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돌아온 2023 S/S 패션위크! 모두가 그 생생한 축제 현장을 아낌없이 만끽했다.
꽃가루를 뿌려
꽃가루 폭죽을 터뜨린 듯 얼굴이 알록달록 물든 모델이 등장했을 때 S/S 컬렉션임을 체감했다. 매트한 페인트 스틱과 컬러 피그먼트를 미간이나 관자놀이 부근 등 생소한 부위에 얹어, 봄여름의 싱그러움을 표현한 쳇 로의 메이크업 룩.
여왕이 떠난 거리
문을 닫은 상점 앞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광장의 전광판에는 여왕의 왕관이 빛나고 있었으며, 버킹엄 궁전 바로 옆 그린 파크는 여왕을 추모하는 메시지와 각양각색의 꽃으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서 여왕을 기리는 흔적을 바라보다 공원에 꽃 한 송이를 두고 오며 담은 순간들.
유리의 무한 변신
컬렉션 기간 동안 V&A 뮤지엄의 존 마데스키 정원은 아티스트 오메르 아르벨의 유리 세공 스튜디오로 탈바꿈했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골동품을 가마에 굽고, 입으로 부는 등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유리 예술품을 창작해냈다. 박물관 역사상 최초인 유리 공예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보다니!
물 위를 걷는 소녀들
수잔 팡의 쇼장에 들어서자 동화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곳곳에 안전요원이 배치된 실내 수영장, 커다란 볼과 물 위를 런웨이로 만들어놓은 기발하고 흥미로운 세트는 쇼 전부터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각종 깃털, 튤립, 구슬 등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걸어 나오는 모델들 모두 동화 속 주인공 같았다.
시몬 로샤의 남성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사라졌다지만, 시몬 로샤의 남성복을 상상해본 이가 몇이나 될까. 사랑스러운 소녀의 옷을 대표해온 시몬 로샤의 첫 남성복이 탄생했다. 런웨이 위 소년들은 샤 장식 보머 재킷, 원피스, 러플 장식 톱 등을 입고 등장했고, 쇼장의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따뜻하귀
귀마개인가, 발라클라바인가. 정수리부터 턱끝까지 감싸는 타이트한 소재의 헤드 액세서리의 정체가 궁금했다. 얼굴형을 감싸 자연스레 얼굴 크기를 보완하는 효과까지! 지금은 낯설어도 언젠간 우리도 쓰고 있을지 모르는 스테판 쿡 버전의 ‘귀도리’.
여왕을 추모하며
런던 패션위크 직전에 들려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 많은 브랜드가 쇼 스케줄을 바꾸고, 규모를 축소하고, 여왕을 추모하는 의상을 무대에 올렸다. JW 앤더슨은 여왕의 연혁을 담은 티셔츠를 피날레 무대에 올렸고, 할펀은 여왕의 1955년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블루 케이프로 오프닝을 열었다. 대영박물관에서 진행된 에르뎀 쇼는 검정 베일을 드리운 세 착장으로 쇼 피날레를 장식하며 여왕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제1회 퀸 엘리자베스 2세 디자인상을 수상하고, 생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쇼장을 찾기도 했던 리차드 퀸은 어땠을까. 여왕이 서거한 후 10일 동안 22개 룩을 만들며 깊은 경의와 애도를 표했다.
하트 시그널
몇 시즌째 유효한 컷아웃 트렌드의 중심에 넨시 도자카가 있다. 가느다란 스트링으로 섬세하게 디자인된 브래지어는 여전히 근사했으며, 재킷과 데님, 사이클링 팬츠 등 웨어러블한 의상이 추가되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의상 곳곳에 배치된 하트 디테일. 브래지어 중앙, 팬츠의 사이드에 장식된 하트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들여다보는 재미도 컸다.
머리 위 스파클링
왁스로 단단히 고정한 후 비비드한 글리터와 스와로브스키를 잔뜩 얹은 헤어는 어두운 쇼장 조명 아래에서 형형하게 빛을 발했다. 전투적이면서도 여유롭게 반짝거리던 KNWLS의 모델들은 컬렉션의 테마 ‘Glimmer(깜박이는 빛)’ 그 자체였다.
누구나 런웨이 위에 오를 수 있다
런던 패션위크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모델이 런웨이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런던의 신성 시네이드 오드와이어는 다양한 능력, 성별, 체형, 피부 톤의 모델을 대거 런웨이에 등장시켜 시선을 모았다. 그녀의 쇼는 더블유 인스타그램의 컬렉션 포스팅 중 셀러브리티 파워 없이도 큰 반응을 이끌어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순간을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초포바 로웨나, 넨시 도자카 등에서도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볼 수 있었다. 패션은 어디에나 있고 모든 사람의 삶의 일부이며,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을 상징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 패션 에디터
- 김민지
- 뷰티 에디터
- 김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