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그리고 사건과 실화

W

미술계에서는 진지한 예술만큼이나 자극적인 스캔들도 흔하다. 요란한 만남과 이별, 절도와 뒷거래, 작품 훼손의 역사, 팝스타와의 밀월 관계 등 갤러리 뒤편에서 목격된 흥미로운 장면들을 지면 위에 모았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강렬한 작업과 이를 둘러싼 막장 드라마의 동시 상영 개봉박두.

하정우는 연예계에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라 미술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몇 안 되는 배우 겸 아티스트다. 2월 28일까지 까르띠에 메종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하정우는 연예계에서 화제가 되는 게 아니라 미술계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몇 안 되는 배우 겸 아티스트다. 2월 28일까지 까르띠에 메종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

어떤 부업
가수나 배우가 그림 그린다는 얘기는 참 흔해졌다. 그게 취미나 특기가 아니라 판매가 되어야 말이지만.

살면서 한 가지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 본업 말고도 요식 사업에 손을 대고, MMA나 복싱을 연마해 대회에 출전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이 있다. 배우나 가수들이 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대개는 수집하는 쪽이 더 많지만, 몇 년 전부터 아트페어에서 아예 스타 섹션을 만들어 작품을 소개하면서 직접 창작하는 셀렙의 사례가 제법 알려졌다. 물론 세상 살면서 한 가지만 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니만큼 요식업이나 격투기와 마찬가지로 그림으로도, 본업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인정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림 그리는 연예인 중 다수의 실력과 위상이란 사실, 취미란과 특기란 사이의 어딘가 정도일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지는 그림에 대한 평가를 떠나 간단하게, 시장에서 팔리는지를 보면 된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오래전부터 팔려왔다. 그리고 요즘 하정우의 그림이 팔린다. 까르띠에 메종 청담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데2, 009년 작은 규모의 기획 전시로 시작해서 다양한 아트페어를 거쳤고 벌써 개인전만8 번째다. 같은 기간의 영화 커리어를 살펴보자면 주연으로 영화1 0여 편에 출연하고, 자기 각본을 써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롤러코스터>), 두 번째 연출작(<허삼관 매혈기>)을 준비하는 중이니 엄청난 에너지다. 한 가지 잘하기도 쉽지 않지만, 본업을 뛰어나게 하면서도 그 밖의 분야에서도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이렇게 존재한다. 시간을 가로축으로 놓고, 아티스트로서 하정우의 커리어 곡선이 배우나 감독으로서와 어떤 식으로 교차할지 길게 보면 더 흥미로운 그림이 될 것이다. 혹은 배우나 감독으로서의 커리어와 작품 가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제발 조용히 좀 해요
포르말린 용액 속의 상어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해골보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말실수.

데미언 허스트의 방송 테러
현존 예술가 중 가장 부유하고, (추측하건대) 가장 건방진 인물일 데미언 허스트는 결코 스캔들을 겁낼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2002년 BBC 인터뷰 중 9·11 테러가 “나름대로는 예술적”이라고 발언한 것은 그냥 멍청한 짓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vs. 리투아니아 대사
2007년 가을, 영국문화예술위원회 오찬 도중 당시 영국 의회 내 야당인 보수당의 수장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리투아니아 외다리 레즈비언들이 보조금을 타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화가 단단히 난 주영 리투아니아 대사에 맞서 캐머런 측에서는 그가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종종 보조금이 생소하고 엉뚱한 대상에게 지급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리투아니아의 외다리 무용단’을 거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SNS 시대의 전시
누구나 아티스트가 되는 시대를 지나, 누구나 큐레이터가 되는 시대다. SNS에 자기 일상을, 특히 전시를 보러 다니는 문화적 일상을 전시하는 큐레이터.

