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가 사랑하는 괴짜, 다스 베이더 못지않은 검고 번쩍이는 룩의 마니아, 브랜드가 돋보이는 매장을 짓는 건축가, 돈만 빼고 뭐든 다 모으는 아트 컬렉터 피터 마리노를 만났다!
사무실에서도 매일 그렇게 입고 일한다는 얘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의 사진이 곳곳에 걸리고 브론즈 조각이 건물 모형 사이로 군데군데 놓인 미드타운 이스트의 오피스에서 만난 피터 마리노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건물 앞에 주차된 할리 데이비슨 위에 걸터앉는대도 이상할 게 없는 검은 가죽옷 차림이었다. “검은 가죽은 전사들이 입던 옷이죠.” 매일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일하니까 이런 옷을 입는 게 이상할 게 없다고 비장 한 말을 하면서도 그의 웃음소리는 길고 높았다. 건축가들 그리고 뉴요커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색의 모범답안 같은 블랙을 누구와도 다르게 소화하는 방식만큼이나 피터 마리노의 존재감은 독특하다. ‘패션 맨’ ‘플래그십 궁전의 창조자’ 같은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패션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며 바로 그 이유로 건축계에서는 이단아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 키드’ 중 하나로 데뷔의 기회를 가졌고,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뉴욕 아파트를 인테리어하며 감각을 흡수한 젊은 스타 건축 디자이너의 탄생은 은수저를 입에 물었다는 편견을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리노의 위상은 지난 수십년간 리테일 디자인이 건축에서 차지하게 된 비중만큼 점점 높아졌다. 샤넬, 디올, 루이 비통, 에르메네질도 제냐…. 수많은 브랜드들이 마리노에게 매장 디자인을 의뢰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은 프리츠커 상의 권위와는 다른 방식으로 확실하게 이 건축가의 실력을 증명하는 이력이다.
마리노와의 만남은 그의 서울 첫 건축물인 새 분더샵의 완성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14개월 동안 청담동 언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 지, 지난 10월 중순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에 대해 그는 ‘2014년 나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둘 중 하나(나머지 하나는 마이애미에서 12월에 열리는 전시다)이자, 실제로 지어진 설계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언급했다. 지상 4층의 건물은 우선 놀랍도록 밝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빛이 있고, 공기가 있고, 공간이 충분해야 해요.” 또 하나 분더샵에 충분한 건 미술 작품이다. 이불, 송한석 등 아 티스트들의 작품이 공간과 어울리게 배치된 이곳에 대해 마리노는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접근했다고 말한다. 패션 매장의 분위기와 상생하는 아트워크를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르고 구입하거나 의뢰하며 자산가치를 높이는 일에까지 건축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장한 것 또한 마리 노가 해온 일이다. 그 자신이 아트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건축, 패션, 미술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명백하게 이해하는 전문가인 동시에 그 세 개의 공을 가지고 능숙하게 저글링을 하는 쇼맨이기도 하다.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며 고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하게 해주는 건 패션이나 건축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에요. 프로젝트 결과가 항상 기대 이상으로 좋아지죠.”
