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clam and carry on (이진욱)

이채민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지만, 그 어려움이 한꺼번에 해일처럼 몰려오는 순간도 있다. 배우 이진욱이 연기한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의 남자도 곤경의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특별한 묘수가 없어도 극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 믿으면서.

레드 패턴 베스트 Calvin Klein 205W39NYC by Boontheshop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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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ea>이진욱은 시 읽는 남자다. 요즘도 시를 읽나?
이진욱 그러니까, 난 그런 사람이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더블유>와는 2015년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행사 이후 다시 만난 셈이다. 그 당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라는 드라마에 기대가 컸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다. 대본이 정말 재밌고 기대되는 작품이었는데, 편성 문제로 방송사가 바뀌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누구든 일을 하면서 그런 상황을 만날 순 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 시간을 좀 힘들게 보냈다.

시련이 왔지만, 하기로 한 일을 잘 마무리한 때가 아니었나?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그 반응이 광고로도 이어졌다. 인생이 나름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고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삶일 수 있었지만, 그즈음 배우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끝나기 이틀 전부터 시작된 기침이 이상 수위를 넘었는데 정밀 검사를 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고 멈추지가 않았다. 체력은 바닥이었고, 곧 죽을 사람처럼 기침을 해댔다. 당시 촬영 때문에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기내 한 프랑스 남자가 ‘기침을 멈추든 자리를 바꾸든 하라’라고 하기에 황당해서 다투기도 했다(웃음). 그러고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생각하고 파리행이나 런던행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국 못 가게 됐지만.

빨강 피케 셔츠와 안에 입은 셔츠, 핑크색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빨 강 라이닝이 들어간 팬츠는 Lanvin by Boontheshop, 스니커즈는 Dior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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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은 공백기 이후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리턴>보다 먼저 촬영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을 만난 게 2017년 1월이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이라니 일단 제목이 너무 신기하잖아. 뭐지, 하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시나리오가 좋더라. 무엇보다도 개인적 바람과 무관하게 상업적인 배우로 흘러가던 내 배우 커리어에서 만나본 적 없는 작품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절필한 작가 지망생으로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경유’를 연기했다.
그런데, 특별히 뭔가를 하려고 한 연기는 아니다. 대부분 감독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다행히 그 당시의 나와 경유가 접점이 있었다. 하지만 경유에게 당시의 내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그게 그때의 나여서, 그 느낌이 담겼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고서 달콤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배우 이진욱을 만났다. 때문에 영화 초입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물론 그 이후부턴 경유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됐지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작업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대중은 실장님 혹은 부잣집 아들 역할을 주로 해온 나 같은 배우에게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자신들의 생각과 달라졌을 때, 아마도 아니 분명히, 별로라고 느낄 거다. 내겐 그 상태를 깨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작품으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컸다.

검은색 재킷은 YCH, 안에 입은 줄무늬 카디건은 Prad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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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이 남자, 왜 말을 안 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구석이 많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넘어지면 웬만한 사람은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경유는 그러지 못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일이나 인생에서의 능력치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힘이 평균 이하여서다. 답답하지. 그런데 어떤 부분에선 그게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임에도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있다. 별것도 아닌데 죽어도 안 되는 것, 문제가 있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 경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에 고현정 씨가 먼저 캐스팅된 작품이라 더 욕심났을 것 같다.
그럼! 그동안의 작품을 통해 ‘이 배우는 정말 이런 능력이 있구나’ 하고 느껴온 터라 기대가 컸다. 호흡을 맞춰 보니 정말 달랐다. 사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굳이 상대 배우를 끌어주고 밀어주거나 챙겨줄 필요는 없다. 안 그런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연기 지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하게 되는 배려 말이다. 고 선배는 나뿐 아니라 그 어떤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함께 불태워주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연기를 잘하신다, 진짜! 여러 가지 느낌에서 잘하는데, 알고 보니 그 장면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관객이 그 장면을 수긍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등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세밀한 설계가 자신이 가진 것과 섞여서 표출된다. 그러니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을 수밖에.

네이비 오버사이즈 재킷, 가죽이 패치워크된 팬츠, 검은색 티셔츠는 모두 Balenciaga, 스니커즈 는 Converse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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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간과해온 것을 발견하기도 했나?
아무래도 그렇다.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고민이,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부분이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라니, 굉장히 틀에 박힌 고민이다 싶긴 할 거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는 엄연히 내가 평소에 말하는 방식과도, 표현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다양한 정보와 에너지를 내 안에 담아놓고 그것들이 잘 어우러져 알아서 작용할 수 있도록, 자유로워지려고 했다. 지금까지 나는 자연스러움을 요구하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고, 이런 식의 접근을 해본 적도 없었다. 이번 작품을 기준으로 내 안에 편안함이란 개념이 생겼으니 어느 작품에 가서도 그 포맷에 맞는 편안함을 추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시도해본 작업에서 자신의 역량은 만족할 만했나?
만족하는 배우는 없지 않을까. 어쨌든 희망적이긴 하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이진욱이 저런 연기도 하네’, ‘저런 연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준 것 같으니까. 당연히 ‘엄청 잘했다’는 찬사는 못 받았다. 하지만 그 희망만으로도 괜찮다.

노란색 줄무늬 니트, 안에 입은 줄무늬 셔츠, 검정 트레이닝 팬츠는 모두 Prad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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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도 ‘묘하게’ 희망적이다.
희망은 거창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결말이야말로 희망적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의 어려움이 팡파르 터지듯 극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지 않나. 시간이 흐르다 보면 희미해지는 것도 있고, 해결된 건가 싶게 흘러가는 것도 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것이 극적인 해결이 되는 거지. 경유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다가 문득 다른 것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날의 작은 행동이 희망의 단서가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무서운 겨울 손님’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떳떳한 사람은 없다는 게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것 같다. 경유는 별것 아닌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폐 아닌 폐를 끼치며 산다. 그러다 마지막에 한 걸음 내디딘다. 개인적으로 ‘오늘의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과거를 돌이킬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의 선택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그 선택이 나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5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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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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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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