. 쇼장에는 거대한 홍학꽃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홍학꽃을 차용한 옷이 줄지어 나왔다. 풍선 굽을 지나 공기가 빠진 풍선이 뭉쳐 있는 듯한 슈즈, 픽셀처럼 보이는 톱과 팬츠 등 유난히 화창하고 따뜻했던 날과 어울렸던 봄날의 판타지아.
큰 그림을 그려라
스페인 예술가 산티아고 시에라가 설계하고 제작한 발렌시아가의 진흙 런웨이. 뎀나는 이 세트가 “진실을 파헤치고 현실로 내려갈 때”에 대한 은유라고 밝혔다. 흙은 쇼가 열린 컨벤션센터 너머 늪지대에서 채굴한 것으로 원예업체 플로렌타이스가 수거해 조경 및 원예 프로젝트 전반에 재활용할 것이라 밝혔다. 루브르 박물관 안뜰인 쿠르 카레에서 열린 루이 비통 쇼에는 거대한 꽃이 내려앉았다. 프랑스 예술가 필리프 파레노와 할리우드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임스 친룬드가 협업한 ‘몬스터 꽃’은 테마파크를 연상시켰다. 제스키에르는 “이 거대한 세트는 이번 디자인의 지퍼, 버클이 초대형 비율로 폭발한 것과 연결고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어둠의 로맨티스트
여느 때처럼 팔레드도쿄 야외 정원에서 열린 릭 오웬스 쇼. 특유의 높은 플랫폼 부츠와 전위적인 룩이 나오더니 구름 같은 튤 드레스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처음 보는 듯한 릭 오웬스의 가운. 푸크시아 핑크색 또는 검은색 구름이 거대하게 꽃을 피웠다.
우중 운치
지방시 쇼는 파리 식물원에서 열렸는데, 파리에서는 흔치 않은 스콜성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게스트들은 비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중 쇼가 될 뻔했으나 다행히 쇼 시작 직전에 비가 그쳤고, 촉촉한 운무 덕에 쇼장에는 특별한 운치가 더해졌다.
작고 소중해
미우미우 앰배서더로 파리 컬렉션에 처음 참석한 아이브 장원영. 쇼가 끝난 직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에게 보자기로 싼 작은 선물을 건넸다. 자신을 초청해준 디자이너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녀의 예쁜 마음씨가 빛난 순간!
패션 연금술
첨단 기술을 활용해 벨라 하디드의 보디에 스프레이를 뿌려 드레스를 만든 코페르니. 이는 ‘스프레이 온 패브릭’ 기술을 발명한 디자이너 겸 과학자 마넬 토레스와 6개월 동안 연구한 것으로 쇼 직후 48시간 동안 약 376억원가량의 바이럴 효과를 양산했다. 코페르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바스티앵 마이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의무”라며, “우리는 이것으로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감정을 만들어내는 경험이죠”라고 감회를 밝혔다.
메가 파워
팬데믹 상황의 진정으로 오프라인 쇼가 재개되면서 파리 패션위크에 본격적으로 초대받은 블랙핑크. 디올의 지수를 시작으로 생로랑의 로제, 샤넬의 제니가 파리 컬렉션에 참석했고, 그들이 이동하는 곳곳에 케이팝 팬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하이퍼 보디
이번 시즌은 새로운 관능의 법칙을 세운 시즌이라 할 만하다. 살을 노출하는 방식이 아닌 꼭 끼게 밀착된 몸의 실루엣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생로랑, 스텔라 매카트니, 루도빅 드 생 세르냉, 빅토리아 베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
헬로 몽테뉴
자크뮈스가 파리 몽테뉴 거리에 부티크를 오픈했다. 거리 곳곳에 등장하는 팝콘 트럭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매장에도 뽑기를 하며 팝콘을 먹을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우연히 목도한 명랑한 이벤트는 지금 여기가 패션위크 기간임을 체감하게 한다.