가장 최근에 줄을 서본 기억은 언제인가? 벌집 얹은 아이스크림이나 우유롤케이크를 살 때? 지난해 봄에 막을 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09 팀 버튼 전>, 가을에 끝난 아라 아트 센터의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전시 기간 막바지 주말에는 전시장 밖 보도까지 관람객 행렬이 길게 늘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림미술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은 작가의 스타성과 아예 ‘청춘’을 타깃으로 명시한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에 전시 오픈 시기부터 방문객이 몰렸다. 이 전시들의 전시장 입구, 작품 앞, 작가나 전시의 타이틀 앞은 온통 관객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로 가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메라의 렌즈가 전시 콘텐츠보다는 자기 자신, 혹은 동행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이 전시장들은 거대한, 그리고 ‘간지 나는’ 셀피 배경이다. 대중적인 기획의 젊은 전시들이 관람객을 모으고, 그 관람객들은 SNS에 자신이 얼마나 문화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보고하며, SNS에서 그걸 ‘좋아요’ 한 사람들이 다시 전시장으로 향하는 어떤 순환 고리. 뒤샹, 혹은 앤디 워홀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면 지금은 만인 큐레이터의 시대다. ‘멋진 전시, 그걸 담은 나만의 사진, 그리고 그걸 보러 다니는 멋진 나’를 전시하는 SNS 큐레이터들. 어떤 이들은 갤러리가 힙스터들에게 점령당했다며 피로감을 토로하거나 전시 방문을 보이코트할지 모른다. 하지만 관객의 ‘순수성’이나 ‘진정성’ 같은 게 과연 누구에게 의미를 가질까? 한 작가의 초창기부터 사모해서 기다려온 팬이나 주말 페이스북에 업데이트할 이벤트가 필요한 파워유저에게나 하나의 전시가 준비하고 기다리는 상차림은 같다. 이 소문날 대로 난 잔치를 더 살뜰하게 즐기는 사람이 승자일 뿐.

멈추지 마
예술가의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웨이웨이 VS 중국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공동 설계했던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2011년 탈세 혐의로 베이징 교도소에 구금되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그의 작품 활동을 손쉽게 중단시킨 방법이었다. 81일간의 수감 생활을 마친 아이웨이웨이의 첫 공식 활동은? <W>의 패션 화보였다.

푸시 라이엇 VS 블라디미르 푸틴
2012년 모스크바의 한 성당에서 페미니스트 포스트펑크밴드 푸시 라이엇이 <성모 마리아여, 푸틴을 몰아내소서!>라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다. 공연 제목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푸시 라이엇의 세 멤버는 체포됨으로써 (마돈나, 스팅, 패티 스미스, 폴 매카트니 등의 세계적인 스타들이 그들의 석방을 요구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들이 공연 당시 얼굴에 뒤집어쓰고 나온 마스크 또한 불티나게 팔렸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VS 신시내티 1990년 당시 신시내티 현대미술센터의 관장이었던 데니스 베리가 해밀턴 자치주에 의해 외설죄로 기소되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전을 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주간의 법적 공방 끝에, 배심원단은 최종적으로 남자의 항문에 다양한 물체를 집어 넣은 사진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이 진지한 예술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지었다.

예술가 VS 미국국립예술기금
1990년 행위예술가 카렌 핀리, 홀리 휴즈, 존 플렉, 팀 밀러는 예술가의 품위를 문제 삼아 지원금을 취소한 미국국립예술기금을 고소했다. 노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상원의원인 제시 헬름즈가 앞장선 문화에 대한 전쟁에 격렬히 저항하는 상징적 인물들이 되는 순간이었다. 8년 후 대법원은 연방정부의 기준을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극작가 아서 밀러가 자신의 벗은 몸에 초콜릿을 뒤덮는 핀리의 퍼포먼스를 언급하며 “자신이 벗은 몸에 초콜릿을 뿌리는 사람은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예술계는 격분했다.

<span class=”wk_01″ style=”font-size:14px”>내 이름은 완판남</span>
침체된 미술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그 남자, 전두환.

패션계에 천송이가 있다면, 미술계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다. 천송이가 바른 립스틱, 천송이가 입은 코트만큼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거나 선물 받은 그림은 공개되는 즉시 팔려 나간다. 미납 추징금을 돈으로 지불하기엔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 대신 내놓은 전두환 일가 미술품 경매 이야기다. 먼저 12월 11일 K옥션엔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이란 이름 아래 김환기, 이응노, 오치균, 구본창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8 0점이 공개됐다. 결과는 완판,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김환기의 유화 ‘24-Ⅷ-65 South East’였다.

