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수와 보낸 어느 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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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는 온통 산이었고, 펜션의 푸른 수영장에는 깊은 고요함만이 흐르고 있었다. 배우 박해수와 보낸 어느 봄날이 그랬다. 화보 촬영을 마치자 그는 수영장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부서지는 포말들. 영화 <야차>와 <유령>,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과 <수리남>까지. 올해만 네 편의 주연작을 공개하는 그는, 꼭 짧게 조우한 그 봄날과 무척 닮아 있었다.

셔츠와 바지는 코스 제품.

<W Korea> 마침 어제가 자가격리가 풀리는 날이라 들었다.

박해수 맞다. 근데 격리하면서 너무 많이 먹어서…(웃음). 오늘 마침 화보 촬영이고 해서 어제 운동이나 한바탕했다.

지난주만 해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 현장에 있었다.

별들의 세상이더라고. 옛날 <토요명화>에서 볼 법한, 아 근데 <토요명화> 너무 오래됐나…(웃음). 어쨌든 어릴 적 영화에서 본 배우들을 많이 만났다.

당신의 SNS를 보니 시상식에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다정히 찍은 셀피가 있던데.

원래 내가 숫기가 정말 없다. 누구한테 먼저 사진 찍자고 다가가질 못하는 성격이다. 보통은 그런 데 가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근데 컴버배치한테만큼은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싶더라고.

모처럼 용기 낸 건가?

맞다. 그건 용기였다(웃음). 사실 컴버배치를 만나는 게 나한테는 꿈이었다. 2014년 연극 <프랑켄슈타인>에서 ‘피조물’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 연극이 내게는 굉장히 의미가 큰 작품이다. 그걸 계기로 영화, 드라마계에 ‘이런 배우가 있더라’는 나에 관한 얘기가 돌면서 공연계에만 있다 다양한 작품의 오디션을 볼 수 있었고, 지금 회사와도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했던 2014년 바로 전년도에 컴버배치도 영국 국립극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을 연기했다.

엄청난 동질감을 느꼈겠다.

그렇지. 컴버배치한테 가서 ‘나 당신 연극을 봤어요’ 했더니 ‘오 마이 갓!’이라면서 정말 기뻐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피조물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여러 가지 자세하게 물어보더라고. 컴버배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하니까 ‘네가 더 잘했을 거다’고 덕담도 해주고.

로브와 안에 입은 초록색 톱, 바지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사실 오늘도 몇 시간 후면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한다. 오늘 촬영장에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왔던데, 그 안에는 주로 뭐가 들어있나?

현지 날씨가 별로 춥지 않대서 그냥 면 티셔츠 몇 장에 라면, 김, 누룽지 정도?(웃음)

어떻게, 이번에도 수상을 예감하나? <오징어 게임>이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아마 잘되지 않을까. 너무 감사하지. 그런데 수상 여부보다 한국 작품, 배우가 해외 시상식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좋은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영화 <기생충>, <미나리>가 앞서서 그랬고. 어쩌면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작품들의 다리가 돼서 그 맥을 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올해만 당신의 주연작 네 편이 공개된다. 영화 <유령>과 <야차>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종이의 집>까지.

사실 3년 반에 걸쳐 찍은 작품들이다. 천천히 열심히 해온 것들이 공교롭게 한 번에 나오게 됐다.

이 중 세 편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이런 말이 있더라. ‘넷플릭스의 아들이 송강이라면 넷플릭스의 공무원은 박해수다.’

어휴, 다행이다. 예전에 나보고 넷플릭스의 아들이라고 했을 땐 너무 부끄러워서(웃음). 아들이라고 불리기엔 나이가 몇인데….

4월 8일 넷플릭스 영화 <야차>가 공개되며 그 첫 스타트를 끊을 예정이다. 중국 선양을 배경으로 일명 ‘야차’가 이끄는 국정원 비밀공작 전담 팀 ‘블랙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여태 보지 못한 첩보 액션물이라던데.

맞다. 아마 공간감이나 색감이 굉장히 새로울 거다. 전체 촬영 기간의 한 달 반 정도를 대만에서 촬영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정말 많은 인파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리얼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현 감독님이 원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실제 성격도 그런데 글도 굉장히 통쾌하고 시원하다. 대만에서 다 같이 회식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감독님이 대형 스크린을 빌려다 편집본을 쭉 보여준 적이 있었다. 원래는 그렇게 잘 안 하지. 사전 유출 위험이 있으니까. 근데 감독님이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렇게 편집본을 봤는데 딱 이런 생각이 스쳤다. ‘모처럼 시원한 액션 첩보물이 나왔구나.’