피터 마리노와 더블유의 독점 인터뷰는, 그가 분더샵 오픈에 맞춰 뉴욕에서 서울로 출발하기 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세계 수십 개 도시가 아우성치는 그의 스케줄 덕분에, 뉴욕 오피스에서는 사진 촬영만 하는 것으로 조정해야 했지만. 숱한 이메일과 전화 통화 끝에 간신히, 분더샵 4층 레스토랑 루브리카 안쪽의 방에 자리를 잡고도 인터뷰는 한참 후에나 시작되었다. 그가 좌석 앞 테이블에 놓인 더블유 지난호를 꽤 꼼꼼하게 훑어 봤기 때문이다. 큼직한 해골 반지를 낀 손끝에서 일정한 속도로 넘어가던 책장은 프랭크 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기사에서 잠시 멈췄다. 서울 일정 이후 마리노는 곧장 파리로 가서 이 미술 관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다며 반가워했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파리에 새로 생긴 이 랜드마크의 주인일 뿐 아니라, 피터 마리노의 친구이자 여러 브랜드의 매장 디자인을 맡긴 클라이언트이기도 하다. “내 친구 스테파노 통키(더블유 본지 편집장)를 아나요? 20 년 전, 통키가 아직 젊은 기자였을 때 이탤리언 멘즈 보그를 위해 내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소재가 중요한 건, 마리노의 옷차림뿐 아니라 그가 짓는 건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더샵에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그리스산 대리석과 거친 느낌이 나는 콘크리트 가 함께 쓰였다. 클래식한 브랜드와 젊은 브랜드의 공존을 고려한 마감이었다. 마리 노는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좋아하는 재료라는 브론즈 소재로 2천 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로 무거운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소비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는 패션 매장을 디자인하면서 소재에 큰 의미를 두는 그는 중의적 의미에서 ‘머 티리얼 맨’이다. 내년에 완공될 그의 첼시 콘도미니엄 미니어처가 전시될 아트 바젤의 디자인 파빌리온을 감싸는 재료가 검은 가죽이라는 건 예측이 별로 어렵지 않은 부분이다. “내가 자하 하디드처럼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는 건축가는 아니지만, 적 어도 패션에서는 나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분더샵이 완공된 모습은 이번에 서울에 와서 처음 봤을 텐데 어떤가. 이전의 매장을 봤던 사람으로서는, 전체적으로 밝아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피터 마리노 그렇게 봐주어 고맙다. ‘무엇이 럭셔리인가’라고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면 ‘빛과 공기, 그리고 여백’이라고 답한다.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빛이 있고 공기가 있고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대리석이나 모피나 보석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호사스러움을 추구한다고 해도 어둡고 좁으면 의미가 없다.
내부와 외부에 다양한 소재가 쓰인 것도 눈에 띈다.
조각을 공부했기 때문에 소재 자체에 관심이 많다. 다른 건축가들은 드로잉을 먼저 한 다음 이 건물에는 금속을 쓰겠다, 혹은 석재를 쓰겠다 결정한다면 나는 소재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 형태에 접근한다.
그렇다면 분더샵을 위해서 먼저 떠올린 소재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건물이 들어설 현장의 특성상 빌딩을 둘로 나눠 디자인 해야 했다. 기존 분더샵 위치가 있고, 이어진 부지를 매입했는 데 서울의 도시 개발 규정상 각 각의 블록에 건물을 따로 만들 라는 지시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재도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는 부드러운 하얀색 대리석으로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그리스 돌, 나머지 하나는 거친 느낌이 나는 콘크리트다. 흰색, 검 은색, 회색의 대리석을 써서 우아하고 심플한 공간에는 프라다, 지방시와 같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한 브랜드가 들어갔다. 두 번째 빌딩은 아크네, 크롬하츠같이 젊은 브랜드를 위한 공간인 까닭에 러프한 느낌을 주는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브랜드의, 더 많은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을 해왔다. 그런데 분더샵은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우아하고 클래식한 브랜드부터 젊고 아방가르드한 브랜드까지 다 모여 있다. 하나의 단독 브랜드 숍을 디자인하는 것 과 여러 브랜드가 함께 있는 셀렉트숍을 디자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멀티브랜드 스토어를 디자인했던 건 80년대 후반 뉴욕 바니스였다. 바니스 이후로는 여러 브랜드가 모인 럭셔리 스토어를 디자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샤넬은 샤넬, 비통은 비통, 디올은 디올, 제냐는 제냐, 하나의 브랜드를 하나의 룩을 가진 한 공간으로 표현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깨고 분더샵을 맡은 이유는 뭔가?
신세계 측에서 전폭적인 확신을 줬기 때문이 다. 어떤 구상이든지 펼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을 얻었다. 다양한 브랜드를 담으면서 느낌을 하나로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건 그들의 요구이자 나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처음 당신이 바니스를 맡았을 때만 해도 건축계에서는 패션 매장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패션 하우스는 가장 힘있는 클라이언트이며, 건축가들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포션을 차지한다. 그사이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
패션 베뉴가 진지하게 건축적 의미를 갖는 장소로 받아들여지게 된 분위기에 대해서는 내 자신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고 말해도 되려나? 여러 브랜드와 함께 일하면서 패션이라는 업계에 건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매장 디자인에 대해서 진지한 자세로 임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나 아닌가 싶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클라이언트에게 단지 디자이너의 자유로운 권한을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디자인에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게 하는 부분까지 설득했다. “광고에 얼마나 들일 생각이죠? 그 돈을 매장 디자인에 쓰세요. 왜냐하면 내 건물이 바로 광고니까 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매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미술 작품을 구매하거나 커미션 워크를 의뢰하는 미술 컨설팅 일까지도 관여한다.
