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저도 사죄합니다

이채민

그때는 그랬었다. ‘내가 뭐라고’. 나는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바라보는 #Metoo에 관하여.

Climate Activist's Sign
속죄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2017년 10월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희롱 사건이 터지며 #Metoo 라는 해시태그가 처음 쓰였을 때.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 저런 일도 있구나. “허허. 거참. 천하의 나쁜 놈들이네”라며 그저 나에겐 강 건너 불구경, 아니 바다 건너 미국에서 벌어진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불길은 점점 커졌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시인 고은, 극작가 오태석, 김기덕 감독, 배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그리고 안희정 충남지사까지. 어느 술집을 가도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는데 말이야”라며 미투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켠다. 이 사회가 성희롱으로 이렇게까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몰랐다’고 이야기해야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안 그랬으니까. 회사 직원에게 치근덕대거나 야한 농담을 던진 적은 없는 듯했다. 설사 그랬더라도 그때는 ‘친하니까’라며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방관자였다. 말하자면 때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리는 사람 쪽에 가까웠다.

3년 전이었다. 부서 회식 다음 날 한 여자 선배가 커피를 마시며 어렵사리 운을 뗐다. “어제 김 과장님이 취하셨는지 나한테 심한 말을 했어. 혼자 산다고 했더니 ‘자취하고 잘 취하는 여자가 인기가 많다’며 집 비밀번호가 뭐냐고, 나중에 재워줄 수 있냐고 묻더라. 술기운에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무척 기분이 안 좋았어.” 평소 김 과장은 사람 좋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술만 먹으면 사고를 쳤다.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든지, 일어나 보니 쓰레기통에서 고양이와 같이 자고 있었다든지 등 회식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갱신했다. 그녀는 수치심을 느꼈다며 국장님과 인사팀에 정식으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이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순간, 머릿속에 김 과장이 평소 잘해줬던 것들, 얼마 전에 아이가 태어났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뭐, 김 과장이야. 원래 그런 사람도 아닌데. 술기운에 한 농담치고는 너무 세게 나가는 것 같다” 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내가 잘 말하겠다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타일렀다. 그럴 용기도 없었으면서 뻔뻔하게도 그런 말을 했었다. 결국, 그녀는 본부장님을 찾아가 회식 자리에서 당한 부당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 본부장님은 “어떤 놈이야 내가 아주 죽여버리겠어!” 라며 발끈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묵인된 것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나와 그녀는 각자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겼다. 김 과장은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여전히 술을 먹으면 개가 된다고 한다.

Activists Hold Women's Strike And Rally In NYC For International Women's Day
그때 내가 나섰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 지금이라면 내가 나섰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남자들이 쓸데없이 내세우는 의리, 우정이 바로 이럴 때 제동을 건다. 성희롱이 나쁘다는 건 알지만 그 잣대가 ‘내 사람’에게는 한없이 낮아진다. 가슴을 움켜쥐었다거나 엉덩이를 만진 게 아니라면 ‘그럴 수 있지’가 된다.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회사 내에서는 성희롱을 했다는 프레임이 쓰이면 거의 성폭행범 취급을 받는다(멀쩡한 회사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피의자는 직장을 잃을 수도. 평생을 숨어 지내야 할 수도 있다. 근데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나선다고? 굳이? 내 회사생활을 걸면서까지? 결혼식 축의금을 낼 때 5만 원과 10만 원 사이에서 고심하는 그런 사이인데? 아니 심지어 결혼식 축의금도 냈는데? 나도 모르게 벽을 쌓고 자위했다. ‘내가 뭐라고’. 맞다. 난 그녀의 남자 친구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직장 동료일 뿐인데. 힘든 상황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용기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가 된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군대에서 폭행한 선임을 영창에 보낸 후임은 ‘관심병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2년을 보냈고 대학교 총장의 부조리를 언론에 제보한 내 동기는 졸업장을 따지 못하고 고졸이 되었다. 그때는 사회를 탓했다. ‘어차피 해도 바뀌는 건 없어.’ 어렵게 용기를 냈던 친구들에게 ‘유난스럽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감한 주제여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행동들이 이 사회를 이 지경까지 끌고 왔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이 작은 웹페이지 안에서 난데없는 고해성사를 한다. 많은 남성들이 이 글을 보고 ‘아’ 탄식을 내뱉기를. 적어도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럴 리 없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기를. 부당한 상황을 목격했다면 그 즉시 행동하기를. 본 대로 증언하기를. 사회는 변화고 결국 옳지 않음에 선 사람들은 도태될 뿐이다. #Metoo 운동을 지지한다. 세상은 점점 나아질 거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야 옳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박한빛누리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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