대만에서는 주로 어떤 하루를 보냈나?

배우들이랑 재미있게 논 기억밖에 없다. 설경구 형님, 이엘, (송)재림이. 대만에 간 첫날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훠궈에 맥주를 마셨다. 처음엔 한두 병만 마시자 했는데 그게 스무 병이 됐고(웃음). 그때 비가 살짝 내렸는데 습하고 좌판이고 하니 한국의 포장마차 느낌이 나더라고. 사실 촬영 전까지 긴장이 많이 됐는데 그 자리에서 경구 형님이 ‘형’이라 부르라 하시면서 긴장이 많이 풀렸다.

많은 배우들이 설경구와 함께 작품을 하고 나면 그를 마치 첫눈에 반한 사람인 양 말하더라. 최근 당신의 인터뷰를 보니 당신 또한 그런 기미가….

하하. <야차>뿐 아니라 이해영 감독님의 영화 <유령>에서도 경구 선배님과 함께했다. 참 신기하다.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까지 다 챙기시거든. 이름도 다 외우신다. 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떻게 자연스럽게 아신다. 연기에 고민이 있어 여쭈면 ‘네가 더 잘 아는데 내가 뭘’ 이라면서 툭툭거리시는데 인간적인 고민에 있어선 너무나 잘 들어주신다. 같이 아파해주고. 정말 어마어마하신 분 같다. 내가 너무 자랑하고 다녀서 선배님은 좀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긴 한데(웃음).

하지만 <야차>에서 당신이 맡은 검사 ‘한지훈’이란 인물은 설경구가 맡은 블랙팀 리더 ‘지강인’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서로 팽팽히 대립각을 세우기 때문에 친분을 떠나 카메라 앞에선 ‘상대에게 밀려선 안 된다’ 하는 신경전이 있었을 텐데.

이런 건 있었지. 촬영 초반 주눅이 들어서 내가 준비한 연기를 못할까 봐. 워낙 대선배님이니까. 그런데 진짜 좋은 건, 내가 어떤 연기를 해도 선배님이 다 흡수한다는 거다. 성격상 현장에서 서슴없이 얘기하면서 만들어가는 게 훨씬 편하다. 또 경험상 현장에서 실제 대립한다고 대립이 되진 않더라고. 나는 현장에서 뭔가를 구하는 편인 것 같다. 같이 얘기하고 소통하면서 만들려고 한달까.

영화 <유령>도 공교롭게 첩보 액션물이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한 셈이다. 이런 작품들이 당신을 찾아온 건가, 당신이 찾아간 건가?

전자인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전자였다. 결국은 작품이, 캐릭터가 배우를 찾아간다고 생각하거든. 이건 내가 연극할 때부터 그랬다. 캐릭터에는 그걸 쓴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지 않나. 이를테면 그 영혼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배우를 찾아가 만난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과 배우가 자석이라면 작품이 배우를 끌어당기는 힘이 세지 않나 싶은 거지.

<유령>은 193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항일 조직의 스파이로 의심받은 다섯 사람이 외딴 호텔에 갇히는 이야기를 그린다. 블라인드 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들었다.

아마 보면 알겠지만, 섹시하다. 굉장히 섹시하다. 개인적으로 색감 있는 고전 시 같다고도 느껴진다. 대사가 굉장히 함축적이라 캐릭터가 내뱉는 단 한 마디에도 여러 겹이 담겨 있다.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은 작품의 장르는 첩보 액션이지만 결국 ‘캐릭터 영화’가 될 거라 말하던데.

이해영 감독님은 예전부터 느꼈지만 참 사람이 시인 같다. 재미있으시고 겸손하면서 지적이다. <유령>을 준비하며 배우들이 빛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작품에서 정말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유령>은 내가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극 중 ‘카이토’는 내가 표현하기에 불가능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정말 미친놈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불가능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언어가 가장 컸지. 이 문제로 한창 고민할 때도 경구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선배님께 전화해서 ‘너무 하고 싶은데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어보니까 우선 감독님을 만나보라면서 쉽진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길로 감독님을 만나러 갔는데 왠지 모르게 ‘가능하겠다’ 생각이 훅 들면서 욕심이 더 생긴 것 같다. 아까 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작품이 그랬지만 <유령>은 굉장히 단시간에 큰 자석으로 나를 확 끌어당긴다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끓는 이건 뭐지?’ 하면서 들어갔던 작품 같다.

