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만나 패션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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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987년 안 반데보스트와 필립 아릭스는 앤트워프 로열 아카데미에서 만나 10여 년이 흐른 1998년, 파리에서 둘의 이름을 딴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를 선보였다. 그들의 두 번째 컬렉션엔 붉은 적십자 마크와 함께 병실의 철제 침대 위에 잠든 모델들이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그 둘은 아카이브를 새롭게 되새기는 2014 S/S 쇼를 선보였다. 그리고 여기 파리 11구에 위치한 A.F. 반데보스트의 쇼룸에서 이들을 만난 건 단순히 시간 여행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바로 창조의 고통을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독창적인 철학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다.

둘이 함께 일궈온 A.F. 반데보스트의 15주년을 축하한다. 힘들었던 순간도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것 같다.
필립 A.F.반데보스트가 15년 동안 존속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웃음). 15년 안에 세컨드 라인에서 액세서리 라인까지 전개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어요. 우리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지켜 가는 것,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열정을 갖기란 사실 쉽지 않았어요.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대기업에 속해 있는 막강한 브랜드에 맞서야 한다는 점 또한 힘들었고요. 그러나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했기에 버틸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역할을 무엇이며 파트너로서 서로 어떠한 도움을 주고있는지 궁금하다.
초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일했죠. 그러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역할을 분담하고, 필립은 브랜드를 세상 밖에 어떻게 소개시킬까에 집중했답니다. 지금도 쇼룸 운영에서 마케팅, 협업 또한 필립이 진행해요. 반면 저는 창의적인 영역을 전담하고요. 필립이 디자인을 담당하지 않기에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의견을 줄 수 있죠. 하지만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언제나 의견을 나눠요. 나아가 필립은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웃음).
필립 대단한 미적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대 교수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예술적 감성과 지식이 뛰어난데, 이를 항상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한다는 점이 놀라워요. 또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척 잘합니다. 이는 패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요. 또 한 가지 장점을 든다면 그녀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입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성공시키고요.

그저께 A.F. 반데보스트의 2014 S/S 쇼를 보았다. 인비테이션의 모티프가 된 모래가 의상에도 마치 하나의 장식처럼 등장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이번 쇼의 영감은 무엇이었나?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기에 앞서 지난 15년간의 컬렉션 중 좋았던 부분과 고쳐야 할 부분을 살펴보았어요. 가끔은 우리를 대표하지만 너무 과한 부분도 있더군요. 그래서 좋았던 요소는 물론 고쳐야 할 부분도 선택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죠. 모래에 대한 영감은 모래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에서 시작해요. 사막인지 해변인지 모르는 곳에서 한 여성이 잠에서 깨어나서 걷기 시작하는 거죠.

컬렉션에 등장한 눈에 띄는 볼륨감의 골드 액세서리도 무척 흥미로웠다. 어떤 모티프로 시작된 아이디어인가?
항상 긴장감을 주는 상반된 요소를 즐겨요. 이번 시즌에도 상반된 캐릭터의 두 여성을 상상했죠. 북쪽에서 온 차갑고 창백한 피부를가진 여성과 남쪽에서 온 구릿빛 피부의 여성. 그러다 보니 두번째 여성은 좀 에스닉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주얼리 또한 에스닉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런던에서 활동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비키 사지(vikie Sage)와 협업을 했고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컬렉션은 무엇이었나? 필립 매 컬렉션이 의미가 있죠. 그러나 두 번째 쇼는 에디터들로부터 꽤 칭찬을 받았어요. 모델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파격적인 쇼 진행이었죠. 그리고 2004년에 선보인 택시를 타고 등장하며 시작된 퍼포먼스 역시 큰 관심을 받았고요.

1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필립 조만간 A.F.반데보스트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책을 기획할 것 같아요. 참, 올 11월 말에 홍콩에서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부츠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고요. 저희 베이스이자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앤트워프의 한 곳과 연계해 작업하고 있죠. 당신들의 작업은 옷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엔날레나 협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여왔다.
항상 A.F.반데보스트만의 세계를 다양한 수단으로 소개하려고 해요.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죠. 비엔날레에 선보인 설치미술 작품 ‘잠자는 여인’은 저희 두 번째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병원의 분위기를 모티프로 한 것인데, 컬렉션 사진을 배경으로 촛불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여인에게 반데보스트의 룩을 입히고 병실에 누워 있듯이 침대에 누워보라고 했죠. 그 형태를 몰딩해서 여인이 잠자는 형상을 만든 뒤에 촛불을 올린 것이고요. 결국 이 설치미술의 영감은 패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필립 한번은 ‘Traveling Store’를 고안해냈어요. 컨테이너 구성의 매장이 전 세계 각지로 여행한다는 콘셉트였죠. 매장 안은 병원처럼 디자인했는데, 병원은 브랜드가 지닌 영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병원복의 실루엣부터 아이보리 색상, 병원의 가구 디자인과 적색 십자가 등 모두 A.F. 반데보스트의 대표 코드죠. 컨테이너 매장이라 매장 전체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A.F. 반데보스트의 아이덴티티를 한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그녀는 연약하고 로맨틱하며 우아하면서도 자신감 있고 내면이 강한 여성이에요. 예를 들면 독일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들 수 있겠네요. 즉, 신체적으로는 연약하고 감성적인 것처럼 보여도 내면은 매우 강인한 여성요.

앞으로 A.F. 반데보스트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가?
협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에요.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는 동안에 우린 많은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공유하죠. 우리의 장점을 잘 알게 해주는 기회고요. 중요한 건 우리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협업을 잘 선택하는 것이죠.
필립 가장 큰 목표는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이에요. 앤트워프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랍니다.

이 모든 새로운 창조의 고된 과정이 두렵지는 않은가?
부담이 되지만 장점도 있죠.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게을러지지 않거든요. 또 항상 끝이 있기에 미련없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죠. 이번 시즌이 잘 되었거나 아니면 못 풀렸더라도 말이에요. 그건 마치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는 느낌과도 같죠. 파리 통신원ㅣ이지선

파리 11구에 위치한 A.F.반데보스트의 쇼룸 한켠에서는 15년에 걸친 듀오의 컬렉션 영상이 게스트를 맞이한다. 반데보스트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담은 두 번째 컬렉션 영상.

파리 11구에 위치한 A.F.반데보스트의 쇼룸 한켠에서는 15년에 걸친 듀오의 컬렉션 영상이 게스트를 맞이한다. 반데보스트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담은 두 번째 컬렉션 영상.

파리에서 열린 2014 S/S 컬렉션. 사막에서 온 모던한 여인처럼 여유로운 실루엣의 옷에 비즈처럼 장식된 모래알들이 서정적인 무드를 전한다. 볼드한 황금빛 주얼리는 런던 주얼리 디자이너 비키 사지와 협업한 것.

파리에서 열린 2014 S/S 컬렉션. 사막에서 온 모던한 여인처럼 여유로운 실루엣의 옷에 비즈처럼 장식된 모래알들이 서정적인 무드를 전한다. 볼드한 황금빛 주얼리는 런던 주얼리 디자이너 비키 사지와 협업한 것.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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