매장 내에 실제 화가의 작품이나 작품이 될 수 있는 가구 같은 걸 배치할 수 있 도록 소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클라이언트와 상의해서 결정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자산 관리까지 도와주는 부분이 된다. 이런 식으로 내가 패션 하우스의 분위기를 변화시켰다고 본다. 분더샵에도 역시 기성 작품이 아니라 따로 요청해서 제작된 작품이 많다. 뉴욕에서 주로 활동해온 한국 아티스트인 송한석 작가는 나의 구상과 방향에 잘 맞는 작품을 제안해서 깜짝 놀랐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당신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큐레이터다.
큐레이터로서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곧 열린다. 12월 2일부터, <아트바젤 마이 애미> 기간 가운데 BASS 뮤지엄 오프닝으로 열리는 특별 전시가 그것이다. 지난 20년간 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주문 제작한 미술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다. 여기에 내 작품, 소장 컬렉션도 포함되는 대규모 전시다. 오프닝 때 9천 명 정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6개의 전시 공간을 다 내가 디자인했으며, 여기에 분더샵의 사진도 전시될 예정이다. 올해의 가장 큰 2개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서울에서 마무리되었고(웃음).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분더샵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기억난다. ‘내가 디자인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디자인해서 실제로 ‘지어진’ 건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건축가는 디자인을 한다고 해서 다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베이루트에서 있었던 큰 공모전의 입찰권을 받았는데 시리아에서 벌어진 전쟁 때문에 더 진행할 수 없었던 프로젝트처럼.
한편 ‘나에게 이 프로젝트는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거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분더샵은 2가지 면에서 구겐하임 뮤지엄과 비슷하다. 아파트나 사무실은 창도 많이 나와 있고 열린 공간이 많은데, 이런 샵은 마치 미술관처럼 폐쇄적인 공간이다. 벽이 많아야 그림을 많이 걸 수 있는 것처럼 샵 또한 옷을 많이 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겐하임이나 분더샵이나 마찬가지로 기존의 서울이나 뉴욕 시가지의 엇비슷한 건물이 쪽 이어지다가 갑자기 도드라지며 튀어나오는 하얀 빌딩이다. 마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조각 작품같이 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봤다.
서울에서는 올해 생긴 건물 가운데서 DDP가 화제였다.
알고 있다. 어제 거기 가봤다.
자하 하디드는 도시의 맥락보다 자신의 스타일이 앞서는 건축가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당신에게서는 고정적인 시그너처 디자인을 짚어내기가 어렵다.
세상에는 두 가지 건축가가 있고, 나는 명백히 두 번째 타입이다. 자하 하디드는 대단한 예술가지만 나와는 아주 다르다. 도시에 따라 목적에 따라 건축이 다른 솔루션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 이 두 번째 무리에는 렌초 피아노, 헤르조그 앤 드 뮈론, 그리고 피터 마리노가 있다(웃음). 그리고 어디든 자신의 스타일을 갖고 오는 첫 번째 부류에는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 노먼 포스터가 포함될 것이다. 각각 다른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어떤 미술 작가들은 커리어 내내 같은 스타일로 그리지만 다른 부류의 화가는 평생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피카소는 자신의 창작 인생에서 결코 머물러 있지 않았다. 매번 같은 걸 추구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매번 프로젝트마다 스타일을 바꾸는 사람들은 상업적으로 영리한 선택은 아니다. 새로운 방향이 어떻게 갈지 모르니 스태프들은 매번 세부적으로 상의해야 하고, 프로젝트마다 악몽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결코 좋은 보스는 아니겠다.
언급하지 않겠다(웃음).
20년 이상 리테일 건축을 주로 맡아오면서 세계 경기의 변화도 민감하게 느껴질 것 같다.