그 이유를 지금쯤 알 것 같나?

그 캐릭터가, 그 캐릭터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자체가 너무 연기해보고 싶었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완전 도전 의식이었지. 내가 할 수 있어서 한 게 아니라. 왜, 안 될 것 같으니까 더 하고 싶은 그런 게 있지 않나. 마치 먹으면 안 되는 걸 되게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뭐 하나를 하면 끝장 보는 스타일인가? <유령>의 대사도 대본을 받고 일주일 만에 외웠다고 들었다.

어휴, 다 외우진 못했다. 전체 리딩에서 사람들 걱정시킬까 봐 가능한 한 많이 외우려고 노력한 거지. 사실 나는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뭐 하나를 끈기 있게 하는 성향도 아니다. 나보다 집요하게 붙잡고 있는 배우들이 사실 더 많다. 나는 좀 게으르고 ‘더 이상 뒷걸음질 칠 수 없다’ 싶을 때만 움직인다. 그런데 막상 닥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 독기나 악으로 하는 편이고.

‘게으른 완벽주의자’ 정도다?

오, 맞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기한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움직이는데, 그때 막 엄청나게 움직인다. 그래서 평소엔 누가 보면 백수 같다고들 한다(웃음).

배우는 관객을 만나며, 관객의 피드백을 받으며 생명력을 얻는 직업이다. 당신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관객의 피드백은 무엇이었나?

지금 탁 떠오르는 피드백이 있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2008년 <사춘기>라는 뮤지컬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들 이야기인데 내용이 굉장히 잔인하다. 학생들끼리 서로 자살을 유도하고, 일반 성인극보다 훨씬 깊이가 있고 작품이 무겁다. 어느 날인가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 하나가 공연이 끝났는데도 공연장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15분 동안 오열하면서. 나중에 그 학생을 만났는데 뭔가, 죽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내게 대뜸 ‘너무 고맙습니다. 살려주셔서’라고 하더라고. 그러다 7년 뒤 연극 <유도소년> 공연차 지방에 있을 때인데 어느 날 공연 후 어떤 분이 오셔서 말을 건네는 거다. ‘저 기억하세요?’

설마.

‘누구시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 ‘저 잘 살고 있습니다.’ 참 고마웠던 게, 그분은 사람이 힘들 때 마치 음악이나 영화를 찾듯 극장에 찾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내가 거기 있었던 거지. 우연히 그분의 삶 속에 내가 잠깐 있었던 거다. 그분 때문에 연기를 한다, 이건 또 너무 거창하고 내가 마치 굉장히 큰 사람 같고 하지만, 어쨌든 작품을 하며 불현듯 그분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티셔츠는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는 제냐 제품. 어깨에 걸친 흰색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07년 연극 <안나푸르나>로 데뷔해 주로 공연계에서 활동하다 2017년 신원호 감독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주연을맡으며 첫 TV 진출을 했다. 당신에게 출세작이라 생각되는 작품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인가, 전 세계적 팬덤을 가져다준 <오징어 게임>인가?

출세작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이지. 100%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김제혁’을 안 만났으면 아마 그 이후의 작품도 없었을 거다. 신원호 감독님에게 정말 큰 도전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내 나이가 참 위험성이 많은 나이였다(웃음). 물론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님께도 너무 감사하다. 지금 이런 상황이 신기해서 언제 한 번 미국에서 신원호 감독님께 전화한 적이 있다. 그냥 생각이 너무 많이 나더라고. ‘감독님 덕분에 처음으로 미국도 와봤습니다’ 했는데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셨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내 인생에서 너무 큰 이슈였지.

당신에게 배우의 꿈을 꾸게 만든 영화는 무엇이었나?

사실 어렸을 땐 크게 연기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보시는 <토요명화>의 서부 영화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처음으로 어떤 매력을 느꼈던 것 같고. 본격적으로 연기에 흥미를 느끼는 계기가 된 건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였다. 왠지 거기서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멋지고 아름답고, 하여튼 자유로워 보였다. 그 영화들이 나에게 엄청 큰 영향을 줬지. 감수성이 풍부하고 에너제틱할 때 개봉됐으니까. 대사를 다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것들이 삶에 조금씩 영향을 주면서 이쪽 길이 나에게 열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박해수 화보 B컷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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