이어서 18일에 치러진 서울옥션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특별 경매 : Ex-president Collection> 역시 완판이었다. 특히 전 대통령의 자택 거실에 걸려 있던 것으로 알려진 이대원의 ‘농원’은 경매품을 통틀어 최고가인 6억6천만원을 기록했다. 정치인의 비자금 축적의 수단으로 악용된 데다 검찰 압수품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미술품을 누가 사겠느냐는 비관적인 시선을 뒤로한 채, 대부분 추정가보다 높은 판매가를 기록하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심지어 경기 침체로 인해 5년 넘게 얼어붙어 있는 미술 시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기대하는 눈치다. 경매에 내놓은 전두환 일가의 미술품이 총 600여 점으로 알려진 만큼, 남은 경매품까지 완판을 기록하고자 한다면 홈쇼핑의 수완을 배워두면 좋지 않을까? “전두환 스페셜 구성 다시는 만나볼 수 없습니다. 수량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구매를 서두르세요”!

무기여 잘 있거라
절대 발설하지 말 것. 이미 효능을 입증받은 예술 파괴 무기는 다음과 같다.

1. 망치
1972년 헝가리계 호주인 지질학자 라즐로 토스가 망치로 무장한 채 성베드로 대성당에 입장했다. 그러곤 “나는 예수다!”라고 소리 지르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망치로 내리쳤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성모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미켈란젤로가 그의 이니셜 M을 성모의 손금에 새겨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2.
제라드 얀 반 블라데렌은 1986년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뮤지엄에 소장된 바넷 뉴먼의 1967년 작품 ‘누가 빨강, 노랑, 파랑을 두려워하랴 Ⅲ’를 칼로 공격했다. 비단 뉴먼뿐만 아니라 추상 예술 전반을 향한 복수였다. 그는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으며, 1997년에 풀려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뉴먼의 다른 작품을 난도질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3.
1987년 로버트 캠프리지라는 이름의 신사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입장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 세례 요한과 성모자’에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에 따르면 캠프리지는 500년의 역사를 지닌 작품 자체에 반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국의 정치, 사회, 경제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4. 립스틱
캄보디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샘 린디는 2007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린 이본 랑베르 컬렉션 전시에서 사이 톰블리의 하얀 캔버스 작품에 새빨간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작품을 향한 열정에 사로잡힌 것이 그 이유라고 주장했다. 랑베르 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린디는 루스 반 헤르펜이 저작권 침해로 고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 전 반 헤르펜 역시 옥스퍼드 현대미술관에서 조 베어의 유사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키스했기 때문이다.

5. 스프레이 페인트
이란 국왕의 예술 고문이자 뉴욕 다운타운 예술계의 가장 성공적인 딜러로 자리매김하기 전, 토니 샤프라치는 악명 높은 그라피티 화가였다. 그는 1974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여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KILL LIES ALL ACROSS”라는 문구를 스프레이 페인트로 써놓음으로써,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새롭게 만들었다.

6. 유성 페인트
가톨릭, 포르노, 코끼리 배설물의 결합만큼 도덕적 비난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은 없다. 1999년 뉴욕의 전 시장 줄리아니는 브루클린 뮤지엄에 대한 재정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공개 위협했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 <센세이션>에 흑인으로 묘사된 성모마리아 위에 포르노에서 따온 성기 사진과 코끼리 배설물을 장식한 ‘성모 마리아’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70대의 독실한 기독교 데니스 하이너는 그 ‘불경스러운’ 예술품에 몰래 다가가 흰색 페인트를 뿌려버렸다.

7. 베개 싸움
1999년 중국 출신의 예술가 위안 차이와 안 준시가 테이트 갤러리에 난입해 상의를 벗은 채, 트레이시 에민의 설치 예술 ‘My Bed’ 위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퍼포먼스에 그친 베개 싸움은 작품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심각한 기물 파손에 해당한다. 적어도 영국인의 기준에 따르면 말이다.

8. 신의 계시
2007년 여름 <리처드 프린스 : Spiritual America> 전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기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술관이 새로 취득한 프린스의 작품 ‘두 번째 집’이 뉴욕 북부에서 번개에 맞고 거의 다 타버렸다. 박물관 측에서는 소송을 거부했다.