최근 많은 프로젝트가 아시아에서 이루어지며 한 해에 여러 차례 방문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2년 사이에 우리 회사가 맡는 일의 90%가 미국 밖으로 변했다. 아시아와 중동 등의 지역에는 아직 돈이 있다는 뜻이다. 건축 프로젝트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재밌는 건 19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럭셔리 브랜드 빌딩의 붐이 일었던 일본에서 1년에 3~4 차례 방문하며 일했지만 이제는 중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페이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이제 곧 한국의 두 번째 건물도 작업하게 된다. 청담동 샤넬의 첫 단독매장 프로젝트를 맡았다.
아까 2014년의 가장 큰 프로젝트가 마이애미의 전시, 그리고 분더샵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다면 2015년의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맨해튼 첼시에 12층짜리 매우 큰 콘도 미니엄을 짓는다. 모든 아파트먼트가 층별로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 층도 한 가지가 아니다. 2층짜리, 1층 반짜리, 1층짜리 등 다양한 구조를 직소 퍼즐처럼 끼워 맞추게 되어 있다. 아트바젤 디자인 파빌리온 안에서 이 콘도 미니엄 건물의 모델하우스를 4미터 정도로 축소해서 전시할 예정이다. 파빌리온은 검은 가죽으로 둘러쌀 거다. 나의 시그너처 패션처럼(웃음).
태어날 때부터 검은 가죽을 입지는 않았을 텐데.
15년 전부터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에 이렇게 입는다. 그전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수트에 에르메스 타이를 입었는데 매우 엘리건트한 룩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의 옷을 입는 기분이었다. 요즘은 직접 디자인해서 테일러에 맡기기도 한다.
보통 건축가들이 검은색을 입는 건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더라.
나는 검은색 자체가 아니라 검은색 가죽을 좋아하는 것이다. 컬러보다 소재가 중요하다.
독특한 소재에 집중한다는 것에서 당신의 건축 작업과도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가죽은 전사들이 입었던 옷이다.
사무실에서도 이렇게 입나?
매일 전쟁터에 나간다고 생각 하나? 100% 항상 그렇다. 언제나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일하니까.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손가락에 낀 두툼한 반지도 무기처럼 보인다.
그런 용도로 쓰진 않지만, 만약 누군가를 때릴 기회가 있으면 깊은 내상을 주어야 한다(웃음). 이 액세서리들은 내가 직접 디자인한 것인데, 우리 가문의 출신지인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에서는 해골을 문지르는 게 행운을 비는 행위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 당시 귀족들 그림을 보면 이런 상징들을 많이 몸에 걸치고 있는 걸 볼 수가 있다.
당신은 패션과 아트와 건축, 세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것 같다.
내 일에 아트를 가져오는 게 늘 재밌다. 20년 전에는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다 섞어 상호작용하는 것이 흔치 않았다. 1996년 프라다 파운데이션에서 <아트, 패션 앤 아키텍처>라는 책을 냈는데 패션과 예술과 건축이 어떻게 하나로 융합되고 있으며 이 셋을 연결할 때 어떤 점을 파악해야 하는지 정확히 집어낸 책이다. 나는 바니스 프로젝트 이후로 언제나 이런 관점을 예술 프로젝트에 도입하려고 노력해왔다.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며 고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하게 해주면 프로젝트 결과가 기대 이상으로 좋아진다. 나의 이런 경험을 집약해 라는 책이 파이돈 출판사에서 곧 나올 예정이다.
아트 컬렉터로서는 어떤 작품을 모으나? 컬렉터로서 당신의 취향을 관통하는 뭔가가 있다면?
사랑하는 소재인 브론즈를 사용한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조각을 많이 갖고 있다. 현대미술 가운데는 데미언 허스트, 안셀름 키퍼, 로버트 메이플소프, 앤디 워홀, 윌렘 드쿠닝, 리처드 프린스 같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사진, 도자기, 앤티크 은…. 돌도 수집한다. 뭐든 모아야 하는 강박을 약간 갖고 있다.
수집을 하지 않는 걸 물어보는 편이 빠를 뻔했다.
모으지 않는 것도 하나 있다, 바로 돈이다(웃음).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박종원, 주용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