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띄운 탄산수 같은 타히티 80의 음악은 프랑스에서 음악 하는 남자들이라면 죄다 미셸 르그랑처럼 감상적이거나 세르주 갱스부르처럼 느끼할 거라 생각한 사람들의 편견을 청량하게 무너뜨렸다. 프런트 맨인 자비에르 보이어와 베이시스트 페드로 리센드가, 20년 가까이 타히티 80란 이름으로 활동하면서도 정작 이 이국적인 섬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밴드의 과거, 현재,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4번째 내한이라 한국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지난 방문 때는 멤버들이 폭탄주를 썩 마음에 들어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XAVIER BOYER (이하 XB) 맞다.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독한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색다르게 느껴졌다.
술 말고는 또 어떤 게 마음에 들었나? 내한한 외국 밴드마다 한국 관객을 잔뜩 칭찬하고 돌아가던데.
XB 세계 최고의 관객 중 하나일 거다. 물론 가는 나라마다 똑같은 이야길 하지만 이번만은 진심이다. 그 어느 나라 관객들보다도 크게 소리를 질러주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비틀스가 된 것 같다.
종종 감각적이고 달콤한 사운드에 멜랑콜리한 가사를 얹는다. 지난 앨범인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Possible>(이하 <PPP>)에서 이렇게 아이러니한 느낌은 특히 두드러진다.
XB 냉소나 아이러니를 의도한 건 아니다. ‘Heartbeat’나 ‘1000 Times’를 부를 때와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됐기 때문일 거다. 모든 음반은 그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같다. <PPP>는 레이블 설립 후 내놓은 첫 앨범이라 제작하면서 압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음악이 어두워지지 않았나 싶다.
말했다시피 타히티80의 음악에서는 여러 장르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10대 시절에는 어떤 곡들을 듣고 자랐나?
XB 뉴 오더, 클래시, 해피먼데이스 등등.
PEDRO RESENDE (이하 PR) 닥치는 대로였다. 1960년대 밴드들을 뒤지다가 틴에이지 팬클럽을 듣고, 그러다 다시 1970년대 곡을 재발견하는 식이었다.
본인들의 작업이 프랑스 대중 음악의 유산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나?
XB 흥미로운 프랑스 아티스트도 많고 그 DNA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특정 뮤지션을 참고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팝이나 록은 다른 나라의 것이었으니까. 프랑스적인 요소를 미국적, 혹은 영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우리의 특징 아닐까 싶다.
제이슨 므라즈는 공연 때마다 대기실을 친환경 제품들로만 채워달라고 부탁한다. 타히티80의 경우는 어떤가? 백스테이지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다면?
PR 잭 다니엘스 여러 병?
XB 맞다. 그리고 소주도(웃음). 농담이다. 우린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아, 태국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와인과 치즈를 부탁했는데 그곳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대기실에 가보니 질 나쁜 치즈 조금과 냉장 보관한 레드 와인이 놓여 있었다. 어딜 가든 그 나라의 유기농 음식을 알아서 챙겨달라고 하는 게 최선이다.
프란츠 퍼디난트는 소녀들을 춤추게 하기 위해 연주를 한다고 했다. 타히티80은 무얼 위해서 음악을 할까?
XB 소녀들을 춤추게 하고 여자친구를 따라온 남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하려고(웃음)? 프란츠 퍼디난트의 캐치프레이즈는 썩 괜찮은 것 같다. 음악에 대한 가장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반응이 춤일 테니까. 무대 아래의 청중들이 춤을 추고 있다면 무대 위의 당신은 적어도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타히티80란 밴드 이름은 자비에르 보이어의 아버지가 구입한 기념품 티셔츠 문구에서 빌려왔다고 들었다. 팀이 결성된 지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 타히티는 직접 가본 적이 있나?
PR 물론… 못 가봤다.
XB 돈이 없어서(웃음). 사실은 타히티에 대한 꿈을 너무 많이 꿔서 직접 가보고 실망할까봐 겁이 난다. 지금껏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회사에다 이런 농담은 했다. 직접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타히티에 가서 뮤직 비디오를 5개쯤 찍어올 테니 비행기 티켓과 숙소만 마련해달라고. 가만, 그러고 보니 이젠 회사가 우리 거잖아?
PR 절대 안 된다. 내가 허락 안 할 생각이다(웃음).
XB 그렇다면 아무래도 밴드가 해체할 즈음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때 다 같이 가서… 울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 포토그래퍼
- 신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