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영화와 같다면? 혹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말처럼 꿈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 무언가, 모든 초상(Portrait)이 존재한다면 우리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이 모든 물음에 화답한 이가 있다. 도쿄에서 선보인 에르메스 전시 <Avec Elle>를 진두지휘한 영화감독이자 큐레이터 로르 플라마리옹. 그녀는 우리에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 7월 10일, 도쿄국립예술센터(The National Art Center in Tokyo). 이 현대적인 건물 안을 서성거리다 ‘Hermes’라는 붉은색 네온사인을 밝힌 흰 문을 열자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났다. 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색다른 전시가 될 거라는 홍보 담당자의 말처럼, 보도자료에 ‘ The Movie Shoot Experience’라고 소개된 공간은 마치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녀와 함께’를 뜻하는 전시 제목 <Avec Elle>가 암시하듯, 이곳에선 한 여성의 신비로운 자취를 좇는 흥미로운 과정이 펼쳐졌다. 때론 내가 관객이자 스토리 속의 조연이 된 채로.
에르메스의 손길이 닿은 모든 패션과 리빙을 아우르는 오브제처럼, 영화 역시 각 분야의 장인이라고 불릴 만한 전문가들이 품은 비전과 노하우를 거쳐 궁극적으로 탄생되는 법. 그 교집합을 추구한 에르메스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은 7월 11일부터 30일까지 도쿄에서 펼쳐진 새로운 콘셉트의 전시를 통해 에르메스의 2018 F/W 시즌 컬렉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제껏 본 적 없는 세상, 그 안에서 펼쳐진 영화적 체험에는 에르메스 여성 유니버스의 아티스틱 디렉터 발리 바레와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인 나데주 바니-시뷸스키의 감각과 통찰력이 농축되어 있었다.
대략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거대한 스튜디오로 변신한 공간, 그 한가운데에서 한 여성의 사진이 찍히고 있다. 발리 바레와 나데주 바니-시뷸스키가 그려온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여성이 그 주인공이다. 어느 운명적인 날의 오후, 한 일본 작가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이내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 채 그녀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정이 있다며 만남을 거절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지인들의 연락처를 작가에게 건넨다. 그들이 들려준 그녀와 얽힌 특별한 추억을 통해 그는 그녀를 생생히 그려내고, 작가의 호기심은 극에 달한 채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원하고 꿈꿔온 여성이다. 다만 그녀가 머문 공간에서 엿볼 수 있는 그녀가 매일 착용했을 법한 옷과 백, 스카프와 부츠, 나아가 리빙 오브제가 그녀가 누구인지를 암시해줄 뿐.
한여름 밤의 추리 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하게 세트장을 오가며 작가의 관점과 영화감독의 눈으로 카메라 렌즈를 보고 배우를 관찰하는 순간과 순간이 이어지며 관람객은 특별한 몽상에 빠졌다. 하나의 시퀀스가 끝나면 또 다른 촬영장으로 분주히 이동해 백스테이지에서 여주인공의 파우더룸을 들여다보거나, 엑스트라로 분해 녹화되는 카메라를 향해 다 함께 즉흥연기를 펼치며 그녀의 묘연한 행방에 잠시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이처럼 촬영 기술팀이 주위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가운데 만끽한 생경한 풍경은 실재와 환상을 넘나드는 영화적 상상의 자유를 건넸다. 또한 한 여성을 중심으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스토리는 기존에 에르메스가 선보여온 여성 유니버스의 진화를 증명하며, 지극히 미래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모든 관객의 가슴에 오묘하고도 깊은 여운을 남긴 채.
- 패션 에디터
-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