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나이트브리지에 위치한 해러즈(Harrod’s)는 1834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백화점이다. 무엇을 팔든지 간에, 존재 자체만으로 대단한 의미를 내포하는 지구상의 손꼽히는 상점인 셈이다. 이 상징적인 백화점이 건물 자체를 통으로 프라다에게 내주었고, 미우치아는 자신의 넓고 깊은 취향과 아카이브를 가지고 그 내부를 프라다 월드로 변신시켰다.
최근 패션계에서 무척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라이프스타일’이다. 스타일만 존재했던 그간의 패션에 ‘라이프’, 즉 우리의 인생 자체를 관망하는 시선이 담긴 것이다. 패션계에는 단순히 옷과 액세서리를 넘어 음식과 인테리어에 이르는 광범위한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토털’ 브랜드가 꽤 많이 있지만, 브랜딩을 횡적으로 넓히는 것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꿰뚫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후자의 의미에서라면, 패션계에서는 아마 미우치아 프라다가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가장 뚜렷한 비전을 가진 디자이너로 손꼽힐 것이다. 프라다는 가구나 침구를 만들지도 않고 브랜드의 이름을 내세운 레스토랑을 운영하지도 않지만, 프라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디자이너 특유의 패션, 아트, 건축과 영화, 인테리어 등에 대한 취향과 식견이 매우 독창적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백화점 중 하나인 영국 런던의 해러즈 역시 프라다의 넓고 깊은 스펙트럼에 주목했고, 40여 개에 달하는 백화점의 윈도와 1층의 익스클루시브 팝업 스토어를 포함해 5층 전체 공간을 전시용도로 프라다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5월 한 달간만 선보이는 이 파격적인 콘셉트 패션 매장 겸 전시 공간의 이름은 ‘프라다스피어(Pradasphere)’라고 붙여졌다. 180년의 역사 속에서 해러즈가 단일 브랜드에게 건물을 꾸미도록 허락한 것은 딱 세 번으로, 2011년 샤넬, 2013년에 디올이 이처럼 단독 디스플레이를 펼친 바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백화점들은 최근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코닉한 브랜드 하나를 선정해 일정 기간 동안 아카이브 전체를 전시하는 형식의 행사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봉마르셰의 프로엔자 스쿨러 전시와 바니스가 후원한 장식미술관의 드리스 반 노튼 전시회 등이 대표적이다.
2007년에 선보인 가죽 프린지 미니 드레스, 2009년 컬렉션에 등장한 글래디에이터 메리제인 슈즈 등 금세 매진되어 프라다 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제품을 다시 만들어 판매하는 1층의 팝업 스토어는 쇼핑객들에게 인기를 얻을 코너임이 확실하지만, 무엇보다 프라다스피어를 제대로 보여주는 백미는 5층의 메인 전시 공간이다. 서울 트랜스포머를 비롯해 영화 <위대한 갯츠비> 의상의 전시회, 밀라노에서 펼쳐진 메인 컬렉션장 디자인 등을 맡아 수년간 프라다와 협업을 해온 뉴욕의 디자인 그룹 2X4의 대표 마이클 록(Michael Rock)이 해러즈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것은 미우치아의 할아버지이자 프라다의 설립자인 마리오 프라다가 1913년에 세운 최초 매장에 놓여 있던 잡다한 물건들-거북의 등껍질로 만들어진 머리빗, 신사용 매니큐어 세트, 세월에 낡은 실크 클러치-로, 브랜드의 역사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정의하는 섹션이다. 하지만 미우치아 프라다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전시를 원하지 않았다. 밀라노의 프라다 매장에 깔린 타일 바닥을 연상시키는 녹색과 검은색 체크로 이루어진 카펫을 지나면 ‘남성성+여성성’ ‘동물 무늬에서 받은 영감’ ‘유럽식+동양풍’ 등 그간 프라다 컬렉션에서 주로 탐구했던 주제별로 정리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프라다의 첫 컬렉션에서부터 최근 컬렉션을 망라하는 캣워크는 전부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 벽면의 멀티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트로 감상할 수 있고, 프라다를 문화적으로 더욱 이름 높게 만든 역사적인 협업들-로만 폴란스키와 웨스 앤더슨을 비롯한 영화감독과의 작업들, 렘 쿨하스와 헤르조그&드 모론 등과의 건축물 프로젝트 등- 역시 디지털 미디어 아트로 상영되었다. 특히 ‘에볼루션 1’이라는 타이틀의 이 디지털 섹션은 시즌별이 아니라 컬러별로 작품을 전시해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주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큐레이터 마이클 록에게 ‘마치 자연사박물관을 관람하는 것 같은 전시’를 부탁했다고 한다. 19세기에 지어진 해러즈 백화점은 그 자체로 박물관이기에 여기에 무엇을 채워넣든지 마치 공룡을 보는 듯한 임팩트를 줄 것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작품을 정리하는 것보다 주제별로 묶은 이유 역시 프라다 특유의 작업 방식에 기인한다. 프라다의 컬렉션은 비주얼적으로 볼 때는 시즌 간의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디자이너가 의문을 품고 관심을 가져서 이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과정 자체는 한결같이 연속적이기에 미우치아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방식을 따라 전시가 진행되도록 했다. 백화점이 아니라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설치되었다 해도 꽤 수준 높다고 평가받을 만한 전시인 것이다. 큐레이터인 마이클 록은 딱 한 달만 보여주기에는 아쉬운 콘텐츠라, 장소를 옮겨 전시를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전시가 더욱 반가운 이유는 관람료가 공짜라는 것. 5월 31일까지만 나이트브리지에 위치한 해러즈 매장에 가면 된다.
- 에디터
- 패션 디렉터 / 최유경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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