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티에 VS.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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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이자 마스터인 장 폴 고티에와 요지 야마모토 전의 큐레이터 인터뷰.

고티에의 예술적인 작품 80여 벌이 전시됐다.

고티에의 예술적인 작품 80여 벌이 전시됐다.

Jean Paul Gaultier
(Thierry Maxime Loriot, 더 몬트리올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고티에야말로 모든 디자이너의 우상이었는데 그는 여전히 건재하다. 롱런의 비결은?
80년대 마틴 마르지엘라가 꽤 오랫동안 그의 어시스턴트였고 그 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피터 던다스도 그랬다. 고티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최초의 훌륭한 학교였다. 매퀸 역시 90년대 초 고티에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수없이 보냈다. 고티에는 매퀸이 인정한 유일한 쿠튀리에였으니까. 전시를 준비하며 놀랐던 것은 그의 1971년 컬렉션조차 동시대적이라는 점. 그의 강점은 자유로운 방법으로 그의 감성과 창의성을 지켜나간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그가 추종자가 아닌 창조자임을 증명한다. 현재 레이디 가가가 즐겨 신는 부츠는 바로 1987년 고티에의 스터드 장식 플랫폼 부츠와 같은 디자인인 것을 보라.

위대한 디자이너일수록 큐레이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큐레이팅했나?
당신 말처럼 수많은 작품 중 옷을 고르는 건 매우 어려웠고 회고적이 아닌 현대 설치미술을 다루듯 접근해한 전시여서 더욱 그랬다. 최종 작품을 선택할 때 고티에가 함께했는데 “이 전시는 내가 해온 모든 것을 통틀어 스케일이 가장 크다”고 했다. 나는 전시에 그의 내면, 성격, 유머, 독창적인 천재성, 사소한 코멘트까지 반영하려 애썼다. 나는 고티에의 ‘Corpus’ 같은 작품을 보며 패션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브 생 로랑처럼 고티에는 유일하게 패션을 예술로 만들고, 이를 하나로 모아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 앤디 워홀처럼. 그는 150번이 넘는 컬렉션과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협업했다. 그 어떤 디자이너도 고티에처럼 폭넓은 영역의 작업을 하진 못했다. 매력적인 것은 모든 것이 항상 새롭고 혁신적이며 특출하다 것. 그 결과, 그는 여전히 존재감있는 디자이너고 스타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준다.

장 폴 고티에와의 소통 과정은 어땠나?
진정한 협업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너그러웠고 수많은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그는 모든 아이디어에 귀 기울였고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으며 과거에 했던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또한 성공적인 과거에 대해 자만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는 온전히 미래를 지향하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 전시가 새로운 창작품이길 원했다. 전시를 자신의 색다른 창조물인 설치미술로 생각했으니까.

고티에만의 흥미로운 점은?
도전 정신. 베스트셀링을 위한 디자이너가 아닌 특별하고 예술적이며 자유로운 심성을 지녔다.

그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나?
그의 패션은 매우 개방적이고 관대하다. 여성에겐 코르셋을 입을 수 있는 자유, 남성에겐 스커트와 오트 쿠튀르를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삶과 섹슈얼리티에 자유를 불어넣었다. 또 나이, 국적, 사이즈에 관계없이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세계의 문화와 종교까지 조화시킨다. 그가 표현하는 아름다움과 취향은 건전하고(healthy),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며 꼭 필요한 것이다.

웨딩드레스를 물 위에 띄운 시적인 와핑 프로젝트의 야마모토 전.

웨딩드레스를 물 위에 띄운 시적인 와핑 프로젝트의 야마모토 전.

Yojhi Yamamoto
(Jules Wright, 와핑 프로젝트)

처음 본 야마모토의 쇼는 모델들이 걸어 나오면 두 명의 헬퍼가 다른 옷으로 변형시키는 컬렉션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패션쇼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 움직이는 그의 옷을 어떻게 큐레이팅했나?
이 전시는 갤러리 전시장 안에 설치된 거대한 연못에 생긴 반사가 가장 큰 주제다. 연못의 물이끊임없이 움직여 그의 작업의 유동성과 변화를 표현한다.

어떻게 큐레이팅했나?
V&A의 복잡한 전시와 대조를 이루게 했다. 야마모토의 1998년 작품인 백색 실크 웨딩드레스 하나만 전시하기로 했고 그가 태어나 자란 곳, 일본의 지형적인 특징, 섬과 물…을 계속 생각했다. 그래서 갤러리 안에 바다를 만들고 작품을 섬처럼 뜨게 했는데 조명을 켜면 마치 날아다니는 한 마리 불나방 같다. 그의 시적인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갤러리 안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뱃사공으로 하여금 관람객을 태우고 노 저어 가는, 작지만 조용하고 관조적인 여행을 생각해냈다.

야마모토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나?
전시를 통해 그의 시적인 면과 조심스러운 과묵함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의상 하나로 전시를 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어땠나?
‘대조적’인 빛과 어둠의 아이디어를 강조하고 싶었다. 공간은 어둡지만 작품은 밝고 부서질 것처럼 약하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전시 작품은 심하게 훼손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내 아이디어 중 일부기도 하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요지 야마모토의 본질은 무엇일까?
시적임, 지성, 장인 정신, 감성적인 위험성과 그것을 관능적으로 위장할 수 있는 재능.

와핑 프로젝트와 V&A전의 차별점은?
V&A 전은 규모가 크다. 지난 30년에 대해 심도 있게 보여주는 반면 우리는 그의 가슴속에 있는 감성을 보여준다. 두 전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전시를 본 야마모토는 당신에게 뭐라고 했나?
그는 이 전시를 너무 사랑한다. 그는 전시를 수차례 감상했으며 그의 아들과 함께, 때론 혼자 보트에 타기도 했다. 그가 왔을 때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차 한잔 드실래요?’라고 물었지만 그는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라고 내게 되물었다. 불법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재떨이를 가져다주고 전시장에서 담배를 태우게 했다. (Ligaya Salazar, V&A)

야마모토의 동적인 의상을 어떻게 큐레이팅했나?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경험할 작품의 텍스타일과 형태를 가장 염두에 두었다. 모든 작품을 오픈된 디스플레이로 큐레이팅할 경우, 관람객의 눈높이에 작품을 맞추고 가볍게 작품을 만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의 ‘진짜’ 현재를 포착하기 위해.

그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나?
그는 스스로를 ‘maker’라 부른다. 디자인을 향한 겸손한 접근과 진보적인 디자인.

전시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야마모토의 아카이브를 뒤질 수 있었던 것! 특별히 V&A에서 처음으로 남성복 아카이브를 공개 전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에디터
권희정(런던통신원), 김석원
포토그래퍼
V&A(고티에 VS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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