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두 사람은 구름 가득한 바다로 갔다 . 사진가 김중만이 다시 오지 않을 오혁의 지금을 찍었다.
스트랩 장식이 휘날리는 스웨이드 소재의 누빔 의상은모두 CraigGreen 제품.
김중만과 오혁, 두 사람을 마주하고 앉았다. 전농동 작업실은 청담동에 있던 벨벳언더그라운드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온 듯 김중만의 색깔이 여전히 강렬하게 배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그의 공간을 채우던 열대 식물들, 손때가 묻은 묵직한 가구의 에스닉한 선과 이국의 물건, 공간에 내내 감도는 향과 담배 냄새. 얼마 전 연희동에 스튜디오를 만든 오혁의 공간에서도 이렇게 자신의 스타일이 묻어날까 궁금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어요. 조금씩 채워가야죠.” 따가운 소리를 내며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는 호우의 한 중간, 사람을 실내에 감금해버리는 날씨는 김이 오르는 보이차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기에 적절했다.
뮤지션 오혁
번갈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때 짓는 손짓은 각자 몸에 가진 많은 문신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54년생 사진가가 지닌 별과 나비와 용, 문구와 숫자 같은 것들은 사실적인 그림체이거나 진지한 느낌을 주는 폰트인 데 비해93년생 뮤지션의 판다곰, 야자수, 앰프, ‘SHY’ ‘CHill’ 같은 문구와 지도, ‘20’ 같은 숫자들은 가볍게 끄적인 낙서 같다. 문신의 그림체만큼이나 두 사람은 다르고, 그걸 하나씩 새겨온 세월도 아마 다를 것이다. 세대라고 말하자면 두 세대 정도는 떨어져 있을 그 간극을 가진 채로 두 사람은 만났다. “젊은데 깊이를 가지고 보는 게 있더라구.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좋은 아티스트가 될 것 같았어.” 더블유와의 오혁 화보 촬영은 김중만의 제의로 이루어졌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상상해온 오혁을 만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TV가 납작하게 희화화해버리는 캐릭터의 이면을 보고 싶었다며. 사진가가 뮤지션을 만나고 싶다고 할 때 그 말은 ‘찍고 싶다’ 와 어느 정도 동의어일 것이다.
의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음악은 늘 사진과 함께 가며 기록되고 기억된다. 린다 매카트니가 비틀스나 에릭 클랩튼을 찍었듯, 안톤 코르베인이 U2의 모습을 담아왔듯 그들의 한 시절은 음반 속에 남는 것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사진 속에 영원히 머무르며 빛난다. 김중만의 주변에도 전인권부터 성시경, 김종완이나 비와이까지 많은 뮤지션이 있었고, 밴드 혁오의 옆에는 이들과 같이 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다다이즘’이라는 비주얼 팀이 있다.어린 시절 외국에서 성장했다는 건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김중만은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공부했으며, 오혁은 중국에서 자라 성인이 될 즈음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이에 따른 상하 위계가 가장 낯설었어요. 거기서도 위아래 개념이 있고 형이라는 표현도 했지만 여기처럼 단단하지는 않았거든요. 거리에서 노골적으로 남을 평가하는 시선과 자주 마주친 것도 불편했고요.” 이곳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오혁이 느낀 이질감은 또렷했지만 그는 중국에서의 생활이 자신의 성정에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대는 한 동네가 아니라 온 세계를 자양분으로 자라니까. ‘20’ , ‘23’ 같이 나이의 숫자를 가져다 쓰는 혁오의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김중만의 스물셋 시절에 대해 물었다. “응? LSD를 하고, 핑크 플로이드 공연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지. 머릿속에는 섹스 생각으로 가득했어.” 그는 프랑스에서 최연소로 ‘오늘의 포토그래퍼 80’ 에 선정된 자신의 스물셋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오혁의 스물셋이 음악으로 박제되어 남았다면 자신은 여자 사진을 남겼다며.
의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대화는 사진과 음악 사이를 한참 오갔다. 김중만은 찍은 그 즉시 좋아 보이는 사진보다 시간이 흘러서 좋기가 더 어려우며, 그러려면 가식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음악도 시간이 흘러 살아남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당장 시간 단위로 바뀌는 디지털 시대의 음원 차트 흐름이 너무 숨 가쁘다. “편하게 오래 들어도 덜 질리는 음악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음악을 하면서 흥행 공식 같은 것도 보이거든요. 그건 빌보드나 애플 차트를 봐도 마찬가지고요. 1분짜리 영상에서 점점 30초, 15초도 버거워지는 요즘, 음악에 내러티브를 넣고 밀도를 높이고 뎁스를 넣을 때 사람들이 그걸 들어줄까 하는 불안이 늘 있어요.” 오래가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더 필요할 것 같았지만 즉각적으로 좋게 들리는 음악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다시,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김중만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20대에는 우리 모두 세상을 알았잖니. 청춘의 무모함과 방황은 때로 세상의 끝으로 이끌지만 거기서 보는 세상이 또 아름다울 때가 있는 거야. 아티스트는 그걸 표현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고.”오혁이 노래하는 청춘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신만만한 오만도, X세대의 철없는 낙관도 갖지 못한 것 같다. 망설이고 머뭇대고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또 애틋하고 아름답다.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하는 ‘Tomboy’ 가사처럼. 김중만은 오혁에게서 에드 시런이 보인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는 오혁에게서 얼렌드 오여의 모습을 찾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가치관과 경험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오해한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너나 내 안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할 거야.”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대사처럼, 먼 간극을 가지고도 서로에게 다가가 알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제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나가 카메라를 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