9. 토사물
피에트 몬드리안의 구성 기법에 불만을 품었던 캐나다 미술학도 주발 브라운은 1996년 뉴욕 현대미술관을 순례하면서, 현대미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빨강, 흰색, 그리고 파랑의 구성’에 고의적으로 파란색 젤라틴과 아이싱을 토했다. 나중에 그는 그 행위가 자신이 계획한 삼원색 삼부작 가운데 2부였다고 자백했다. 바로 전해에 주발 브라운은 온타리오 미술 갤러리에서 라울 뒤피의 작품에 동일한 성분의 빨간 토사물을 끼얹었다.

10. 오줌
혹자는 마스셀 뒤샹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93년 행위예술가 피에르 피농첼리가 프랑스 남부 도시인 님에 위치한 카레 현대미술센터에 설치된 유명한 레디메이드 작품 ‘샘’을 말 그대로 변기로 사용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후, 피농첼리는 파리의 퐁피두센터에 동일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이번엔 망치로 내리쳤다.

예술 한번 하시죠?
: 칸예 웨스트 vs. 레이디 가가
미술계의 뮤즈가 되기 위한 팝스타들의 무한도전.

미술 수집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직접 작가로 나서는 것? 어쩌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자의식이 흘러 넘치는 유명인의 경우라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실력 있는 힙합 뮤지션이자 걸어 다니는 스캔들 자판기, 그리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술 애호가인 칸예 웨스트처럼 말이다. 자신의 집을 갤러리 수준으로 도배하고도 성이 안 찬 그는 아티스트들에게 직접 앨범 재킷 디자인을 의뢰했다. 2007년 작인 <Graduation>과 2010년 작인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의 아트 워크는 각각 무라카미 다카시와 조지 콘도가 맡았다. 콘도가 웨스트를 위해 완성한 회화 중 각각 희고 검은 피부를 지닌 천사와 악마가 섹스를 하는 이미지는 꽤 논란이 됐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앨범을 발매할 때 이 메인 커버를 훨씬 얌전한 그림으로 교체해야 했다. 자신의 경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트 프로젝트”라고 떠들고 다니는 웨스트에게는 이 역시 흡족한 소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술계의 뮤즈 자리를 두고 칸예 웨스트와 맹렬히 경쟁 중인 또 한 명의 팝스타는 레이디 가가다.

그녀는 2013년에 (제목부터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Artpop> 앨범을 발표하며 유명 미술 작가들과 대대적인 협업을 펼쳤다.제프 쿤스가 재킷 디자인을 맡았고, 론칭 이벤트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제프 쿤스, 로베르 윌슨 등과의 작업이 소개됐다. 몇 년 전, 온몸에 진주를 촘촘히 붙인 채 테렌스 코와 레드 카펫 위에 섰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전개이긴 했다. 미술계의 스타들은 레이디 가가가 요즘 부쩍 빠져 있는 액세서리인 건지도 모르겠다.

그 섬을 찍고 싶다
풍경엔 소유권이 없다. 하지만 풍경 사진이라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지난 1월 14일,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전시 <동방으로의 여행>이 열리고 있는 공근혜갤러리? 아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에 있었다. 앞선 6월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의 2011년 광고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4일엔 케나가 직접 증인으로 출석한 3차 공판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를 이국의 법정에까지 세운 작품은 ‘솔섬1(Pine Tress, Study 1, 이하 솔섬)’. 지난 2007년 강원도 삼척의 작은 섬에서 나무가 물에 반사된 모습을 장노출로 포착한 흑백 사진이다. 그런데 2010년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역시 솔섬을 담은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 회원의 ‘아침을 기다리며’가 입선으로 당선되고, 이듬해 대한항공이 이 작품을 TV CF ‘솔섬삼척’편에 사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선 대한항공은 자연 경관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솔섬을 촬영한 사진은 케나 이전부터 존재하므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케나와 공근혜갤러리는 솔섬을 모방한 사진 자체가 아니라, 그 사진을 상업광고에 이용한 데 대한 문제 제기라고 선을 긋는다. 솔섬은 누구나 촬영할 수 있지만, 케나와 그의 작품이 이미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광고는 그로부터 비롯된 유명세를 불공정하게 이용하려 했다는 의미다. 2월 25일 최종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 대부분의 표절 공방이 그러하듯 저작물의 독창성을 법정에서 가리기가 만만치는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솔섬’의 진짜 지명은 ‘속섬’이라는 사실이다. 케나가 속섬을 솔섬이라 담았을 때, 속섬은 그에게로 와서 솔섬이 된 셈이다.

