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누구의 삶을 들여다봐도 그건 존재 자체로 기적이라고, 에픽하이는 말한다. 숱한 감정을 쌓아 올린 그들의 음악이 다시 아른거릴 때가 왔다.
<W Korea>에픽하이의 정규 9집이 10월 23일 발매된다. 그 날이 딱 데뷔 14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 팀이 오래 유지될 수 있는 비결 하나를 꼽는다면 뭘까?
타블로 우리는 바라보는 것이 엇비슷하다. 없는 욕심도 있는 욕심도 비교적 일치한다. 현재 활동하는 힙합 팀 중 멤버 전원이 유부남인 경우는 우리가 유일하다더라. 각자 에픽하이라는 그룹을 벗어나면 집에서 구성하고 있는 그룹이 따로 있는 셈인데, 우리 중 그 거기에서 주인공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끼리 모이면 조연 셋이 모인 듯하다.
미쓰라 딱히 혼자 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 하던 일이나 잘 해야지, 우리가 처한 울타리를 벗어나는 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공통적이다.
투컷 누가 튄다 해도 그걸 갖고 뭐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새삼 멤버 모두가 유부남이라니 2010년 초에 만났을 때 신혼이었던 타블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결혼한 사람이었어요.”
타블로 내가 그랬나?(웃음) 아마 자기 최면으로 한 말 같은데… 그때만 해도 주변에 기혼자가 거의 없었다. 결혼하겠다고 하면 자주 돌아오는 반응은 음악 하기 힘들어진다거나 재능이 무뎌진다는 소리였다. 나에겐 그 말이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다. 두려움, 부정하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때는 존 레논처럼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이 결혼 후에도 자기 꿈을 계속 펼쳐나가는 삶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결혼한 미쓰라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쓰라 나만의 시간과 여유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 변화와 음악은 좀 다른 문제 같다. 과거에는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요소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젠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음악 작업뿐이니까 집중도는 오히려 높다. 결혼했다는 점만으로 일단 둘이 한 공간에 살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제외한 동안에만 ‘내 것’을 하니까 할 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타블로 어른이 되고, 결혼하고, 책임질 것이 늘어나면 애초 꿈꾸던 일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근데 결혼 여부를 떠나 책임질 일이 적은 시기에는 자기 꿈에 전력을 충분히 쏟지 못하는 거 같다. 낭비하면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곧잘 생긴다. 책임질 게 늘어난 상태에서는 그런 시간이 줄어드니까, 설사 일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들어도 밀도가 달라진다.
논리적으로 들린다. 그럼 스스로 예전보다 좀 더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미쓰라 그렇다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가는 거지. 물론 전보다 책임감이라는 걸 느끼고 살긴 한다.
투컷 남자는 어른이 되기 힘들다고 본다. 평생 어른인 척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타블로 우리의 경우 워낙 어릴 때부터 꿈꾼 일을 여전히 붙잡고 사는지라 어른이 되긴 힘들겠지. 남녀 상관없이 어른이고 싶은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가 어른이 됐다고 느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이런 유의 생각 자체를 못한다. 작업하거나 가족과 함께 있는 삶만 반복하다가 이렇게 인터뷰라는 걸 하면, 뭔가에 취해 있다가 불현듯 깨어나는 기분이다. 나와 투컷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많이 상대하는 사람의 나이가 2세에서 8세 사이다. 일반적으로 어리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훨씬 어리니까 우리도 딱히 어른일 이유가 없다. 내 ‘베프’가 딸 하루다. 하루에겐 내가 그렇고.
타블로는 1년 전 내한한 갈란트, 에릭남과 <W korea>인터뷰를 했을 때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공개하는 일이 예전만큼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그런 심리에 대해 멤버끼리 좀 더 집요하게 생각하고 대화해봤는지 궁금하다.
타블로 많이 했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번 앨범이 우리가 가장 오랜 공백기를 거친 후 내는 앨범이라고 하더라. 이전에는 꼭 에픽하이 정규가 아니더라도 솔로나 다른 무엇을 냈는데 말이다. 우리는 작업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그 시간 동안에는 실수해도 되고, 실패나 좌절을 겪어도 된다. 창작물은 오히려 그런 경험을 거듭할수록 완성형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결과물을 내놓는 순간 그 모든 게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 실수나 좌절 같은 것들이 더 이상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느낌? 그럼에도 앨범을 내게 만드는 유일한 요인이 있다면 누군가가 우리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게 참 신기하다. 그런 이유마저 없다면, 평생 작업만 하면서 보낼 수 있다.
아티스트가 ‘창작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본 전제를 제외하면, 초기에는 내 창작물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아닌 나를 기대하는 대상을 껴안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타블로 여전히 우리 음악을 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에픽하이가 ‘평화의 날’ ‘Fly’ 같은 곡으로 유명해졌다. 알려진 초기부터 우리는 그냥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서도 우리 음악을 듣고 힘을 냈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내 기억에 ‘사랑 타령도 아니면서, 대중적이고 신나는데, 위로를 주는 색의 음악’이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다.
투컷 그런 존재들이 다시 우리 음악을 원한다는 게 에픽하이의 성장 동력인 셈이다.
신보의 제목이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 다. ‘We’는 에픽하이와 팬 모두를 말하나?
타블로 해석은 자유지만 ‘뷰티풀’ ‘스페셜’이라고 하지 않고 ‘원더풀’이라고 한 건 뜻한 바가 있다. 이 세상 누구의 삶에 카메라를 갖다 대고 영화를 만들어도 그건 원더풀할 거다. 한 사람의 행복과 불행, 희열과 슬픔, 성공과 실패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이 사실 놀라운 일이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이뤄낸 기적이니까.
EPIK HIGH COMEBACK CONCERT
11월 3일 금요일 저녁 8시
11월 4일 토요일 저녁 7시 / 11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더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11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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