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카운터에서 제품만 판매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다채로운 화장품 매장들은 이제 화장을 할 수 있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제모도 가능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저 둘러만 봐도 이미 스마트한 쇼핑이 시작되는 곳. 에디터가 직접 서울의 뷰티 카운터 15곳을 다녀왔다.
샤넬 올팩티브 바
올팩티브(Olfactive), 후각 기관을 뜻하는 이 단어야말로 샤넬의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매장을 묘사하기에 제격이다. 여느 샤넬 매장과 같이 심플함과 그 속에 넘쳐흐르는 우아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지만, 조금 더 코지한 편. 오로지 향수만을 위해 특화된 공간이니만큼 차가운 플라스틱이나 유리보다는 따뜻한 우드나 트위드 질감의 패브릭, 브론즈 색상의 소품을 택한 덕이다. 한쪽에 준비된 바(bar)는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샤넬의 향수 제품 전체를 향조별로 구분한 세라믹 블로터가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는데, 여러 개의 향수를 정확하게 시향할 수 있도록 고안된 샤넬 올팩티브 바의 전매특허 아이템. “보통은 종이에 향수를 분사해서 향을 맡아보는데, 이럴 경우 처음 뿌렸을 때 풍기는 톱코트와 알코올 냄새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죠. 공기 중에 분사된 잔향으로 인해 동시에 여러 개의 향수를 정확하게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고요. ” 샤넬의 향수 스페셜리스트 김현미의 설명. 그러나 샤넬의 올팩티브 바는 그때그때 향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세라믹 소재 막대에 향기를 가둬뒀다 시향하는 방식이라 향수 본연의 향기를 가장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샤넬 패션 부티크에서만 판매되는 최고급 향수 라인인 ‘레 엑스클루시브L(es Exclusifs)’도 뷰티 카운터 중에는 유일하게 준비되어 있다(당연히 올팩티브 바를 통한 시향도 가능하다). 향수 이야기만 했지만 다른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는 건 물론 아니고!
조말론 런던 카운터
지난해 가을, 조말론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첫 매장을 오픈했다. ‘론칭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 1년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고, 개장 첫날 루이 비통이나 샤넬처럼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을 정도였다. 처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다시 반년이 흐른 지금도 조말론은 여전히 인기다. 무료로 운영되는 핸드 마사지 서비스는 예약을 하고도 1~2주는 기다려야 하고,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만 겨우 구할 수 있는 몇몇 향수도 있다. 그러니 아직도 조말론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방문해볼지어다. 참고로 얼마 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하이엔드 퍼퓸 바
“나는 이 제품이 지극히 평범해지길 원치 않는다. 나의 옷을 입을 줄 아는, 타인과 다른 취향을 지닌 이들에게 이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던 미스터 아르마니. 그의 수준 높은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또 하나의 역작, 프리베 컬렉션이 지난가을 출시되었다. 홍콩의 아르마니 차터 하우스, 도쿄의 아르마니 긴자 타워, 두바이의 아르마니 호텔에 이어 서울의 뷰티 카운터에 작은 둥지를 튼 것이다. 이름하여 ‘아르마니/프리베 익스피리언스(Armani/Prive Experience)’.
이곳을 온전히 즐기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아르마니의 새틴 소재 장갑을 낀다. 그러고는 컨설턴트가 건네주는 글라스 벨을 하나씩 집어든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폐 속까지 ‘기기기기깊게’ 향을 들이마신다. 마치 와인을 디캔팅하듯! 여기까지는 후각으로 느끼는 향. 곧이어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랑쿠시의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14 종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시각), 향조에 따른 스킨테스트(촉각)를 하고, 준비된 음악을 듣고(청각), 조르지오 아르마니 까사에서 공수한 초콜릿과 커피 서비스(미각)까지 음미하고 나면 비로소 조르지오 아르마니 퍼퓸 바의 오감 서비스를 온전히 경험하게 된다. 이쯤은 되어야 진짜 ‘하이엔드’다.
헤라 부티크
백화점은 물론 온라인 스토어에 어딜 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게 헤라 매장이지만, 기어이 이곳까지 찾아가야 할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먼저 립스틱 하나 마음껏 발라보기도 뭣하고, 거울이라도 볼라치면 앞사람 뒷사람 눈치까지 봐야 하는 혼잡함이라곤 없다. 막말로 맨 얼굴로 가서 풀 메이크업 상태로 나와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도와주려는 건지 나를 의심하는 건지 옴싹 달싹 못하게 밀착 케어하는 카운슬러도 이곳에는 없다. 대신 궁금한 제품을 터치스크린 위에 가만히 올리면 스스로 제품을 인식해 상세한 설명을 알려주는 자동화 시스템이나, 신민아의 사진에 가상으로 칠해 발색을 비교해볼 수 있는 멀티 스크린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사진 촬영이나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유용한 메이크업 서비스와 1:1 맞춤 레슨도 준비되어 있으니,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베네피트 브라우 바
1976년이다. 베네피트에서 왁싱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그렇게 한 올 한 올이 쌓이고 쌓여 작년4 월에는 ‘24시간 동안 최다 인원 눈썹 왁싱’과 ‘최단시간 최다 인원 눈썹 왁싱’이라는 두 가지 기네스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기간과 횟수를 강조하는 건, 털을 뽑은 만큼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전국 12개 매장에 브라우 바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중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롯데백화점 잠실점 &건대 스타시티점의 매장이 가장 크다. 눈썹은 말할 것도 없고, 인중이나 헤어 라인, 팔&다리를 비롯해 비키니 라인까지도 완벽하게 다듬어준다. 물론 베네피트 말고도 왁싱 서비스를 하는 브랜드는 있으나, 오리지널만 한 게 없는 법이다. 명쾌한 진리다.
아닉꾸딸 카운터
프랑스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이자 패션 모델이었던 아닉 구딸(Annick Goutal). 그리고 그녀가 만든 프랑스의 하이 퍼퓨머리, 아닉꾸딸 하우스가 얼마 전 한국에 론칭했다.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전용 조향사와 조향 아틀리에를 갖추고 있는 브랜드이니만큼 고급스러운 향조와 완성도 높은 베리에이션을 갖추고 있는 아닉꾸딸은 멋 부리지 않아서 더 멋이 나는, 가장 프렌치한 감각의 향수다. 더 좋게 말하면 이런저런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극도로 키치한 것부터 최고급 니치 향수까지 한번씩은 지나쳐본 사람들이 결국엔 찾게 되는 고급한 취향이랄까?
입생로랑 뷰티 카운터
입생로랑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엄청 세련됐는데 또 힙하고, 한없이 섹시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닌하지는 않다. 아주 어려운 브랜드도 아니면서 가벼운 맛은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시크하다. 입생로랑 패션 하우스의 명성 그대로, 그야말로 화려하게 등장한 입생로랑 뷰티의 첫 번째 매장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깊은 블랙과 골드를 사방에 휘두른 탓에 백화점 반대편에서 보아도 한눈에 입생로랑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오픈 때는 분에 넘치는 환대 덕에 테스터 제품이 동이 날 정도로 인기도 끌었다. 그렇다고 전시 상품이 적은 건 절대 아니다. 입생로랑 뷰티의 메이크업 제품을 한데 모은 컬러바(Color Bar)만 해도 3개나 있고, 여기에 스킨케어 존과 향수 코너도 마련되었다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김희진
- 포토그래퍼
- EOM SAM CHEOL
- 디자이너
- illustrated / PYO KI S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