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소희 대신 오늘의 안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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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안착하기 위해 길목에 선 안소희.

보통 이상의 존재들이 광을 뿜는 연예계에서 여전히 유일무이한 얼굴. 모두가 나를 사랑해달라 외칠 때, 그 개성만으로도 가만히 빛나던 소녀. 배우 [tagSearch cont=’안소희’]로 안착하기 위해 길목에 선 그녀를 들여다봤다.

파자마풍 셔츠와 팬츠는 질 샌더 제품.

“나의 색은 하얬으면 좋겠다. 무슨 색이든 입힐 수 있고 , 입혔을 때 그 색이 잘 나오고.

또 하얀색은 그 자체로 환하게 빛이 난다. 나는 그런 사람, 그런 배우이고 싶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플라잉 요가를 하더라. 그거, 아무나 해내지 못하고 기본 근력이 좀 있어야 하지 않나? 맞다. 나는 근력을 키울 목적으로 플라잉 요가를 시작했는데, 시작할 때부터 근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잘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더라. 전부터 필라테스를 오래했고, 헬스나 수영 등 운동을 쉬지 않고 해서 기본 근력이 있는 편이다.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의 매력이 어떻게 다르던가? 필라테스를 할 때는 겉으로 운동하는 티가 하나도 안 나서 서운했지만, 속이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가 발라지는 그 변화가 좋았지. 플라잉 요가는 즉각적인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말 그대 로 몸과 정신이 확 깬다. 해먹을 몸에 감으면서 조였다가 풀고, 몸을 뒤집기도 하니까. 해먹의 압박이 심해서 멍이 들기도 한다.

안소희를 작품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딱 2년 전 이병헌, 공효진과 출연한 영화 <싱글라이더> 때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나? 조만간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 2가 방송을 탄다. 연말부터 지금까지는 내 촬영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곧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작년에 시즌 11회를 우연히 봤다. 침대에 누워서 불량한 자세로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작가랑 감독은 누구지? 싶어서. <논스톱>부터 <안녕, 프란체스카>와 <푸른거탑>을 쓴 김기호 작가의 드라마라고 하니까 그 진지함 속의 개그에 수긍이 갔다. 이번에도 시즌 1과 똑같이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남자 셋과 여자 셋 청춘이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아주 털털하고, 정의롭기도한 ‘김정은’ 역이다. 호기심 많고, ‘오지라퍼’ 경향도 있는 귀여운 아이. 연기자 지망생인데 생활을 위해 일단 알바를 열심히 뛰며 사는 20대다.

털털하고 생활력 있는 열혈 알바생? 안소희가? 나도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작가님도 나를 만나기 전에는 새침하고 도도한 역에 맞을 거라고 생각하셨다더라. 막상 만나보니 정은이 캐릭터를 연기할 때의 내 모습이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 보다 더 편해 보였다고 한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점을 모를 테니 이번에 보여주자, 내 이미지와 다른 역할을 잘해내면 더 매력 있을 거라고 하셨다.

보디슈트는 렉토, 통 넓은 팬츠는 더로우 제품.

새 작품에 임하는 기분이 어떤가? 현장에 갈 때마다 긴장된다. 걱정되는 긴장이 아니라 설레고 신나는 긴장감이랄까. 오랜만에 작품 활동을 하니까.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많이 보고, 대본에 필기도 빽빽하게 해놓는 배우들이 있다. 안소희의 것은 어떤가? 연습용 대본에는 메모를 아주 많이 한다. 그런데 매회 새 대본이 나올 때마다 그 내용을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으니 현장에 나갈 때는 내 연습용 대본과 노트의 것을 대강 정리해놓은 대본만 들고 간다.

예를 들면 어떤 메모를 해놓나? 음, 가장 최근에 한 메모로는 어느 대목에 ‘담백한 정은이’라고 적어놓은 게 기억난다. 그 신에서는 좀 담백하게 연기하고 싶어서.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나? 반복해서 연습하기, 도움을 구하기, 속상해서 울기 등등… 그 모든 걸 다 한다(웃음). 내가 자주 울지는 않지만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잘 운다. 시원하게 털어 버리고 다시 연습에 들어가는 거지. 그렇게 연습하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연기하는 건 나지만 그걸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존재가 감독님과 작가님이라, 그분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쓴다.

당신 스타일리스트와 이런 이야길 했다. 안소희는 예나 지금이나 마냥 소녀 같은 얼굴인데, 대체 나이가 들면 어떤 얼굴로 변할까? 화장을 안 해도 모공이라는 게 안 보이는 피부의 소유자이고(웃음). 올해 몇 살인가? 스물여덟이다.

스물여덟은 어떤 나이지? 아직 어리지만,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

스무 살 겨울에 나와 인터뷰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기분이 드는 건 아닌데, 몸이 예전 같지 않긴 해요.” 큭, 웃겨라.