세상 밖으로
간, 간, 간송미술관을 열어라.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번지의 대문은 1년에 딱 두 번, 봄과 가을에만 열린다. 그나마 다 합쳐서 4주가 전부다. 그 집에 숨겨진 보물을 구경하느라, 때마다 사람들은 애태우며 줄을 서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1938년 완공된 이래 신비주의를 버린 적 없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아직 봄도 오기 전인 1월 말, 대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섰다. 간송미술관의 첫 번째 나들이 목적지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온라인 전시회 : 간송문화전>.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간송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이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는 자리다. 하물며 그 흔한 웹사이트조차 없는 간송미술관이 직접 사진을 찍고 해설을 곁들인 총 33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맛보기였다. 오는 3월 21일엔, 간송미술관 개관 이래 첫 외부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에 맞춰 간송미술문화재단 창립 특별전 <간송문화전 :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3월 21일부터 9월 28까지 총 2부에 걸쳐 펼쳐지며, 각각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간송이 소장한 민족 문화재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동안 단 4주간의 짧은 만남을 안타까워했던 고미술 애호가들에겐 즐거운 소식이 분명하지만, 과거에 경험한 적 없는 대규모 외출로 인해 자칫 작품의 보존이나 관리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간송미술관은 밤새 고민중이다.

취급 주의
예술 작품을 다룰 때는 언제나 조심할 것. 특히 이런 경우에 사소한 부주의는 성희롱, 상해, 재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관람객 손길 주의
누구나 예술 작품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특히 작품이 벌거벗은 행위예술가들일 경우,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201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을 관람하는 방문객에게는 전시 참여와 추행 사이의 경계선이 적당히 모호하게 느껴졌다. 여러 행위예술가들은 부적절한 신체 접촉에 대해 항의했으며, 보안 요원들이 그에 따라 지나치게 열성적인 예술품 애호가 몇몇을 미술관에서 쫓아내야 했다.

사나운 아티스트 주의
1996년 미술가 올렉 쿨리크는 스톡홀름 소재의 파그파브리켄 현대미술 및 건축물 센터에서 열린 <인터폴> 전시회의 일부로 “위험”이라고 쓰인 표지판 옆에 자신을 묶어놓았다. 고물 수집장을 지키는 개의 영혼이 빙의한 듯, 쿨리크는 다른 예술 작품을 공격하고 너무 가까이 다가온 방문객을 물어뜯었다. 그는 1997년 뉴욕 다이치 프로젝트에서 이 퍼포먼스를 재연하도록 초청받았다고 하는데, 광견병접종은 받고 갔기를 바란다.

컬렉터의 관절통 주의
위대한 예술가의 붓터치 위에 자신의 손길을 나란히 하기를 꿈꾸지 않을 수집가는 없겠지만 컬렉터 스티브 윈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2006년 그는 자신의 소중한 피카소 작품 중 하나인 <꿈>을 팔꿈치로 쳐 구멍을 냈고, 4천5백만 달러 상당의 손실을 입었다.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티스트 vs. 시민
시민을 위한 예술을 시민이 거부한다면?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06년이었다. 청계천 복원 1주년을 기념하는 야심 찬 공공미술 프로젝트였으며, 제작비 34억원은 KT가 기부 형태로 부담했다. 여러모로 훈훈해야 할 기획이었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작가 선정 과정부터 색동의 거대 다슬기를 닮은 외양까지 모든 게 도마 위에서 골뱅이 채가 될 때까지 칼을 맞았다. 심지어는 설치 전에 온라인 반대 서명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 작가의 명성도 일반 시민에게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물론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다들 ‘스프링’이 있는 청계천 풍경에 익숙해진 눈치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과 좋아지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다.

공공미술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스캔들은 리처드 세라의 1981년 작 ‘기울어진 호’를 둘러싼 논쟁이다. 맨해튼 연방 플라자 앞 광장을 길게 가로막은 길이 36미터의 녹슨 강판 덩어리에 인근의 시민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름답지도 않고 보행에도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장소를 옮기는 것은 작품 파괴나 다름이 없다고 맞선 작가 사이의 대결은 결국 법정에서 마무리됐다. 1989년, 여러 미술계 인사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울어진 호’는 이사를 가게 된다. 공공미술은 전문가부터 문외한까지 무수히 다양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작품이고, 그래서 더욱 자주 논란의 불판 위에 오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예술만큼이나 지루한 게 또 있을까?

