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건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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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한국관이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차지했다. 건축을 통해 남북한 사회의 지난 100년과 다가올 100년을 들여다보고 그려보는 시도였다.

1.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은 ‘근대성의 흡수’라는 전체 주제하에 남북한 양국을 바라보았다. 2, 4. 전시는 총 29팀이 참여해 사진, 모형, 영상, 출판,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패치워크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렘 콜하스, 그리고 그 밑에서 수련한 조민석이 공통으로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3. 베니스 시내에 나붙은 2014 건축 비엔날레 포스터.

1.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은 ‘근대성의 흡수’라는 전체 주제하에 남북한 양국을 바라보았다. 2, 4. 전시는 총 29팀이 참여해 사진, 모형, 영상, 출판,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패치워크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렘 콜하스, 그리고 그 밑에서 수련한 조민석이 공통으로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3. 베니스 시내에 나붙은 2014 건축 비엔날레 포스터.

올해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한국관(커미셔너 조민석)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소식으로 한국 건축계가 한동안 뜨거웠다. 아니 이번만큼은 건축계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계 전체가 들썩였다.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아트 비엔날레에서도 지난 20여 년간 수상 소식이 없었는데, 올해 건축전에서 한국관이 덜컥, 그것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니 건축과 문화계가 함께 들썩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동안 국제 무대에서 변방으로 인식되던 한국이 가장 권위있는 건축전, 그리고 몇 번을 고사하다 처음으로 비엔날레 전체 커미셔너 역할을 수락한 현대 건축의 거장 렘 콜하스가 조율한 이 전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베니스 영화제에서 몇 년 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보다 큰 놀라움일 수도 있다.

건축과 영화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은데, 비엔날레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 연출, 내용, 연기자 등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듯이, 커미셔너, 큐레이터, 주제, 참여 작가 등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관은 이 모든 부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전시관이었다. 렘 콜하스가 선택한 이번 비엔날레 국가관의 전체 주제는 ‘근대성의 흡수(Absorbing Modernity:1914-2014)’였다. 올해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돔-이노 하우스(Dom-ino House)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고, 렘 콜하스는 올해를 지난 100년의 근대 건축을 되짚고 넘어가야 하는 시점으로 이 화두를 던졌다. 돔-이노 하우스는 건축의 대량 생산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건축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제안된 기획이고, 이는 이후 전 세계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단순히 건축 기법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 방식, 기술, 철학 등 사회의 모든 부분의 변화를 야기한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0년의 근대성을 되짚어보는 것은 앞으로 100년이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를 준비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전체 주제 안에서 한국관 커미셔너인 조민석 소장은 한국이 아닌 한반도로 시점을 확대했다. 우리나라 근대화에 관한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근대화의 도입이 많은 부분 일제 시대와 겹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제 시대 이전 대한제국에서 이미 근대화가 시작됐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일본을 통해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을 두고 늘 갑론을박인데, 조민석은 이에 대해 중요한 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의 문제라고 상황을 정리해버린 듯하다. 한반도에서 일제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남북 분단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이 진행형의 두 국가, 즉 한국과 북한이 각자 어떻게 근대성을 흡수했나 하는 문제는 앞으로 이 두 국가가 어떠한 사회가 될 것인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관은 근대화 시점의 논쟁이 있는 일제 시대를 과감히 건너뛰고 해방 이후의 한반도에 주목했다. 한 국가였던 한반도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체제로 나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성을 받아들인다. 전시는 이를 삶의 재건(Reconstructing Life), 모뉴멘트(Monumental State), 경(Borders), 유토피안 투어(Utopian Tour)로 나누어 보여준다. 두 국가가 전쟁 이후 국가의 재건 과정에서 어떻게 근대성을 받아들였는지, 또 성장과정에서 국가의 이상과 상징성을 표출하기 위해 어떠한 건축가와 건축이 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며, 이 두 국가가 DMZ라는 경계에서 마주 보고 어떻게 각기 다른, 혹은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까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받은 ‘미래 건축’의 모습은 흡사 한국관에 북한이 함께 참여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한국관의 전시는 사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벅찬 감이 없지 않다. 지난 100년 중 60여 년만 다룸에도 방대한 내용을, 그것도 양국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품의 단순 연대기별 나열이 아니라, 주제에 따라 또 전시 방식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처럼 이번 한국관의 전시 방식은 통일된 코드를 적용하는 전시 방식이 아니라 패치워크, 혹은 콜라주 형식이었다. 전시 미디어는 사진, 모형, 영상, 포스터, 출판,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방식을 취했으며, 전시에 참여한 작가 역시 29팀에 달한다. 이는 렘 콜하스와 그 밑에서 수련한 조민석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두 건축가 모두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를 얻어내려 하기보다는, 각 이미지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형성되고, 그것이 가져오는 우연적인 결과물을 노리는 편이다. 베니스에서 만난 한 국가관의 커미셔너는 나에게 렘 콜하스의 작업 방식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가 국가관 전시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 국가관끼리 조율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콜라주를 선호하는 렘 콜하스의 방식이고, 이는 한국관 커미셔너인 조민석의 방식과도 유사하다.

그럼에도 이번 한국관 전시가 산만해지지 않은 이유는 탄탄한 내레이션 덕분이었다. 조민석과 함께 공동 큐레이팅을 한 배형민 교수(서울시립대)와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는 모두 근현대 건축 역사 이론가들이다. 이들은 건축에서의 근대주의,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이를 남북한이 어떻게 서로 다르게, 혹은 비슷한 방식으로 흡수했는지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내레이션을 통해 정리했다. 특히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한국관 자체를 전시 내레이션에 포함시킨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베니스 국가관은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데, 26개 국가만이 이 공원 안에 국가관을 갖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인 1995년에 독립 국가관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때 중국을 비롯한 다른 후보국을 뒤로하고 한국관이 선정된 배경에는 당시 영향력이 있었던 백남준 작가가 남북 공동 전시를 모토로 들고 나오면서 베니스 시장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이번 한국관의 주제와 전시는 탄생부터 남북의 전시를 염두에 두었던 한국관 자체를 내레이션의 시작에 둠으로써, 국제 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를 갖고 온 것이 주효했다.

이번 한국관의 타이틀은 ‘한반도의 오감도’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다. 이상의 오감도는 한국관의 옥상정원의 천창에 전시되며 내레이션의 대미를 장식한다. 일제의 지배 아래 파편화된 시인의 생각이 담긴 오감도는,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재 남북한의 도시와 건축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민석 커미셔너의 말처럼 언젠가는 ‘조감도’, 즉 하나의 시각으로 한반도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개’ 건축 전시가 우리 사회의 과거를 돌아보고 또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한국관의 전시는 수상 여부를 떠나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렘 콜하스는 이번 비엔날레를 기획하며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에 집중하도록 했다. 전시에서 ‘건축가’에 집중하면 ‘건축’만 보이지만, ‘건축’에 집중하면 ‘사회’가 보인다. 그리고 조민석을 비롯한 한국관 큐레이팅 팀은 건축을 통해 사회를 볼 수 있는 전시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을 조민석은 이미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시 오프닝 전 베니스에 도착해 조민석 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바로 전날 렘 콜하스가 한국관에 대해 칭찬하고 간 사실에 대해 한참을 들떠서 설명해주었고, 그때 이미 확신과 기대감으로 차 있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좋은 영화 한 편 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글 임동우(건축가)

에디터
황선우
기타
PHOTOS | GETTY IMAGE / MULTIBITS, Y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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