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아티스트들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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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패션을 통해, 패션은 음악을 통해 지금 여기를 기억한다. 

2년여의 팬데믹 시간을 지나 우리의 일상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가장 와닿게 해준 사건은 얼마 전 성대하게 막을 내린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마스크를 벗고, 공연장에서 다시 뛰고 소리 지를 수 있게 만들어준 뮤직 페스티벌의 귀환은 긴 팬데믹 우울 속에서 비로소 우리를 해방시켰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의 목소리와 퍼포먼스만큼이나 주목받은 건 그들이 이 멋진 무대에 ‘무엇’을 입고 나왔는지였다. 60년대 비틀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모즈룩, 데이비드 보위, 키스, 게리 글리터 등의 펑크와 글램 룩에 이어, 90년대 그런지 음악과 쌍을 이룬 그런지 룩, 힙합 뮤지션과 그들의 스타일 등 음악과 패션의 근사한 케미를 기대하며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불꽃 없이도 불꽃놀이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해리 스타일스의 구찌 스팽글 점프슈트는 말 그대로 ‘코첼라 페스티벌로의 회귀’를 뜨겁게 축하하는 듯 강렬했다. 평소 화려하고 파격적인 젠더리스 의상을 즐기는 그의 선택은 현장은 물론, SNS를 달구기에 충분했다. 네크라인이 깊이 파인 점프슈트 덕분에 그의 흉골에 자리한 나비 문신까지 볼 수 있었다. 이번 코첼라 뮤지션들의 의상을 보면 화려함과 평범함 사이를 유연하게 오간 점이 눈에 띄는데, 그중 평범함의 노선을 탄 저스틴 비버의 선택은 짚고 넘어갈 만한 의미가 있다. 오랜 팬데믹 기간을 의식한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아’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강렬하고 화려했던 해리 스타일스의 선택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큼직한 발렌시아가 데님의 허리춤을 운동화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뉴에라를 뒤집어쓴, 상의 탈의의 헤드라이너라니! 그 모습은 마치 베니스 비치에서 웃옷을 벗고 보드를 타는 소년을 코첼라 무대로 옮겨 놓은 듯 보였다. 재미있는 건 그가 벨트를 대신해 허리춤에 맨 신발끈인데, 실제로 스케이트보더들은 보드를 타다 보면 신발끈이 자주 끊겨 여분의 신발끈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신발끈을 주로 허리에 묶는다고 한다. 더없이 실용적 필요에서 나온 행위가 하나의 스타일링 포인트가 됐달까? 뮤지션 저스틴의 비버의 차림새는 그 자체로 당대의 문화 코드를 담고 있고, 우리는 그의 스타일링에서 지금 그가 무엇을 추구하고, 좋아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패션과 음악은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그 이유는 음악이, 그리고 패션이 단지 균질화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자신의 개성, 또는 정치적 신념 및 창의성을 드러내는 대단히 효과적이고 아름다운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문화는 패션과 음악의 어우러짐을 이끌었고, 패션은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그렇게 음악과 패션이 조우한 풍성한 역사적 장면 속에 새로운 한 줄을 추가할 뮤지션이 이번 코첼라 페스티벌에 또 한 사람 있으니, 바로 3년 만에 완벽한 헤드라이너로 자리매김한 빌리 아일리시이다. 그녀는 신인 디자이너 콘래드(@conradbyconrad)의 낙서 프린트 티셔츠와 바이커 쇼츠, 손목 워머,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채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의 선택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특히 톱 뮤지션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지명도 낮은 신인 디자이너의 의상을 택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녀의 관심사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랄까. 언제부터인가 스타성 뛰어난 뮤지션의 무대는 격렬한 비즈니스 현장이 되었다. 협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벌어지는 전투나 다름없을 정도. 당연히 유명 가수의 무대의상은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이 두드러진 추세이고, 수치적으로 보아도 런웨이 안보다 번외 활동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 뮤지션의 무대 의상을 제작하는 일이 쇼에 초대해 프런트로에 앉히는 것보다 비즈니스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유튜브 조회수를 떠올려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코첼라에서도 그런 경향이 뚜렷했는데, 코난 그레이의 핫 핑크 드레스는 발렌티노가, 도자캣의 Y2K 무대의상, 메건 디 스탤리언의 실버 모노키니는 돌체&가바나가 긴밀히 협력한 결과물이다.

런웨이 밖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션과의 긴밀한 협력은 런웨이 안에서 발표한 그 어떤 룩보다 더 오래 회자된다. 기억을 넘어 패션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패션쇼 현장도 마찬가지다. 패션 브랜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의상을 소개하는 컬렉션 쇼에서 소리, 즉 음악은 단순한 에너지 이상으로 해당 시즌의 전체 분위기를 집약해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이렇게 음악과 패션 이 두 요소는 런웨이 안에서 함께 작동하며 컬렉션의 본질을 묘사하고 포착하기 위해 서로 무척 신중하게 접근한다. “음악과 패션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패션쇼 음악 제작자 미셸 고베르(Michel Gaubert)의 말처럼 런웨이 쇼의 관객은 음악을 통해 런웨이 풍경을 기억 속에 각인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디올 쇼에서의 경험은 이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디올 서울 쇼의 오프닝 음악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재해석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이었고, 스케이트보드를 탄 여성 보더들과 함께한 디올의 펑크 스쿨걸은 한마디로 ‘Toxic’과 함께 정의되었다. 초여름 저녁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서울을 위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서사는 음악을 통해 경험으로 습득되었고, 이질적이고 묘한 조합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날처럼 내 기억에 거의 문신처럼 새겨진 날이 또 있는데, 펑크와 데님의 변형을 주제로 한 준야 와타나베의 2020 S/S 컬렉션이다. 파리의 이른 아침, 준야 와타나베 쇼 런웨이에 퀸의 ‘Somebody To Love’ 속 프레디 머큐리 목소리가 크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을 때를 선명히 기억한다. 그날 런웨이 모델들이 펼친 데님 플레이는 음악과 함께 이리저리 찢기고 해체되었고, 컬렉션 룩들은 마치 퀸의 연주를 현실화한 것처럼 기분을 고양시켰다. 이처럼 런웨이의 음악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장이 전하는 표정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하고, 그 경험은 몸속에 깊이 새겨진다. 그렇듯 음악은 컬렉션의 의미나 지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타일 여행을 하는 셈이고 숱한 모험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스타일 코드라면 그것이야말로 패션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기억과 음악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감안할 때, 패션쇼 중 소용돌이 치는 교향곡은 디자이너의 시각적 아이디어를 사운드로 합성하여 단 하나의 사운드트랙으로 컬렉션의 본질을 영원히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패션쇼 현장의 비트가 수십 벌의 옷보다 더 큰 감동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스트라빈스키는 말했다. “음악은 인간이 현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영역”이라고. 페스티벌의 뮤지션이 입고 올라간 복장을 통해 그 무대를 기억하고, 런웨이에 울려 퍼진 음악으로 인해 그 시즌의 룩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은 패션을 통해, 패션은 음악을 통해 현재를 그린다.

패션 에디터
김신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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