미술관은 살아 있다
미술관에 갔다. 미술이 아니라 미술관을 보러 갔다.

한솔뮤지엄
강원도 원주의 상정상에 위치한 한솔뮤지엄에 오르는 길은 곧 여행과도 같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내벽이 인상적인 웰컴센터를 시작으로, 패랭이꽃과 자작나무가 펼쳐진 플라워 가든,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워터 가든, 9개의 봉긋한 스톤 마운드로 이루어진 스톤가든까지 이어지는 총 700미터의 여정 또한 ‘관람’이라는 단어로는 충분치 않은 자연과의 교감을 선사한다.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4개와 동시에 조우할 수 있는 제임스 터렐관은 그 700미터의 땅을 꼭꼭 발로 밟아 걸어온 관람객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다.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에게 제주도는 물, 바람, 돌을 기꺼이 내주었다. 건물 안엔 물이 흐르고 하늘은 둥글게 뚫려 있는 수 미술관에선 하늘과 땅, 물이 만난다. 나무 패널로 지어진 풍 미술관에선 나무 패널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붉은 코르텐강이 빛바랜 석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면 빛이 돌에 비치는 장관이 연출된다. 미술관이라 하지만 내부에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술이 되는 오브제로, 타운하우스 단지인 핀크스 비오토피아 내부에 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출판사 열린책들의 예술 전문 임프린트 ‘미메시스’가 지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선 출판과 예술이 어우러진다.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를 맡았는데, 다양한 전시 공간이 하나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담겨 있는 형태다. 특히 외부의 빛이 곡선으로 휘어진 벽면에 부딪쳐 백색 내부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자연의 빛에 가까운 빛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끔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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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박물관을 운영하다 보면 후원 기업의 비위를 맞춰야 할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2006년의 파리 퐁피두 센터는 좀 도가 지나쳤다.

주류 브랜드인 페르노리카가 후원한 행사에서 이브클랭의 가장 유명한 퍼포먼스인 ‘인체 측정(Anthropometries)’을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재현한 것이다. 게다가 이브클랭블루 대신 페르노리카의 브랜드 색상과 의심스러울 만큼 비슷한 파란색 페인트를 공연자들에게 흩뿌리도록 했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발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살살 합시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미술계의 극단적 시도들

섹스, 예술가,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행위예술가 안드레아 프레이저의 2003년도 작업은 호텔 객실에서 촬영한 섹스 테이프였다. 상대는 2만 달러를 지불한 익명의 컬렉터였으며 작가는 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60분 길이의 DVD 5개로 제작했다. 프레이저의 말을 빌리자면 “섹스가 아니라 작품을 위해서”였다고. 그러니까 예술가와 컬렉터 간의 관계를 매춘에 비유한 것이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직접적이기도 한 이 작업에 대해서는 평단의 반응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괴팍한 유머감각으로 악명이 높다. 살아 있는 당나귀를 갤러리에 가둬놓고, 돌에 깔린 교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며, 아이들 모습을 한 마네킹 목에 밧줄을 걸어 나무에 매달아두는 식이다. 지난 2012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나 이 역시 괴상한 농담이 아닐까 의심도 든다. 현재는 <토일렛페이퍼> 매거진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아프니까 예술이다
크리스 버든은 1970년대에 수위 높은 자학적 행위예술로 ‘미술계의 악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수의 고행을 모티프로 삼은 1974년 작 ‘책형’은 폭스바겐 자동차 지붕 위에 자신의 손을 못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심지어는 자진해서 왼팔에 총알을 관통시키는 퍼포먼스까지 벌였을 정도. 이쯤 되면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무엇에 쓰는 장소인고?
전시에 쓰는 공간이니까 넓게 보면 갤러리다. 예전에는 아니었다.

1. 이름 2. 예전에는 뭐였나 3. 요즘 어떻게 쓰이나 4. 최근 소식은

1. 구슬모아 당구장
2. 당구장
3. 대림미술관 프로젝트 스페이스. 재개발과 함께 사라질 뻔한 당구장을, 대림미술관에서 인수했다. 건축, 디자인, 시각미술, 문학, 출판, 음악 등 다양한 분야 젊은 아티스트들의 가볍고 실험적인 전시를 소개하며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있다.
4. 2월 23일까지는 사운드 아티스트이자 전자음악 작곡가 남상원의 전시 <소리의 풍경>이, 3월 5일부터는 무용과 연극,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이 열린다.

