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 앞에서 (정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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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원, 그리고 배우 정제원 인터뷰.

<쇼미더머니 5>의 래퍼, <ONE DAY>라는  생애 첫 앨범, 그리고 영화 <굿바이 썸머>의 현재.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하는 한 남자가 있다. 방황의 시간을 지나 독립적이고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에 입성한 뮤지션 원, 그리고 배우 정제원과 나눈 짧은 이야기.

메탈릭한 줄무늬 재킷과 셔츠, 팬츠, 넥타이, 벨트, 앵클부츠는 모두 생로랑b y 안토니 바카렐로 제품.

인스타그램의 포스팅을 거의 다 지웠다. 최근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그냥 어느 순간 다 지우고 싶어졌다. 그런 시기가 다들 있지 않나? 아마 이번 에 새 앨범이 나오면 지금 올려둔 3개의 포스팅도 지우고 뭔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운영할 생각이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아 앞으로 SNS 도 다시 활발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2년 동안 발표한 곡이 2곡밖에 없는데도 여전히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유튜브나 브이로그 같은, 팬들과 소통할 창구를 만들려고 한다. 그간 여러모로 폐쇄적이었는데 앞으로는 쉴 틈 없이 얼굴을 보여드릴 거다. 평소 에 사람들도 잘 안 만나는 편인데 그런 성격도 바꾸려고 애쓰는 중이다. 어느 순간 정제원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제 방식대로 기를 모으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웃음).

앨범 준비에 한창이라고 들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곡 작업은 거의 끝났고 부수적인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발매 시기는 9월이 목표인데 많은 것을 혼자 처리하다보니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음악을 오래 해왔는데 그동안 발표한 곡이 많지는 않다. 이번에 다양한 음악을 담아 나의 명함 혹은 포트폴리오 같은 형식의 앨범으로 내려고 한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면서 만든 앨범이다. 진심이 담긴 노래가 많다.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나? 지금 내 나이 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정립되지 않은 불안한 존재,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리지도 않은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았다.

도트 패턴 셔츠와 재킷은 윈도우 00 제품.

회사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 힘으로 음악을 제작한 셈이다. 장단점이 분명할 것 같은데 어땠나? 나에게도 처음 도전하는 일이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친구 작업실에 가서 틈틈이 녹음하고 친구들이랑 같이 며칠 동안 지내면서 한 곡씩 만들고 집에 들어가서 쉬다가 또 곡을 만들고 이렇게 지냈다. 프로듀싱, 비주얼 부분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고 있다. 사실 작년에 음악을 그만두려고도 했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일처럼 느껴지면서 음악에 대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어느 순간 음악을 다시 하게 되더라(웃음). 이번에는 재미있게 즐겁게 하고 싶었다.

나름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지 점이 있나? 동안 내가 어떤 성격인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런 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지금이 좋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행동, 말, 음악 모든 것에 솔직함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다.

팬츠는 윈도우 00 제품. 스터드 장식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무언가 만들고 싶어지는 순간은 주로 언제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사라져도 창작물은 영원히 남는 거라고. 세상에 내놓고 온전히 공개해야 진정한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누워 있다가도 글이라도 쓰거나 녹음이라도 한 번 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오늘 작업한 화보도 창작의 하나이지 않나? 사진 촬영이 됐든 음악이 됐든 연기가 됐든 지금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음악이 주는 기쁨을 언제 느끼나? 내가 느끼는 기분과 감정을 표현할 매개가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표현을 안 하면 계속해서 쌓이기 마련이다.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감성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 통로가 음악이 됐을 때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낀다.

가죽 롱 코트는 프라다, 안에 입은 호피무늬 베스트는 닐 바렛, 팬츠는 윈도우 00, 앵클부츠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반지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목걸이와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7월 25일 개봉한 영화 <굿바이 썸머>는 정제원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할 기회였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지만 클리셰가 없는 담백한 연기 톤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이 본인에게 남긴 것들은 무엇인가? 작년 여름에 촬영한 영화다. 1년 전에 찍어둔 영상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까 새로웠다. 기억 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며 나도 몰입해서 봤다. 그러면서 짜릿한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 어제 마지막 무대 인사라서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원래 그런 자리를 힘들어하는 편이지만 끝까지 남아 있었다.

배우로서 꼭 해봤으면 하는 역할이 있나? 타투를 오픈할 수 있는 역할! 그동안 타투랑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내 몸에 있는 문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 그리고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류승범 배우처럼 날것의 느낌이 있는 역할 같은 거.

왼쪽 팔의 타투가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랩을 한 적 있다. 타투에 담긴 의미가 있나? 사실 타투 자체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타투를 했는데 첫 타투로 굉장히 ‘빡센’ 그림을 선택했다(웃음). 당시에는 몸에 문신을 하는 행위 자체가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엠브로이더리 장식 베스트와
팬츠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제품. 깃털 장식 목걸이와 벨트,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고 들었다. 그 시간이 나라는 사람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줬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무섭기도 했다. 당시에 학교를 그만두는 친구는 별로 없었으니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정말 많이 가졌다. 그 시기를 보내면서 꽤 단단해졌다.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는 것을 살면서 점점 더 느끼고 있다.

한국을 벗어나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외국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 이번 앨범이 나오면 작은 공연장을 돌며 유럽으로 투어 공연을 해보고 싶어서 계획하고 있는데 혼자서 준비하려니 쉽지는 않다. 나를 아직까지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계속해서 더 열심히 할 거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기가 지나면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 싶고.

침대 곁에 두고 뜨문뜨문 읽고 있는 책이 있나? <악의 꽃>을 보고 있는데 읽고 또 읽어도 하나도 모르겠더라. 네 번이나 봤는데도 어렵다. 그것을 언젠가는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스물여섯에 읽는 것과 서른여섯, 마흔여섯에 읽는 것이 다른, 그런 책을 읽으려고 한다. 지금 보고 나중에 10년 뒤에 읽었을 때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들.

서울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있나? 여의도로 넘어가는 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좋아한다. 한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정말 예쁘다. 그런데 사실 집을 가장 좋아한 다. 집, 침대 속이 제일 좋다.

일과 일상의 분리가 잘 되는 편인가? 그동안 쉬는 방법에 서툴렀다. 잘 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를 보며 명상을 조금씩 해보고 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겪었는데 그때 명상 도움을 받았다. 사물을 바라보며 5분 동안 아무 생각 안 하는 훈련을 해보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잘 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패션 에디터
김민지
포토그래퍼
고원태
스타일리스트
김영진
헤어
김우준
메이크업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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