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간 이어진 깊은 인연, 칼 라거펠트를 추억하며 펜디가 상하이에서 최초로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였다.
브라운 컬러의 FF 로고는 지루하고 오래된듯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펜디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땐. 하지만 브랜드를 알수록 디테일을 들여다볼수록 칼 라거펠트의 디자인 ‘이야기’를 들을수록 감탄이 나오는 트렌디한 브랜드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 5월 31일 상하이에서 열린 ‘로마 인 상하이’ 이벤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펜디 본사가 위치한 로마를 상하이에 재현한다는 콘셉트로 펼친 이번 행사의 중심은 브랜드 최초로 선보인 남녀 통합 컬렉션이다. 칼 라거펠트는 지난 2월 2019 F/W 밀란 패션위크 여성복 쇼가 공개되기 하루 전날 세상을 떠났고, 이는 그가 펜디를 위해 디자인한 마지막 컬렉션이 되었다. 펜디의 남성 컬렉션을 맡고 있는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이를 예견했을까. 그녀는 애정과 신뢰 속에 브랜드와 맺어온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남성 컬렉션에 담았고 여성 컬렉션에 앞서 공개된 2019 F/W 남성 컬렉션에 칼 라거펠트를 게스트 아티스트로 초청했다. 이제 칼이 펜디의 피날레에 선 모습을 볼 순 없지만 그의 방대한 컬렉션이 남았고, 펜디는 54년 간 함께한 칼 라거펠트의 역사, 2007년 브랜드 최초로 만리장성에서 쇼를 선보인 기억을 되새기며 이번 상하이 쇼를 위해 여성복 10벌, 남성복 5벌을 추가 제작했다.
쇼는 상하이 현대미술관 ‘파워롱 미술관(Powerlong Museum)’ 내부의 나선형 경사로를 런웨이 삼아 시작되었다. 쇼장 중앙엔 1981년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곡선 형태의 ‘칼리그래피(Karligraphy)’ 로고가 장식되어 있었고, 이를 활용한 룩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성 컬렉션은 펜디의 오랜 시그너처인 트롱프뢰유가 반영된 튤 소재 보디슈트, 하이칼라 시프트 드레스가 특히 아름다웠다. 칼리그래피 모노그램은 카보숑 단추와 인타르시아 모피에 장식되어 펜디의 헤리티지를 드러냈다. 폭신한 엠보싱 페이턴트, 장식 스티치, 멀티 스트랩 등 룩에 매칭된 바게트백은 새로운 모습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고 접어서 클러치로 들 수 있는 메탈 프레임 토트백, 망사 느낌의 가죽 소재 피카부 백도 매력적이었다.
남성 컬렉션은 “양면성은 모든 디자인의 바탕을 이루는 펜디의 DNA다”라고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표현했듯 많은 요소가 양면적으로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베이지와 브라운에 비비드한 레드, 블루를 포인트로 활용한 의상은 미래와 전통의 공존을 나타냈다. 런웨이 위로 오간자 소재가 적절히 사용된 턱시도와 모피, 실루엣의 볼륨과 소재의 투명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룩들이 등장했다. 남성복 역시 FF 로고와 칼리그래피 로고가 사용되었는데, 미래적인 무드의 골드 체인 주얼리, 슈발리에 반지는 여자도 탐낼 만큼 아름다웠다. 한편 펜디의 바게트백을 남성용으로 처음 선보인 것도 기억할 만한 포인트다. 미니부터 맥시까지 크로스, 핸디, 벨트 백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바게트백을 든 남자 모델이 지나갈 때 여자 게스트들의 눈이 반짝였다. 남성, 여성 컬렉션 그리고 이번 쇼를 위해 추가 제작한 15벌까지 총 102벌이 미술관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늘어선 피날레는 현장의 모든 이가 칼 라거펠트를 뜨겁게 추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컬렉션이 펜디의 과거, 칼을 추억하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다면 애프터 파티는 펜디의 미래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디지털 미디어에 적응해온 브랜드답게 디지털 월, 그래픽 아트로 파티장을 꾸몄기 때문. 단 하룻밤을 위해 펜디는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상징을 상하이로 옮겨왔다. 디지털 형태로! 환상적인 조명과 현란한 프로젝션 체험형 공간으로 이어진 파티장의 핵심은 로마 스페인 광장을 보는 듯 계단을 배경으로 베스파에 앉아 드라이브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포토존과 직접 그라피티를 그려보고 이미지로 받아 공유 가능한 그라피티 월. 펜디의 로마다움과 밀레니얼 세계의 접점 속에서 여배우 공리와 웨이션브이의 텐, 루카스, 양양을 비롯한 셀레브리티와 인플루언서들은 펜디의 무드를 만끽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칼을 추억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칼 라거펠트와 펜디는 패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러브 스토리로,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 삶에 함께할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을 살핀 끈기와 노력에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쇼를 며칠 앞두고 통화했을 때도 그의 머릿속은 컬렉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그가 무척 그리울 겁니다.” 칼 라거펠트가 펜디를 위해 디자인한 룩을 보고 느끼고, 파티를 즐기며 현장에 모인 사람들 역시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칼과 펜디의 길고 진한 54년간의 러브 스토리를 기리며, Forever Karl!
- 디지털 에디터
- 사공효은
- 사진
- COURTESY OF FE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