1. 문화역 서울 284.
2. 구 서울역사.
3. 대합실, 식당, 배선실 등 구 서울역사의 구석구석을 레노베이션해 전시, 공연 콘퍼런스 등 다양한 문화 행사에 사용한다. 284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번호.
4. 3월 9일까지 공예 기획전인 <온·기>전이 열리고 있다. 공예를 통해 작가 개인의 노력과 삶, 노동과 기술의 화두를 살핀다.

1. 정다방 프로젝트.
2. 문래동의 다방.
3. 30년 된 다방 간판을 실내에 둔 채 여전히 차와 음식을 파는 카페로 영업한다. 그러면서 지역의 신진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고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문턱 낮은 미술관’.
4. 최근에 사진, 영상, 설치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의 이면을 재조명하는 <빽-미라> 전이 열렸다.

1. 통의동 보안여관.
2. 숙박업소.
3. 서정주, 김동리 등 옛 문인들이 기거했던 장소. 벽돌 건물의 외양과 간판, 내부의 목조 골재의 역사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시와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투숙객을 받고 있다.
4. 윈도와 내부 공간을 나눠서 진행하는 전시도 전시지만, ‘세모아(세상의 모든 아마추어)’라는 타이틀을 걸고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에 서촌의 재밌는 사람들이 모인다.

1. Annie Leibovitz, Brad Pitt, Las Vegas, 1994©Annie Leibovitz from A Photographer’s Life 1990~2005, Courtesy of Vanity Fair 2. Tim Burton, Untitled (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and Other Stories), 1998 © 2009 Tim Burton3. Madonna, Ray of Light Album, Miami, 19984. Marilyn Monroe, 1959 © Philippe HalsmanMagnum Photos5. Audrey Hepburn, 1955 © Philippe HalsmanMagnum Photos

1. Annie Leibovitz, Brad Pitt, Las Vegas, 1994
©Annie Leibovitz from A Photographer’s Life 1990~2005, Courtesy of Vanity Fair 2. Tim Burton, Untitled (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and Other Stories), 1998 © 2009 Tim Burton
3. Madonna, Ray of Light Album, Miami, 1998
4. Marilyn Monroe, 1959 © Philippe HalsmanMagnum Photos
5. Audrey Hepburn, 1955 © Philippe HalsmanMagnum Photos

너의 뒤에서
블록버스터 전시 뒤에는 블록버스터 전시 기획사가 있다.

2013년을 들었다 놨다 한 블록버스터 전시엔 공통점이 있다.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전시 기획사가 전시를 주최한 미술관이나 기업과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3년 최고의 흥행 전시라 할 수 있는 <팀 버튼전>은 현대카드와 MoMA의 합작 프로젝트로만 알려졌지만, 그 뒤에는 <오르세 미술관展>, <루브르 박물관展> 등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전시의 역사를 만들어온 GNC 미디어가 존재한다.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를 흥행시킨 코바나컨텐츠는 연말부터 시작된 <점핑위드러브展>로 다시 한 번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고, 지온아트앤디자인은 <마리오 테스티노展>에 이어 <피카소에서 제프 쿤스까지>를 선보이며 패션과 아트의 접점을 찾는 전시에 강점을 보였다.

<애니 레보비츠 사진전>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展>, <카쉬展> 등으로 경험을 쌓아온 이앤브이 커뮤니케이션의 프로젝트다. 주로 해외 미술관과의 교류전이나 순회전을 유치한 후 국내 국공립미술관과의 협업 형태로 대규모 전시를 선보이는 전시 기획사는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부족한 인프라와 예산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엔 주로 고흐, 샤갈 등 미술의 교육적 효과에 치중한 전시가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엔 그 외연 또한 넓어지는 중이다. 다만 수익을 내야만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만큼, 소비가 확실시되는 대규모 대중 전시로만 쏠리는 경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쇼하고 있네
미술계도 패션계만큼이나 냉정할까? 진보한 작품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미술은 외면받게 될까?