스무 살 소희는 빨리 성숙해지고픈 마음이 별로 없다고, 어릴 때 어른인 척하면 그거 어색하고 웃길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나이 들어 어린 시절 모습을 봤을 때 웃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말 속에서 당신의 조숙함과 여유를 느꼈다. 와, 되게 쑥스럽다. 내가 그런 말을?

원더걸스가 가요계의 봉우리에서 내려와 미국땅이라는 평지에서 모험을 하던 즈음이었으니 까마득한 시절이다. 이제는 그때와 다른 챕터의 삶을 살고 있다. 연예계 데뷔 후 가장 힘들고 위태롭다고 느낀 시기는 언제일까? 배우 안소희로서 말하자면 2016년 <부산행> 개봉 이후 드라마 <안투라지>를 거쳐 <싱글라이더>를 끝내고 난 즈음. <부산행>이 천만 관객 이상을 끌며 흥했는데, 그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속의 나를 봤다는 뜻이다. 연이어 작품을 하느라 다소 정신이 없이 보내다가 뒤늦게 영화 속 내 연기에 대한 반응을 접하기 시작했다. 속상했지. 그 후 지금까지 공백이 있었고.

자신의 연기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나보다. 힘들었다는 그 시간을 통해 내린 결론이 있나? 결국은 ‘열심히 잘하자’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내 안에 뭘 많이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한다고 해도 내가 부족했던 것 같다. 연기를 한다는 건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사람과 있을 법한 일을 표현해내는 일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무대를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직업으로 인생의 반 가까이를 보냈기 때문인지, 일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루스한 슈트는 골든 구스 제품.

이를테면 언젠가 베를린에서 화보 촬영을 마친 후 홀로 남아 여행했다던데, 그것도 일종의 채움을 위한 길 중 하나였나? 그렇다. 작년에는 일본에 갔다. 한국에서부터 오로지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아직까지 해본 적 없지만… 친한 친구와 같이 여행하다가 친구는 먼저 가고, 나는 신칸센을 타고 가고시마현으 로 이동해서 5~6일을 보냈다.

혼자 여행한 가고시마는 어땠나? 나 홀로 여행자에게 적극 추천한다. 귀여운 전차가 다니는 소도시인 데, 전차나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소도시이지만 어쨌든 도시라 있을 것 다 있으면서 너무 번잡하지 않아서 좋다. 내가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이지만 거기선 신나서 나름 많이 찍었다. 그곳에서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이동하면 근교에도 볼거리, 놀거리가 많더라. 나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못 가봤지만, 검은 모래로 찜질할 수 있는 해변과 온천으로 유명한 곳도 있고.

안소희 혼자 일본 휴양지 마을에서 검은 모래를 목까지 덮고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다고 상상하면…. 그것까지는 차마….

그렇게 나 홀로 여행을 감행하기 전에 가장 두려운 점은 뭔가? 겁이 많은 편인데 희한하게 여행에 있어서는 겁이 없다. 누군가 날 알아봐서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도 안 한다. 아마 가수 활동할 때 뉴욕에서 생활한 경험 덕일 수도 있다, 거기서 많이 돌아다녔다. 가까운 사람들은 나보고 너무 겁이 없다고, 밤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한다. 내가 가면 안 될 곳에 가는 것도 아닌데 뭐.

니트 원피스는 니나리치 제품.

인생의 버킷 리스트 같은 게 있나? 스쿠버다이빙을 꼭 해보고 싶다. 자격증 따겠다고 조금씩 준비하고 알아보기만 하다가 아직까지 못 했다. 아, 빨리 하고 싶어.

감독이나 작가가 되어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면, 안소희라는 배우에게 어떤 연기를 맡겨보고 싶나? 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오늘 화보 촬영 때 감정 표현을 하면서 몸을 쓰고 움직임이 있는 콘셉트에 처음 도전해봐서 걱정됐지만, 신선한 경험 이었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춤을 춘 사람이고 운동도 좋아하는지라 몸 쓰는 액션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액션물을 하기 전에 대사 없이 표정과 몸으로 표현 하는 무언극에 도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도움 되지 않을까? 처음 상업 영화에 도전한 때가 2007년 이미숙, 김민희와 출연한 <뜨거운 것이 좋아>다. 이제 배우로서 가고 싶고, 가야 하는 길이 있지는 않나? 어떤 연기를 하든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자극적이고 센 극 안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를 맡더라도, 그런 인물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길이 있는 것 같더라. 그렇게 작품 속에 물 흐르듯 배어들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만의 색이 있어야 하겠지.

안소희의 색은 어떤 색에 가까울까? 하얬으면 좋겠다. 무슨 색이든 입힐 수 있고, 입혔을 때 그 색이 잘 나오고. 그건 다른 색을 잘 받쳐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또 하얀색은 그 자체로 환하게 빛이 난다. 나는 그런 사람, 그런 배우이고 싶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김영준
스타일리스트
남주희
헤어
백흥권
메이크업
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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