런웨이의 히어로
진흙길을 뚜벅뚜벅 걸어 발렌시아가 오프닝을 연 카니예 웨스트, 오페라식 무대로 톰 브라운의 쇼를 연 배우 그웬돌린 크리스티, 작고 단단한 체구로 미우미우 피날레 룩을 장식한 FKA 트위그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프런트로나 포토월이 아닌 루이 비통의 런웨이에 선 모델 정호연까지. 캣워크에서 더 반가운 그들의 발걸음!
애프터파티
패션위크의 놓칠 수 없는 재미, 애프터파티! 한 호텔 루프톱에서 열린 지방시 파티에는 에스파가 등장해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날 밤 파리 북부의 커다란 공연장에서 열린 발렌시아가 파티에는 오버사이즈 트랙슈트, 펜타 부츠 등으로 치장한 뎀나의 추종자들로 꽉 찬 DJ 파티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투스타
파리 컬렉션의 둘째 날 밤, 이자벨 마랑 컬렉션이 열린 팔레 루아얄은 그야말로 선미와 JAY–B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프런트로에서는 그들을 취재하기 바쁜 매체 기자들과 포토가 엉켜 제대로 찍기조차 어려웠을 정도. 패션위크에서 처음 만난 그들의 인기가 그만큼 뜨거웠다는 증거다.
익숙하고도 낯선
일하는 여성을 위한 멋진 워크웨어 룩을 만드는 스텔라 매카트니 쇼에 친숙한 프린트가 올랐다. 일본 아티스트 요시토모 나라의 소녀 얼굴이 그려진 프린트. 익살맞은 표정의 캐릭터는 미니멀한 드레스와 슬리브리스 톱에 내려앉았다. 12월이면 이들이 그려진 캡슐 컬렉션을 손에 쥘 수 있다고.
C’est cool
베를린 베이스의 브랜드 오토링거는 이제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를 넘어 젠지 세대의 힙스터 브랜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오토링거는 마레의 한 고등학교를 빌려 새하얀 매트리스 위에서 쇼를 진행했는데, 어센던트 비에르쥐와 빌 카울리가스(Ascendant Vierge Mix Bill Kouligas)의 믹스 음악에 맞춰 터지는 플래시 조명과 조합은 피날레 내내 환호성을 일으켰다.
머드 클럽
수천 톤의 진흙이 쌓여 있던 발렌시아가 쇼장. 길고 긴 진흙 런웨이를 걷느라 슈즈, 옷 밑단은 물론 모델들의 다리까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음 날 리씨 현장에선 옷과 슈즈가 아주 깨끗하게 전시되어 있었다는 점!
낭만주의자
로맨틱한 퍼포먼스로 쇼장에 달콤한 기운을 불어넣은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이번 시즌 역시 연극 무대로 우리를 초대했다. 이리나 샤크와 벨라 하디드를 든든한 지원군으로 내세운 그는 핀조명 아래 수많은 모델을 단상위로 올렸고, 프런트로에는 도자캣과 할시를 나란히 앉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연극 무대의 마지막 퍼포먼스는? 안드레아스가 꽃다발을 도자캣에게 안기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전신 타투의 시대
‘언박싱(unboxing)’을 콘셉트로 쇼를 진행한 발렌티노는 드레스, 케이프는 물론이고 타이츠와 슈즈, 장갑, 가방, 페이스 페인팅까지, 멀티 V 로고로 뒤덮었다.
셰어 더 모멘트
이번 패션위크에서 주목받은 게스트 중 한 명은 60년대 미국 대중문화 아이콘 셰어. 올리비에 루스테잉과 함께 발망의 피날레를 장식했고, 앤 드뮐미스터 쇼에선 그녀의 등장만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핑크 캐딜락에서 춤을
“파리 오페라에 신데렐라가 섞인 미국 무도회.” 미국적 화려함이 특징인 톰 브라운의 패션 감수성은 신데렐라와 차밍 왕자가 영원히 행복하게 춤을 추는 핑크색 튤 캐딜락으로 피날레를 맺었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