미술 시상식이라는 제도는 대부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디션 리얼리티 쇼라면? 3월부터 방영될 <아트 스타 코리아>는 서바이벌 형식을 통해 유망한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가 파트너로 참여해 전시 기획 및 심사를 도울 예정. 멘토로는 큐레이터 김선정과 미술평론가 반이정이 낙점됐다. 제한 시간 안에 답을 써내는 수능 시험처럼 예술에도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방영 전부터 이 쇼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말들이 많다. <아트 스타 코리아>가 전혀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아트 딜러 제프리 다이치는 이미 2006년에 <아트스타>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yBa(젊은 영국 아티스트) 붐을 조성한 찰스 사치 역시2 009년에 비슷한 형식의 쇼인 <스쿨 오브 사치>를 기획한 바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건 한국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워크 오브 아트>일 것이다. 평론가 제리 살츠, 옥션계의 큰손 사이먼 드 퓨리 등이 심사위원과 멘토였고 진행자는 아시아 차우였다. “당신 작품이 우리에게는 와닿질 않는군요(Your work of art doesn’t work for us).” 그녀는 탈락자들에게 매주 이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선례들은 후발 주자의 앞날을 가늠하게 해줄 중요한 단서다.

쇼가 끝난 뒤, 과연 우승자는 스타 작가가 됐을까? <워크 오브 아트> 2시즌의 우승자로서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개인전까지 가진 키미아 나와비는 방송 종영 후 1년 반쯤이 지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 유명한 것과 거리가 멀어요. 아직도 고지서들을 해결하기 위해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걸요. 가끔 길이나 지하철에서 절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긴 하죠. 하지만 그중 제 작품을 아는 이들은 드물어요.”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나 오디션 리얼리티 쇼나 미술에 순위를 매긴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아트 스타 코리아>를 비딱하게 보는 시선에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미술은 팝음악, 혹은 패션과 나란히 견주기 힘든 장르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어려운 일이지만, 미술의 경우 그 바늘구멍이 특히 좁다. 한 명의 작가에 대한 평가가 정리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시도에 미술 애호가들이 갖는 거부감은 제작진과 참가자가 극복해야 할 큰 과제다. 한국 미술 시장에서 <아트 스타 코리아>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아무래도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이 궁금해지긴 했으니 일단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걸까?

진짜? 가짜?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을 둘러싼 진실 게임

샤넬과 프라다, 루이 비통은 ‘짝퉁’도 흔하다. 유명 브랜드일수록 더 많은 가짜를 양산하기 마련. 그 점에서는 미술도 패션과 마찬가지 아닐까? 작년에 창립 10주년을 맞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그간의 활동을 <한국 근현대미술 감정 10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되짚었다. 위작에 관한 기록과 그 감정 과정에 대한 내용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가장 많은 모방작이 유통된 작가는 바로 이중섭이다. 187점을 조사한 결과 무려 108점이 가짜로 판명됐다. 진품(77점)보다 위작이 더 많았던 셈이다. 그 뒤를 잇는 인물은 천경자다. 총 327건의 감정 의뢰가 있었는데, 그중 99건이 위작이고 2건은 감정 불능 판정을 받았다.

특히 지난 1991년에 국립현대미술관과 화가 사이에서 벌어진 공방은 지금까지도 종종 언급되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스캔들이다. 미술관이 소장 중인 ‘미인도’가 가짜라며 천경자 본인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사건은 온갖 잡음을 일으키며 흐지부지 봉합됐고, 화가는 절필 선언 후 미국으로 향했다. 박수근의 ‘빨래터’를 둘러싼 논란도 지난 2007 ~2008년에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한 조사 끝에 결국 진품 판정을 받은 경우다. 인사아트센터에서 3월 16일까지 열릴 <박수근 :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들르면 가까스로 명예를 회복한 ‘빨래터’를 감상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 감정 10년>는 박수근의 것으로 알려진 작품 247점 중 94점이 위작이었다고 전한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황선우, 정준화, 김슬기
포토그래퍼
박종원
기타
PHOTOS / GETTY IMAGES/MULTIBITS(제발 조용히 좀 해요, 멈추지마) COURTESY OF TOPIC/CORBIS(취급주의), COURTESY OF GALLERY KONG(그 섬을 찍고 싶다), 간송미술문화재단(세상 밖으로), WWD/MONTROSE(무기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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